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10분 후 인천 국제공항 착륙..
그렇게 오고 싶었던 곳이구나..드디어 왔구나..
긴 한숨이 나온다..
1년간의 시간들이 어쩜 이렇게 더디게 느껴졌는지 모르겠다..많은 것을 얻기 위해 내 자리를 비운 채 돌아 섰던 곳..비워둔 나의 자리를 다시 찾아 잃어버린 시간을 가득 메우리라..
문이 열리는 순간 나의 눈은 바쁘게 돌아간다..
저기 저 멀리 낮 익은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눈물이 핑 돈다.
“아버님..”
“어서 와라..그동안 고생 많았지..잘 왔다 아가..”
“아버님 그동안 건강 하셨어요? 별일은 없으셨구요?..”
“그래..아주 잘 있었단다..”
시 아버님과 인사를 나누면서도 내 눈은 누군가를 찾고 있다..
“저..아버님 그인 안 나왔어요?”
“안 나오긴..저기 뒤에 있지 않니..”
그렇다 조금 떨어진 곳에 멍하니 날 바라만 보고 있는 내 사람 모습이 보인다.
그런데 왜 저러고 서 있는 걸까? 알 수 없다.
“자기야..”
“응..어서와..”
좀 낮 설기까지 한 모습과 표정으로 날 반기는 듯한 어색한 미소를 띈 채 내게로 다가 온다. 이상하다. 이 사람이 내가 그렇게 보고 싶어하던 그 사람이었던가..
“자기야..나 안보고 싶었어? 나 안반가워? 왜 그러고 서 있어?..”
“아니..그냥..”
아버님께서 말씀하셨다..길다고 하면 긴 시간동안 너무 떨어져 있어서 좀 어색했나 보다고.. 정말 어색 해서 였을까? 왜 날 보며 어색 해 할까? 난 이렇게 좋은데..그런 모습을 보니 나또한 어색해 지려 한다.
“자기야 내가 자기 얼마나 보고 싶어 했는데 말야..나 한번만 안아줘라..”
“아버지도 계신데 왜 그래..”
“뭐 어때? 아버님 괜찮죠?”
“그러지 말고 집에 가서.."
"피..뭐야 오랜만에 봤는데 마누라 보고 반가워 하지도 않고 안아 달라 했는데 안아 주지도 않고 말야..나 다시 가야 겠다..“
사실 좀 섭섭했다. 장난스럽게 말하긴 했지만 정말 이지 섭섭했다.
어색한 모습 어색한 미소.. 정말 내가 알고 있는 조민석씨가 아닌 것 같다.
아버님 말대로 오랜만에 봐서 좀 어색하고 서먹 서먹 해서 그런가보다.
좀 서운하지만 혼자 두고 간 내 잘못도 있기에 그냥 웃으며 넘겨보자..몇 일 같이 있다보면 금새 나아질 꺼라 생각한다. 날 얼마나 아끼고 사랑해 줬던 사람인데 말야..
미안해..자길 그렇게 만들어서.. 이제 돌아 왔으니까 더 잘할게..집으로 돌아가는 차안에서 난 이렇게 다짐하고 또 다짐한다.
집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난 그이의 손을 꼭 잡고 있다. 하지만 내게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이 사람..좀 차갑기까지 느끼게 하는 이사람.. 왠지 생각했던 것 보단 좀 오래 가지 않을까 내가 더 많이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나 없는 동안 이사를 했기에 나 새로운 보금자리가 몹시 궁금해 진다.
정리는 잘 했는지.. 가구 배치는 어떻게 했는지.. 이런 저런 수 많은 것들이 궁금하고 또 궁금해 진다.
“자기야.. 우리집 좋아?”
“좋기는 뭐 그렇지..”
“궁금해..나 없는 동안 어떻게 하고 살았는지..”
“집에 가서 직접 확인하면 되는데 뭐가 궁금해..조금만 더 가면 돼..”
“그래도..어떤데? 자기가 좀 얘기 해 주면 안될까?”
“가서 봐..”
아직도 내 손은 꼭 잡고 있지만 시선만은 집에 가는 동안 내내 창 밖만 바라본다.
그 사람은 내게 궁금 한게 별로 없는 듯 하다. 집에 가는 동안 쭉 나 혼자만 재잘재잘 거리며 얘기해도 듣는 둥 마는 둥 하며 속 시원히 대답조차 하지 않는다.
