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러브레이트
# 오버마인드1)
어느 금요일 저녁 10시, 부산하게 마감을 준비하고 있는데, 주차부에서 형이 나를 찾는다는 연락이 왔다. 마감조 웨이츄레스들에게 대충 몇가지를 지시하고 주차장으로 내려가보니 형은 차 앞에서 담배를 태우면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일년에 딱 다섯번, 설과 추석, 부모님의 여러 제삿날 외에는 만나지 않는 사이였기에 형의 기다림은 나에게 의외일 수밖에 없었다. 내 의아한 표정을 읽었는 지 형이 대뜸 말했다. “술한잔 하려고 왔다. 정리하고 빨리 내려와라. 차에서 기다리고 있으마” 어조가 부드럽지도, 친절하지도 않았다.
형은 연희동쪽으로 차를 몰았고, 우리는 빨강색 네온으로 큰 빛을 반짝거리는 “JAZZ”라는 바로 들어갔다. 지배인이 은은한 눈인사로 형에게 반가움을 대신하며 좌석을 안내하는 걸 보니 그 집은 형의 단골인 듯 했다. 짙은 갈색의 실내와 낮지만 음산하지 않는 조명, 그 아래 조용히 움직이며 칵테일을 마시고,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의 모습이 고귀하지만 내겐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아 형과의 자리가 더욱 어색해지는 것 같았다. 형 앞에 잭콕이 내 앞에 블랙 러시안이 놓여졌을 때 형이 깊숙하게 빨아들인 담배연기를 불빛 아래로 내어 뿜었다. 형의 말을 따라 담배 연기가 불빛을 타고 실내로 흘러 들어갔다.
“이제 나도 나이가 들려나보다. 너무 내 생각만 하고 산 것 같아. 이제 너를 좀 돌보아 주고 싶구나”
그랬다. 형은 트럭을 끌고 다니며 과일과 야채 행상을 하던 부모님이 돌아가신 이후 유일한 피붙이인 나조차 모른 채 하며 자기 돌보기에만 바빴다. 형이 중학교 2학년이고, 내가 초등학교 5학년일 때 부모님은 갑작스런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나는 아직도 그날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체육 수업을 받고 있었는데 담임선생님이 숨을 헉헉거리며 운동장을 가로질러 왔다. 선생님의 손에는 내 책가방이 들려 있었다. 수업은 잠시 중단되었고, 담임선생님은 체육선생님께 뭔가를 귀속말로 전했다. 곧이어 체육선생님은 내 이름을 호명했고, 나는 담임선생님을 따라 나서야 했다. 선생님은 “절대로 놀라지 말거라” 한마디만 하시고 내 손을 꼭 잡으시더니 교문을 나서 택시를 잡아탔다. 택시 안에서도 선생님은 내 손만 잡고 있었다. 우리가 내린 곳은 K 대학 병원 응급실이었다. 응급실 문 앞에 도착했을 때 잔뜩 겁을 집어먹은 표정을 하고 있는 내게 선생님은 말했다. “동준아. 동준이 엄마, 아빠가 교통사고를 당하셨다고 하는데, 썩 좋은 상황은 아니라고 하는구나. 우리 동준이, 선생님 손 잡고 들어가보자, 선생님이 옆에 있어 줄테니 놀라지 말고” 응급실로 들어갔을 때 나는 흰색 시트로 덮여 있는 두 개의 침대 옆에서 오열하고 있는 고모와 형을 보았다. 내가 손가락으로 형을 가리키자 선생님은 나를 그쪽으로 이끌었다. 흰색 시트가 덮인 침대 머리맡에 섰을 때 선생님은 내 손을 더욱 세게 잡아주셨지만 나는 그 손을 뿌리치고, 응급실 문을 박차고 뛰었다. 그 안에는 엄마가 누워있었을까, 아빠가 누워있었을까 심장이 벌렁거렸다. 나는 뛰고 또 뛰었다. 그리고 복도 어딘가 쯤에서 쓰러졌다.
