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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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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많은 여자


BY 정자 2009-10-06

한 육개월만에 돌아 온 둘리 아줌니가 그 때 그렇게 어수선하고 술주정을 하던 여자가 아니었다.
떠벌이 아줌니도 몇 번을 이게 누군 겨? 누구셔? 누구시더라? 했다.
 둘리 아줌니도 각오는 단단히 하셨나보다.
미안하다고 그 동안 전화도 못하고 걱정만 많이 시켰다고 그러신다.
맛있는 거 뭐 먹고 싶냐고 줄창 한 애기 또 하고 또 한다.
안색을 보니 그 동안 술은 전혀 마신 것 같지도 않은 데.
 
" 시상에 니 둘리 그렇게 잡혀갔지 너 찾아 본다고 저 멀대가 언니가 준 전화번호 들고 가더니
  지도 백차에 실려 갔다고 하고 우덜 모두 경찰서에 잡혀 가는 거 아니냐구 송화는 질질 짜지
  참 내..기도 안차더라 근디 사람 있을 때는 잘 모르겄는디 .난 자리는 휑한거여? 어이두 없구 멀대는 저건 내가 그렇게 사귀지 말라고 했던 놈팽이 어떻게 후렸는지 지가 거꾸로 유치장에 달려가서 에구 말도 마라 내가 그 동안 당한 일을 찬찬히 말 할려고 해도 앞뒤 딱딱 맞춰서 소설 쓸려구 해도 더 어려운 거다.야 ! 테레비 연속극도 이보다 재미 없구 심심하구 둘리야 ? 근디 니 뭔 죄를 져 가지고 큰 집까지  갔다 온 겨?"
 내 이럴 줄 알았다. 단도 직입적으로 묻는 다는 말이 큰 죄를 저지른 전과자로 몰았다. 연신 슬며시 웃던 둘리 아줌니도 한 참후 입을 열었다.
" 집안 일이여...집안에 내가 총대 매고 들어간 거지"
" 뭔 집안이 너 같은 여자가  대표로 교도소도 가냐? 희안한 집안이다"
 
난 떠벌이 아줌니 더 질문을 했다간 서로 삿대질해 가면서 싸울까봐 분위기가 이상해질까 싶었다. 그래도 오랜만에 이렇게 여섯이 모두 모이니 참 좋다고 내가 한 마디 얼른 했다.
 
" 야! 니 막자언니가 널 두번이나 살려 준 생명의 은인이여? 니 부모님이 아무리 힘 주고 낳아두 그냥 팩 죽을 목숨을 그것두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살려 준 은인인디. 어째 이름 몰라 성도 몰라 쥐뿔 니 낯 짝  몇 년 지켜 본 게 인연이라면 그거 겁나게 질긴거라두 할 수 없지맨두  한 통화 전화도 없이 그 잘난 오빠 한 번 찾아 온 것 가지고는 니네 집안 뭔지 좃도 똥인지 된장인지 꼭 맛을 봐야 알어?어디 인제 자리 한 번 제대로 폈응 께..니 집안 잘 났건 못 났건 소상하게 애길 혀야 생명의 은인에게 할 도리여? 안 그려?"
 떠벌이 아줌니는 분명히 전생에 어디 경찰서앞에 있는 어떤  변호사를 모시는 사무장처럼 말씀을 하신다.  법 공부 제대로 한  변호사 뺨치는 후려치는 말 재간에 모두  꿀 한 단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 사실은 이런 말을 여기서 할 단계는 아닌데 내가 몇 년전에 사업을 크게 했어 온 집안이 다 함께 했는데 잘 하던 사업이 좀 기울으니까..남편이 나보고 이혼하자고 하더라구..그 까짓 돈이야 있다가도 없구 없어도 남편만 하냐구...그래서 이혼은 하지 말자구 했는 데..나중에 보니 그 이유가 따로 있더라구..."
그 때 막자언니는 주방에서 우리에게 줄 재료들을 지지고 볶고 난리가 났다. 멀리서 돌아 온  아들에게 밥상을 차려주는 것처럼 부산하게 우리를 불러 대었다. 상차려라...술 남은 거 있냐? 하더니 아니다 둘리는 술 먹으면 안된다는 등 부랴 부랴 반찬 가져라고 홀에 대고 탕탕 식탁을 두두렸다.
 