외관상으로 보기엔 좀 허술해 보이는 작은 빌라.
동네 어귀에 들어섰을 때부터 왠지 정감이 가지 않는 동네다. 처음 온 곳이라 그런 걸까 왠지 난 이곳이 별로 맘에 들지 않는다.
현관문을 여는 순간 가슴이 뛰기 시작한다.
“와........정리는 잘 되어 있네..어디가 안방이야?”
“오른쪽..”
현관문을 열자마자 작은 거실과 거실 안쪽에 부엌 거실 오른쪽으로 안방. 안방 맞은편에 작은방이 있었고 작은방 옆에 화장실이 있었다. 유관으로 봤을 때 한 20평 남 짓 되어 보이는 작은 빌라였다.
안방엔 장롱과 TV.. 작은방은 침실로 꾸며 노은 듯 하다.
생각했던 것 보단 안은 상당히 말끔히 정리 정돈 해 놓은 상태였다. 아마도 시어머니께서 종종 오셔셔 청소도 정리도 해 주셨던 게 틀림없다.
“생각했던 것 보다 말끔히 정리도 다 되어 있고 말이야 우리 서방님 기뜩 한걸 혼자서도 이렇게 깨끗이 잘 해 놓고 살고 말이야..이뻐..”
“민석이가 잘 정리 해 놓고 그랬구나..잘 했다 민석아..”
시아버님께서도 민석씨에게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다.
침실에 거실에 우리 결혼사진이 걸려져 있다. 오랜만에 보는 사진들.. 모든게 새롭게 만 느껴진다. 이 곳이 내 새로운 보금자리 인가 보다.. 새로운 곳에서 보다 새롭게 새 출발하고 싶다. 시댁 어른들에게도 세상에서 내가 가장 사랑하는 나의 조민석씨한테도 누구보다 더 사랑하며 아끼며 살아갈 것이다 라고 다짐하고 또 다짐해 본다.
왠지 오늘 밤은 잠이 오질 않을 것 같다. 사실 아직 실감이 나질 않길 때문이다.여기가 일본인지 서울인지 조차도..
하룻밤을 지샌 오늘.. 졸린 눈을 비비며 잠든 그이의 모습을 물끄럼히 바라본다.
새근새근 낮은 숨을 고르며 잠든 그이 얼굴을 이곳 저곳 천천히 바라본다.
비록 1년 이란 시간이었지만 이런 저런 일들이 참 많았었던 것 같다. 때론 사소한 감정 싸움에 맘에 상처가 됐기도 했었고..또 이런저런 불안한 감정에 휩싸여 안절 부절 못했던 때도 있었다. 다 쓸때 없는 잡 생각들로 나 자신을 옭아 메었나 보다.
하지만 자꾸만 그이의 모습이 낮설게 느껴 지는 건 무얼까? 그 또한 내가 좀 낮설다고 말하고 있다. 얼굴에 나타나면 표정과 미소 마져 예전의 모습과는 뭔지 모르게 다르게만 느껴지는 게 너무 이상하다.
“자기야..출근 해야지..”
그이의 볼에 살짝 입맞춤을 해 본다. 이순간이 얼마나 그리웠던가..행복하다..
“자기야..어서 일어나..지각하면 안되잖아..”
“알았어.. 일어 날거야..”
조금은 짜증 섞인 말투로 내게 한마디 하고 일어난다.
치~짜증은..
“오늘 일찍 올거지..저녁에 맛있는 거 먹자. 어젠 좀 피곤해서 얘기도 제대로 못했던 것 같구,, 차라리 저녁 때 내가 자기 회사 앞으로 갈까?”
“그래..그럼 퇴근 시간 맞춰서 백화점 지하 서점 앞에서 보자..”
“알았어요..그럼 있다가 봐요..”
출근하려는 그이 앞에서 난 예전처럼 어린아이처럼 양팔을 벌려 안나달라고 하고 있다.
조금은 어색해 하는 표정을 짓더니 살며시 안아준다.
처음 결혼했을 때 생각이 문뜩 든다. 왠지 결혼하고 처음 안아 봤던 그 때 그 느낌이 되살아 나는 듯 하다.
“사랑하는 서방님 안녕히 다녀오세요..”
“알았어..있다 전화 할게..”
“넵..기다립죠..”
그이가 출근하고 난 후 난 집안 구석구석을 둘러 본다. 이불장 안쪽부터 씽크대 안쪽까지 구석구석 뒤져도 보고 둘러도 본다.
