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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인의 추억 ( 4 )


BY 비우기 2004-11-29

************

내 동생이 슬그머니 사라지고 난 이후의 일을.....

유감스럽게도 나는 지금 잘 기억할 수가 없다.

그 이유는.....이 날 저녁에 둘 사이에 있었던 일을.....

그 누구에게도 이야기하지 않았기 때문인 것 같다.

그 당시에는....결혼식을 하지 않고 첫날밤을 보내는 것이.....

일종의 흉으로 받아 들여졌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군자금을 지원하는 동료들에게.....흉을 잡히고 싶지 않았을 것이고.....

또 다른 누구에게도.....그 일을 이야기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나는 결혼식 전에.....내 기억으로는 약혼자와 3번 같이 잤는데.....

결혼한지 몇십년이 지난 지금.....그것을 공개한다고 해도.....

누가 나를 흉보지는 않을 것이다.

......

제 1회전은.....동생이 남기고 간 분위기를.....

그대로 유지하기만 하면 되는 그런 것이었다.

우리는 동생이 사라지는 것을 기다렸다는 듯이....

불을 끄고 이불 속으로 들어갔고.....그 다음날 아침 10시쯤.....

막내 동생이 깨우는 소리에...깜짝 놀라 일어나 정신 없이 옷을 주어 입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팔짱을 끼고.....집으로 가서 아침을 먹었고.....

동생들과 같이 내장사를 구경한 후에..약혼자는 영암 언니 집으로 가고....

나는 대전으로 돌아오는 차안에서.. 1회전에서 생성된 모든 파일에.....

극비사항이라는 빨간색 도장..

미성년자 관람 불가라는 파란색 도장.....

무단 반출 금지라는 노란색 도장을 찍어.....

내 기억의 가장 깊숙한 곳에 있는 비밀실에..꼭 꼭 숨겨 버렸었다.

나는 이 추억담을 쓰며..좀 더 사실에 충실하기 위하여.....

그 비밀실을 열어보니.......

그 안에는 알록달록한 꽃 도장이 찍힌.. 몇 개의 파일 뭉치가 들어 있다.

.......

이 1회전에 관한 파일은.....

내용이 얼마 안 되고.....그 것도 초점이 흐릿하여.....

그 내용을 잘 알아 볼 수가 없다.

아마 그 날 저녁에 웃고 떠들면서 마신.....

술기운에 카메라의 초점을 잘 못 맞춘 모양이다.....

아니면 첫 키스의 실패를 만회하려고..내가 너무 허둥댔을 지도 모르고.....

아니면 관객이 없는 연극을.. 내 약혼자가 하고 싶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

이러한 것을 뭐하러 비밀실에 넣어 두었을까.....

아마도.....

첫날밤의 가장 큰 비밀은.. 볼 만한 내용이 별로 없다는 것이 아닐까.....

그런데......

각 종 예술 작품에서는.. 왜 그것을 그렇게 미화시켰을까.....

.....

나는 이러한 의문을 가슴에 품고.. 2회전에 관한 파일을 열어 보았다.

이 파일은.....

그런 대로 내용도 있고.....초점도 잘 조정이 되어 있으며......

아주 신비하고 예술적인 분위기를 풍긴다.....

.....

아마.....

예술 작품에서 이야기하는.....첫날밤이 이런 것이 아닐까.....

......

3회전에 관한 것은.....

몇 편의 짧은..... 요즘 유행하는 플라쉬 같은 것인데.....

진행 속도가 빠르고..... 대체적으로 코믹한 분위기이다......

......

아마도 이 모든 것이 합쳐져서.....

우리들의 첫날밤으로 기억이 되는  것이 아닐까.

......

나는 3개의 파일 중에서.....2번째 파일이 제일 맘에 들었다.....

......

이것은 2번째 주말에 있었던 일이고.....배경은 목포 처갓집이다.....

......

나는 약혼녀의 형제들과 인사를 나누고.....

몇 가지 결혼 절차에 관한 간단한 상의를 하였는데.....

