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작가

이슈토론
시어머님이 하신 김치를 친정에 나눠주는 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배너_03
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조회 : 1,719

참고인 진술서


BY 여유만만 2004-08-30

 

참고인 진술서



  2개월 전쯤의 어느 날의 일인데 날짜와 요일까지 정확히 기억하기는 좀 어렵습니다. 딸아이 학원을 좀 알아보려고 외출했다가 집으로 돌아와서는 문을 열려고 열쇠를 구멍에 넣으려는 순간 여자의 외마디 비명 소리를 들었습니다. 짐짓 소리에 놀라 좌우로 고개를 돌려 아파트 복도를 두리번거리며 쳐다보았지만 짧은 외마디 소리가 어디에서 났는 지 구분하기 어려웠습니다. 누가 볼륨을 높이고 비디오라도 보고 있는 것이겠거니 하면서 문을 막 열고 현관에 발을 들여놓으려는 순간, 바로 옆집 706호의 현관문이 열렸고 윤서영씨가 복도로 내동댕이쳐졌습니다. 그리고 바로 706호의 문은 닫혔습니다. 저는 10년 전부터 705호에 살고 있었고, 윤서영씨 부부는 3년 전부터 706호에 살기 시작했습니다. 도둑이 들어와서 물건을 빼앗기 위해 주인을 내동댕이친 것이 아닌 이상 윤서영씨를 내동댕이칠 수 있는 사람은 그녀의 남편 뿐이었습니다.

  어쨌든 저는 놀란 마음을 진정시키고, 윤서영씨에게 다가갔습니다. 평소에 그토록 지적이고 단정해 보였던 단발머리는 헝클어진 채로 윤서영씨의 얼굴을 덮고 있었는데 그 사이로 부어 있는 얼굴이 보였습니다. 윤서영씨는 새우처럼 등을 구부리고 양팔로 배를 움켜쥐고 있었는데 아마도 복부를 많이 맞은 듯 했습니다. 저는 그녀에게 더듬거리며 괜찮냐고 묻고는 있는 힘껏 그녀를 부축하여 우리 집으로 데리고 들어왔습니다. 괜찮냐고 물어만 보고 그만 자리를 뜨고 그녀를 혼자 복도에 두고 오기엔 상태가 좀 심각해 보였고, 또 그대로 두고 오는 것도 친하지는 않지만 이웃된 도리가 아닌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그 때 그녀는 제가 아니라 그 누가 일으켜 세워도, 심지어 그 누군가가 바로 그녀를 내동댕이친 706호 남자라 할 지라도 일으켜 세워지는 대로 움직일 것만 같이 축 늘어진 상태였습니다. 저는 그녀를 우리 집 소파에 눕히고, 혹시 몰라 얼른 현관문을 잠궜습니다. 우선 흐트러진 그녀의 머리카락을 정리해주고 수건에 물을 적셔 그녀의 얼굴을 닦아주었습니다. 제가 그러는 동안 내내 그녀는 눈을 꼭 감고 있었고, 다리를 세우고 양팔을 배에 대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녀의 한쪽 손을 가만히 잡고 많이 아프냐고 물었습니다. 그녀는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다른 질문을 해도 그녀가 대답할 것 같지 않았습니다. 당한 자신의 모습을 이웃에게 보이고 그걸 확인시켜주는 것이 아마도 싫었겠지요. 그래서 저도 더 묻지 않았습니다. 그녀와 같은 경험이 없는 것이 아니니까요. 조금 벗어나는 이야기이지만 제 친정 엄마와 저도 술꾼 아버지에게 엄청 두들겨 맞고 살았습니다. 아버지는 평소엔 얌전했고, 동네 사람들 보시기엔 법 없이도 살 사람이었지만 일단 술이 들어가면 그 날은 이유도 없이 엄마를 때리곤 했습니다. 그것도 흠씩 말입니다. 맞다가 지친 엄마가 필사적인 반항을 거듭해 신발도 신는 둥 맞는 둥 하고 동네 어디론가로 줄행랑을 놓으시면 그 때 아버지는 우리 남매를 찾아 헤매셨습니다. 그리곤 저희 남매를 찾지 못한 채 마루나 마당에 쓰러져 잠드시기 일쑤였습니다. 처음에 저희 남매는 아버지가 엄마를 때리기 시작하면 몸으로 맞서며 엄마를 지켜드리려 애썼습니다. 그러나 마치 ‘핵폭탄’이라고 표현해도 될 만큼 권투선수의 그것처럼 무섭게 날아드는 주먹을 예닐곱의 남매가 번번이 감당하기는 너무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몇번 아버지에게 맞서다가 엄마에게 너무 미안했지만 아버지가 술을 먹고 대문을 넘어서면서 큰 소리로 “너, 이년 어디 갔어? 이런 환장할 년!”하면서 엄마를 찾기 시작하면 두툼한 겉옷을 챙겨 입었고 이윽고 아버지가 안방으로 들어가면 우리 남매는 방문을 후다닥 열고는 재빨리 옆집 영순이네로 튀었습니다. 운 좋게 영순이네 대문이 열려있으면 하룻밤 신세를 졌고, 영순이네 문이 닫혀 있으면 담벼락에 기대어 꾸벅 꾸벅 졸다가 엄마가 달려나가는 걸 보고, 두어 시간 지나서 집안으로 들어가곤 했습니다. 이걸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해야할 지 모르겠지만 아버지는 술에 취하면서 집에서만 주정을 피웠지 대문 밖을 벗어나는 일은 없었습니다. 술 취한 아버지 때문에 영순이네 집에서 하룻밤 신세를 지게 되면 영순이네 엄마는 이것저것 저희에게 물으시고, 쪽방에 이부자리를 펴주시면서 꼭 “불쌍한 것들” 하셨는데 어린 마음에도 그 소리를 듣는 게 참 창피했습니다. 제가 불쌍한 것이라고 이야기하지는 않았지만 아마 윤서영씨도 제가 영순이 엄마의 예의 그 소리를 듣는 심정이었겠지요. 그래서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던 거겠지요.