우리는 그 후 구로 공단에 있는 컴퓨터 조립 공장에 다니는 죽은 오빠가 남겨둔 두 형제를 건사하고 살기엔 너무 어릴 것 같은 스물셋 고모와 같이 살게 되었다. 밤늦게까지 야근하는 날이 많이 있었지만 고모의 월급은 팔십만원을 넘지 못했다. 나는 초등학생이었고, 고모와 함께 살기 위해 전학을 했지만 형은 중학생이었기 때문에 고모는 형에게는 다니던 학교를 계속 다니라고 했고, 늘 형에게 더욱 많이 신경을 쓰려고 노력했다. 야근을 하고 와서도 형의 도시락을 챙기기 위해 새벽같이 일어났고, 반찬도 김치와 나물이 아니라 소세지, 햄, 비록 인스턴트 식품이긴 했지만 무슨 무슨 구이들을 싸주기 위해 노력했고, 용돈도 될 수 있으면 많이 주려고 했다. 어느 날 방과 후 나는 호떡이라도 사다먹을 심사로 굴러다니는 동전이 없나 하고 이곳 저곳을 뒤지다가 서랍 속에서 한통의 편지를 발견했다. 고모 친구가 고모에게 보낸 편지였는데, 그 편지 내용 중에는 네가 스무살부터 부어온 적금을 조카들과 함께 살기 위해서 깼다니 안타깝다. 하지만 언젠가는 복받을 테니 너무 서글퍼하지는 말아라는 문구가 있었다. 나는 며칠을 고심한 끝에 짝꿍이 하고 있다는 신문 배달을 같이 하기로 했다. 신문배달을 하기로 결심하던 그날 나는 동네 어귀에서 형을 기다리다가 형에게 고모가 적금을 깬 이야기이며, 그래서 내가 신문배달을 하려고 한다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나는 형이 그럼 나도 같이 해야겠다고 할 줄 알았다. 그런데 형은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더니 이내 “너는 신문배달을 하렴. 나는 공부해서 장학금을 받는 편이 더 나을 것 같다”하고는 방으로 휙 들어가 버렸다.
그 다음날부터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나는 구로동에서 신문배달을 계속 했다. 고등학교에 입학 할 때 나도 공부에 매진하며 대학이라는 데를 가보고 싶어 신문배달을 그만둘까 하기도 했지만 친구들은 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오손도손 사는 것 같은데 우리를 돌본다는 이유로 남자친구가 있는 것 같은데도 결혼을 하지 않고 있는 고모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 신문배달을 차마 그만둘 수가 없었다. 형은 내게 던졌던 말처럼 중학교, 고등학교 내내 장학금을 받았고, 최고라는 명문대 영문과를 수석으로 입학했다. 그러는 내내 형은 고모에게 어떤 감사의 표시도 하지 않았고, 내가 어떻게 자라고 있는 지도 신경 쓰지 않았다. 명문대 입학과 동시에 형은 과외를 하면서 친구와 함께 살겠다고 우리에게 통보했고, 곧바로 집을 나갔다. 그 후 형은 명절과 부모님 기일에만 고모집을 찾았고, 평소에 안부를 묻는 전화 따위도 하지 않았다. 형은 대학 1학년을 마치고 입대했는데, 그 때에도 입대한다는 연락을 한번만 해왔을 뿐이다. 고모와 내가 수소문하여 면회를 좀 가려고 했지만 형은 면회를 오지 말아달라고 했다. 