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그럼 우덜이 이 돈 마음대로 써도 되냐? 아니다..송화야 니 사채업자들 그 새끼들 불러라..근디 얼마나 빚진거여? 아니다 그러지말고 우선 우덜 식당을 확장공사 할까. 언니 창고도 비만 오면 비가 줄줄 새니께 방수공사도 하고, 재네 영은이 딸내미 병원비도 팍팍 대주자구? 야야 이렇게 돈 쓸일이 자꾸 자꾸 생기냐? 니이미 없을 땐 한 푼도 아쉽더만, 쓸 일이 더 많이 생기는 게 본께 사람마음 디게 간사 스러워? 안 그러냐?
원하면 간절히 원한다고 백일기도를 해서 얻은 돈이었다고 해도 정작 돈 앞에서 우린 뭘 어떡해야 할 지 몰랐다. 하긴 무슨계획을 세워 장사를 시작한 것도 아니었고 목적없고 목표없는 부랑한 세월이 전부 우리차지였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무슨 계획을 세운 들 떠돌이들 처럼 하루가 전부였다.
떠벌이아줌니가 돈을 어디다가 사용할 내역까지 두루두루 꿰어차니 우리도 벌써 신이 났다. 송화의 눈빛이 반짝 거린다. 얼마를 줄 주 몰라서 도망 다니는 게 아니란다. 줘도 줘도 끝이 없는 게 원금은 그냥 있고 맨날 이자만 달라고 하는 돈벌레들이라고 했다. 원금을 갚겠다고 하면 함꺼번에 갚으라고 이자까지 합친 턱없는 돈을 요구했단다.세상에 그렇게 징그럽구 찐득이 같은 사람들은 처음 보았다고 했다. 그 사람들 때문에 한 밤중에 귀신이 나타나도 무서운 것은 고사하고 나 여기 있다고 절대 비밀로 해 달라고 부탁하고 싶었단다. 하얀 소복입고 히히 웃는 귀신보다 더 무서운 게 돈이고 사채업자라고 했다. 그 때 둘리 아줌니가 빙그레 웃는다.
" 그럴 땐 형사나 경찰에 먼저 신고하고 만나야지."
" 아니 그래도 되요? 개네들은 나 잡아간다고 돈 못갚으면 나를 집어 넣는다는 거예요. 내가 그 감옥만 생각하면 정신이 하나도 없고 어지럽고 그러니 말도 하기 싫어요. 지금 안 보고 이렇게 사는 게 제일 행복해요"
누구에게 쫒김을 당하지 않고 선 그 속사정을 짐작하지 못 할 만큼 지옥일 것이다. 밤에 자다가 부시시 일어나 화장실 가는 것처럼 나가더니 딸아이 사진을 흐릿한 삼십촉짜리 백열등에 비치고 보고 또 보던 송화였다. 어슴프레한 새벽이 올 때까지 제대로 울지 못하는 그 긴 밤에 달빛만 맥없이 환하게 내렸었다. 작은 어깨만큼 업힌 보고픔들이 그렇게 소리없이 달빛과 함께 흐르고 흘러 이미 바다에 도착 했을 것이다. 속에 불이 들었다고 한 바가지 찬물을 벌컥벌컥 들이킬 때도 있었고, 애들을 못 본 그 눈물바람에 아침에 퉁퉁 부은 눈두덩이를 감추느라 찬물에 자맥질을 하듯이 얼굴을 담궈었다.그래도 우린 누구도 한 번이라도 너 왜 그러냐고 묻지 못했다. 열흘에 한 번 일한 일당을 쳐서 꼭 현금으로 달라고 했다. 우린 또 그 이유를 묻지 않았다.지금 생각해보니 안 한 것 같다. 자식 못 보는 에미심정을 누가 감히 물을 수 있을 것이며, 통장에 돈까지 압류를 하는 사채업자들을 송화는 너무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돈을 봉투째 받은 후 내내 말이 없던 막자언니가 드디어 입을 열으셨다.
" 니 다시 서울로 갈 거냐?"
" 당분간은 있다가 다시 내려 올 거예요. 저 도저히 서울에서 못 살겠어요. 언니가 해 준 밥때문에 어느 식당을 가도 아무리 좋은 데 가도 입에 맞는 게 없어요. 여기가 꼭 친정같아요."
