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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서의 40대 직장 여성과 MZ직원과의 싸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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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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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즈 가든


BY 한상군 2005-12-29

                                                     
                                                                      

 

 

 

 


   처음 꽃집을 시작할 때 수희는 약간 다른 영업 패턴을 모색했다.  가게를 오픈한 뒤 그냥 찾아오는 손님만 상대할 게 아니라 여러 수요처를 개발해 직접 꽃을 납품한다는 계획이었다.  그런 사업방향을 설정했을 때 수희는 스스로 거래처를 개척하는 한편 가까운 친구들을 통해 여러 사업체를 소개 받았다.  그 중 하나가 여의도에 있는 K증권이었다. 
   증권회사라면 주식 투자자들이 수시로 들락거리는 곳이니 객장 분위기를 우아하게 연출하기 위해서도 얼마든지 꽃을 소비할 수 있는 곳이었다.  게다가 K증권을 소개해준 혜정의 남편이 그 회사 본점 임원이라 수희는 강남의 다른 몇몇 지점들까지 소개받아 로즈가든은 개점한 직후부터 배송직원을 세 명이나 채용해야 할 정도로 잘 됐다. 
   그런데 어느날 전남편 남성균에게서 불쑥 연락이 왔다.  이혼한 지 4개월째 접어들던 무렵이었다.

   [꽃집을 한다며?]

   수희는 너무 뜻밖이라 처음에 아무 대꾸도 하지 못했다.  법원 앞에서 헤어진 이후 그의 목소리를 들은 것도 처음이었다.

   [듣자니 강남 증권맨들과 사귀고 있다던데 그게 사실이야?]
   [.....!]
   [민규현 지점장이라고 잘 알지? 걔가 내 대학 친구야.]

   민규현은 강남 신사동 지점장이었는데, 수희는 꽃가게를 오픈한 이후 그와 저녁 식사를 몇 번 한 적이 있었다.  그는 로즈가든의 꽃을  매월 100 만원 이상씩 사준 데다가 자기가 아는 주변의 사업체들까지 서너 군데 소개시켜준 고마운 사람이라, 수희로선 얼마든지 식사대접을 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어쨌다는 거죠?]
   [먹고 살기 위해선 뭐든 해야 되겠지. 좋아. 그런데 왜 하필 내 친구냔 말야.  이혼한 마당에 네가 누구와 놀아나든 상관 없지만 왜 하필 내 친구와 그 짓거리를 하느냔 말야.]
   [그 짓거리라뇨? 대체 내가 뭘 했다고 그래요?]

   저쪽에서 한숨소리가 들려왔다. 남성균은 치밀어오르는 울화를 애써 자제하는 듯한 목소리로 나직이 말했다. 

   [지금 내 친구들 사이에서 무슨 소문이 돌고 있는 줄 알아?  네가 규현이와 목하 연애 중이라는 거야. 나 원 참 창피해서!]
  
   그 대목에서 수희는 돌아버릴 것만 같았다.  큰 소리로 욕이라도 퍼붓고 싶었다.  하지만 그는 어디까지나 현을 맡아 키우는, 그 애의 아빠였다.  수희는 분노를 폭발시키는 대신 픽 웃었다. 그녀는 말 몇 마디로 성균을 미치게 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하고 싶었다.

   [왜요? 난 연애 좀 하면 안되나요?]
   [그렇군. 이제야 본심이 나오시는군.]
   [그래요. 민지점장을 처음 만난 건 사업 때문이었지만, 지금 그 사람한테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어요. 어쩔 거에요?]
   [적어도 난 당신이 그럴 여자가 아니라고 생각했었는데, 역시 내가 잘못 보았군.]
   [그럴 여자? 뭔가 착각하고 있는 것 같은데, 지금 난 법적으로 독신이에요. 내가 뭘 하건 당신은 이제 상관하지 말아요.]
   [이거야 원 망신스러워서 빨리 이민이라도 가야 되겠군!]