어쨌든 그날 윤서영씨는 계속 저희 집 소파에 누워있었는데 제가 이미 본 건 그렇다 쳐도 중학생 제 딸이 그런 모습을 보게 되는 건 창피해할 것 같아 저는 주저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윤서영씨에게 딸이 올 시간이라고 이야기해주었습니다. 그랬더니 그녀는 핏기 없는 얼굴로 일어나 앉아 전화 좀 쓰겠다고 제게 양해를 구하고는 두 번 다이알을 눌렀습니다. 아마도 집과 그녀의 남편 핸드폰에 전화를 한 것 같았습니다. 두 번 다 통화가 되지 않는 걸 보니 그녀 남편은 집에서 나간 모양이었습니다. 그녀가 나가려고 일어섰을 때 저는 잠깐 기다리라고 그녀에게 이야기하고는 얼른 문밖으로 뛰어 나가 706호의 초인종을 눌렀습니다. 아무 소리도 나지 않더군요. 다시 집으로 돌아와 ‘집에는 아무도 없나봐요’라고 그녀에게 이야기해주었습니다. 그리고 정작 내보내는 사람은 저였으면서도 저는 다시 한번 그녀에게 이렇게 집에 가도 괜찮겠냐고 물었는데, 그녀가 말했습니다. “일주일 동안은 저에게 빌고 또 빌 거예요. 걱정하지 마세요” 설마설마 했는데 그녀는 그날 처음으로 매를 맞은 게 아니었습니다.

  그날 저녁 잠자리에 들면서 남편에게 혹시 706호 남자를 아느냐고 물었습니다. 남편은 얼굴은 알지만 워낙 서로 인사를 잘 안해서 뭐하고 사는 사람인 지 모르지만 상당히 지적으로 보이지 않냐고 하면서 왜 저에게 그걸 묻느냐고 했습니다. 속으로는 그 사람이 평일인 오늘 낮에 사무실이 아닌 집에 있었고, 그리고 아내를 때렸노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러면 그녀가 싫어할 것 같아서 참았습니다. 저도 예전에 아버지가 술만 마시면 엄마와 아이들을 쥐잡듯한다는 사실을 온동네 사람들이 다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저에게 그 사실에 대해 묻는 것이 매우 싫었거든요. 아무튼 무척 지적으로 보이는 그들 부부는 한쪽은 때리고 한쪽은 맞는 관계였습니다.


  그리고 며칠 동안 그녀의 안부가 궁금했지만 더 이상 706호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그녀나 그녀의 남편을 마주치는 일도 없었습니다. 제가 어릴 때 말입니다. 술먹고 엄마를 실컷 때린 아버지가 다음날 부엌에 쪼그리고 앉아서 놀고 있던 제에게 엄마에게 전해주라며 쪽지를 건네주고는 일하러 가신 적이 있었습니다. 그 때 어린 마음에 너무 궁금해서 몰래 그 쪽지를 펴보았는데, 삐뚤빼뚤한 글씨로 ‘여보, 참 미안하오. 다음에는 그러지 않으리라’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물론 아버지는 다시 그러지 않으리라는 약속을 지키지 않았지요. 그 시기가 아마 그녀의 남편이 나의 예전 아버지의 그것과 비슷한 행동을 했던 시기였겠지요. 그리고 한 2주 정도가 지난 것 같았습니다. 그 날은 금요일이었는데 - 제가 그 날이 금요일이라는 것을 또렷이 기억하는 이유는 제가 좋아하는 법정 드라마를 하는 날이었기 때문입니다 - 단지에 있는 상가를 다녀오는 길에 느릿느릿하게 우리 동 입구를 나오고 있는 윤서영씨를 보게되었습니다. 왠일인 지 그녀가 저에게 먼저 아는 체를 하면서 어디 가서 차라도 한잔했으면 한다고 하더군요. 제 손에는 파며, 배추며, 북어며, 우유가 잔뜩 들어있는 시장바구니가 있어서 조금 망설여지더군요. 하지만 다시 한번 이어지는 그녀의 권유로 장바구니를 우리 동 경비 초소에 맡기고 그녀를 따라 나섰습니다. 아파트 단지를 빠져 나와 한블럭을 걷고 횡단보도를 건넌 뒤 우리는 'foggy'라는 카페를 찾아냈고 그리로 들어갔습니다. 저는 커피를 그녀는 쟈스민차를 시켰습니다. 먼저 그녀가 입을 열더군요, 아무 것도 물어보지 않아서 고맙다구요. 이웃끼리 별말을 다한다는 상투적인 말로 제가 대답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침묵이 흘렀습니다. 사실 그렇지요. 맞은 여자와 맞는 걸 목격하고 도와준 여자끼리, 평소에 친했던 것도 아니고, 그나마 왕래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이름만 이웃이었던 여자 둘이서 어느 날 갑자기 한자리에 마주 앉았다고 해서 이야기 보따리가 풀어질 수 있겠어요? 주문한 차가 나오고, 제가 먼저 입을 열었습니다. 왠지 그래야할 것 같아서요. 나는 지금 서른 다섯인데, 딸이 중학교 1학년이다. 대학교 입학식 때부터 내가 눈여겨 보고 또 나를 눈여겨 보았던 6살 연상 복학생 선배와 1학기만 마치고 바로 결혼을 해버렸다. 솔직히 말하면 지금의 자영 아빠를 사랑하기도 했지만 너무 어려 앞뒤를 잴 줄 몰랐었다. 그래서 결혼한 후 한참이 지나서야 흔히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여자들은 일찍 결혼하면 손해본다는 말을 이해했다. 하지만 내가 결혼을 서두른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집에서 도망치고 싶어서였다. 결혼한 다음해에 나는 자영이를 낳았다. 그 뒤로 아이를 더 가지려고 해보았지만 잘 되지 않았다. 요새는 여자들도 늦게 결혼하는 터라 지금 서른 다섯 나이에 중학생 딸아이가 있다고 하면 다들 놀란다. 뭐 이런 종류의 이야기를 하면서 윤서영씨의 나이를 물었습니다. 나와 동갑이라고 하더군요. 자기는 3년 전에 결혼했고, 아이는 없고 - 그녀에게 아이가 없다는 사실은 미리 알고 있었습니다만 - 학원 선생님이라고 하더군요. 남편 이야기를 물어볼까 하다가 그만 두었습니다. 저도 어렸을 적에 영순이가 “도대체 그런데 너네 아빠는 왜 너네 엄마를 그렇게 죽도록 패는 거니?”라고 물어보는 게 싫었거든요. 그럴 때마다 아빠한테 맞아죽는 한이 있어도 다시는 영순이 너네 집으로 도망안간다 하고 속으로 이를 악물곤 했었거든요. 어쨌든 제가 시장 물가가 어떻고, 아이들 학원이 어떻고 하는 아줌마스러운 대화를 조금 더 유도한 뒤 우리는 그 찻집을 나왔습니다. 서로의 현관문 앞에 섰을 때 그녀가 저에게 다시 한번 고맙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그냥 빙그레 웃어주었습니다. 현관문을 열고 자기 집으로 들어서는데도 그녀가 매우 측은하게 느껴지더군요. 현관 안으로 옮겨지는 그녀의 발걸음이 그리 상쾌하지 않았거든요. 하기사 그렇지요. 어쩌다 한번 부부 싸움을 해도 이놈의 집구석 다시는 들어오나 보다, 네가 너같은 놈 아니면 못살 줄 아냐 싶은데 맞고 산다면 그 심정이 오죽 하려구요. 


