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는 것은 어렵지 않다. 기차도 있고 버스도 있고 내 차를 타고 갈 수 있었다.
부자가 죽으면 자식은 없고 상속자만 있다더니 영숙은 상속녀가 되어 고향에 돌아가는 것이다.
금의 환향도 아니고 그렇다고 아니라고 할 수도 없다.
" 갈 땐 가더라도 뭐라도 알아보고 가야지? 니가 언제 거길 떠났냐?"
" 한 삼 십년 됐지? 아마?"
강산도 세 번 바뀌어도 할 말이 없다. 기억속에 가물 거리는 그 고향풍경은 아닐 것이다.
더군다나 우리는 개발에 재개발에 열을 올려 길과 강줄기 방향까지 틀어버리는데 이골이 난 지금이다.
영숙이도 그걸 눈치챗나 보다.
" 언니 우리 이러지 말고 고향동네 부동산 중개업 하는 사람을 먼저 만나볼까? 그 사람들 옛날 부터 살았다면
울 집안 애기도 대충 들은 게 있을 것 같아?"
복덕방에 별 별 사소한 애깃거리가 득실득실 한 데다. 옛날 복덕방은 그랬으나 지금은 정보라고 한다. 정보를 찌라시처럼 발행해서 팔아먹는 부동산 업자들에게 우리가 뭐라고 하며 물어 본다고 해도 걱정이다. 이런 저런 궁리를 해도 천상 남자가 좀 거들먹 거리거나 체면으로 어깨에 힘주면서 나 이런 사람인데 여기 누가 살았었냐? 굵직한 목소리로 묻는다면 또 모를 일이다. 이상하게 여자가 몇 번 가서 사정을 하고 빌어도 잘 안되는 일들이 그런 사람들이 단 한 번 전화통화로 일사천리 해결되는 것을 여러번 봤었다. 부동산엔 복부인이 반드시 있다면 그 뒤에 일 봐주는 사람이 반드시 있을 것이다. 우리가 당장 필요한 것은 그 일 봐주는 사람을 찾아 봐야 할 것 같다고 나는 영숙에게 말했다
" 그럼 우리가 무슨 복부인처럼 되는 거야?"" 영숙이가 웃는다.
" 언니 내가 열 몇 살 땐지 잘 기억은 안나는데 라디오 연속극을 우연히 들은 건데 여자 주인공이 집을 사고 팔고 지금 생각해보면 부동산 투기를 한 것 같어. 나중엔 진짜 돈을 어마어마하게 벌어서 아파트를 마련한 거야. 근디 집에 오면 혼자야..남편이 딴 년이랑 바람이나고 애들은 그 아빠를 따라가고, 나중에 목욕탕에서 혼자 우는 거야 내가 애들한테 이 집을 주고 싶어서 같이 목욕도 하고 밥도 먹고 그 고생고생 한건데 그렇게 우는 거여. 그 때 당시 그 마음을 잘 모르겠더니 인제 좀 알것 같네. 그치? 언니?"
애길 듣고 있던 중에 내 마음이 또 벌렁댄다. 그렇게 고생고생해서 돈을 벌어 집을 산 그 여자 애기가 아니라 바람이 나서 떠나버린 그 남편애기에 뭐에 푸욱 찔린 듯 얼얼하다. 혼자사는 여자들이 전부 남편이 바람이나서 혼자 사는 것은 아닐텐데 괜히 나만 벌렁 댈 이유도 없는데도 영숙을 쳐다보지 못 할 만큼 가슴이 저린다. 내 탓일 수도 있지만 바람은 혼자나는 것은 아닌데 왜 내가 이런 어처구니없는 맷돌처럼 멍청한 상황이 된 건지 은근이 부아가 난다.
.민석과 나는 엄청 싸웠다. 상대녀인 나는 상대남과 의견차이로 싸우는 것이 아니었다.