결혼식은 목포에서 하고.....나는 살집을 마련하는 것 등 이었다.....

......

약혼녀는 먼 길을 오느라 피곤할 터인데..저녁을 먹기 전에

목욕을 하라고 하며.. 집 근방의 공중 목욕탕으로 안내한다.

그리고 목욕탕 입구에서.....들고 온 보따리를 내 주며.....

목욕 후에 갈아입으라고 한다.

.....

안으로 들어가서 펼쳐 보니...

그것은 세면도구와 각 종 내복 한 세트이었다.....

.....

따뜻한 목욕탕 물에 몸을 담그며....

.....

아..... 이 여자가 벌써부터.....지 신랑을 챙기기 시작하는구나.....

......

나는 무척 겸연스럽기도 하였지만.....일면으로는 흐뭇하기도 했다.

그리고 목욕을 마치고.....갈아 입은 새 속옷은 학교 다닐 때에 입어보고.....

수년만에 처음 입어보는 것이었다.

새 옷의 감촉이 좋아서인지....

아니면 좋은 여자를 마누라로 얻는다는....생각이 들어서인지.....

처갓집으로 향하는 내 발걸음이...둥둥 떠가는 것 같았다.

.....

싱글거리며 들어오는 나를 맞으며.....약혼녀는 시내로 가서.....

구두와 양복을 맞추어야 한다고 하며.....저녁도 나가서 먹자고 한다.

.....

한 겨울의 저녁.....거리는 제법 쌀쌀하였지만.....

오동포동하게 안기는 미녀와.....팔짱을 끼고 걷는 나는.....

온 몸에서 뭔지 모를 열기가 솟아오른다.....

.......

 

나는 이 날에 있었던 모든 일들을..... 어떻게 글로 표현해야 하나.....

하는 생각을 아주 오랜 동안 하였다.

왜냐하면.....

이 날이 내 인생에 있어서 최고의 날이었기 때문이다.

.....

나는 우연찮은 기회에.....나의 청춘의 한 때를 회고하는.....

혼인의 추억이라는 제목의..... 이 글을 쓰면서.....

내 인생에서..그  한 때에 있었던 일들을..있었던 일 그대로 쓰기로 하고...

지금까지.....내가 확실히 기억하지 못하는 세부사항을 .....

내가 했음직한 것들로..... 채우면서 글을 썼는데.....

.......

이 날 있었던 일들은.....사실  나도 믿을 수가 없어서.....

정말 있었던 일을.....사실 그대로 쓰기가 어렵다.

그러나

내가 지금까지 쓴 글 중에도..그 글을 읽는 분들 중에는...정말 그랬을까....

하고 생각하시는 분이 많이 있었을 것이고....

앞으로 쓸 글 중에도..... 그런 것이 많이 있을 것인데.....

이 날 있었던 일을..... 꼭..... 이 글을 읽는 분이.....

그대로 믿을..... 이유도..... 필요도 없을 것이고.....

그렇다면.....그 때의 일을.....있었던 사실 그대로 적는 것이.....

전체의 흐름으로 보아  맞을 것 같다.

.........

 

******

1979년 1월 20일 토요일의 저녁은.....그냥 평범한 저녁 중의 하나인데.....

낮에 있었던 감격의 여운으로.....온 몸과 맘이 들 떠 있는 나에게는.....

모든 것이 신기하기만 하였다.....

......

우리는 평범한 경양식 집에서.....붉은 포도주를 곁들인 스테이크를 먹고.....

미리 연락이 되어 있어.....친밀하게 맞이하는 축하 인사를 받으며.....

내 몸의 치수를 재는 양복점 주인 아저씨.....내 발의 사이즈를 재고.....

여러 가지 디자인의 구두를 선보이는......구둣방 아저씨.....

내 손가락에 이런저런 사이즈의 반지를 끼워 보는.....보석점 아줌마.....

.......

이러한 모든 것이 나에게는 신기하기만 한데.....

마치 이러한 것은 매일 한다는 듯이.....능숙하게 주인들하고 인사하고.....

