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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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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경과 준호


BY 황영선 2007-01-26

                                          13

 12월 13일 화요일이다. 13일은 금요일이 아니었다.

 그날이 13일 금요일이라 해도 내게는 그 날을 금기시 해야 할 이유가 전혀없다.

 나와 준호는 로즈마리향을 떨어뜨리고 촛불을 켰다.

 온 방의 불을 끄고 , 감미로운 머라이 캐리의 목소리를 들으며 슈퍼에서 산 싸구려 마주앙 한병을 오픈했다.

 불빛에 글라스와 준호의 운동화와 내 메니큐어가 춤추고, 나와 준호의 눈빛이 일렁거렸다.

 밤이 늦었지만 우리는 오랜만에 오늘 저녁 섹스를 나눌 것이다.

 그와 내가 서로의 몸을 들여다 보는 그일이 오늘 우리의 전부이다.

 

 

                                         12

 이제 한 해가 지나간다.

 오늘은 월요일, 은경은 오전에 라스베가스 그녀의 네일 샵으로 나갔다가 점심때쯤 그녀의 어머니가 얻은 많은 동네분이 조금씩 나눠 주신 맛이 짬뽕된 김장을 얻으로 간단다.

 김치가 떨어진지 며칠 되기는 했는데 무심한 나와 은경은 서로의 일이 바빠 김치를 먹을 시간조차 집에서 가지지 못했다.

 나는 오전에 두 번 이문세씨의 최근 ost 를 들었다.

 은경이 전화해 오면 길 건너편에 있는 그녀  어머니의 수선집에 같이가 낡고 오래된 그녀의 집에서 점심을 먹을 것이다.

 거친 손가락으로 죽죽 찢어주는 어머님에게 은경은 물론 눈을 흘길 것이고, 나는 군에 가 있는 처남을 대신해 시원스럽게 밥을 먹을 것이다.

 어머니는 내가 밥 먹는모습때문에 사위삼았단다.

 나는 뭐던 또 잘 먹는다.

 어제는 피곤했는데 줄무의 베이지색 털 모자를 쓴 어떤 고객분이 엿을 한 봉지 먹으라며 주었다. 나는 먹는 것은 독약빼고 다 좋아한다. 그 일만 생각하면 기분이 좋다.

 아버지와 그 손님과 은경과 은경의 어머니, 큰누나와 천구와 큰 누나의 친구 정안과 내가 함께 살고 있는 지구라는 별은 한 살 더 먹을  것이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지 않다는 은경이지만 나이는 숫자에 불과할 뿐이라 나는 생각한다. 어제 내가 쓴 브라운 색 모자와  손님의 줄무늬 베이지색 모자의 아래가 멋이든, 머리를 감지 않든 개인적인 취향이므로 더 깊이 알려하지 않는다.

 점심을 먹고, 김치통을 냉장고  속에 넣은 후 나는 나의 밝은 블루 쎅을 메고 동작대교로 가서 낚시를 하는지 세월을 낚는지  통 알 수 없는 그들을 만나고 혹시 그날처럼 다리 아래 그 위쪽 어느 지점에 그 남자가 음식을 먹고 있으면 부슨 일인지 알아봐야겠다.

 그리고 노래가 끝나면 오늘은 '새로운 인생'을 좀 읽고 어머님이 '혼불' 몇 권을 빌려 읽으신지 물어보고 지난번처럼 서울 시장 오세훈씨에 대한 설문과 시정에 대한 설문이 있다면 흔쾌히 체크해 주고, 돌아오는 길에 정안이 눈나 빵집에서 빵을 사주고, 큰누나 현주누나가 안부 전해 달라는 말을 전해야겠다.

 정말 보고 싶다고, 지난 시간으로 돌아가고 싶으나 아이때문에 바빠서 미안하다고, 오늘은 꼭 은경을 집 앞에 내겨가 맞아 주고, 그녀가 라스베가스로 다시 돌아간다는 말을 하지 않게끔 꼭 안아 주어야 겠다.

 나는 내 작은 다이어리를 꺼내 차례대로 오늘 할 일을 적는다.

 가끔씩 뒤집어진 2007년 다이어리를 보며 하하- 웃었다.

 

 

 

                                         12

 오늘 나는 또 손님과 싸웠다.

 그 손님이 단골손님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한 것은 그녀가 늘 나를 찾아와서 네일의 큐티컬을 제거하고 , 맛사지를 하고 컬러를 입히는 몇 십분 동안 계속해서 나를 괴롭히는 때문이다.

 큐티컬이 덜 제거되었다느니, 더 제거 되었다느니.

 혹은 맛사지를 건성으로 한다느니, 다른 샵에서는 이 보다 더 오랫동안 맛사지를 해준다느니 하면서, 최선을 다해 입혀 놓은 컬러에 대해 불만을 가졌고, 내가 핸드로 터치할때 조심하지 않으면 금방 네일의 컬러에 스크래치가 난다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 문제의 본질이 내게 있는 것처럼 난리를 부린다. 그럴때면 나는 눈물을 참고, 엄마가 썼던 사람 인을 자꾸짜꾸 생각했다.

 쓰러지지 않으려면  필요한 두 획에 상처를 받는것이다.

 한획과 다른 한획이 더해져 두 획이 됨을 생각하면, 목언저리까지 올라나오던 흑인의 루니가 외쳐대던 빠큔가 뭔가 하던 아메리카식 그 말을 참느라 혼난다.

 엄마는 그럴때면 나처럼 사람인을 주문처럼 외운단다.