" 그래 그래 그럴 거여,,니가 젤 그럴 거다. 시상천지에 그렇게 옥이야 금이야 자식 키워도 어디 장한 어머니상 받고 남을 거다. 우덜도 어디 만만한 데 밥 좀 먹을려면 그게 쉽지가 않더라. 우덜도 그려" 멀대 아줌니도 대답하신다.
언제 올 거냐고 묻자 우선은 회사를 다시 정상으로 돌리고 인수인계를 아주 깨끗하게 마무리한다고 한다. 그 밖의 애기는 들어도 도무지 무슨 소린인지 못 알아 들었다.
" 그렁께 오긴 오는 겨?" 성질 급한 떠벌이 아줌니가 다짐을 받듯이 물었다.
한 두세 달 걸린 것이라고 한다. 모두가 둘리 아줌니 빈 자리는 그렇게 허전햇었나 보다.다음에 오면 이젠 술은 딱 끊고 개과천선해서 내려오라고 하더니 그래도 그렇게 사는 게 아니라고 어깃장 부릴 수 도 있고 별 일 없는 것처럼 다시 살아야 잘 살 수 있느니 멀 대 아줌마 그런 말씀을 하니까 떠벌이 아줌마가 대뜸 소리를 팩 질러 댔다.
" 똥싸고 뭉게는 소리 하고 자빠졌네? 야..지금 그런 소릴 나 올 때냐? 야는 가끔가다가 뭐 하나 빠진 거 마냥 시도때도 안 맞는 소리를 지저귀냐? 야 둘리가 옛날에 뭐가 어떻다는 데?" 목소리는 커서 방안이 왕왕댄다.
또 시작이시다. 옆에서 듣고만 있는 둘리아줌니는 실실 말 없이 웃고만 계셨다. 가면 언제 온다고 말해도 그 때 가봐야 안다고 와야 오는 거라고 아주 간단하게 말했다. 그렇게 산 세월은 얼마 안되어도 살다 보니 그것이 그렇긴 그렇다. 이무리 약속을 잘해도 그 때 가봐야 확인 할 수 있는 것들이 거의 태반이었다. 막자언니는 조용히 둘리 아줌니 손을 잡았다.
할 말이 참 많은 것 같았는데, 정작 얼굴보니 그 할 말이 손 부비고 얼굴 만지고 그러다보니 다 녹아 버린 것일까. 언니는 그냥 그렇게 둘리아줌니 손을 한참 놓지 못했다.
' 아유? 언니는 무슨 말을 해야지 야가 어딜 멀리 또 떠나? "
떠벌이 아줌니도 이젠 별 할 말이 생각이 안나나 괜히 말 없이 앉아 있는 막자언니만 뭐라고 한다. 우리도 달리 뭐라고 할 수 없는 그 묵묵함이 더 징글맞게 이어지는 대화였다. 오래전에 방앗간 주인이 트럭으로 느닷없이 가게에 박치기를 하여
가게 수리한다고 그 난리법석에 먼지 풀풀 날리고 부서진 의자며 탁자며 다 들어내던 와중에 그래도 멀쩡하게 푸른 소주병이 바닥에 뒹굴러 다니는 것을 보고 우린 정말 황당하게 웃었다. 둘리 아줌니가 얼마나 꽁꽁 잘 숨겨 놨으면 차가 와서 들이박은 가게 안에서 멀쩡한 소주병을 보고 기가 차다가도 그 때 막자언니가 있었으면 뭐라고 했을까 궁금하기도 했지만, 그런 건 일도 아니고 신경쓰지도 못 할 만큼 중요한 일이 더 많았다.