" 그려 금강산도 식후경인디..근디 니 울 식당에서 다시 살 거여?"
둘리 아줌니가 또 환하게 웃었다..
" 밥 좀 먹고 대답은 나중에 해도 되지?"
떠벌이 아줌니가 그렇게 묻는데 둘리아줌마는 여유롭게 대답을 하신다.

밥상에 둥글게 둘러 앉은 우리들은 무슨 원탁의 기사들처럼 근사했다.
" 둘리야..니 매길 하면서 울 막자언니 툭하면 청국장을 지져가지고 우덜 니 덕분에 청국장만 무지하게 먹었다아" 떠벌이 아줌니가 먼저 그 말을 하니까 옆에 있던 송화도
" 툭하면 그 청국장 끓여서 손님들이 청국장도 팔으라고 하는데요 팔으면 울 둘리언니가 오면 줄 게 없다고 안 판다고 하셨어요."
 
진짜 그랬다. 막자언니는 어디서 그렇게 좋은 콩을 구했는지 모르지만 청국장 띄워서 파는 공장장을 하고 왔나 그 맛이 기가 막혔다. 한 손님은 냄새로 사람 죽인다구 으름장을 하도 줘서 겨우 한 뚝배기를 드렸더니 이젠 아예 청국장 식당이라고 늘 와서 왜 아직 메뉴판에 안 새겨 넣엇냐고 성화통에 겨우 겨우 막자언니는 그 손님만 달래기를 몇 번이었다. 청국장을 팔라고 아무리 말을 해도 도무지 언니는 그 말을 들은 척 하지 않았다.
우린 태어나서 청국장 지짐을 처음 먹었보았다. 장떡처럼 들기름으로 살살  부친 부침개인데, 세상에 어떻게 그런 별미를 개발 했는지 모르지만 막자언니의 손끝에선 어느 재료도 새롭게 태어났었다.
 그런데도 그렇게 오매불망하던 둘리 아줌니가 오셨는데 청국장이 없었다.
" 왜 오늘 줘야지 왜 안 끓인거여?"
" 응..낼 되면 뜬다. 제대로 !"
" 뭐가? 그럼 또 청국장 만들었어?"
지극정성이셨다. 옛날에 돌아가신 할머니가 그 정성에 도로 눈 뜬다고 벼라별 말을 해도 떨어 질 때가 되면  얼른 콩을 삶아서  그 구리터분한 냄새가 방안에서 온통 진동하게 하였다.  아줌마들이 구리한 방귀를 일제히 뀌어도 그런 냄새는 안 날 것이다. 근처 뒷산에 묘가 많았다. 묘비명 없이 납작하게 엎드린 오래 된 무덤위로 어디서 날아 온 고사리 홀씨에  고사리에 산취들이 들쭉날쭉 근처를 덮었다. 찔레꽃 그늘 밑에 깊숙한 곳에 사는 산취나물은 더욱 향이 진하다. 꼭 돌근처에 살 수도 없을 곳에 징하게 뿌리내려 올곳하게 허리를세운 고사리들이 더 연하고 부드러운 맛이었다.그 나물을  둘리 아줌니 맨 앞에 놔 둔다. 둘리 아줌니가 술병에 시달려 어금니가 삭아서 없어진 건지  제대로 씹지 못한다고 가위로 조각 조각 짤라 주었는데 젓가락으로 집어 들면서
"언니 내가 서울 가서 제일 먹고 싶은 게 언니가 무쳐서 주는 나물하고 청국장하고 명태찌게하고...으흑...으 엉엉!!!"