  그로부터 일주일쯤 지난 어느 일요일, 제발 지옥같은 시험이 끝난 딸 - 자영이라고 합니다 - 을 어디든 데려다달라는 우리 자영이의 간곡한 부탁 때문에 오래간만에 가족 외출을 하려고 아침 일찍 밥을 먹고 거실에서 걸레질을 하고 있었습니다. 남편은 방안에서 카메라를 챙기고 있었고 딸아이는 이옷 저옷 대어보며 거실의 대형 거울 앞에 서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복도 쪽에서 우당탕 소리가 들리더니 바람처럼 윤서영씨가 우리 집으로 들어오더니 현관문을 닫아걸고 어쩔 줄 모르고 서있었습니다. 갑자기 다급하게 이어진 발자국 소리에 놀란 남편은 도둑이라도 들었나 싶어 방안에서 뛰쳐나왔고, 딸아이는 ‘누구세요’하면서 멍하게 서있었습니다. 제가 걸레를 놓고 우선 딸아이에게 옆집 아줌마라고 일러주고는 윤서영씨를 소파에 앉혔습니다. 머리는 지난번처럼 산발이었고 얼굴은 붇지 않았지만 오들오들 떨고 있는 게 여간 불안해 보이지 않았습니다. 자영이에게 물 한잔 내어달라고 하고 남편에게는 방에 좀 들어가 있어 달라고 했습니다. 저는 이제 괜찮으니까 진정하라고 말하면서 서영씨의 손을 잡았습니다. 그 순간 저는 보았습니다. 서영씨의 오른 팔에는 열십자 모양의 칼자국이 아로새겨져 있었고, 스멀스멀 살을 헤집고 나온 피들이 소파 위로 뚝뚝 떨어져 나오고 있었습니다. 그 모양을 보고 놀란 자영이는 물컵을 든 손을 덜덜 떨고 있었습니다. 제가 자영이에게 아빠에게 병원에 좀 가자고 말하라고 했습니다. 방안으로 자영이가 들어가고 얼마 안있어 남편이 거실로 나와 먼저 그녀의 상처를 살핀 후 복도로 나가 옆집 정황을 살폈고, 우리에게 내려가자고 했습니다. 잠시 후 우리는 남편의 차를 타고 동네에서 제일 가까운 응급실로 향했습니다. 그녀는 상처를 스물 두바늘이나 꿰매었습니다. 그녀의 수술을 기다리는 동안 남편은 저에게 ‘이웃집 여자 말이야, 남편에게 맞은 거면 남편을 가정폭력으로 신고해야하는 거 아니냐’고 말했고, 자영이는 ‘저 아줌마 불쌍하다. 엄마 그런데 저 아줌마 남편한테 맞은 거야? 그런거야?’ 하면서 조심스럽게 물어보았습니다. 병원에서 나온 뒤 딸아이의 방에 서영씨를 눕혀 재우고, 우리는 우울한 기분으로 늦은 점심을 먹었습니다. 남편에게 옆집에 사람이 있나 좀 보고오라고 했고, 남편은 복도로 나갔다가 돌아와서는 초인종을 눌러도 아무 소리가 없다고 말하더니 이내 경비실에 전화를 걸어 706호 남자가 나갔는 지를 확인하더군요. 경비아저씨가 706호 아저씨는 약 세시간 전쯤에 외출을 하는 것 같다고 하더군요. 그래도 혹시 하더니 남편은 주차장을 한바퀴 돌아보고 왔습니다. 저는 운전을 할 줄 몰라 관심이 없었는데 주차에 늘 신경을 쓸 수밖에 없는 남편은 위아래 집과 양 옆집의 자동차 번호를 외우고 있더군요. 남편 말로는 706호 차도 없다고 했습니다. 옆집 남자가 집에 없는 걸로 최종 결론을 내린 남편은 오늘 하루는 우리가 데리고 있다고 쳐도 저 여자의 친정이나 시댁 같은 곳에 연락을 해주어야하는 것 아니냐고 했습니다. 그리고 언제부터 저 여자가 맞고 사는 걸 알았냐고도 물었습니다. 사실 저는 윤서영씨의 얼굴과 이름, 나이와 직업, 그리고 사는 곳과 ‘맞는 것’만 알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세시간이 지나서 자영이 방으로 들어갔더니 서영씨가 깨어서 벽을 바라보고 누워있었습니다. 눈가에는 쉴새없이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습니다. 일단 죽을 쑤어 먹인 후에 따뜻한 유자차를 한잔 내어주면서 제가 물었습니다.

