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자를 만나기 위해 서둘러 집을 나왔다. 이제 겨우 6시가 조금 넘은 시간인데 늦은 밤처럼 느껴진다.
오전 내내 맑게 게인 하늘 이었 것 만 어느새 비가 내리고 있다. 이 비가 그치고 나면 밤새 세찬 바람으로 내일이면 땅이 얼어 있겠지..어서 하루빨리 따뜻한 봄날이 왔으면 하는 생각을 한다. 그 때쯤이면 내 맘에도 따뜻한 봄날이 찾아 올 것 같은 생각에 더욱더 기다려 진다.
난 오류역 앞에서 그 여자를 기다리고 있다. 사실 낮선 이 동네에 어디에 뭐가 있는지 조차 잘 모르는 상태라서 약속 장소를 딱히 정하지 못한 채 지하철역 근처에 있는 한 상가 앞에서 그 여자를 만나기로 했다. 언니가 건네준 사진이 있기 때문에 난 한눈에 그여자를 알아 볼 수 있었다. 저기 그 여자가 걸어오고 있다. 바로 유영희라는 여자가..
“유영희씨?”
“네..민석씨..”
‘네..내가 조민석씨 와이프에요..일단 어디 조용한데 들어가죠..“
나는 주위를 두리번 거렸다. 바로 옆 건물 2층에 작은 카페 간판이 보인다.
“멀리 갈 필요 없이 저기 가죠..”
난 뒤 쫒아 오는 그 여자..
우린 그렇게 나란히 마주 앉았다.
막상 만나고 나니 무슨 말을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르겠다. 조금은 아니 많이 화려한 그녀의 모습에 조금은 움찔어든 기분이다.
조금은 떨린다. 아니 많이 떨린다. 손은 이미 얼음장처럼 식어 버렸고 조금은 경직된 모습을 감추기가 영 힘든 게 아니다..
짧은 미니스커트..빨간 립스틱..다리를 꼬고 앉아 있는 이 여자. 예쁜 구석은 어디 하나 찾아 볼 수 없고 조금은 천박해 보이기까지 하는 이 여자..그 사람은 이 여자의 어떤 모습에 끌렸던 것일까.. 차라리 좀 얌전하고 여성스러운 그런 여자를 만나지 왜 하필 이런 분위기의 여자를 만났을까 하는 생각을 잠시 한다.
“이지선이라고 해요..”
“유영희입니다.”
“내가 왜 만나자고 했는지 알아요?”
“네..”
그 여자의 목소리에 당당함을 느낄 수 있었다.
“나 유영희씨 같은 사람 만나고 싶진 않았지만 그래도 할 말은 해야 할 것 같아서..또 물어 볼 것 도 있구..”
그 여잔 나를 빤히 처다 본다. 그러고는 가방 안에서 담배를 거내 든다.
“실례지만 담배 좀 피워도 되죠..”
“아뇨..담배 냄새에 몹시 민감하거든요..삼가 해 주시겠어요?”
“네..”
“그이랑 어떻게 만났어요?”
“이미 다 알고 있는 거 아니에요?”
“뭘 안다는 거죠?”
“다 알고 나온거 아니냐구요..뭐가 궁금하신데요?”
“어떻게 만났냐고요..”
그녀는 말한다. 그이가 말했던 것처럼 잠실 L백화점에서 그저 친구로 만나 나 없는 동안 가까워졌다고..하지만 조금 다른 말이 있다. 그녀의 말에 의하면 내가 일본에 간 이유가 먼 미래를 위한 투자가 아닌 둘 사이가 조금씩 안 좋아져 좀 떨어져 있기로 했다고 한다. 그래서 떨어져 있다 보니 더 이상 살고 싶은 맘도 없어 졌고 또 그래서 돌아오는 대로 정리한가고 그 사람이 그렇게 얘기 했다 한다. 그래서 본인은 그렇게 알고 돌아오면 이혼 하는 걸로 알고 있었다 한다. 그런데 무슨 문제 있냐고 한다. 오히려 나에게 말한다.
“젊은 남자를 그런 식으로 두고 갔으면 간 것부터 다 끝난 사이 아닌 가요”
“뭐..민석씨 이미 맘 정리는 다한 상태이고 돌아오는 대로 서류 정리만 하면 된다고 했는데..”
어이가 없다..도저히 믿을 수 없는 말들만 지껄이고 있다. 그 사람이 그렇게 말을 했다는 것도 난 믿을 수가 없다.
“이봐요..내 얘기 똑똑히 들어요..난 그이와 아무 문제 없었어요. 그래요 무능한 남편 때문에 먼 일본 땅까지 가서 공부하고 왔고 공부하는 내내 한푼이라도 아끼느라 하루에 몇시간을 걸어 다니며 그렇게 살았어요..어떻게 말을 듣고 그런 말을 하는지 모르겠는데 우리 부부사이 아무 일 없었어요..당신이라는 사람이 끼어 들기 전까지는..