분명히 몇번의 휴가가 있었을 터이지만 형은 휴가 때에도 고모는 물론 나도 찾지 않았다. 우리가 형을 다시 만나게 된 건 제대 후 맞는 첫 추석이었다. 형은 대학교 졸업 후 대학원에 입학했고, 대학원 졸업 후에는 강남에 있는 어느 입시학원의 젊고 유능한 최고의 강사가 되었다. 그 후 형은 자신이 몸담고 있는 학원 사장의 딸과 결혼했고, 학원의 부사장이 되었다. 나는 고등학교 졸업 후 전문대학 관광경영학과에 입학했고, 졸업을 했다. 내가 전문대를 졸업하던 해 고모는 결혼을 했고, 고모의 결혼을 보고 나는 입대를 했다. 휴학을 하고 입대를 할 수도 있었지만 내가 만약 그랬다면 고모는 내가 졸업을 할 때까지 결혼을 미룰 심사였다. 졸업 후 군대가는 것이 여러모로 좋지 않았지만 내가 나름대로 고모를 위할 수 있는 방법은 그것 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예상대로 제대를 했지만 마땅한 취업자리가 나지 않았다. 관광급수의 호텔은 취업이 용이했지만 나는 특급호텔로 가고 싶었다. 다니고 싶은 여행사는 4년제 졸업생들과 해외파로 차고 넘쳐났다. 어찌 어찌 해서 나는 특급호텔 내에 있는 숯불구이 식당에서 일하게 되었다. 이곳은 호텔이 직영하는 곳이긴 하지만 지배인만 정식 직원이었고, 나머지 직원들은 지배인의 한마디에 짤리고 채용되는 비정규직이었다. 내가 내 인생 행로를 결정하고, 이행하는 과정에 형은 한번도 개입한 적이 없었다. 나도 형 인생 행로에 다가가 본 적이 없다. 형은 비교적 어린 나이에 다만 피붙이라는 이유로 자신을 돌보아준 고모에게 감사의 말을 건넨 적도 없을뿐더러 고모의 결혼식 때에도 얼굴만 잠시 비췄을 뿐이다. 나는 지금도 때마다 고모를 찾고 있지만 형은 자기를 길러준 고모를 없는 사람 취급했다. 형이 지금 하고 있는 게 있다면 고모가 결혼한 이후 부모님 제사를 모셨고, 결혼을 한 이후 명절 당일 나를 부른다는 것 뿐이다. 그런 형이 이제 나를 돌보아 주고 싶다니...
형이 말했다. “너도 이제 나이가 찼으니 결혼을 해야되지 않겠니? 사귀는 여자가 있다면, 아니 있어도 형이 주선해주는 사람과 결혼을 했으면 좋겠구나”
나에게 묻지도 않고, 내가 이야기할 틈도 주지 않고, 형은 연이어 말했다.
“네 결혼에 필요한 돈은 형이 무조건 다 대주마. 결혼 후에 자리잡는 것까지도 말이다. 물론 형수와 이야기는 다 되었다”
“맞선볼 날이 정해지면 내가 일주일 전 연락을 해주마. 그 때는 휴가를 내도록 해라”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블랙러시안 두잔을 더 마셨다. 근 이십년만에 처음으로 결코 다정하다 할 수 없는 어조를 통해 나를 돌보겠다는 형의 말에 은근한 취기가 보태어지는 것 같았다. 내가 말대신 술잔을 기울이고 있는 사이 형은 학원에서 있었던 몇가지 일들에 대해 이야기했던 것 같다.
계피를 통째로 씹은 것 같은 알싸하고 쌉싸름한 기분으로 집으로 돌아왔을 때 인혜는 여성잡지를 뒤적이며 내 침대에 누워 있었다.
“왜 이렇게 늦었어? 집으로 갈까 하다가 형이 왜 왔나 궁금해서 기다렸지, 형이 뭐래?”
“결혼하래”
“여자 친구 있는 거 형이 알고 있었어?”
“너 말고 다른 사람이랑 결혼하래”
“뭐야?”