“왜 지난 번에 우리 카페에 한번 갔었잖아요. 그 때 내가 집에서 도망치고 싶어서 결혼 일찍 했다고 했던 말 기억나요? 사실은 우리 아버지가 내가 아주 어렸을 적부터 술만 먹으면 엄마랑 우리를 그렇게 때렸었어요. 오십줄을 넘으면서는 덜해지고, 또 내가 결혼하고 나니까 혼사올린 자식이 있는데 민망하다면서 후회도 많이 하고, 오빠가 자꾸 장성해서 남자가 되어가니까 엄마에게 함부로 하지 못하고, 또 얼마 전에 돌아가실 때에는 엄마에게 살아서 잘못했으니 죽어서 갚겠다고 용서를 빌긴 했지만 서도, 때리고 맞는 집이 싫어서 아빠 얼굴 보기 싫어서 일찍 결혼해 버렸지요... 사실 내가 결혼하면 엄마가 도망칠 곳도 생기게 되는 셈이구요”

그녀는 묵묵히 제 이야기를 듣고 있었습니다.

“그 때는 맞는 엄마를 지켜주는 것보다 내가 그 공간에 있는 게 싫어서 내가 살 궁리만 한거지요... 그런데 맞는 이유는 있어요?”

그녀는 고개를 힘없이 저었습니다.

“언제부터 맞았어요? 시댁이나 친정에 도움을 청한 적은 없어요? 시댁이나 친정에서도 이 사실을 알아요?”

그녀는 대답이 없었습니다. 저는 더 묻기도 뭐해서 불편하겠지만 집처럼 생각하고 그냥 푹 쉬라고 이야기 해주고는 그날 딸아이를 우리 방에 재웠습니다. 다음날 서영씨는 친정 식구들은 7년 전에 미국으로 이민가서 한국에 있지를 않고, 시댁식구는 시어머니와 아가씨가 한명 있는데, 아들과 오빠를 다룰 줄 모르는 사람들이라 이야기를 해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래도 친한 친구는 없냐고 물어보려다가 아무래도 그러면 자기를 불편해해서 쫓아내는 것 같은 생각을 할까봐서 그냥 두기로 했습니다. 밤중에 남편과 의논해서 실밥을 뽑을 때까지 우리 집에 있다가 며칠 있으면 딸아이 방학도 시작될테니 그 때 맞추어서 제 친정에 그녀를 데려가 며칠 쉬다가 오기로 했습니다. 남편은 불편했을 테지만 제가 왜 자기와 일찍 결혼했는 지 그 연유를 잘 알고 있는 까닭에 굳이 불편한 티를 내지 않았고, 우리 딸도 몇번 텔레비젼 시사 프로그램을 통해 가정 폭력의 심각성을 접한 경험이 있는 터라 호기심 어린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지 않으려고 무척 노력하는 듯 보였습니다.

어쨌든 그녀가 실밥을 뽑은 뒤 우리는 제 친정인 남원으로 떠났습니다. 오빠와 새언니, 그리고 친정엄마에게는 친구라고 소개시켜주었고, 같이 내려간 우리 딸도 엄마 친구 대접을 톡톡히 해주었습니다. 그 때서야 그녀는 자신의 이야기를 이것저것 들려주었는데 그녀의 이야기를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그녀는 고등학교 2학년 때 딱 한번 미팅을 한 적이 있었는데 그 때 파트너가 지금의 남편 - 이름이 현경훈이라고 하더군요 - 이었다고 합니다. 미팅이 끝난 뒤 소위 애프터가 이어지지 않았고, 그녀도 별로 관심이 없어 그 후 다시 만난 적은 없는데 같은 대학, 같은 과 신입생으로 다시 만나게 되었답니다. 1학년 1학기 때 잠깐 만나고, 왠지 모르게 거북스러운 느낌이 들어 우리는 맞지 않는 것 같으니 그만 만나자고 그녀가 제안했고, 남편은 그 제안을 스스럼없이 받아주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매주 금요일마다 그녀에게 장미꽃 한송이씩을 꼭 전해주었다는군요. 그렇게 2년 동안 장미꽃을 받아보았고, 다른 남학생을 한번 사귀고 헤어지고, 다시 그녀의 남편을 꼼꼼히 살펴보니 성실하고, 자기를 끊임없이 좋아해주는 것 같아 졸업을 앞두고 다시 만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남편은 집안사정으로 군대 면제를 받아 같이 졸업을 했다고 하더군요. 그녀의 가족들은 가까운 친척이 모두 미국에서 터를 잡고 생활하고 있는 터였고, 아버지도 이민가기를 원해 가족들은 오래 전부터 이민을 준비해서 떠나기만 하면 되었다고 하더군요. 그녀는 공부를 더 할 생각이 있는데 미국으로 건너가면 지금하고 있는 공부를 이어가기 어려울 것 같아 혼자 한국에 남기로 하고 대학원에 진학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녀의 남편도 졸업 후 1년 정도 취업을 했다가 그녀가 다니는 대학원에 진학했다고 합니다. 그녀는 대학원 졸업 후 교수가 되고 싶어 가족이 있는 미국으로 가서 유학할 준비를 하려고 했는데 그녀의 남편은 유학갈 집안 형편이 되지 않은데다가 그녀의 도움도 받고 싶지 않아 했고, 오로지 자기와 결혼해서 한국에서 행복하게 살기를 원했다고 합니다. 오래 고민한 끝에 그와 결혼하기로 결심한 그녀는 가족들에게 이 사실을 알렸고, 별 어려움없이 1년 뒤 결혼을 하고 서울 변두리 다세대 2층에 신접살림을 차렸다고 하더군요. 남편은 대학원을 졸업한 후 학부 조교로 있으면서 논문 작업 등 우선 대학의 시간강사라도 되어보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하던 시기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그녀는 남편을 위해 자신의 학업은 잠시 중단하기로 했다고 하더군요.