   전화는 곧 끊겼다.  수희는 성균과 통화가 끝나자마자 곧장 화장실로 달려가 엉엉 울었다.  그녀로선 우선 너무 억울했던 것이다.  처음 민지점장을 만났을 때 수희는 그가 성균의 친구인 줄도 전혀 알지 못했었다.  그러다가 처음 저녁식사 대접을 할 때 민지점장의 입을 통해 그 사실을 알게 됐었다. 하지만 그게 뭐 어떻다는 말인가.  그녀가 직업적으로 술을 따르거나 웃음을 파는 것이 아닌 이상 전남편의 명예에 누가 될 건 전혀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놀아나는 건 뭐고 그 짓거리는 또 뭔가. 뭐, 목하 연애 중?

   [아니, 뭐 그런 사람이 다 있어?]

   그날 저녁 혜정에게 성균의 얘기를 전했더니 그녀는 대뜸 이렇게 말했다.

   [이혼한 마당에 남이야 연애를 하건 말건 자기가 무슨 상관이야. 그렇게 전부인이 걱정되고 신경 쓰이면 돈 많이 버는 자기가 생활비를 듬뿍듬뿍 보내주면 되잖아. 멀쩡히 잘 살던 가정주부를 제 어머니 내세워 위자료 쬐금 주고 내쫓은 주제에 무슨 간섭이야, 간섭이!]

   민지점장이라면 혜정도 잘 아는 사이였으므로 성균의 얘기가 근거 없는 뜬소문이라는 것은 누가 봐도 분명했다.  그러나 안타까운 점은, 그런 소문이 떠돈다고 했을 때 수희야 독신이니 혼자 참고 삭이면 된다지만, 가정을 갖고 있던 민지점장의 입장은 전혀 다르다는 사실이었다.  
   증권가에 좋지 않은 루머가 돌았기 때문이었을까. 성균에게서 전화가 온 뒤로 K증권 본점과 지점에서 꽃을 주문하는 횟수가 점차 줄어들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나중엔 일 주일에 로즈가든에 주문을 한 번도 넣지 않는 일이 많아졌다.  그렇게 수수방관하다가 몇 달 뒤 직원을 통해 확인해보니 K증권에선 거래처를 아예 다른 곳으로 바꿔버린 상태였다.  결과적으로 전남편과의 관계 때문에 제법 괜찮은 우량 거래처를 하나 잃고 만 셈이었다. 
   그러나 수희는 상심한 채 주저앉아 있을 수만 없었다. 이미 채용한 직원들의 봉급을 매월 챙겨주기 위해서라도 다른 거래선을 꾸준히 개척해야만 했던 것이다.

   그녀가 직원들과 함께 여기저기 꽃 수요처를 부지런히 찾아다니며 동분서주하고 있을 때, 강남 H호텔 나이트 클럽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언젠가 꽃 납품을 위해 찾아갔다가 명함만 놓고 돌아온 적이 있었는데, 바로 그곳 지배인으로부터 연락이 온 것이었다.  
   H나이트클럽은 매장 규모가 이 백 평도 넘는 대형업소였다.  테이블 수만 해도 줄잡아 80여 개는 되었으며, 룸도 여러 개 있어서 만일 그들이 꽃을 필요로 한다면 필경 대량으로 소비할 게 틀림 없었다.  그리고 나이트클럽에서 좋은 반응을 얻을 수 있다면 호텔 내의 로비 라운지나 수 많은 객실에도 꽃을 공급할 수 있는 일이었다. 


   태양이 뜨겁게 작렬하던 여름이 지나고 아침 저녁으로 어언 소슬한 바람이 소맷부리를 파고들던 어느 초가을날 수희는 H호텔 나이트클럽을 찾았다. 그때가 오후 4시쯤이었으니 아직 영업을 하기엔 이른 시간이라 나이트클럽 홀 안은 어두컴컴했다.
   수희가 텅 빈 실내에 혼자 10분쯤 앉아 기다리고 있을 때 천정의 일부 조명등이 켜지며 한 사내가 나타났다.

   [김수희씨?]
   [네. 어제 사무실로 연락 주셨다는 전갈을 받고 왔습니다.]

   마흔 초반쯤이나 됐을까. 사내는 베이지색 양복을 싱글로 입고 붉은 넥타이를 매고 있었는데 얼굴이 약간 긴 편이었지만 미남형이라고 할 수 있는 모습이었다. 눈썹이 짙고 입술이 붉은 게 왠지 호색 취미가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는 수희 맞은편 자리에 앉으며 담배를 피워 물었다.