사람이 죽네 사네 그 와중에 뭐 그까짓 거 이러다가도 간혹 그 때 그 일이 생각나면 또 피식 웃기도 했는데, 지금에서야 둘리 아줌니보고 그 땐 왜 그렇게 술병을 잘 감추었냐고 묻고 싶었다. 다 지난 애기라고 풀어놓고 애기 하자고 제의는 하고 싶은데. 분위기가 그런 분위기가 아니다. 지금은 그 동안 말로도 다 못 푼 회한이라고 하면 그렇고 아니라도 막자언니가 그 동안 잘 키우던 딸 자식이 멀리 꼳 떠날 것이고 그 마저도 몇 칠 지나지 않아서 언제 또 볼지 모르는 것이다.그렇게 말 없는 이별식을 치루고 둘리 아줌니는 그 다음 날 아침 일찍 떠났다. 돈만 주러 온 것인지 돈만 덜렁 남은 방에서 우린 한동안 멍청하게 서로 쳐다보고 있었다. 처음부터 죽기살기로 돈만 벌려고 살았다가 먼 데도 아니고 이 미터도 아니고 일 미터도 아니고 남의 통장에 숫자로 찍힌 그림의 떡도 아니고 손만 뻗으면 수중에 잡히는 돈뭉치를 앞에 두고 우린 한참을 뭘 할지 몰랐다. 막자언니가 더 심하셨다. 그러시면서 하시는 말씀이
"이상하다. 내 몸엔 아니 내 마음엔 누가 사는 것 같다. 같은 게 아니라 누가 산다. 남자도 아닌 여자도 아닌 사람이.." 가끔가다가 막자언니는 정신없이 장사하다가 막간에 쉰다고 남자들 담배피우는 그 시간 틈에 우리에게 모기만 한 소리로 중얼중얼 그러셨다. 얼핏 그 땐 바람도 불지 않고 새도 지저귀지 않았고, 그 흔한 자동차 지나가는 소리도 없는 공간이었다.공기도 흡입을 당한 그 진공상테에서 막자언니는 똑같은 말을 후다닥 내 밷고 말아 버렸다. 둘리 아줌마는 돈만 주고 떠난 것인데. 막자언닌 그게 아니었나 보다. 가끔 휴유 ~~ 하면서 긴 한숨을 내 쉰 적이 있었는데.나는 그 때 서른 살 갓 넘어서 내 몸에 뭐가 산다거나 있다거나의 존재 관념에 대해선 무지몽매였다. 젊어서 그런지 모르지만 전혀 뜬금없는 다른 세계를 듣는 다는 것은 일종의 환청이었다.어찌보면 외계에서 살짝 신호를 받아 미친 척하는 것 마냥 한 번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내가 이해를 못 한다는 것은 상대에 대한 무지를 더 고집을 쎄게 만들기도 했었다.결국 나만 나쁜 것이 아니고 상대방이 좀 더 잘하지 괜히 나에게 달라 붙어 시비 걸었냐고 다그치고 따지는 것이 당연 한 줄 알고 있었다. 이런 것을 나만 그런 줄 알았는데 같이 그 애길 들었던 떠벌이 아줌니도 그러셨다. " 언니! 무슨 신 받았어? 진짜 신이라도 모신거여?" 둘리 아줌니가 주고 간 돈은 고스란히 은행통장에 모셔 놓으라고 하시더니 우린 그 돈이 얼마나 될까 세어 보자고 하긴 했는데, 막자언니는 둘리 아줌니가 가고 난 후 자꾸 이상한 말을 하고 계셨다. 사람이 너무 큰 돈을 보고 마음이 바뀐 거 아니냐고 우리끼린 그렇지 않을 거라고 생각 했었는데, 역시 돈은 사람마음도 바뀌게 한다고 막자언니도 별 수 없이 돈에 약하다고 수근대었다. 당장 뗏거리 떨어져 원든 않든 일을 해야 먹고 살 팔자에서 하루아침에 일년에 몇 칠 일하고 편히 놀고 먹어도 될 돈을 은행에 집어 넣고는 송화보고는 어디 좀 먼데가서 푸욱 쉬었다가 두 어달 후에 전화 하라고 하시더니 그여히 떠벌이 아줌니보고 그러신다. " 야 ! 니두 어디 좀 먼데 갔다와야 되겄다?" " 아니 어딜 가라는 거여? 시방 내가 집도 절도 없는 신세라는 거 언니가 더 잘 알쟎어? 시방 언니 맴속에 산다는 신이 또 뭐라고 조잘 거리는 거여? 아! 뭐여?" 아무래도 막자언니도 어느 병원에 모시고 가야 할지 모른다고 괜히 둘리아줌니가 사람 버려 논 거라고 그 돈은 뭐하러 줘 가지고 오 갈 데없는 사람 더 귀찮게 만드냐고 전에는 어쩌다 한 번 툭 내 밷은 말이 진짜 몇 칠 못가서 그런 일이 벌어지면 어쩌나 우리는 소름이 확 돋았다. 