“농담이야. 그냥 술마셨어”
내가 세수를 하는 사이에도 인혜는 혹시나 했는 지 욕실 문을 열고는 정말 형이 여자 소개시켜줄 테니 결혼하라고 했냐면서 자기 이야기를 했는 지 안했는 지 내 대답을 듣고 싶어했다. 스물다섯의 인혜는 나와 같은 홀에서 일한다. 예의바르고 싹싹한 인혜는 실업고를 나온 후에 주유소에서 2년간 경리로 일해본 후 우리 식당에 들어왔다고 한다. ‘서캡틴님’하면서 나를 줄곧 따르더니 재작년 크리스마스 회식 때 나를 좋아한다고 말했다. 평소에 나도 그녀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었던 터라 우리는 쉽게 연애라는 걸 할 수 있었다. 그녀는 일주일에 한두번 나의 자취방에 들러 청소며 빨래며, 밑반찬을 해주는 우렁각시 행동은 물론이거니와 충만하도록 내게 사랑을 말해주고 보여준다. 그런 그녀가 있는데 맞선이라... 형이 그냥 그랬을테지 하면서 나는 그날도 달콤하게 인혜 품에서 잠이 들었다.
일주일 뒤 형이 나에게 전화를 해왔다. 이번 주에 비번이 언제냐고 묻더니 비번날 점심시간에 학원으로 찾아오라고 했다. 영화를 함께 보기 위해 비번을 맞추었던 인혜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전하고 형의 학원으로 찾아갔을 때 사무실에는 형수도 있었다. 형은 나에게 약속이 있어서 점심은 함께 할 수는 없을 것 같고, 나중에 다시 연락할 테니 형수를 따라 갔다가 들어가라고 했다. 형수는 차에 나를 태우더니 압구정동에 있는 한 양복점으로 들어갔다. 형수는 환대하는 여직원에게 나를 도련님이라 소개한 뒤 신주임이라는 사람을 불러달라고 했다. 곧 불려나온 신주임은 내 치수를 쟀고, 나에게 가봉은 일주일 뒤에 할테고 그보다 먼저 될 수도 있으니 연락이 있으면 꼭 들르셔야 한다며 명함을 건넸다. 치수를 재고 나올 때 형수가 말했다.
“저는 약속이 있는데, 도련님은 어떻게?”
“저도 약속이 있었습니다. 원래는. 그런데 어떻게 된 일이지요?”
“형님에게 말씀 못들으셨어요? 선볼 때 입고 나가실 드레스셔츠와 양복 맞추는 거예요. 양복에 어울릴만한 넥타이는 양복에 그냥 끼워준다고 하니, 구두만 좀 도련님이 깨끗한 걸로 준비해주세요. 그럼”
형수의 차가 출발한 뒤 지하철역까지 걸어가면서 형에게 전화를 했지만 통화가 되지 않았다. 어쩐 지 씁쓸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나는 인혜에게 전화를 걸어 강남에서 한번 놀아보자고 했다. 우리는 압구정동 로데오 거리를 쏘아다니면서 “누가 바람부는 날에 여기로 와야한다고 했었지?”라고 물었다.
그 며칠 뒤 나는 형수에게 내일 꼭 가봉하러 가셔야 한다는 연락을 받았다. 가봉은 다시 형수와 함께 갔다. 신주임이라는 사람이 나에게 “형보다 체격이 좋으시네요”라는 말을 건넸고, 형수는 “그럼요, 우리 도련님이 더 젊으신대요” 하면서 신주임을 향해 살짝 눈을 흘기며 웃었다. 가봉을 마쳤을 때 형이 양복점에 나타났다. 형은 오늘은 점심을 한번 해야한다고 했고, 우리는 신사동에 있는 일식집으로 갔다. 형수가 잠깐 실례하겠다고 자리에서 일어났을 때 나는 형에게 3년간 사귄 여자친구가 있다고 말했다. 형은 지금껏 여자가 없었다면 말이 되겠냐, 그렇지만 다 너를 위해서니 내 뜻을 따르렴하고 내 말을 간단히 잘랐다. 형수가 웃으면서 식탁에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형수는 형에게 내 체격이 좋다며 신주임이 흘린 말을 진심으로 들은 것처럼 전하며 나를 세워주는 듯 말했다. 형수는 내게 구두는 준비되었냐고 물었고, 준비가 되지 않으면 다음 주에 집에 들러 형 신발 중에 하나를 택하라고 했다. 그러더니 또 금새 환히 웃으면서 “쓰는 김에 당신이 도련님 신발까지 사주시는 게 어때요”라고 말하기도 했다.