그건 그렇다 치고, 결혼하기 전에 그녀는 남편이 무척 청결한 남자라고 생각을 했었답니다. 그러나 막상 결혼을 하고 보니 남편은 청결이 아니라 결벽에 가까운 증세들을 보였다고 합니다. 아침밥은 무조건 그날 새벽에 쑤운 흰죽 외에 다른 것은 절대 먹지 않았고, 속옷까지도 다려주어야 했다고 합니다. 신혼 한달이 지난 후 그녀는 이렇게 매일 하는 게 조금 어렵고 불편하다고 남편에게 이야기했고, 그날 처음 뺨을 한 대 맞았다고 합니다. 그녀의 남편은 그녀의 뺨을 때리면서 사랑한다면서 그 정도도 못하냐고 했다고 하더군요. 그날 그녀는 많이 속상하고 슬펐지만 신혼초 트러블로 애써 생각하려고 노력했고, 남편도 그녀에게 목걸이를 사다주면서 미안하다고 했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보름 정도 지난 어느 날 집들이를 하지 않는다고 성화를 부리는 그녀 친구들을 좁은 집으로 부르기가 싫어서 바깥에서 저녁을 사고, 술한잔을 마시고, 밤 9시경 귀가했는데 남편이 버스 정거장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더랍니다. 버스에서 내려 기다리는 그의 얼굴을 처음 보았을 때에는 나를 마중나왔구나 싶어 무척 감격스러웠는데 집에 가는 내내 남편은 말 한마디가 없더니 대문에 들어서는 순간 다짜고짜 그녀의 머리를 쥐어잡더니 남편은 대학 강사라도 되기 위해 교수놈들에게 온갖 아양 다 떨어가며 아둥바둥 거리는 데 너는 이 시간까지 어디에서 뭐하고 쏘아 다녔으며, 돈은 또 얼마나 퍼썼냐고 하면서 정신없이 그녀를 때리더랍니다. 그 소리에 놀란 윗층 주인집 아주머니가 뛰어 내려오는 바람에 그녀는 그날 도망을 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녀는 곧장 택시를 타고 시댁으로 달려가 시어머니에게 그날 있었던 일을 울면서 하소연했다고 합니다. 그녀 이야기를 듣던 그녀의 시어머니는 지애비를 닮아 그렇다고 하더니 억울하면 네가 헤어지면 그만이라고 말하더랍니다. 그녀는 너무 기가 막혀 시댁을 나온 뒤 여관에서 하룻밤을 지새웠다고 합니다. 혹시 무슨 일이 생길까 두려워 잠긴 여관문을 확인하고, 또 확인하면서 그가 강사가 되기 위해 조바심이 많이 나고 미래가 불안해서 그러는 걸꺼야, 그러니까 내가 조금 더 이해해주면 좋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다음날 새벽 일찍 집으로 들어가 흰죽을 쑤어서 그에게 주었다고 합니다. 그는 미안하다고 했고, 둘은 애써 이제 서로에게 잘하자고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나서 그의 신경을 건드리지 않으려고 그녀는 무척 노력했다고 합니다. 그 후 남편의 조교 월급은 너무 뻔했고, - 들은 풍월에 의하면 사실 월급이라고 할 수도 없는 액수라고 하더군요 - 그녀가 모아두었던 돈도 이제 거의 바닥이 나면서 그녀는 남편에게 우리 둘 중 한사람은 또는 두사람 모두 취직을 해야할 것 같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는 자기는 조금만 더 하면 될 것 같다면서 미안하지만 그녀가 취직을 해주었으면 좋겠다고 했다고 합니다. 그녀는 자기도 공부를 더 하고 싶었지만 아무래도 그보다는 자기가 취직하는 편이 좋을 것 같아 이곳 저곳 이력서를 넣어 보았지만 면접에서 번번이 ‘학벌은 문제가 없지만 유부녀라는 점이 마음에 걸리는군요’라는 말을 들어야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결국 선택한 것이 학원 강사였다고 합니다. 저도 우리 딸을 학원에 보내어 보아서 아는데 학원 강사가 결코 쉬운 직업, 편한 직업이 아닙니다. 장시간 수업해야하는 것은 물론이고 인기 강사가 되기 위해 노력해야합니다. 그런데 이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요. 시내 유명 학원들을 돌아보십시오. 여자 강사가 도대체 몇 명이나 있는 지... 그녀는 남편과 자신을 위해, 그리고 살아남기 위해 애썼다고 합니다. 그럴수록 귀가 시간은 점점 늦어졌고, 다시는 때리지 않겠다고 약속했던 남편은 무참히 약속을 저버리고, 또 다시 그녀에게 번번이 손을 올렸다고 했습니다. 그 뒤 집주인이 나가줄 것을 원했고, 그래서 구한 집이 우리 아파트였다고 합니다. 처음엔 늦게 오던 걸 손찌검까지 해대며 나무라던 남편은 그러나 이제는 그녀에게 돈을 좀 더 많이 벌어오라고 했다고 합니다. 자기가 강사 자리라도 꿰어차고, 교수가 대려면 돈이 필요하다면서, 자기 능력을 못믿는냐면서도 능력을 뒷받침해줄 수 있는 것은 경제력이라고 하면서 돈을 더 많이 벌어오라고 했다고 합니다. 그녀는 점점 지쳐갔고, 어느 날 배가 몹시 아파 병원에 가서 자신의 뱃속에 자리잡고 있던 아이가 유산되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답니다. 남편에게 유산 이야기를 하자 그녀의 남편은 천역덕스럽게 ‘아이가 생겨봤자 이롭지 않았을 것’이라고 이야기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몸과 마음이 지쳐가도 그녀는 새벽마다 일어나서 흰죽을 쑤어야했고, 남편의 속옷을 다려야했다고 합니다. 피곤에 지쳐 죽을 대령하는 것이 조금이라도 늦어질라치면 이 정도 밖에 뒷바라지를 못해주겠냐면서 뒤통수를 한 대 맞거나 벽쪽으로 온몸이 밀려야했다고 합니다. 그런 날은 어김없이 당신도 무척 피곤할텐데 나는 늘 내생각만 하고 있다며 미안해하는 남편의 말을 들었다고 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는 오전 수업을 마치고 커피 한잔을 마시면서 창밖을 바라보다가 연인 한쌍이 싸우는 광경을 보게 되었다고 합니다. 여자는 울고, 남자는 그런 여자에게 거리에서 주먹질을 하고 있었다나요. 그 광경 아래 쏟아지는 햇살, 어지러운 그 햇살 아래, 그 연인을 바라보면서 그녀는 자신이 그에게 맞고 살면서도 반항하지 않도록 길들여져 있다는 사실, 스스로가 그걸 용납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소스라치게 놀랐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녀는 우선 자기가 먼저 정신과 상담을 받는 일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자신이 희생을 감수하면서 남편의 온갖 요구를 들어주고, 일상적인 남편의 폭력에 반항하지 않고,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억압과 부당함을 사랑으로 변명하고 포장해가고 있는 바로 자신이 어쩌면 더 문제가 크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정신과 상담을 받기로 결심하고 다음날 집안에 급한 일이 생겼다고 핑계를 대고는 억지로 다른 선생님에게 수업을 맡기고 휴가를 냈다고 합니다. 그녀는 새벽에 남편의 죽을 쑤어주고 남편의 옷을 챙겨주고 남편이 나간 뒤에 그동안의 피로를 풀기 위해 잠을 자고 아주 오래간만에 친정에 전화를 걸었다고 합니다. 친정에 전화를 걸어 엄마의 목소리를 들으니 갑자기 눈물이 왈칵 치솟더랍니다. 다른 말은 차마 못한 채 엄마가 보고 싶다며 울먹이고 있는데 돌아보니 남편이 등 뒤에서 자신을 쏘아보고 있더랍니다. 그녀는 다음에 전화하겠다는 말을 남기고 얼른 전화를 끊었고, 남편은 장모에게 무엇을 고자질했냐고 하면서, ‘네가 그러면 그렇지, 돈 못벌어 오는 남편, 무능한 남편이라고 장모에게 말했겠지’하면서 처음에는 그녀의 얼굴을, 얼굴을 맞고 그녀가 쓰러지자 다음에는 발로 그녀의 배를 셀 수 없이 때렸다고 합니다. 그리고는 현관문을 열고, 남편을 무시하는 너같은 건 자기랑 살 자격이 없다면서 그녀를 내동댕이 쳤다고 합니다. - 바로 그 때 제가 그녀를 발견했던 거지요 - 우리 집에 있다가 자신의 집으로 돌아갔을 때 남편은 없었다고 합니다. 그 날 남편을 만나면 죽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녀는 무조건 나갈 생각으로 짐을 챙겼다고 합니다. 짐을 챙겨 아파트 단지 입구를 빠져나올 때 그녀는 차안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는 남편을 보았고, 남편은 그녀에게 자기가 또 실수했다고 제발 용서해달라고, 아침에 교수님에게 한소리 듣고 홧김에 집에 왔었는데 당신이 울고 있어서 처량한 생각이 들어서 그랬노라고 제발 용서해달라고 애원을 했다고 합니다. 그녀는 다음날 출근도 해야하고, 나름대로 자신이 살 방도를 찾기 위해서는 그 사람의 말을 믿어서가 아니라 믿어주는 척해야한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녀는 남편의 말을 믿는 척하고 집으로 돌아와서는 남편이 전혀 의심하지 못한 채 미국으로, 부모님 곁으로 날아갈 계획을 짜려고 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생활하다가 저를 우연히 만나게 되었는데, 고마운 마음이 들어서 차대접이나 한번하고 가야겠다 싶어서 커피를 마시자고 했다고 하더군요. 앞서 말했던 ‘foggy'라는 그 찻집에서 말이지요. 그리고 정말 그녀는 열심히 남편의 비위를 맞추고, 몰래 몰래 자신의 신변을 정리하기 위해 애를 썼다고 합니다. 그러던 일요일, 그녀가 챙겨주지 않으면 서랍한번 열어보지 않았던 그녀의 남편은 그녀가 속옷 서랍 깊숙이 숨겨놓았던 사직서를 찾아냈고, 이제부터 자기에게 돈벌어 오라고 할 생각이냐면서, 너는 끝내 남편이 교수되는 꼴은 못보는 년이냐고 하면서 그녀를 닥달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녀가 더 좋은 자리가 생길 것 같아 옮기려고 한다고 둘러댔지만 그는 자기를 속이려고 한다면서 닥치는 대로 물건을 집어던지더니 급기야 부엌에서 칼을 찾아들고 그녀를 붙들고 난도질을 했다고 합니다...