이집에 온지 채 하루도 지나지 않았지만 그래도 이 집이 우리 집이라 생각하니 마음 한켠이 뿌듯해 져 온다. 조그마하더라도 전세가 아닌 내 집이 아니던가..
커텐도 바꾸고 식탁도 사야 겠고..음..조금씩 조금씩 내 살림으로 바꿔 나가야 겠다..
강남 S백화점..잠실의 L 백화점에 비해 훨씬 깨끗해 보인다. 새로 오픈한지 얼마 안되서 그런지 더 고급스럽고 세련되 보이는 듯 한 매장 구조에 여러모로 잠실의 L 백화점에 비해 훨씬 나아 보인다.
남편 퇴근 시간 1시간 전에 나와 남편의 선물을 보고 있다. 추운 겨울 날씨에 제대로 된 목도리 하나 없던 남편의 모습이 생각났다. 그래서 난 버버리 매장에서 남편에게 어울릴 것 같은 목도리 하나를 보고 있다. 곤색이 아주 잘 어울리는 남편 모습을 상상하며 곤색 체크 목도리를 하나 샀다. 늘 양복에 코트를 입고 다니기에 정장에 아주 잘 어울릴 것 같다. 사실 생각했던 것 보다 케쉬미어 소재라 가격이 만만치 않아 좀 망설여 지긴 했지만 그래도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내 남편을 위해 거금을 투자 하기로 했다. 일본에서 내 힘으로 아르바이트를 해서 모아 둔 돈으로 꼭 사서 주고 싶었다.
“맘에 들어 할까?..잘 어울릴 것 같은데..맘에 들어 했으면 좋으련만..”
백화점 폐점 음악이 흐리고 있다. 사실 남편이 근무하는 매장에 한번 올라가 보고 직원들과도 인사를 나누고 싶었지만 남편 오늘은 그냥 밖에서 보기로 하자 한다. 그래서 다음에 올 땐 꼭 보러 가겠다고 난 말했다.
“자기야..여기..”
“뭐 먹으러 갈까?”
“음..난 아주 매콤한 것 먹고 싶은데..매일 느끼한 것만 먹어서 말야..”
“매콤한게 뭐가 있을까?”
“닭갈비도 먹고 싶고..갈비도 먹고 싶고..해물탕도 먹고 싶고..아..모르겠다. 먹고 싶은게 너무 많아서..자기가 골라..나 아무거나 다 좋아..”
“그럼 오늘은 갈비 먹고 낼 다른 거 먹을까?”
“그래..좋아 그럼 오늘은 갈비 먹자..”
남편의 팔짱을 꼭 끼고 우린 걷고 있다. 날씨가 상당히 춥다. 일본은 아무리 추워도 영하로는 떨어지질 않았다. 그래서 그리 추운지 모르고 겨울을 보냈는데..서울은 볼이 찢어 질 정도로 바람이 세차다. 오랜만에 먹어본 한국 음식.. 와~ 할 정도로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남들이 보면 나 한 10년은 외국에서 살다 온줄 알겠다..”
“그러게..”
“딴 사람은 어땠는지 몰라도 나한테 1년은 마치 10년 과도 같았단 말이야..”
“그랬어?..”
“정말이라구..자기 너무 보고 싶어서 긴긴 밤을 보내는게 하루가 마치 한달 같이 느껴 졌다니까..”
“거짓말도 잘하네..피..”
“어~ 진짠데..나 살 쪽 빠진 거 안보여? 자기 보고 싶어서 매일 잠 설쳐서 이렇게 살 쪽 빠진 거라고.. 이제부터 자기가 나 책임져..알았지?”
“알았다..쓸 때 없는 소리 그만하고 어서 가서 자자..좀 피곤하다..”
“치~뭐야..나랑 밤새 얘기하고 놀아야지..너무해..”
“낼 모레 쉬는 날 놀면 되잖아..그때 까지 나 좀 살려 줘라..”
“뭐야? 우리 1년 만에 만난 사람들 맞아? 뭐 그래..”
“미안..하지만 정말 너무 피곤해서 그래..”
“그래..그럼 내 이 너그러운 맘으로 오늘은 이해해주지..그럼 자기 쉬는 날 나랑 실컷 놀아줘야해..알았지..약속~”
“그래..약속~”
“자기야 춥다..뛰어가자..넘 추워..”
그렇게 서울 온지 이틀째 지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