 " 야 야 밥먹다가 왜 우냐? "
면회나 사식 한 번 챙겨 주지 못한 것이 막자언니는 늘 그 미안함이었을 것인데. 
" 그런 거 말고 아무리 돈이 많고 으리으리한 집안이라고 해도 내가 두 번 죽을 뻔한  기가 막힌 팔자잖어..그런디 왜 그 때 교도소 밥 그거 아무나 먹을 밥은 못 되잖아? 퉁퉁 부은 보리알갱이가 서러운 것도 아니고 단무지가 노랗게 몇 개 들어 있는 도시락이라서 그런 게 아니고, 이 밥 먹고 살아서 내 다시 언니네로 갈 거라는 거여..참 어이도 없고 왜 그 때 언니가 끓여 준 청국장 냄새가 솔솔 나는 거여? 유치장에 내 얼굴보다 조금 큰 쪽창문에서 그 청국장 냄새가 솔솔 들어오는 데.  혹시 내가 미친 거 아녀? 이랬으니까..한 가지 서러운 게 있었는 디?"
" 거기서 서러운 게 어디 한 두가지 것냐? 막자언니가 얼른 밥 부터 먹고 애기는 나중에 하자고 한다.
" 술이 없으니까 못 먹으니까..더 미치겠더라 잉?" 둘리 아줌마가 그 술 애길 하신다
" 뭐? 그럼 니가 술에 절어 살았는지 주독에 빠졌는지 누가 그런 거 친절히 챙겨 주는 데냐?"
멀대 아줌니도 한 마디 참견한다. 하긴  교도소에서 당신 알콜 중독자지? 하고 묻는다면 난 아니라고 할 둘리 아줌니였다. 대답을 한다면 좀 술을 좋아 한다고 할 것이고, 순도가 높은 소주를 한 동안 너무 사랑했다고 할 것이리라 .그런데 아쉬운 것이 술이 없었다는 말을 하는 둘리 아줌니 얼굴에 아직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그렇게 울다가 웃는 저녁식사가 만찬처럼 거행이 되었다. 숭늉까지 차례 차례 나오는 풀코스 한정식이 따로 없었다. 매 번 둘리 아줌니는 처음 마주한 밥상처럼 단정하게 무릎을 끓고 두 손으로 받고 그러니 주는 사람이나 보는 우리들이나 어디 또 먼 데를 떠날 것 같다는 불길한 예감도 사실은 들긴 들었다.  
니 왜그러냐? 또 어딜 갈려구 하냐? 니 혹시 또 교도소에 가냐? 막자언니는 둘리 아줌니의 일거수가
예사롭지 않아 보였나 보다. 상을 치우고 또 모여 앉았다. 이번엔 무슨 회의를 하는 것처럼
" 아까 하던 애길 또 해야지..근디 어디까지 애길 했더라"
그 중요한 애기를 어디까지 했긴 했는데, 들은 나나 물었던 떠벌이 아줌니나 밥 하다가 못 들은 막자언니는
더욱 생뚱맞아 보이고 어디까지 애기는 듣긴 들었는데. 정신하나 제대로 챙기고 산다고 해도 더욱 어디로 몰려서 도망치는데 막을 수 가 없었다. 말머리를 찾으려고 하다간 꼬리가 어디갔나 식이디.
 