그래요..나에게 잘못이 있다면 젊은 남자를 두고 혼자 떠났다는 거.. 그래요 그래서 지금 이렇게 뼈 절이게 후회하고 있어요..“
난 갑자기 말하면서 그간에의 서러움에 잠시 눈물을 보였다.
아 이러면 안돼는데 보다 강한 모습을 보여야 하는데 갑작스런 그녀의 말을 듣고 몹시 흥분된 상태에서 정말 그 이가 그런 말을 했을까 하는 맘에 서러워 그만 울고 말았다.
“지선씨 미안해요..난 그저..”
“뭐가 미안한지는 아나요?”
“정말 난 둘 사이가 처음부터 안 좋았다고 만 생각했어요. 그래서 떨어져 지내는 거라고 생각했었고 돌아오면 곧 이혼 할꺼라 생각했었어요..미안해요..난 그런 것도 모르고,,정말 미안합니다. 그렇게 고생하다 온 건 정말 몰랐습니다. 미안합니다.”
그녀의 갑작tm런 사과에 난 당황스럽다.
"저기 유영희씨 부탁해요..그인 이제 그쪽 다신 안 만나겠다고 해요..하지만 조금은 불안해요..사실 나 이것 저것 따지러 만나자고 한게 아니라 부탁하고 싶어서 만나자고 했어요..그래요 그렇다고 유영희씨가 곱게만 보이는 건 아니에요..하지만 난 이 사람 없이는 정말 안될 것 같아요..자신 없어요..그인 내가 모든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아무말 없이 자기만 바라봐 준거에 대해 몹시 미안해 하고 죄책감을 갖고 있는 것 같아요..그래서 나한테 잘 하겠다고 하는 것 같고요..내가 부탁 좀 할께요..혹시라도 그이가 연락하거나 하면 제발 만나지 말아줘요..“
“지선씨..미안해요..”
우린 그렇게 한참을 멍하니 딴 곳만 바라보았다.
너무 속상해서 미치겠다. 어떻게 그 사람이 그런 소릴 했는지. 정말 나쁜 사람이다.
어젯밤 내게 했던 말들도 다 거짓말 처럼 느쪄진다. 아..너무 속상해서 미칠 것 같다.
“좀 있으면 그이 올꺼에요..그이도 유영희씨 한테 그만 만나자고 얘기 하겠지만 영희씨도 그이한테 똑똑히 얘기 해 줘요..”
헐레벌떡 들어오는 그이의 모습..
얼마나 달려왔는지 아직까지 숨을 고르지 못한 채 내 옆에 앉아 눈치를 살핀다.
“지선아 가자..”
“당신 내 앞에서 똑똑히 말해..그냥 장난으로 만난 것 뿐이라고..앞으론 다신 만나고 싶지 않다고..어서 말해..”
“지선아..”
“당신 어젯밤 나한테 무릎까지 꿇고 했던 말 벌써 다 잊은 거야?”
“지선아 집에 가서 얘기 하자..”
“당신 얘기하라고 나 그만 힘들게 하고 제발 얘기 하라고,,.”
“이봐..조민석 당신 정말 나쁜 새끼야..아무리 그래도 어떻게 나한테 그렇게 거짓말을 할 수 있어? 뭐 처음부터 부부사이에 문제가 있었다고..그래서 떨어져 지내는 거라구..뭐 돌아 오면 이혼한다고..웃기셔..넌 내가 그렇게 우습게 보였니? 야..너 진짜 또라이야..”
“영희야..그만해..”
“뭘 그만해..넌 날 가지고 놀았어..야..그렇게 까지 해서 나랑 만나고 싶던? 치사한 인간..”
내 앞에서 그 여잔 내 남편에게 갖은 욕설과 싫은 소릴 퍼 붓고 있다. 그이의 표정은 몹시 안절부절 못하는 모습이다.
“지금 두 사람 내 앞에서 뭐하는 거야? 정말 너무들 하는 거 아냐? 됐어..이런 인간을 못 잊겠다고 몇 일 밤을 울며 불며 매달리고 했던 내가 바보인 것 같다. 이렇게 우유부단한 사람은 정말..”
난 더 이상 할 말을 잊은 채 자리를 일어났다. 그 여자 또한 일어나려 한다. 그런데 일어나면서 까지 그 여자와 내 남편은 내 앞에서 다투고 있다. 정말 한숨밖에 안나 온다.
난 너무 화가나 서둘러 집으로 향했다. 그녀 집 또한 우리 집 뒤쪽이 아닌가..가는 방향까지 같은게 너무 싫다. 둘은 여전히 티격태격이다. 죽일 놈의 인간들..미친 인간들..
“당신 얘기해봐..왜 말 못했어?”