# 셀러브레이트2)
그리고 다시 일주일 뒤에 형은 나를 집으로 불렀다. 이번에는 가족 저녁식사라고 했다. 형수가 도우미 아줌마를 불러 함께 했다며 잔치 음식을 차려냈다. 형은 오는 13일 오전 11시가 약속시간이고, 상대는 야당의 대표적 전국구 국회의원의 차녀라고 했다. 내가 가당치 않다고 하자, 형은 나는 조금도 꿀릴 게 없고, 너 또한 꿀릴 게 없도록 만들터니 걱정말라고 하면서 다 너를 위해 이 결혼을 성사시켜야한다고 말했다. 나의 거절의 뜻을 형수는 예의를 위한 한번쯤의 거부로 대하면서 안된다고 하실 필요가 없다고 했다. 어느 호텔 비정규직 노동자와 전국구 국회의원 차녀와의 맞선이라... 아무리 형이 권한다고 해도 내가 싫으면 나가지 않으면 그만일 자리이다. 나가지 않으리라 하면서도 내가 나가지 않을 경우 앞으로의 형과 나의 관계가, 그리고 우습게도 이미 내가 맞춰버린 기백만원짜리 양복은 어찌되는 것인 지가 은근히 걱정되었다. 내가 그 생각을 하면서 지내는 사이, 식당으로 형이 맞추어준 기백만원짜리 양복에 구두까지 더해진 택배가 도착했다. 집으로 돌아와 인혜 앞에서 기백만원짜리 양복을 입고 구두를 신어보았다. 인혜는 너무 멋지다고 성화였는데 나는 그날 인혜를 안을 수 없었다.
나는 그냥 쉽게 생각하기로 했다. 맞선 자리에는 나가되 퇴짜를 맞는 것. 맞선보기 하루 전날 나는 형수와 함께 S호텔 커피숍에서 신여사라는 사람을 만났고, 설명을 들었다. 신여사가 내게 일렀다.
“약속시간 5분전에 도착하셔서 신문을 가져다 달라고 말하신 뒤 신문을 보고 계세요. 지적인 이미지는 사람을 끌어당기죠. 좌석은 창가 쪽으로 이미 예약이 끝난 상태고요, 상대방에서는 호텔리어로 알고 계십니다. 사실 고용형태만 달랐지 호텔리어이시긴 하시지만, 비정규직인 건 모르십니다. 제 말뜻 아시겠지요? 상대방은 키에 대한 콤플렉스가 있습니다. 대화 도중 외모에 관한 이야기는 피하시는 게 이롭습니다. 그렇다고 키가 그렇게 작거나 외모가 뒤지는 편은 아니지만요. 이름은 강민선입니다. 저는 강민선씨와 함께 정각에 나가도록 하겠습니다” 그날 형수는 자신의 자동차 열쇠를 나에게 내밀었다.
나는 거절당해야했으므로 신여사가 일러준 대로 하지 않아야 했다. 그러나 나는 약속시간 5분전에 S호텔 커피숍에 도착했고, 신문을 부탁해서 신문을 읽는 척했다. 정확히 약속시간이 되자 신여사가 긴 생머리에 베이지색 정장 차림의 여자와 나타났다. 나는 일어서서 그녀를 맞았다. 신여사는 주문을 받으러 온 웨이터에게 잠시 후 다시 와달라고 한 후 저녁 9시경 전화 연락 드리겠다는 말을 남기고 일어섰다. 잠시 후 그녀와 내 앞에는 비엔나커피와 오렌지주스가 놓여졌다. 나도 그녀도 한동안 말이 없었다. 5분간의 침묵이 흘렀을까? 그녀가 먼저 말을 꺼냈다.
