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잿빛 씨앗...


BY 마지메 2006-04-27

 

그이와 같이 근무하던 아르바이트생이 복학을 위해 아르바이트를 그만 두면서 그와의 싸움도 없어지는 듯 했다..다행인지 그렇게 둘 사이는 내 맘만 흔들어 놓고 그렇게 정리 되는 듯 싶었다...정말 오빠 동생 그 정도가 다인데 내가 괜히 과민반응을 보였나보다..


난 조그만한 회사에 근무하면서 언제 그만두라고 할 지 모르는 현실 속에서 하루하루를 불안한 맘으로 회사를 다녔다..

회사 사정이 딱히 좋지 않은 관계로 월급 또한 보통의 수준 미달이다..


고령의 시할머니와..고혈압으로 병원신세를 지고 계시는 시아버지..

장손인 탓에 온갖 행사도 제사도 잦다..역시 돈 문제가 가장 심각했다..

가진 거라곤 집 한 채 였던 시 어른들은 우리의 신혼 살림집을 마련해 주기 위하여 평생을 모아 사신 집을 팔고 우리에게 전세를 얻어 주셨다,,

작지만 남을 돈을 가지고 고향에 내려 가셨다..

우린 늘 시댁 어른들의 조금이나마 생활비를 책임지지 않으면 안됐다..

더 많이 벌어서 많이 드리고 싶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결혼 전에 생각지도 못했던 작은 일들이 지금은 네게 큰일로 점점 다가 오고 있음을 깨달으며 아주 조금씩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밀려든다..


백화점 점원이라는게 젊었을 때나 좋아보이지 나이 먹어서 까지 하기엔 좀 그런 직업이다..보수야 낮다고는 할 수 없지만 좋은 물건만 봐서 그런지 그 또한 늘 좋은 것만을 고집하기에 돈 모으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이런 저런 생각을 해보니 나라도 어떻게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어느날 문득 그런 생각을 해 봤다..

좀 더 좋은 조건을 갖춰 좋은 회사에서 근무를 하게 되면 따라서 보수도 올라 갈테구,,

나또한 집에서 놀 팔자는 아니기에 평생 일할 수 있는 그런 직업을 찾는게 미래를 위해 서 좋은 듯 싶었다..하지만 딱히 학벌이 좋아 좋은 곳으로 옮길 만한 형편도 아니고..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게 관광 가이드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다..가이드를 하게 되면 나이 들어서도 맘껏 쭉 일할 수 있다는 얘길 들었다..

예전부터 일본어에 관심이 많았었고 조금씩 공부를 해 두긴 했었다..이번 기회에 학원에도 열심히 다니며 한번 도전해 보자..그래서 정식으로 일본어 공부를 하게 됐다..

한 몇 달을 하다 보니 생각했던 것 보다 공부라는게 쉽지만은 않았다..하지만 하다 보니 의욕도 생기고 활기 있는 하루하루를 살아가는게 좋았다..밝은 미래가 보이는 듯 했기에..

공부를 하다 보니 문법이야 어떻게든 되겠지만 회화가 문제였다..사실 현지에 가서 공부를 하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건데 사정이..

그렇게 상상만 하며 하루하루를 보내야만 했다..


회사-학원-집 늘 반복되는 피곤한 하루하루가 계속 됐다. 수업을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면 저녁 10시가 넘는다..학원은 숙명여대 근처 였고 내가 살고 신혼집은 잠실이었다..

하루하루가 너무 피곤하다..조금씩 지쳐간다..

마침 그이가 뜻밖의 제안를 한다..

“누나가 일본에 있으니까 일본에 가서 조금만 공부하다 오면 어떻겠어?..”

“엉?”

너무 뜻밖의 얘가라 슨 말을 하고 있는지 조차 이해가 되질 않는다.

그랬다...그이의 누나는 일본 사람과 결혼을 해서 일본에서 살고 있다..

형제라고는 나이 차이가 아주 많이 나는 누님이 한 분 계신다..

일본분과 결혼하셔서 그 곳에서 한 10년가까이 살고 있다.

“근데 자기야 어머님이랑 아버님이 허락 하실까??”

“내가 잘 얘기하면 허락 하실거야..그나저나 허락도 허락이지만 학비가 걱정이다..”

“돈이야 친정에서 조금 도와 주신 돈과 그동안 내가 저축해 놓은 돈으로 한 일년간의 학비 정도는 충분할 것 같지만..”