“어떻게 사람 앞에서 그런 말을 해..”
“뭐? 기가 막힌다..그럼 그 여자 상처 받을 거 생각해서 말 못했으면 나 상처 받는 건 생각해 본적 있어? 당신은 아직까지 뭐가 더 중요한지 몰라?”
“지선아..”
“내 이름 부르지마..그 더러운 입으로.. 그 더러운 입으로 그년한테 그렇게 얘기 했어..다 내 잘못으로 이혼 하게 될꺼라고..어쩜 사람의 탈을 쓰고 그런 말을 할 수 가 있니..왜 그렇게 그 여자가 안쓰러우면 그여자 따라가지 왜 집에 왔어..왜 왔냐고..”
“그만하자..내게 시간을 줘..어떻게 하루아침에 무 짤라 버리듯이 그렇게 해..”
“뭐?..지금 그걸 말이라고 해? 당신 정말 몹쓸 사람이다..나 서울 오고 나서 내내 맘 고생하고 그런 건 안중에도 없고 그년 상처받을 생각하니 그렇게 맘 아픈 가 보지..
야..나도 이제 됐어..됐다고 당신처럼 우유부단하고 처신 똑바로 못하는 그런 사람이랑은 더 이상 같이 살고 싶은 맘 없어..내가 미친년이지 암 미친년이고 말고 더 같은 인간 때문에 죽을려고 까지 하고..내가 미친년이다..악..................“
난 소리를 질렸다..그렇게 라도 하지 않으면 정말 돌아 버릴 것 만 같았다.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 상황에서도 그인 우유부단한 말들로 날 설득하려 한다. 내 앞에서 그 여자 걱정을 한다.
그렇게 소리를 지그고 또 소리를 지르다 못해 온갖 집기들을 다 집어 던졌다. 그래도 분이 안 풀리는 것 같다.
“마지막으로 하나만 묻자..”
“뭐 말해..”
“당신..정말 그 여자랑 헤어질 수 있어? 그럴 수 있어?”
“지선아..”
“내 이름 부르지 말고 대답만 해..어떤 대답이든 그 대답에 따른 해답을 내려 줄테니까..”
“모르겠다..지선아 나한테 시간을 좀 주면 안될까?”
“아니..나 더 이상 기다릴 힘 없어..그럼 내가 결론 내릴 테니까 그렇게 하자..”
“무슨..”
“나 생각 많이 했었어..정말 당신이랑 떨어져 있을 생각 하면 죽는 것 만큼 견뎌낼 자신도 없고..또 당신이 너무너무 미워 죽이고 싶을 때도 있었지만 그래도 그 때마다 사랑했던 지난날을 추억하며 맘을 삭혔어..정말 자기랑 헤어질 생각은 없어..이런 내가 너무 바보 같지만 그래도 어떻게 그래도 당신이 좋은데..자기야..빈말이라도 좋으니까 헤어지겠다고 딱 부러지게 얘기 해줘...그래야 내 맘이 놓일 것 같아..그렇게라도 내 맘 편하게 해 주면 안될까?..”
“미안하다..지선아..사실 나도 잘 모르겠다..내 맘을..”
아........또 다시 원점이다.
이 사람을 어떻게 해야 하나..
본인 맘도 잘 모르는 사람을..
내가 믿고 의지하고 싶던 사람이 과연 내 앞에 있는 이 사람 이었던가..
이렇게 내 맘도 몰라주고 상처만 안겨주는 이 사람을 나 왜 그토록 사랑했던 것인가..
화가 난다. 이 사람한테..바보 같은 나한테..
“됐어..자기 맘 알았어..”
난 그렇게 말하고 트렁크를 꺼내 짐을 싸기 시작 했다.
“뭐하는 거야?”
“우리 헤어지자..”
“지선아..”
그인 그렇게 내 이름을 한번 부르더니 멍하니 날 바라보고 있다. 하지만 짐을 싸고 있는 날 더 이상 말리지 않는 이사람.. 내가 이런 사람을 이제까지 사랑했었구나..
서러움에 눈물이 난다. 오늘 만큼은 정말 눈물 보이기 싫은데.. 어떻하나 자꾸 눈물이 난다..
난 대충 챙겨든 가방을 질질 끌며 현관을 나섰다..나서면서도 그래도 그래도 날 잡아 주기 만을 간절히 바라고 또 바랬었건 만..매정한 사람..나쁜 사람..
난 하염없이 흐르는 서러운 눈물에 앞을 제대로 볼 수 조차 없었다. 한발 한발 딪는 발걸음에도 힘이 풀려 제대로 걸을 수 조차 없어 넘어지고 말았다.
어떻게 내게..
어떻게 그 사람이..
차라리 이대로 죽고 싶다..
아무것도 생각하지 못하게..
아무것도 생각나지 못하게..
차라리 이대로 죽고 싶다..
죽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