주문하고 하는.....이 여자.....

.......

나에게는 이러한 것.....하나 하나가 다 충격이었다.....

.......

아....지금...이 여자는 영화를 찍고 있는 거야......

........

나는 영화 속의 엑스트라인양......둥둥 뜨는 내 발걸음을 겨우 가누며......

위풍당당한 여주인공의 팔에 안겨.....이리저리 끌려 다녔다.

.......

 

 

*******

이러한 모든 것들은.....결혼을 하는 사람들이 모두 다 하는 것인데.....

갑작스럽게 결혼을 하는 나에게는.....상당히 많은 것이.....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들이었다.

.....

그리고

결혼하기 위하여 하여야 하는.....많은 잡다한 것들에 대하여.....

특별히 생각해 보지 않은 나에게는.....

이 모든 것들이 당혹스럽기도 하고.....신기하기도 하였다.

.....

나는 얼얼한 기분으로 이리저리 끌려 다니다.....

콜롬방이라는 간판이 걸린 빵집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내 약혼자는 자기 아버지가 좋아한다고.....크림 빵을 주문하고.....

나를 위해서 단팥 빵을 주문한다.

진열대 앞에서 빵을 봉투에 넣는 종업원을 보고 있는.....

그녀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아.....이 여자는 효녀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나를 마주보며 그녀가 문득 내 입가에 손을 댄다.

......

나도 어떤 착각에 빠져.....손으로 그녀를 감싸며.....얼굴을 내밀다.....

우리 둘은 후다닥 놀라 떨어지고.....

빵을 담던 종업원이.....의아한 눈으로 우리를 보다가.....

다 담아진 빵 봉투를 내민다.....

.....

우리는 뭔가에 쫓기듯이.....그 곳을 나와.....택시를 타고 집으로 갔다.....

그녀의 집은 목포고등학교 정문에서.....

 골목길을 돌고 돌아 50 미터쯤 떨어진 곳에 있는데.....

 보름달이 휘영청 밝은  골목길을

 우리는 팔짱끼는 것만 허용된 커플인 냥하고.....

 애써 구석진 그늘을 피하며.....집으로 들어 갔다.

 .....

지금 이 낡은 파일을 반복해 가며 들쳐보며......

지난 일을 회고하니.....

아마 그 때 그 빵집에서.....

그녀가 내 입가에 손을 대려 한 것은.....

종업원이 봉투에 담는 단팥 빵에 자극이 되어.....

맞선 첫날 이 곳에서 빵을 먹을 때에.....

내 입가에 붙어 있던 단팥의 환상을 보았던 것인데.....

그 때에 그것을 자기가 바로 때어주지 못한 것을..... 안타까워 하다.....

지금 그 단팥의 환상을 보고.....

문득 손을 내밀어  때어 내려고 했던  것이고.....

첫 키스에 실패한 나는 그것을......

키스를 하자는 환상으로 보았던 것일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감독의 큐를 받은 것 처럼.....얼굴을 접근시키다.....

어딘가에서 들려오는 NG 소리에 놀라 떨어진 것이다.

이러한 돌발 사태는.....

연애하는 청춘 남녀에게는.....수시로 일어나기 마련인데......

그 것이 성공을 했던.....아니면 불발로 끝이 났던.....

이러한 돌발 사태는 항상.....

우리를.....

그 전에 경험해 보지 못한.....알 수 없는.....

새로운 세계로 끌고 간다.

.......

그 날 우리 두 사람의 몸 속에는.....알 수 없는 무엇이 들끓고 있었고.....

우리는 그것이.....매우 위험한 것이라는 것을 감지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

우리는 대문 안으로 들어가며......방금 통과한 그 골목길은......

온갖 함정이 도사린 위험한 곳이었고.....

여자의 부모와 형제들이 기다리는..대문 안은 절대 안전한 곳이라는 듯이..

안도의 숨을 내쉬었지만.....

그러나.....

그 날 밤의 열기는 우리를 가만히 놔두지 않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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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제공 : 비우기 ( http://www.beugi.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