아.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저는 눈물을 났습니다. 저는 애써 그녀를 위로하려고 노력하지도 않았고, 명랑한 척 하지도 않았습니다. 제가 아무리 노력해도 그녀를 위로하기란 불가능해보였으니까요. 우리는 친정 근처 산사들을 찾아다니고, 맛난 전라도 음식집을 돌아다니면서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주말에 내려온 남편을 따라 서울로 다시 올라왔습니다. 모두들 무거운 마음이었지요. 고속도로 서울 진입로에 접어들면서 남편은 그녀에게 말했습니다. 집으로 바로 들어가지 않아도 되면 어디에라도 가 있으면서 정리를 좀 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아파트에서 몇번 남편을 마주쳤는데, 눈빛이 예사롭지가 않다고. 저도 그녀에게 가정폭력을 상담해주는 곳에 가서 상담도 같이 받아보고 쉼터 같은 곳이 있으면 그런 곳도 알아보자고 했습니다. 그녀는 걱정해 주어서 고맙다고 하면서 당분간 학원 근처 호텔에 머물면서 학원을 그만두고 받는 돈으로 얼른 미국에 갈 준비를 서두르겠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그녀를 학원 근처의 스위트라는 호텔에 내려다주었고, 체크인하는 것까지 확인한 후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다음날 아침 일찍 저는 호텔로 전화를 걸어 그녀가 호텔에 안전하게 있는 지를 확인한 후 딸아이를 학교로 보내고 남편을 출근시키고 집안 일을 분주히 마친 후 컴퓨터 앞에 앉아 가정 폭력으로부터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단체들을 검색했습니다. 인터넷의 바다에서 저는 가정폭력의 정의가 무엇인 지 알았습니다. 가정폭력은 가족구성원 중의 한 사람이 다른 가족에게 물리적인 힘을 사용하거나 정신적 학대를 통하여 심각한 신체적․정신적 혹은 재산상 손상과 고통을 주는 행위로 규정되고 있더군요. 지속적으로 가정폭력에 시달리면 신체적 손상은 물론이고,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등 정신질환에 시달리게 되며, 폭력에 대한 공포와 학습된 무력감에 젖어 가정폭력으로부터 탈출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믿게 된다고 하더군요. 저는 왜 우리 엄마는 허구헌날 때리는 아버지에게로부터 도망치지 못하는가 늘 의심스러웠습니다. 많은 여자들이 맞으면서 왜 사는가 싶었습니다. 좀 어렵게 이야기하자면 그녀들의 증세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라는 것이더군요. 나의 엄마도... 그리고 지금껏 그렇게 살다 뒤늦게 살 방도를 찾으려던 윤서영씨 그녀도 다른 어떤 문제가 있어서 또는 그녀들이 삶을 포기해서가 아니라 바로 그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에 시달려온 것이더군요. 저는 그날 처음으로 ‘가정폭력범죄의처벌등에관한특별법’이란 게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습니다. 몇군데 단체 목록을 수첩에 적고 그녀가 묵고 있는 호텔로 전화를 걸었을 때 그녀는 외출해 있는 상태였습니다. 아마 학원에 나갔을 터이지요. 저는 저에게 전화 좀 해달라는 메모를 호텔 측에 남겨놓고는 전화를 끊었습니다. 그리곤 그동안 잠시 미루고 있던 밑반찬 만들기에 들어갔지요. 오후 늦게 학원 갔던 딸아이가 돌아왔을 때 쯤 그녀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학원에는 퇴직의사를 밝혀놓았고, 친정집에는 전화를 걸어 이혼을 하고 미국으로 건너가고 싶다고 말했다고 했습니다. 처음에 그녀의 친정엄마는 갑작스러운 그녀의 이혼 이야기에 매우 놀라했고, 그녀가 짧게 자초지종을 설명하자 수화기를 대고 계속 우시면서 당장 한국으로 달려오겠노라고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녀는 자기가 여기서 차분히 해결하고 갈 테니 믿어달라고 말했다고 하더군요. 어쨌든, 그녀에게는 가정폭력과 관련된 상담을 받고, 그리고 이혼 준비를 하고, 이혼을 하고 그러면서 미국으로 건너갈 준비를 하고, 그리고 미국으로 건너가면 되는 일만 남아있었습니다. 그녀는 자기가 집에 오지 않으면 남편이 학원으로 찾아올 것 같아 두려워서 당장 학원을 그만두고 싶지만 학원 사정도 있고 해서 며칠만 학원 수업을 더 하기로 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제가 다음날 상담할 단체에 전화를 걸어 상담 시간을 늦은 시간으로 잡아놓고, 제가 그녀의 수업이 끝나는 시간에 맞추어 그녀의 학원으로 가서 그녀와 함께 수업이 끝나는 대로 상담을 받기로 했습니다. 저녁에 퇴근한 남편에게 진행 상황을 말해주었고, 남편은 퇴근길에 우연히 그녀의 남편과 마주쳤다고 하더군요. 자기 혼자만의 생각일 지 모르지만 그녀의 남편이 아무래도 우리 집을 탐탁치 않게 생각하는 것 같다고 하면서 좀 조심했으면 하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그렇게 한다고 했습니다.