“호텔리어들은 서로 많이들 안다던데 이 호텔에는 아는 사람이 없으신가요?”
“글쎄요, 여기는 시내 중심가이고, 제가 있는 호텔은 시내와는 좀 떨어져 있어서... 혹시 동문을 찾아보면 아는 사람이 있겠지요”
“그래요... 저는 하는 일이 없어요. 집에서 밥을 축내지요. 그런데 맞선이 처음이신가봐요? 저는 아닌데...”
“예...”
“떨지 마세요. 지금까지 한 열번 봤나? 퇴짜를 맞기도 하고, 퇴짜를 놔보기도 했으니까 이번에도 뭐 그렇겠지요. 말씀이 없으신걸 보니까 제가 마음에 안드시거나 신여사가 해준 말 때문에 대화 주제를 못찾아서 그런 거 아니예요? 외모 이야기는 이로울 게 없다 또...”
그녀는 조금 자기 비하가 있기는 했지만 대화를 이끌어나가는 재주가 있는 것 같았다. 나는 그저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맞장구를 치는 수준으로 응수했다. 내가 뭐라고 말할 것인가? 나는 퇴짜를 맞아야하고, 호텔에서 일한다는 사실 외에 어떤 사람으로 그녀에게 알려졌는 지 제대로 알고 있는 것도 없는데... 우리는 같은 호텔 한식당으로 옮겨 정식으로 점심을 먹고, 그녀의 요청에 따라 남산 일대를 드라이브한 뒤 오후 4시경 그녀를 성북동에 내려주고는 헤어졌다. 나는 서초동 형의 집에 들러 형수에게 열쇠를 전달해준 뒤 저녁을 드시고 가라는 권유를 만류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다음날 오전 11시 30분, 첫손님에게 숯불갈비를 셋팅해 주면서 어쩐지 나는 냉장육 같은 생각이 들었다. 형은 야들야들 육즙이 살아있는 생고기이지만 나는 아무리 싱싱한 척 해도 어딘가 모르게 모자란 맛이 배어 나오는 냉장육 말이다. 2시에 출근한 인혜는 어제 뭐하느라고 전화도 안받고 연락도 없었느냐면서 나와 얼굴이 마주칠 때마다 섭섭함과 장난기가 절묘하게 섞인 표정으로 질문을 쏟아 부었다. 그날 마감을 마친 후 나는 인혜와 가까운 동료들과 집 근처 포장마차에서 곰장어에 소주 세병을 나누어 마셨다. 평소 같으면 안주에 딸려 나오는 메추리알에 소금을 찍어 입에 넣어줄 인혜는 어제 나의 잠적에 화가 났는 지 뾰로통한 표정으로 소주잔만 만지작만지작 거리고 있었다. 포장마차에서 일어서 동료들과 헤어진 후 나는 인혜에게 집으로 함께 가자고 말했다. 갑자기 형의 집에 불려갔었노라고, 형이 사는 모습과 내가 사는 모습이 너무 달라서 다녀온 후 기분이 좋지 않아 연락하지 않았노라고 말하자 인혜는 되려 내 등을 두드리며 “자기가 뭐 어때서”라고 말했다. 그날 새벽 스산한 기운에 창문을 닫기 위해 잠에서 깬 나는 형이 내 휴대폰에 연락 바란다는 문자 메시지를 보내놓은 것을 알게 되었다.
점심시간에 나는 형에게 전화를 걸었다. 형이 말했다.
“상대방이 네가 마음에 든다는구나. 순수해보인다나... 다시 만나고 싶다고 하는데 내 휴대폰 번호를 가르쳐줄까 한다”
“형, 나는 여자 친구가 있어요”
“안다. 나도 내힘으로만 이렇게 인생을 자리잡았겠니? 여자를 잘만났다고 치면 나도 그런 셈이야. 너도 그렇게 생각해”
형은 전화를 끊었다. 다음날 나는 거절의 뜻을 형에게 제대로 전달하기 위해 동료와 휴가를 바꿔달라고 조른 후 형의 사무실을 찾았다. 내가 형을 찾았을 때 형의 비서는 형의 스케쥴을 쭉 일러주면서 오후 세시가 되어야 만나보실 수 있을 꺼라고 전했다. 나는 근처 극장에서 영화 한편을 본 후 세시에 맞추어 형의 사무실로 들어갔다. 형의 사무실에는 강민선이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나를 보고 강민선이 말했다.