사람은 기본적인 양심과 가치를 갖고 열심히 살아야 한다거나 어떻게 멀쩡히 가정을 이끌고 그런 못 된 짓을 왜 나에게 하냐고 마구 따져 들고 나면 민석은 나에게 그랫다.
" 우연이 아냐? 우리가 만난 것은 기적이야!"
기적이라고? 어떻게 이런 되먹지 않은 만남이 기적이야? 또 따지고 들면 그는 아예 내 입을 자신의 입술로 막았다.
남자의 힘을 벗어 날 수 있다는 것은 그 만큼 힘이 더 쎄거니 아니면 빠져 나가는 다른 기술을 배워야 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힘도 없고 다른 기술을 배울 만한 핑계도 없어 매번 스르르 무너졌었다.
너무 오랫동안 싸우니 그것도 미움같은 정이 생긴다. 민석은 나보고 나쁜 여자라고 했다. 나도 나쁜 남자라고 했다.
서로 그렇게 나쁜 사람이라고 몰아부치니 우리는 동등한 관계라고 했다. 남녀가 동등하다고?
언제부터 우리가 남녀차별을 당했었는데
동등하다고 하는 것은 같은 자격으로 갖춰진다는 것인데. 우리관계는 서로 가정을 갖고 열심히 살고 있는 것 그것 하나만 동등하다고 했었다.다른 나라에 가서 다른 조건 맞춰본다면 모를까. 위도와 경도가 교차하는 지점에서 휘날리는 깃발의 색에 따라서 구분이 되나 마나 하는 시대인 만큼 들키지도 말고 드러나지 않게 숨 죽여 살 자신이 있다면 그렇게 하라고 했었다.
말하나 마나 그렇게 줄기차게 주장 했건만 민석은 전혀 요지부동이었다. 영숙에게 이런 애길 해 주면 나보고 뭐라고 할까?
미쳤다고 할 것이고 나를 다시는 안 본다고 할 지도 모른다.그 만큼 충격적인 보고임에도 완화를 위해서 또 다른 조치라면 침묵으로 일단 감춰두는 것이 당장은 상책이다.
".근디 언니 아는 남자 없냐? 그런데 가서 일 봐줄려면 아무나 하는 건 좀 그러네?"
" 고향친구 중에 동창생도 없냐?" 내가 그렇게 묻자 영숙은 한 참 골똘히 생각한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겨우 겨우 중학교에 입학해보니 두 해가 지났단다. 그러니까 초등학생 동창들이 선배가 되고 영숙은 후배가 된 것이다. 그 당시 무렵에 친 어머니가 몸이 늘 골골하다 못해 당신 말씀으론 난 병주걸이라고 늘 아프다고 아프시다고 영숙이가 학교에서 돌아오면 그렇게 슬픈 눈빛으로 쳐다 보았단다. 그럼에도 여름엔 영숙이가 좋아한다고 애호박 나물에 지짐에 박나물을 해 준다고 담넘어 푸른 줄기 속에서 막 크는 박을 타개어 껍질을 까면서 그러셨단다.
"니는 나 없어도 잘 살 수 있어, 난 걱정 안 해. 애구 우리 영숙이 우리 영숙이"
영숙 할머니는 영숙이가 딸이라고 얼른 다른 여자를 고르고 또 골랐단다.
아들을 낳기 위해서 영숙 할머니는 그렇게 알라고 통보를 했고. 몸 약한 며느리는 말 한마디 제대로 못하게 죄인 취급을 했다.
영숙의 친어머니를 기억하는데 영숙은 다른 건 기억이 가물거리는데 유독히 기억이 잘 나는 것은 작은 엄마를 처음 데려온 날 아버지의 얼굴이었단다. 그 당시 할머니는 안방을 비워주라고 당장 나가라고 친 엄마에게 고함을 치시고 아버지는 그래도 그게 아니라고 엄니는 왜 그러시냐고 말리셨단다. 그래서 골방에 조용히 사라지던 울엄마 얼굴이 지금도 생생하다고 한다. 집안에 두 여자가 같이 살기 시작햇던 날부터 영숙의 친정은 하루라도 조용한 날이 없었단다.