“그럼 다른 생각 하지 말고 어른들과 상의해서 그렇게 추진해 보자..”

“정말? 나야 갔다 오면 훨씬 나을 것 같지만..”

“그래 갔다 와.. 내 직업이 평생 직업이 될 수 있을 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너라도 잘 해서 잘 되면 다 좋은 거 아니겠어?..잘 할 자신 있으면 아무 걱정 말고 갔다 와..”

“그래도..이제 결혼한지 반년정도 밖에 안 됐는데 허락 하실까?.. 허락도 허락이지만 자기 혼자 두고 어떻게 다른 나라에..”

“뭐 더 나은 미래를 위해 투자한다는데 어떻게 하시겠어..갔다 와서 잘 되면 어른들도 좋아 하실꺼야.. 나야 뭐 열심히 돈 벌어서 울 마누라 용돈이라도 붙여주는 낙으로 열심히 살면 되는데 뭘,,가서 공부하는 자기가 더 힘들텐데 내걱정은 하지 말고..”

“1년 이라는 시간이 그렇게 짧은 시간은 아닌데 어떻게..난 자신없어 자기랑 떨어져 있는 것도 나 혼자가는 것도..차라리 같이 가면 모를까..”

“같이 어떻게 가냐?. 돈도 그렇고 그럼 우린 둘다 굶고...

그냥 혼자 갔다 와..낼 누나한테도 상의 해 볼게..”

“정말 괜찮을까?..어른들도 누나도 허락 안하지 않을 것 같아..”


내심 걱정이 된다..


우린 긴 연애기간을 걸쳐 결혼을 했다..

지금은 결혼한지 6개월이 다 되어간다. 사소한 잦은 싸움을 있었지만 그래도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금전적인 문제에 부딪쳐 엉뚱한 생각으로 일을 만들긴 했지만 정말이지 미래가 보이는 듯 했다..

생각했던 것 보다 일이 쉽게 진행 되었다..

시댁 어른들은 처음엔 안된다고 하셨지만 그이의 설득에 결국 허락을 하셨다..

시할머니께선 젊은 남자를 두고 어디 떨어져 사냐며 완강하게 반대를 하셨다..하지만 시 부모님의 설득으로 시할머니 마져 허락을 하셨다..물론 친정 부모님들과 언니들도 많은 걱정을 하셨다..하지만 시댁에서 허락한 이상 어쩔 수 없이 허락을 하셨다..

일본에 가는 조건은 학교에서 시누 집까지 좀 멀긴 하지만 힘들어도 그 곳에서 통학을 하는 조건이었다.. 나 또한 그게 더 좋았다..일본이라는 곳은 물가가 아주 비싼 나라이다..학비도 학비지만 생활비도 만만 치 않은 곳이다..하지만 시누가 아직 아이가 없이 단 둘이 살고 있기에 가능했다. 그래서 그곳에서 살기로 결정을 내린 것이다..

학비만 준비하면 나머지는 시누의 몫으로 지정된 것 이다..


얼마나 좋은 기회인가..누구도 꿈꾸지 못했던 현실이 내게 다가온 것이다..

그렇게 일본 어학연수를 준비하고 난 떠날 준비를 하게 되었다..

그때 까지만 해도 어른들이 걱정했던 가장 큰 이유에 대해 크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오랜 시간을 통해 그를 알아왔기에 어른들이 생각했던 것 만큼 그이를 믿지 못할 일도 없었다.. 때론 조금 실망을 하긴 했지만 (같이 일하는 아르바이트생일..) 내게 한번도 거짓말을 하거나 숨기거나 한적 없고 내게 늘 믿음을 심어 준 사람이었기에..

“지선아 너 괜찮겠니?”

“뭘 언니..”

“아직 젊고 한창 왕성한 시기에 어딜 두고 간다고...그 것도 다른 나라에서 1년 씩이나..”

언닌 긴 한숨을 내쉰다..몇 일 내내 나 때문에 걱정 아닌 걱정을 했나보다..

“설마..그 사람이 날 두고 그러겠어..언니두 그 사람 잘 알잖아..얼마나 착한 사람인데..”

“착하니까 더 문제지..이 바보야.. 철없는 것..난 모르겠다..”

“언니 아니야..그럴 사람이면 나 보내 지도 않아..이게 얼마나 좋은 기회인데..