“전화로 만나 뵙고 싶다고 하는 것보다 얼굴보고 말하는 게 쉬울 것 같아서요”
“차 안가져 왔다고 했지? 내차를 빌려줄까? 가만있자... 내가 오늘 저녁 모임이 있어서 안될 것 같은데” 형이 말했다.
“제가 차를 가지고 왔어요. 우리 나가요. 근교로 나가요, 바쁘시지 않으면 서선생님께서도 함께 가시지요”
형과 나, 강민선 이렇게 셋은 장흥에 있는 라이브 카페로 들어갔다. 내가 이미 지나갔다고 생각했던 가수들의 열창 무대가 끝났을 때 그녀가 무대로 나가 피아노 앞에 앉아 연주를 시작했다. 아드렌느를 위한 발라드였던가? 그녀가 연주를 마치자 연기 저기서 환호와 박수가 터져나왔다.
“제가 유일하게 잘하는 거요, 피아노 치는 거지요. 한 때는 잘나가는 피아니스트가 꿈이기도 했어요. 지금은 아니지만”
강민선씨와 형은 정계 돌아가는 이야기, 주식투자와 같은 이야기를 나누었고, 나는 그저 묵묵히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우리는 그곳에서 식사를 했고, 형은 형의 말처럼 차를 두고 온 나를 데려다 주고 집으로 가는 것으로 되어 버렸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나는 형에게 지금 만나는 그녀를 사랑하고 있고, 그녀와 결혼하고 싶다고 말했다. 강민선씨는 좋은 여자 같지만 나와는 어울리지 않는 여자고, 나는 그녀를 만나면 할 이야기가 없다고 말했다. 형은 네가 지금은 그렇게 생각할 테지만 시간을 가지고 두고 보자고 했다. 그러면서 한마디 더 덧붙였다. “남들은 다 못해서 안달인 결혼이라는 점만 명심해라”
10시경 집에 도착하자 인혜가 문 앞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형의 차에서 내려서는 걸 보자 그녀는 내게로 달려오더니 “여자 차에서 내리지 않으니 일단 안심”이라고 했다. “저 사람이 형이야” 내가 짧게 말했다. 형은 곧바로 차를 몰고 떠났다.
“형이 무슨 일 있어? 왜 이렇게 요새 동준씨를 찾아? 배고프다. 나 오늘 손목을 삐어서 8시에 조퇴했어. 지금껏 기다렸어. 손목 무지 아퍼”
“이 바보야. 그럼 병원 같은 델 가야지. 여기서 기다리고 있으면 어떻게 해”
“병원 어디가 그 시간에 문을 열어? 응급실이면 모를까? 자기가 주물러 주면 나아, 나 배고파, 라면 끓여먹자”
아픈 손목으로 라면을 먹겠다는 그녀의 밝은 모습이 왠지 서럽게 예뻐 보였다. 형이 사랑을 해보았을까? 보글보글 끓는 라면을 그릇에 옮기면서 나는 생각했다.