다음날 오전에 여성단체에서 운영하는 상담소에 전화를 걸어 상담 시간 - 그쪽에서는 면접 상담이라고 하더군요 -을 예약하고 집안 청소를 마쳤습니다. 외출 준비를 마치고 난 후 아무래도 그녀와 상담을 받게 되면 저녁에 시장을 볼 수가 없을 거라는 생각에 장을 보고 난 후 외출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 단지 내 상가로 내려갔습니다. 장을 다 본 후 집으로 들어가기 위해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는 순간, 제 귀에 우리 딸아이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사과가 쏟아지는 지 시금치가 뜯겨졌는 지도 모르게 제가 집 앞으로 달려갔을 때 우리 딸은 706호 문을 쾅쾅 두드리면서 우는 목소리로 ‘아줌마, 아줌마’를 외치고 있었고 경비아저씨를 포함한 동네 사람들 몇몇은 딸 주변에서 또 몇몇은 위층에서 우리 층을 내다보고 있었습니다. 제가 무슨 일이냐고 묻자, 딸아이는 아줌마가 아저씨에게 끌려 들어갔다고 했습니다. 안에서는 그녀의 비명소리, 남자의 고함소리가 섞여서 쏟아지고 있었습니다. 제가 구경하고 있던 아줌마 한 사람에게 경찰에 가정폭력 신고를 해달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그 아줌마는 신고한 지 벌써 10분도 넘었다고 했습니다. 이게 무슨 일인가 싶다는 동네 사람들 몇몇의 한탄소리를 들으면서 저는 “서영씨,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오세요. 남편 분, 제발 서영씨를 괴롭히지 마세요‘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고, 경비 아저씨도 뭐라고 소리를 질러댔습니다. 바로 그 때 위층에서 ’악‘하고 내지르는 소리가 들렸고, 누군가 - 정확히 호수가 기억나지 않습니다만 - 뛰어나와 7층 거실 창문에서 사람이 떨어졌다고 했습니다. 먼저 경비아저씨가 엘리베이터 쪽으로 몸을 돌렸고, 제 딸 자영이와 제가 뛰어가려는 순간, 다시 한번 위층에서 소리를 내질렀습니다.