" 제 정신으로 사는 것도 복 받은 거여. 안 그럼 우덜 그 많은 일들 다 기억하자면
멀쩡한 년 하나도 없을거다."
 떠벌이 아줌니가  둘라 아줌니의 얼굴 밑에 바로 들이대면서 그러신다.
 
" 그려 그렇다 치고 니 오빠 애기나 해 봐라? 그 때 너 없어지고 몇 달  못가서 웬 신사가 내려 왔었는 디 영낙없이 우덜 다 막자언니 애인으로 알았었당께..나중에 언니가 그러더라 니 오빠라고? 맞어?"
 
그렇게 궁금하던 막자언니 애인인가 보다하고 모두 식당문에 귀를 붙여놓고 기대했던 것과는 전혀 틀린 둘리 오빠라니 그 후 한참 우리들은 황당 했었다.오비이락이라고 둘리 아줌마가 그렇게 경찰서에 잡혀 간 후부터 막자언니에게 오던 편지도 화요일마다 오는 지프차도 딱 끊어졌다. 괜히 글자 배워서 편지를 읽어보겟다고 고생한 떠벌이 아줌마만 세금고지서나 맨 이상한 편지만 배달 해주는 우체부만 닥달 하셨다. 혹시 연애편지만 빼먹구 전혀 모른척 하는 거 아니냐구 또 온 거 없냐구 우체통을 뒤졌다.
" 응..연락을 할 수 없고 그렇다고 편지도 못 보내겠고 언니는 걱정이 태산 같이 할 것 같아서 우선 오빠보고 부탁을 했어요. 나 잘있다고..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서울에서 살다가 내려와서 그런가 말투도 모양도 진짜 서울사람 다 된 것 같았다. 별 말 없이 우리랑 지낼 때 그 둘리 아줌니가 아닌 것 같았다. 우리도 내심은 어려워 얼른 말을 더 붙이지 못했었다.
" 야 야 근디 니 오빠 뭐하는 사람인디...워따메 근사하데.."
멀대 아줌니도 그 때 그 사람 애기 하듯이 한다.
" 그랬어요?  좀 잘생겼지요? 사실은 얼마 전까지 우리가 하는 회사 대표를 하셨어요"
" 뭐? 무신회사 대표라?"
우리들은 대표라든가 우리회사라는 말은 한 참 먼 나라 애기다. 작고 지저분한 시장통에서 리어카를 끌고 다녀도 노점에서 좌판을 벌려 쑥개떡이나 인절미를  쓸어 팔아도 지금은 사장들 시대인 때인 만큼 그 대표라는 말보다도 사장님이라는 말이 더 이해하기 쉬웠을 우리들인데.원체 없이 살던 이 곳에 그 먼나라 사람들 사는 애길 이렇게 가깝게 듣는 다는 것이 어설펐다. 진짜 사장이라면 막자언니가 식당대표라고 해도 될 일인데, 이렇게 저렇게 격식없이 차린 식당에서 오고 가는 애기가 맨 먹고 어떻게 사는 애기거나, 누구하고 싸움박질하다가 더 두둘겨 맞은 애기나, 어쩌다가 누가 운좋게 주택복권 당첨 된 애기도 딴 나라 별나라의 뉴스려니 여기던 우리에게, 그러니까 둘리 아줌니는 그 회사의 대표인 동생이고 우린 멋 모르고 그냥 같이 뒹굴고 울고 웃고 산 세월이 익숙한 둘리 아줌니의 신분이 알고보니  우리랑 한 차원 다르다는 애기였다. 어쩐지 술주정으로 매출 장부에 쓱쓱 낙서를 한 것을 보고 떠벌이 아줌마가 평범한 여자는 아니라고 예언하듯이 한 말이 기억이 났다.
 
갑자기 떠벌이 아줌니나 막자언니나 멀대 아줌니들 얼굴이 어두워졋다.
사실 그렇게 부대끼며 부딪치고 얽힌 시간이 없었더라면 도저히 만날 수 없는 우리들인데.
그래도 끼리끼리 키맞추고 유유상종이라고 어줍잖은 세월에 몸팔고 다니다 병들어 오 갈 데 없었던 멀대 아줌니나 사채빚에 쫒겨다니는 송화부터 어쩌다가 시집에서 쫒겨 나 온 나부터 너무 먼 나라 사람들 애길 우리들은 아주 가까이 마주보고 있었던 것이다.
 
" 야! 근디 여길 뭣 할려구 또 왔냐?" 떠벌이 아줌니가 풀이 죽은 목소리로 묻자
둘리 아줌니가 알록달록한 가방안에서 손수건을 끄내고 또 흰 봉투를 꺼냈다.
" 이게 뭐냐?"
막자언니가  물었다.
" 내 목숨 값입니다. 적어요 그래도 이렇게 해야 나중에 내가 편 할 것 같아요. 언니 내 성의니 꼭 받아야 해요"
 두 손으로 봉투를 들고 구겨지게 언니 손을 꼭 잡았다. 둘리아줌니는 단정하게 무릎을 꿇고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매달린 막자언니는 또 한손으로 둘리 아줌니 얼굴에 흐르는 눈물을 자꾸 지워주고 비볐다. 나중엔 방에 걸려 있던 수건으로 닦았다. 둘리아줌마가 같이 살았떤 전에 찬장에 키가 안 닿게 감춘 소주병을 내리려다가 앉은뱅이 의자가 뒤집어져 넘어져 한 동안 허리를 삐어서 찜질을 하는 막자언니에게 미안해서 또 뒷곁에 가서 병아리 물 먹듯이 하늘 보고 술 병들고 꺼이꺼이 울었던 일이 생각났다. 나도 모르게 그 때 같이 부둥켜 안고 운 적이 있었는 데. 하고 많은 병중에 왜 하필 술병이 났냐구 한 번이라도 혼구녕을 낼 법도 하건만 막자언니는 그 허리가 다 나을 동안 한 마디 말이 없었다. 단지 나에게 한 마디 하셨다.
"둘리 재 또 찬장말고 다른데 숨겨 둔 술 찾아봐라..술로 죽지는 말아야지!"
무엇으로 죽든 지금은 때가 아니라고 그 만큼 귀한 때에 어떻게든 살리고 봐야 한다는 심정이었을 것이다. 
 