많은 돈보다 사람마음 변한 것이 더 무섭고 살벌한 것을 우린 너무 많이 겪었기에 무서운 영화 볼 때 예기치 못한 공포와 똑같은 심정이었다. 혹시 어떤 용한 점쟁이한테 막자언니가 두둑한 복채를 주고 굿을 한 것이 아닐까? 둘리아줌니 같이 돈 많은 사람 돌봐주면 늙어 노후에 대박이 날 거라는 예언에 그대로 막자언니가 미리 알어서 복종을 한 것이 아닐까? 그러니까 하필 그 병원에 뭐하러 가서 신발을 들고 보호자가 된 거 아니냐? 나하고 떠벌이 아줌니가 그렇게 궁금하던 애인도 소식이 연락두절 된 것도 무슨 사연이 필경 있을 것이다 라고 짐작은 했지만. 그래도 지금처럼 심하지는 않으셨다.어쩌면 갱년기같은 심한 사춘기에 쩔쩔매고 있을 것이라고 내내 눈치만 살피고 있었다. " 야 우리 식당문 닫고 어디 여행가자?" 네 명의 여자가 이젠 모두 입이 떡 벌어졌다. 장사가 안 되어서 할 수없이 문 닫는 식당이라면 모를까. 손님없어서 세도 못내고 빚져 망하는 식당문 닫는 것은 많이 봤지만. 여기저기 길 낸다고 도로공사하는 인부들도 현장에서 오는 회식손님도 무지 많은 데다가 모내기철에 비닐 하우스에서 푸르고 탱탱하게 줄무뉘 진해지는 수박하우스에 대주는 새참도 적은 매출이 아니었다.매출이 큰 만큼 일은 당연히 힘들긴 하다. 말이 그렇지 하루 몇 백명인지 정확하게 셈을 못해서 그렇지 손님이 와서 먹고 간 그릇이며 숟갈과 젓가락만 한 소쿠리인데 그걸 언제 다 세어보냐고 일하나 더 추가라며 귀찮아 했었다. 근처에 식당이 우리만 있는 것은 아닌데도 입소문은 무섭게 바람을 타고 흘러 근처에 농사 짓는 사람들은 일부러 우리식당에 트럭을 몰고 오거나 큰 봉고차에 열 댓명씩 단체로 실어 오는 손님들이 문전성시였었다.당장 예약한 것도 몇 칠 인가 따진다면 한달내내 달력에 빼곡히 쓰여 있었다. 은행에 돈 쌓이고 보니 이젠 돈 벌일이 귀찮으신가? 아니면 일하기가 싫은가? 둘 중의 하나라고 생각했었다. " 아니..언니..지금 우리가 사람을 더 구해야 하냐 마냐 그게 걱정인디 우덜 모두 어딜 가자구?" 떠벌이 아줌니도 기가 막히셨는지 코를 팽팽 푸신다. 멀대 아줌니가 아무래도 이상하신가 막자언니 이마에 손을 댄다. " 언니 열은 없는 디 왜 이러신다요?" 이젠 갱년기 같은 증세에서 한 단계 더 발달된 증세시다. " 니덜 서울에 한 번 갔다 오자? 둘리가 보고 싶다!" 갑자기 둘리가 보고싶다고 우릴 모두 데리고 서울 상경하자는 데 전혀 원하지 않았던 막자언니의 제의에 우리도 멍하니 서로 쳐다 보았다. " 아니 가게는 어쩌구..." " 가만! 가만히 생각 해보자구..그렁께 우덜 모두 서울에 놀러 가자구 그러는 겨? 그럼 언니 지금 둘리가 보고 싶어서 그러는 겨? 아니 우리가 어디 한 둘이냐구? 응 언니 포함해서 모두 가만히 우리가 몇 명이냐?" " 다 섯명이라구. 나하구 떠벌이하고 영은이 송화 언니까지 합계가 다 섯인디..서울에서 둘리가 우리보고 떼거리로 왔다구 지청구 대는 지 모르겠구먼" 멀대 아줌니가 우리들 모두 앞에서 막자언니 얼굴을 코를 디밀고 안색을 살핀다. " 언니 아무래도 서울보다 먼저 갈 데가 따로 있는 것 같어? 아니 잘 돌아가는 식당문 닫고 어딜 놀러 가자고 그러는 겨? 시방?" 한 참 말이 없다. 시선은 벽을 바라보는 데 이게 면벽인지 도 닦고 계시는 모습이 영낙없다. " 도대체 왜 그려?'우리가 그렇게 한 번에 소리를 쳤다. " 야! 가자 서울에!" 막자언니의 목소리는 이미 결정 된 둣한 것처럼 단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