난 같다 와서 잘 안될까 봐 그게 더 걱정인데..피..“


하며 미래에 대한 불안감에 조금 움추러 들었다..


“언니야 아무 걱정말구,,나 정말 열심히 하도 올 테니까 그이나 잘 챙겨줘..

전화도 자주해주고 저녁도 좀 종종 사주고,,알았지..부탁해..“


난 그렇게 친정식구들의 반대를 뿌리치고 일본행을 준비했다..

꿈을 꾼다,, 더 나은 미래를 위해 힘들지만 그이와 떨어져 지내고,,비록 이렇게 떨어져 지내지만 밝은 미래가 나를 기다린다 라고 애써 긍정적인 생각만을 고집하고 있다.


사실 난 그때까지만 해도 혼자서 지낼 그이가 걱정되기 보다는 어른들의 허락이 걱정됐다..조금은 마음이 붕 뜬 상태에서 어른들의 허락만이 맘에 걸렸던 것이다..

정말 그땐 철이 없었다..왜 그렇게 더 중요한건 보지 못했는지..

바보같은 이지선..



“조심해서 잘 갔다 오고,,내 걱정은 하지 말고..”

“알았어.. 끝나면 일찍 일찍 다니고,,밥 잘 챙겨 먹고..”

“알았어..너나 밥 잘 챙겨 먹고,,누나 기다리지 않게 수업 끝나면 일찍 일찍 들어가고..”

“힘든 일 있으면 혼자 고민하지 말고 자주 전화나 편지해..”

“그래 전화는 돈이 많이 드니까 일주일에 한번씩만 하자..”

“알았어,,내가 가면 편지도 자주 쓸테니까 자기도 꼭 답장 해야 해..”

“그래 그래..이 철없는 게 거기 가서 잘 할 까 걱정이야..”

“웃기셔..자기나 걱정해..난 한눈 안 팔고 공부만 열심히 할테니까 아무 걱정하지 마셔..”

“그래..난 우리 지선이 믿는다..”

“나두..우리 사랑하는 서방님 믿어,,”


우린 그렇게 서로를 걱정하며 마지막 밤을 보냈다..

자꾸 눈물이 난다..막상 이 사람을 두고 가야 한다는 생각에 자꾸 눈물이 난다..

걱정도 된다..혼자서 정말 괜찮을까..

아무 걱정 말라며..가기 싫으면 그렇게 걱정되면 그냥 가지 말라며 내 눈물을 닦아 주는 그이..난 이런 그이의 품에 안겨 맘 것 울어본다..


“어머님..아버님..건강 하시구요..우리 그의 잘 좀 부탁 드립니다..종종 서울에도 올라오셔서 보살펴 주세요..”

“그래..있는 사람은 걱정하지 말고 너나 건강히 잘 다녀오거라..”

“네 아버님..”


“자기야 나 갔다 올게..잘 있어..”

“조심해서 몸 건강히 잘 갔다 와.. 내 걱정하지 말고,, 도착하면 꼭 전화 먼저 하고,, 알았지..”

“응..알았어..”

“자기야 나 한번만 안아줘..”

“어른들도 있는데 애기처럼..”

그러면서도 날 꼭 안아 줬다..


또 눈물이 난다..자꾸 눈물이 난다..한없이..

늘 어린애들 같다고 늘 철없다고 꾸짖던 시 부모님..그래도 딸처럼 예뻐해 주셨던 시부모님...  

“어머님 아버님 죄송해요..이렇게 가게 돼서..걱정하지 마시구요,,정말 열심히 공부하고 와서 꼭 효도 할께요..”

“그래 그래”

너무나도 밝게 웃으시며 날 꼭 안아 주신다..

“어머님 아버님 정말 감사하고 죄송합니다..”


사랑하는 그이와 사랑하는 시부모님을 등지고 난 주체 할 수 없는 눈물을 하염없이 흘리며 출국장으로 들어선다..

그렇게 먼 이국땅으로 떠났다..


기내 창밖으로 보이는 잿빛 하늘이 날 더욱 슬프게만 하는 것 같다..


너무 사랑하는 내 사람..

너무 소중한 내 사람..

당신을 위해 좀 힘들겠지만 나 떠납니다..

밝고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만날 그날을 손꼽아 기다리며 갑니다..


무언지 모를 깊은 한숨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