" 그래 내가 이 거 받자고 너 살려 준거 아닌디.." 막자언니는 말끝을 흐렸다.
방바닥에 얌전하게 놓인 봉투는 두툼하게 보였다.방안에 환한 형광등과  잠시동안 침묵이 흘렀다.
조용히 막자언니는 돈 봉투를 열었다.
시퍼런 배춧잎돈이 아니었다. 수표였다. 하얀 종이만 한 뭉치다.
 
"야! 이게 적은 거냐? 세상에 이게 얼마여? 니 교도소가서 돈 벌어 온 거여?"
떠벌이 아줌니가 눈이 휘둥그래 뜨시더니 다시 둘리아줌니를 찬찬히 살핀다.
몸 값이면 몸값이고 목숨 값이면 목숨 값이다. 술병나서 그 만큼 고생한 몸의 댓가가 손에 한뮹치로 대신 보여주고 있었다.낮설은 돈이다.
 
둘리 아줌니는 환절기만 되면 유난히 또 어디로 도망갈까  아니면 기관지까지 술에 중독이 되었는지 쿨럭쿨럭 천식같은 기침을 했었다. 봄이나 초가을 되기 전엔 막자언니는 어디서 캐 왔는지 모를 약초를 하루종일 달여서 시꺼먼 물을 안 먹는 다는 것을 달래고 어르고 그렇게 마시게 했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무슨 풀뿌리라고 했는 데. 나중에 동네에선 뭐가 좋다고 사람들 입소문에 우리 그거 해 먹자고 하면 이미 우린 막자언니가 늘 해주고 먹은 것들이었다.
 
고기도 변변하게 제대로 해 주지 못한다고 쇠무픞팍 나뮬이네, 산두릎이 어디에서 제일 많이 사는 지
구석구석 산지도를 그려가면서 돌아 다니던 얕은 이름없는 야산은 온통 우리차지였다. 하긴 뭘 알아야 면장 해먹는다고 하더니 우린 이게 무슨 풀인가 하면 막자어니는 뜻도 모를 풀이름을 줄줄 대었다. 꼭 식물학자들 학명사전을 뒤지고 외우고 다니셨나 싶기도 했고. 어디 약방에서 몇 십년 약만 달이다가 한의사 뺨치는데까지의 경지에 오른 것이 아닐까 했었다..
 가을에 호박이 너른 들녘 밭두렁이나, 남의 집 담넘어 슬그머니 늙은 것만 골라서 오래된 산도라지에 희한한 향이 나는 풀 몇 개를 넣고 삶아 대더니 그 물을 모두 둘리 아줌니에게 마시게 했었다. 약은 나눠먹는 게 아니라고 우리들에게 맛도 못보게 했었는데.그래서 그랬다. 우리도 늘 술을 먹는 사람들이고 너무 차별하지 말라고 했었다.
 