”남자예요, 남자, 남자가 떨어졌어요“ 그 소리를 듣고 제가 멍하게 서있자, 제 딸 자영이가 706호 문을 두드리며 말했습니다. ”아줌마, 문 열어요, 자영이예요, 아줌마“

그리고 옆에 서있던 한 아줌마는 핸드폰을 열고 다시 한번 경찰서에 전화를 걸었습니다. “신고한 지 한참 되었는데, 여기에 도대체 언제 오냐고요, 남자가 아파트에서 추락했어요”

자영이에게 계속 문을 두드리라고 시켜놓고, 저는 아래로 내려가 떨어진 남자를 확인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경비아저씨와 사람들에 둘러 쌓여 있는 그 사람 분명 706호, 그녀의 남편, 현경훈이었습니다. 그녀는 살아있을까, 혹시 남편이 그녀를 죽이고 자살한 것은 아닐까 속으로 별의별 생각을 다하면서 다시 우리 층으로 올라왔을 때 요란하게 사이렌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리고 잠시 후 경찰들이 경비아저씨를 시켜서 706호 문을 열었습니다. 문이 열렸을 때 경찰들은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게 했습니다. 악을 쓰면서 억지로 비집고 안으로 들어갔을 때 그녀는 베란다 난간 앞에 쪼그리고 앉아서 와들와들 떨고 있었습니다. 경찰 중 누군가가, 당신이 남편을 밀었냐고 물었습니다. 세상에, 사람들이 처음 신고를 했을 때는 그녀가 폭행을 당하고 있다는 것이었지, 그녀가 사람을 밀었다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도 경찰은 그녀에게 남편을 밀었냐고 물었습니다. ‘가정폭력범죄의처벌등에관한특별법’이 있다는 사실이 우습게 여겨졌습니다. 그녀가 계속 멍하니 앉아 있자, 경찰은 남편이 당신에 의해 떨어졌는 지 실수로 추락했는 지, 자살인 지가 중요하다면서 같이 경찰서로 가자고 했습니다. 제가 옆에서 이 여자는 죄가 없다, 남편에게 맞고 살았다, 신고도 가정폭력이다. 이렇게 데려가진 못한다고 하면서 격렬하게 항의하자, 어느 경찰이 그러더군요, 당신이 지금 소란을 피우고 방해하면 공무집행방해죄가 성립될 수 있다고...

그녀는 경찰서로 끌려갔고, 그녀의 집 앞에는 출입금지 팻말이 나붙었고, 그녀의 남편이 떨어진 자리에도 현장을 보존해야한다며 경찰들이 소위 현장 통제를 하기 시작했고, 시체는 부검을 위해 국립과학수사연구소로 옮겨진다고 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들은 혀를 끌끌 차며 자기 집으로 돌아가기 시작했고, 몇몇 아이들은 남아서 소설을 쓰는 것처럼 상황을 유추하면서 저희들끼리 결론을 내리고 있었고, 저와 딸아이는 흐르는 눈물을 닦으면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남편이 귀가하고 난 후 우리 가족은 처참한 심정으로 뜨는 둥 마는 둥 저녁식사를 하던 중 거실에서 제 혼자 돌아가고 있던 텔레비젼 뉴스를 통해 그 동안 가정 폭력에 시달려온 부인이 남편의 폭행이 또 다시 시작되자 남편을 아파트 7층 베란다 아래로 추락시켜 사망케 했고, 그녀가 이를 자백했다는 보도를 보게 되었습니다. 딸이 말했습니다.

“엄마, 오늘 이상하게 배가 아프잖아. 학원 끝날 때까지 있지 못하겠더라고. 그래서 집으로 왔지. 우리 동 입구에서 옆집 아저씨가 아줌마를 차에서 끌어내리고, 그리곤 곧바로 죽일 것 같이 끌고 엘리베이터로 가잖아. 쏜살같이 반대 방향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가 아줌마 집앞으로 갔었는데, 그 때는 이미 아줌마 비명 소리가 문밖으로 새고 있었어...”

딸은 말을 다 마치지도 못하고 눈물을 펑펑 쏟아냈습니다. 남편은 된장찌개를 더 이상 뜨지 못하고 밥숟가락을 내려놓고 한숨을 쉬고 있었고, 저도 할 말을 잊고 멍하게 있을 때 참고인으로 출석해달라는 한통의 전화를 경찰서로부터 받았습니다.


다음날 저는 담당 형사를 통해 남편이 그녀의 학원으로 찾아와 그녀가 미국으로 가기 위해 사직의사를 밝힌 사실을 알아내고는 수업 중인 그녀를 낚아채 집으로 데리고온 후 폭행이 가해졌고, 남편이 죽여버린다고 베란다 문을 열고 그녀를 밀치려할 때 사력을 다해 그녀가 베란다로 남편을 밀었는데 남편이 떨어졌다는 그녀의 보다 정확한 진술 내용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고의이던 그렇지 않건 간에 그녀가 남편을 죽인 일은 참 애석한 일입니다. 그러나 결혼 후 줄곧 맞고 살아야했던 그녀는 그때마다 그녀의 남편으로부터 죽임을 당해온 것은 아닐까요? 흰죽을 제 때 쑤어주지 못했다고, 죽어라 일해도 자신의 뒷바라지를 제대로 하지 못한다고 도저히 납득하지 못하는 이유로 남편이 타박하면서 손을 한번 올릴 때마다 한번씩 죽었던 것은 아닐까요? 저는 변호사가 아니니까 그녀의 행위가 정당방위이고 어떻고 이렇게 말할 자격도 능력도 없습니다. 다만 저는 세상에서 어쩌면 유일하게 그녀의 고통을 생생하게 함께 느끼고 아파했던 사람일 뿐입니다. 너무도 분명하게 그날 그녀는 살인 대신 상담을 받기로 되어 있었고, 사별대신 이혼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준비 과정은 제가, 그리고 우리 가족이 돕기로 되어 있었습니다. 모쪼록 그녀를 선처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아마도 그녀에 대한 선처는 지금껏 맞고 살아온 거의 한평생 맞고 살면서도 아무 소리하지 못한 제 친정엄마와 제가 알지 못하지만 가정 폭행에 시달리고 있는 수많은 여자들을 위한 길이 되지 않을까요?


지금까지 제가 진술한 내용은 모두 사실입니다. 추호의 거짓도 없습니다. 제발 제 딸아이와 남편도 참고인으로 불러 진술을 받아주시기 바랍니다. 참, 그녀의 시댁 식구들도 참고인으로 불러 주시기 바랍니다. 그녀가 팔을 꿰맨 수술을 받았던 병원 기록도 살펴 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상담을 가려고 했던 여성의집 119의 면접 상담 예약 기록도 확인해 주시고, 수업 도중 질질 끌려가는 그녀를 보았던 수많은 학원생들에게도 당시 상황을 물어봐 주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하신다면 제 진술 내용이 추후도 거짓이 없다는 점을 명백하게 확인하실 수 있을 겁니다.


00년 00월 00일


위 진술인 박남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