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냄새가 났다.
눈을 뜨기가 두려웠다. 몇년 전에 물었던 그 질문을 해야 한다.
눈을 감고 말 했다. "누구 있나요?" 라고...
남편이 작게 기침소리를 냈다.
"괜찮아? 병원야" 남편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알아요... 애기는 괜찮아요? 애기는?" 우경도 떨리기는 마찬가지다.
남편은 "모르겠네...여기 온지 한시간 정도 됐는걸. 내과야... 급하게 그냥 왔어"
우경은 "그렇다면 산부인과로 가요" 차갑게 쏘아 말했다.
남편은 "눈을 뜨고 말을 하지 그래? 아직도 힘든가? 그렇다면 밤이 늦었는데
이곳에 있는게 좋을듯 한데?" 남편이 처음으로 다정하게 말한것 같다. "
우경은 "나 병원에서 눈 뜨는 거 싫어! 나가게 해줘! 나가잔 말야!" 우경은 거칠게 변했다.
꼭 감은 눈에서 눈물이 났다.
"왜? 아기는 상관없어? 그래...당신 미친놈 맞네! 당장 산부인과로 옯겨!
그리고, 걱정 말아. 나, 안 살거야. 당신하고 안 살거야! 내가 차가운 밥을 해준게
정말로 미안했었어. 내가 당신처럼 당신을 대한게 정말 미안했어.
내가 단 한번도 당신에게 집에 왜? 안오는지 전화하지 안은것까지 미안했어.
한번도 당신에게 먼저 안아달라고 하지 않은 내 마음이 미안하고, 죄스러웠어.
그런데, 그 미안함... 내가 갖고 있는게 아니야. 아기가 갖고 있어.
당신이 아빠니까... 내가 엄마니까... 아기때문에 살고 싶어 졌던 거야.
그런데, 당신은 상관없다는 말이지? 그렇다면 나도 당신에게 미안할 것도
용서를 바랄것도 없는 거잖아? 미친놈..."
우경은 흥분을 감추지 않고 그대로 드러내 쏟아 냈다.
남편은 아무말이 없었다.
그리고, 산부인과로 옮겨 진찰을 받았다.
다행히 아무일도 없었다. 우경은 병원 복도에 앉아 멍한 시선으로 어딘가 바라보다
"한... 일주일은 걸릴테니 집에 오지 말아요. 나갈테니 나간 후에 돌아와요.
그리고, 미안해요. " 우경은 차분했다. 담담했다.
남편은 옆에 앉아 "뭐가 미안해?" 무심 한듯 말했다.
"다... 좋아해 보려고 시작 했던것도 미안하고, 좋아하지 않은 것도 미안하고..."
우경은 담담했다.
남편은 길게 한숨을 쉬었다.
"나, 당신 걱정했어. 그리고, 아기도 내가 걱정 한다는 거 알았어. 다시 생각하자.
당신 말대로 난 아빠니까..."
우경은 뭐라 할 말이 없었다.
그렇게 살아졌다. 남편은 우경에게 말은 안 했지만 병원에 다니는 듯 했다.
특별한 변화는 없었고, 시어머니와 마주치길 일부러 피하는 듯 했다.
시아버지는 이따금 전화해서 손자와 통화를 했지만 보고싶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시어머니는 자주 전화를 해서 보고 싶다는 말은 했지만, 손자와 통화를 하지 않았다.
세월은 참 가볍게 흘렀다.
남편도 우경을 위해 평범한 모습을 보였다.
평범하다는 것, 일상적인 것들이 우리를 행복하게 하나 보다.
둘째를 낳은 후 남편은 참 다른 모습을 보였고,
병원에도 다니지 않는지 약봉투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결혼생활 팔년즈음 하여 시어머니가 일을 저지르셨다.
동업자가 바뀌었다며 어머니보다 젋은 남자와 다니기 시작 했다.
시아버지는 "내가 젋어서 네 어미에게 못 할 짓도 많이 했다.
살기가 힘든다. 언제부턴가 내가 네들을 보고 살 염치가 없다.
내가 네들에게 주는 것은 없고 오히려 병든 몸으로 받아야 한다는 것도 힘이든다.
네들 어미를 용서해라. 그래야 살 수 있다.
나도 용서 했다. 아니, 솔직히 난 그 여자를 잊었다.
네들도 용서가 힘들다면 잊고 살아라... 나는 오래전부터 친구가 있는 절로 가려 한다.
종교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저 그곳에서 아무 생각없이 군불을 지피며 삶을 용서 받고 싶다.
잊자... 나는 잊고 살거다. 부디 잊고 살아라..."
남편은 아버지를 찾아 갔지만 작고 볼품없는 곳에서 아버지를 보는 순간 걸음을 돌렸다.
아버지는 편하게 웃고 계셨단다. 커다란 나무 아래 걸터 앉아서
감히 말을 걸어 그 평온함을 깰 수 없을 만큼 편하게 웃고 계셨단다.
남편은 어머님을 찾아가서 심하게 난동을 부리고 왔노라며 웃었다.