그 때 당숙어른도 아버지보다 더 일찍 결혼하셔서 같은 동네에서 좀 멀리 떨어져 살고 계셨는데 할머니는 그 곳에 하루에 몇 번씩 드나들면서 살림 간섭을 하셨단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사촌지간인데 영숙의 친 아버지와 당숙어른의 모습은 쌍둥이 처럼 똑같았다고 한다. 나중에 알고보니 할머니는 당숙을 큰 집에 입양시킨 쌍둥이 형제라고 하셨단다. 그래도 영숙은 가끔생각나는 아버지 얼굴보다 더 기억을 못하는 것은 당숙은 그야말로 전혀 모르는 친척이었다고 한다. 큰 집에는 늘 두번째 작은 엄마가 낳은 아들만 보냈기 때문이다. 아들을 낳은 두 번째 작은 엄마는 유난히 영숙을 타박했었다. 몸이 약한 친 엄머가 친정에 가 있는 동안 장에 가시는 할머니를 따라서 아버지가 없는 날은 더욱 그렇게 학대에 가까운 짓을 서슴없이 했었는데. 하루는 우연히 이 광경을 아버지에게 들키시고 영숙은 그날로 아버지와 같이 한 방에서 자고 작은 엄마를 다시는 안 볼듯이 냉정하게 대했단다. 나중에 견디지 못한 작은 엄마가 아버지에게 싹싹 빌고 난 후 영숙이에게 두 번 다시 그런 짓을 했다간 쫒아 낼 것이라고 화를 내셨단다. 그 후 영숙은 작은 엄마와 마주 칠 기회가 별로 없었단다. 분가를 한 것이다. 조강지처를 자식과 함께 아버지는 분가를 요청한 것이다. 며느리에겐 시어머니시고 영숙에겐 할머니가 절대 안 된다고 해도 아버지는 손자도 있고 며느리도 어머니 옆에 있으니 되엇다고 나가도 되신다고 그렇게 주장을 하는 바람에 할 수없이 작은 엄마는 시어머니 옆에서 사는 며느리고 미운 큰 며느리는 아버지와 같이 분가를 하게 된 것이다. 영숙의 애길 듣고 보니 조금 그 때 영숙의 아버지의 입장이 어느정도 이해가 간다. 몸 약한 조강지처를 두고 어머니의 아들바라는 그 소원을 들어 주시는 대신 분가를 선택 할 때 얼마나 많은 고민을 했을 것인가?
지루하고 느려 터진 그 하루들의 일상들이 한 나절 고민한다고 해결 될리는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영숙은 그 때가 제일 행복했었다고 햇다.
쌍둥이 형제였던 당숙어른은 아버지와 전혀 다른 환경에서 사셔서 그런지는 몰라도 유명한 바람둥이였다는 것이다.
어찌 된 일인지 영숙의 큰 집은 이를 두고 누구도 말린다거나 잘못한다고 지적을 아무도 하지 않았다고 했다.
남자나 여자나 제대로 몸 간수를 잘해야 한다거나 한 곳에 붙박이 인생은 못 된다고 하더라도 적어도 부평초같이 떠돌거나
뜨내기는 되지 말자는 가훈은 없었지만. 그래도 집안 어르신 한 분 쯔음 젊잖게 타이를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당신 자신이 정작 입양이 된 아들이라는 것을 잘 모르고 산 세월보다 알고 산 세월이 더 많아서 그럴 지도 모를 일이다.
차라리 쌍둥이가 아닌 닮지 않은 이란성의 인생구도 였다면 또 모를 일이지만.
아무튼 여자나 남자나 바람둥이의 말로는 비참하다 못해 거지가 된 것보다 더 누덜누덜해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