아뭏튼 그 땐 그게 둘리 아줌니 우선 살려내보자가 우선이었다. 술병은 우리 네 여자가 힘으로 낫게 할 수도 없고, 더군다나 어느 병원에 가면 우선 격리를 한다는 정신병동에 가둔다는 생각에 모두 모르쇠처럼 쉬쉬 했었다. 어쩌면 막자언니가 우리보다 더 애가 탈 일이었을 것이다. 어디 보통 인연은 아닌 것이다. 손님이 밥을 먹다가 급체를 하는 통에 배가 아퍼서 바닥에 뒹굴고 토악질을 하고 눈도 이상하게 뜨는 손님을   막자언니가 손님의 손 바닥을 짚고 등허리를 몇 번 토닥이고 난 후 다시 그 손님은 식사를 햇었다. 그렇게 맥과 혈을 잘 아는 막자언니가 왜 느닷없이 병원에 가서 응급실에 실려 온 둘리 아줌니에게 이름 빌려 주는 게 어디 흔한 인연이었을까.
 
아무튼 나나 떠벌이 아줌니나 멀대 아줌니나  돈 세는 것은 서툴렀다. 그래선가 돈 세는 것은 모두 들고 은행에 갖고 가서 은행원들에게 직접 세어보라고 한 적이 많았고, 돈 벌어 돈 세는 기계나 하나씩  사자고 했었다. 우린 돈 세는 것 만큼이나 이렇게 숫자 모르는 만큼이나 분수도 모르는 푼수들이었다. 나중엔 나도 그랬다.어떻게 사람이 돈만 셀려고 돈을 벌라고 한 법은 없더라, 어떻게 사람이 돈만 벌다가 죽으면 그것도 병신같이 지랄만 하다가 산  팔자려니 무식하다느니 우리는 그렇게 핑계같은 변명을 마구 써먹었다. 오죽 했으면 사채업자들한테 쫒기던 송화도 우리들 애기에 갑자기 확 말이 바뀌었다.
 "그려 언니들 애기들 들어 보니까 그거 별 거 아닌거네"
 까짓거 그 까짓 돈때문에 담넘어 쫒겨다녀 몰래 철길따라 걸어서 역앞에 앉아 있는 데 뭐 이리 황당하려구 사는 건가  했었단다. 배고파서 굶어 뒤져두 돈을 쌀처럼 삶아먹을 수도 없는 것을 갖고 맨날 사네 죽네 이런 우리들 앞에 생전 만져보지도 못 할 돈이 떡허니 하늘에서 뚝 떨어진 돈벼락을 맞은 셈이다. 
" 도대체 얼마를 갖고 온거여? 우덜 이 식당에서 일 안해도 될 것 같네 잉?"
멀대 아줌니도 어리둥절한 눈치시다. 큰 돈을 처음 보거니와 그런 돈 앞에서 우두커니 앉아 있었던 적이 없었다. 나도 어리벙벙해서 그냥 멍청하게 쳐다보고만 있었다.
 
" 둘리야..이 돈 다시 갖고 가야 되겄다!" 막자언니가 무겁게 말문을 열었다.
 
둘리 아줌니가 대답을 하지 않는다. 단지 막자언니 앞에서 우뚝 일어서더니 양팔를 벌려 곱게 손을 모으더니 큰 절을 하시는 것이다.
 
" 언니..내가 어느 절에서 크게 시주를 했다고 생각하고 받아 주세요. 전 이제부터 덤으로 얻은 인생입니다. 남편의 배신으로 다른 여자한테 애를 배어서 낳아가지고 나를 미친년 취급해서 정신병동에 집어 넣고 제가 극적으로 그 병원을 탈출해서 정신없이 걷다가 말입니다. 시골길에 버려진 빈병을 보니 무슨 농약병 같고 아닌 것 같고 그래서 옆에서 흐르는 냇물을 담아 훌쩍 마셨는 데 눈 떠보니 언니가 내 옆에 계신 겁니다. 거짓말같이 내가 다시 살아있는 게 너무 싫었어요. 세상에 죽는 것도 내 맘대로 안 되냐고 그렇게 서러워서 그 때 언니잡고 왜 살렸냐구 멱살잡고 난리를 부렸는 데도 언니는 아무 말없이 그 면박을 다 받아 줬습니다.그리고 이렇게 다시 산 것입니다."
 
또 다시 긴 침묵이 우리모두에게 덮치듯이 조용했다. 그러니까 둘리아줌니는 덤으로 얻은 인생을 들고 돌아 온 것이다. 우리들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