   [그래, 꽃가게를 하신다고?]
   [네. 조그맣게 가게를 하나 운영하고 있습니다. 많이 도와주십시요.]   

   사내는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지그시 수희를 눈여겨보았다.  가느다랗게 뜬 눈이 마치 화랑에서 미술품이라도 감상하는 듯한 표정이었다. 수희는 왠지 그의 앞에서 발가벗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랑께 우리 업소에도 꽃을 납품하고 싶다 이거지라?]
   [네. 가능하다면.]
   [좋지라. 그럼 한 번 가져와보시쇼. 그렇찮아도 홀 안의 분위기가 너무 썰렁한 것 같아서 뭔가 근사하게 장식할 게 없을까 생각하고 있었는데 마침 잘 됐구마잉. 테이블마다 꽃을 한 송이씩 꽂아놓으면 훨씬 보기 좋을 텡께 말여.]

   흔쾌히 승락하는 척하며 사내는 수희의 반응을 살폈다. 그녀는 좋아해야 할 지 어떨지 언뜻 판단이 서질 않았다. 수희는 자신의 표정을 유보했다.

   [대신 말여, 김수희씨는 나헌테 뭘 해줄 건가요?]
   [무슨 말씀이시죠?]
   [아, 그랑께 나가 그쪽에서 꽃을 받아주면 그쪽께선 나헌테 뭘 해줄 거냐 이 말이여.]
   [.....다른 가게보다 훨씬 좋은 품질의 꽃들을, 보다 저렴한 가격에 공급해 드리겠습니다.] 
   [아니, 내 말은 근께 거시기.....]

   사내는 뭔가 다른 반대급부를 원하고 있는 것 같았다. 수희는 긴장했다. 그러자 사내가 재빨리 눈웃음을 치며 말했다.

   [아따 나가 농담 한 번 해봤소. 그냥 우스갯 소리 한 번 해본 거 가지고 그렇게 표정이 싹 달라지면 나가 너무 무안해지지라.]

   수희는 언뜻 잘못 찾아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슨 뚜렷한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느낌이 영 좋지 않았다.

   [좋습니다. 꽃을 받기로 하지요잉. 아무 조건 없이 말여. 이젠 됐지요? 오늘 저녁 당장 꽃을 가져오도록 하시요잉. 어디 김수희씨가 가져다주는 꽃들이 얼마나 아름다운 지 구경 좀 해봅시다.]
   [글쎄요. 오늘은 시간이 늦어서 좀 어려울 것 같은데.]
   [그럼 내일부터는 가져올 수 있지라? 나가 오늘 밤 우리 가게 영업부장헌테 야그를 해놓을 텡께 자세한 건 그 친구랑 상의하도록 하시쇼. 이젠 됐지요?]
   [.....네.]

   사내는 수희의 명함을 손에 쥔 채 적극적인 반응을 보이더니 양복 저고리 품에서 자기 명함을 한 장 꺼내 그녀에게 건넸다. 명함엔 지배인 배용묵이라 씌어져 있었다. 어쩔 수 없었다. 이젠 H호텔 나이트클럽에 꽃을 공급해주는 수밖에 없었다. 어쨌거나 한 번 거래를 해보다가 실적이 좋으면 계속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고, 만일 악성으로 분류되면 깨끗이 거래를 끝내면 그만인 것이다.

   [이렇게 시간을 내주셔서 고맙습니다.]

   이윽고 수희는 자리에서 일어나 공손히 인사했다.

   [아따 무슨 말씀을! 세상 일이란 게 서로 도와가면서 살아가는 거지라? 안그런가요?  나도 오늘 이러코롬 아리따운 꽃가게 여사장님을 만나뵙게 돼 솔찬이 기쁘당께요.]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우리 앞으로 자주 보기로 합시다. 그럼 멀리 안나갈텡께 살펴가시요잉.]

   몸을 돌려 나이트클럽을 나서는데 등줄기에 사내의 시선이 느껴졌다. 그것은 스커트 아래 허벅지며 종아리에서도 끈적끈적하게 전해져왔다. 수희는 빠른 걸음으로 어두운 실내를 가로질러 밖으로 나왔다. 환한 호텔 밖 거리로 나서자 그제서야 수희는 마음이 좀 놓이는 듯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