어릴때 아버지가 사 준 야구방망이가 오래도록 쓸모가 있더라면서 싸늘하게 웃었다.
그리고, 남편의 외박은 다시 시작 되었다.
멀리서 우경을 바라보는 병도 서서히 시작 되었다.
그래도, 우경이 버틸 수 있는 것은 측은한 마음으로 남편을 보았다.
아이들과 쓸쓸하게 밥을 먹으며 우경은, 자신이 남편을 그리워 하기 시작했고,
준서의 모습은 이제 너무도 가벼운 구름이 되어
손이 닿지 않는 높은 하늘에 있게 됐다는것을 알았다.
어느날 문득 남편이 들어 오면 우경은 가슴이 떨리기도 했다.
그런 얼굴이 남편의 눈에도 보였는지 이따금 남편은 " 적당히 살자..." 라고 말했다.
적당히 남편을 좋아 하고 있다고 생각 했다.
적당히 살자는 남편은 오히려 힘들어 했다.
주머니엔 다시 약봉투가 넣어 있었고, 병원 예약용지도 있었다.
남편은 작은 목소리로 묻기는 했지만, 현관에 뭔가를 꽂아 두지는 않았다.
"어디 다녀 왔어? 친구들은 만나나? " 무심하게 물어 보지만...유심히 바라보았다.
남편의 손짓은 몸짓은 우경을 소중하게 다루는 부드러움으로 바뀌었다.
우경도 그를 그로 보는 눈빛으로 보았다.
안스러운 사람을 향한 그리움으로 남편을 보았다.
그러나, 여전히 그가 몇일씩 들어 오지 않는것에 대해서 언성을 놓이는 일은 서로 피했다.
남편은 두아이에게 좋은아빠였다.
어쩌면 자신의 미친짓을 억누르고 치료하고자 노력하는 것도 아빠이기에 가능한건 아닐까?
아버지의 말 대로 남편은 어머님을 아예 잊으려 했고, 잊은 듯 싶다.
그래서, 남편은 아버지 말대로 편해 졌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편한 모습만 보이려 애쓰는지도 모른다.
어찌되었건 깨진 유리처럼 우경을 위협하지 않았고, 스스로 참아내며 지내는 듯 했다.
그러나, 걱정말라는, 믿으라는 외박은 우경을 힘들게 하기에 충분 했다.
가끔씩 남편이 어디에 있는지 찾아 보려 했지만,
남편에게서 이상한 느낌을 받지 않았다.
남편도 때로 전화해서 "걱정 하지마... 애들 잘 있지? 우습지만 믿어라..." 라고 말했다.
우경은 남편을 믿으려 했지만, 힘든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어디에 있는지... 여자와 있는지... 하는 생각이 머리속을 휘돌면 괴로웠다.
가끔은 이렇게 울었다.
억누르고 참을 수록 가슴은 터지면서 눈물을 쏟아 냈다.
현숙이 있음에도 우경은 울었다. 자신도 정말 힘들다고 말하고 싶었다.
남편을 사랑하게 된것이다. 사랑... 서서히 시작된 듯 싶었는데,
이미 우경을 흔들어 울리는 비가 되었다.
긴 장마처럼... 우경의 사랑도 길게 울었다.
현숙은 차마 아무말도 못하고 자신도 퉁퉁부은 눈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우경을 보았다.
그때 전화벨리 울렸다.
우경은 남편인가? 싶어 목소리를 가다듬고 전화를 받았다.
그런데, 당황스러움이 역력한 현숙의 남편 목소리였다.
"저... 동찬엄마 거기 있나요?" 급한듯 했다.
"네...잠시만요, 동찬아 전화."
현숙은 멀뚱멀뚱 자신을 가리키며 "나? 누가? 여보세요?"
현숙은 동찬아빠임을 확인 하고는 "왜? 무슨일인데? 여기는 어떻게 알고? 아...춘선언니가 알려줬어? 그런데? 왜? 무슨일인데? 사고났어? 아니라구? 그럼?"
현숙은 자신을 찾았다는 남편이 무척 의아 했다.
"응? 뭐? 아버지? 누구 아버지? 뭐? 나?............ 왜? 병원? 가라구? 싫어.
......... 알았어. 어디? 당신도 간다구? 아냐! 나 혼자 가. 알았어. 어디서 만나?
알았어. 비오니까... 직접 병원에서 만나... 알았어. 잘 입고 갈께... 동찬아빠?
나 혼자 가도 돼거든? 알았어... 같이가..." 현숙은 참 당황했다.
"언니 나 갈께...다음에 얘기 하자? 좀 쉬고... 갈께."
현숙은 어딘가로 억지로 끌려가는 소, 돼지... 같았다.
비가 앞이 안 보이게 오는데, 현숙은 동찬을 업고 무겁게 밖으로 향하는 모습이 보였다.
우경이 불렀지만, 뭔가에 홀린 멍한 눈으로 그저 밖으로 향해 천천히 걸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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