  "맞춰 살면 되재! 엄마 나이까지 참던가 산에 가서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외던지 해야재. 너만 병나 이것아! 사람 사는 게  산 같어. 올라갔다가  내려오고, 험난한  길이 있으면 또 정상에서 커피 한 잔 마실 수 있고, 엄마는 육일을 늦게 까지 일하지만 쉴 수 있는 일ㅇ요일이 있어 좋고, 산이 있어  좋재. 뭐시 꺽쩡이여!  엄마 나이가 되면 다 알게 되재. 우리 은경이가 못 참을 건 뭐야? 엄마 한테 말해봐 내 혼내 줄랑게."

 교훈적인 말을 하는 엄마는 갑자기 도인이 된다.

 흥분하면 또 사투리가 앞선다. 서울은 다양한 사람의 집합소이다.

 그 손님의 뒤집힌 손톱처럼 내 마음도  뒤집힐 뻔 했지만 엄마와의 통화가 끝나자 엄마의 환한 웃음이 떠 올라 나도 모르게 입사에 웃음이 번진다. 하나가 영문도 모른 채 내 얼굴을 보더니 말한다.

 "언니는 웃으면, 눈이 진짜 매력적인 거 알죠?" 라며 내 네일을 연습삼아 그려보고 있다가 내 손바닥에 힘을 준다.

 "언니 손은 따뜻해서 좋아요. 전에 저 손이 너무 차가워서 겨울이면 친구 등 속으로, 겨드랑이 속으로 넣어서 따뜻하게 했어요. 언니가 부러워요.  손톱도 길고 예쁘죠. 눈도 예쁘죠. 머리결도  너무   부러워요. 언니가  직업때문에 머리 뒤로 묶고 있는 게  안타깝다니까요."

 하나는 아직 어리다.

 스물 두살이면 무엇을 알 수 있을까?

 쉰이 넘은 엄마는 아직 인생이 어디까지 온 건지 모른다고 말하며, 나와 함께 라스베가스엘 가 보고 싶어 했다.

 엄마마저 오지 못하게 한 내 네일샵을 엄마가 한가할 시간에 꼭 구경 시켜야겠다.

 이 곳이 은경의 라스베가스이고, 준호의 라스베가스이고, 손님들의 라스베가스이고, 그렇게 되려면 아주 추워지기 전에 샵의 윈도우에 붙어 놓은 막을 리무버로 네일을 지우듯, 뜯어내야겠다.

 우리 엄마 이여사의 높은 뜻을 받들어 내일부터 준호의 손도 꽉 잡고, 손님들의 손도 꼭 잡아야지! 실망시키는 손님만 있는 게 아니란 걸 스물 여덟 라스베가스이 그녀인 나 은경 서울의 맑은 거울인 여자 은경은 12월이 저물어 가는 오늘 깨닫는다.

 준호의 책에서처럼 어쩌면 세상은 사랑으로 비를 내리게 하고, 사랑으로 평형을 이루고, 사람으로 바람을 불러 작은 미나리아재비꽃에 머물게 하는 사람들이 있고, 한 남자의 죽음조차 기억 못하는 사람이 있다해도 갈릴레이의 말처럼 지구는 도는  중이다.

 밝은 태양의 주위를 말이다.<12 두편 끝>

 

 

*이제 아침을 먹고 제가 병이 나기전 만났던 그녀를 만나서 2호선에 오늘 딸아이와 함께 가 봐야 겠습니다. 사람들에게 예지력이 있고,  신기가 있다면 그녀역시 엄청난 기를 가지고 저를 괴롭혔던 아가씨입니다. 과연 제게 책에서처럼 혹은 영화에서처럼  누군가가 제 몸을 빌어 왔다갔던 것인가요. 저는 30평생을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사람으로 이 자리에 있는 겁니다. 그렇다면 저 세상에 가 계신 저의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저를 보살피고 계실겁니다. 저는 종교가 없습니다.  그리고 불교에서는 윤회설을 별로 믿지 않는다고 하더군요. 지금 죽는다면 저는 그저 무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완전한 무야 말로 그리고 지금의 제 들끓는 심정도 완전한 무가 되어야만 정상인으로 돌아 올테죠. 저 지금 제 자신과 싸우면서 글을 올립니다. 과연 큰  스님들이나 얻는다는 그런 무를 저 자신도 얻을 수 있을 지  의문입니다.

 저 마흔 하나 되도록 열심히 살았습니다. 사람들 행복하게 해 주려 노력했고요. 그러나 저 병이 났습니다. 서울에서의 많은 사연과 저 자신이 썼던 글과 주인집 아주머니때문에 그렇게 되었다고 원망 조금 하겠습니다. 그러나 그런 것들은 부수적인 것이고, 저 제    정신 놓아 버렸습니다. 그래서 아침을 먹고 집을 치우면 집에서 나갔습니다. 여기 저기 많이 돌아다녔죠. 운동삼아 한강변도 다녔고, 영풍문고의 분수대로 앉자 있었고, 그러나 결국은 제 자신과의 싸움에서 마음을 다스리기 힘들어 병이 났었죠.

 모든게 마음 안에 있었습니다.

 이제 조금씩 제 마음을 정리해 봅니다.

 집도 치우고, 냉장고도  청소해 봅니다.

 그런 맥락에서 제 자신의 얽혀진 실타래 같은 마음도 한가닥 두가닥 치워봅니다.

 얼켰다면 과감히 잘라 버려야죠.

 그 길 만이 제가 살 길이라 생각합니다.

 그럼 마지막 편 내일 뵙고, 시간을 조금 두고 아직 먼 저의 단편과 중편을 차례대로 올리겠습니다. 제 꿈은 작가입니다. 그럼 안녕히.  영선. 2007. 1.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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