# 오히려 당신들이 나의 오버로드3)
어머니 아버지 기일에 나는 다시 형의 집을 찾았다. 그 사이 강민선은 내게 세 번 전화를 했고, 나는 계속 올데이를 하느라고 만날 시간이 없다고 둘러댔다. 그녀는 “퇴짜 놓는 건 아닌 것 같으니까 다행”이라고 번번이 말했다. 내가 형의 집에 도착했을 때 형수가 깜박했는 지 현관문은 잠겨있지 않았다. 하긴. 특별히 입주자를 선정해 호텔식 서비스를 펼치고 입구부터 경비들이 철통같이 지키고 있는 이 빌라는 자기 집 현관문을 열어둔다고 무슨 큰 일이 생길 것 같지도 않았다. 신발을 벗고 거실이 있는 오른쪽을 향해 몸을 트는 순간, 형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일단 결혼하자는 말이 본격적으로 오가면 우선 원룸으로 옮겨줄 생각이예요. 그리고 결혼을 하겠다고 하면 우리집 같은 평수는 아니더라도 강남 쪽에 40평대 빌라는 사줄 생각이구요”
“그럼요”
“물론이예요. 혼담이 오가면 호텔은 그만두게 하고, 우리 학원에 실장 정도 자리를 내어줄 생각이구요. 아님 지점에 대표이사 명함 정도는 새겨줄 생각도 있긴 하구요”
“신여사. 일단 저쪽에서 호감이 있다고 하니까 당장 우리 도련님 반응이 없더라도 강민선씨쪽 좀 잘 구슬려 주세요. 우리 아버님도 그렇고, 이이도, 정계 진출을 원하고 있잖아요. 일단 제 아버님 생각은 그이가 나이도 젊고 유명세도 있으니까 먼저 정계 진출을 하는 건데요. 정계진출 하는데 변변치 않은 동생이 있는 건 부담이예요. 게다가 강민선씨 집안은 이미 정계에 진출한 집안이니까 우리에겐 필요한 줄이예요. 내가 신여사니까 터놓고 말하는 거 알죠?”
“그럼요, 그럼요, 예. 그럼요, 그래요”
달칵... 나는 현기증이 일것같은 기분으로 그러나 형수에게 들키지 않아야겠다는 마음으로 조용하고도 천천히 현관문을 나섰다. 나는 몸이 너무 좋지 않아 제사에 참석할 수 없겠다고 형에게 전화를 걸어 말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권투선수들이라면 이런 느낌을 알까? 아득하면서도 멍하고, 멍하면서도 아린 듯한, 강펀치를 수대 맞고 또 맞아 감각이 없으면서도 통증이 밀려오는 듯한 기분... 이틀 동안 나는 신열에 시달렸고, 결근을 했다. 걱정이 되어 전화를 연신 해대며 집으로 오고 싶어하는 인혜에게도 아파서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으니 집으로 오는 대신 살았나 죽었나 전화 걸어서 확인이나 해달라고 말했다. 그런 내 말이 섭섭했는 지 인혜는 전화기 너머로 눈물을 흘려댔다. 그렇게 신열에 들뜨고 지내는데 강민선에게 전화가 왔다.
“누구 돌봐줄 사람은 있어요? 피붙이가 형하고, 동준씨하고 둘이라는 건 이미 알고 있고, 돌봐줄 형수 같지도 않은데... 나 필요 없어요?”
나는 무슨 연유에서인 지 나도 모르게 그녀에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리곤 그녀에게 세시까지 우리집 근처인 신촌의 T극장 앞까지 나와달라고 했다. 나는 그녀를 만났고, 장흥으로 가서 아드렌느를 위한 발라드 연주를 해달라고 했다. 우리는 장흥으로 갔고, 그녀는 아드렌느를 위한 발라드를 연주했다. 나는 그녀에게 밤세워 나를 돌보아 달라고 했다. 우리는 근처 모텔에 들어갔다. 나는 신열에 들뜨면서도 밤새 그녀를 안았다.
다음날 아침 나는 그녀에게 형의 집으로 데려다 달라고 말했다. 나는 형의 집으로 가서 그녀와 함께 형수로부터 차 대접을 받았고, 형수의 흡족하고 환한 얼굴을 이죽이는 웃음으로 마주보아 주었다. 오후에는 식당으로 가서 ‘일산상의 이유’라고 적어 사직서를 냈다. 내가 사직서를 내고 나올 때 인혜가 나를 쫓아 나오면서 무슨 일이냐고 다급해했다. 나는 그냥 그녀를 물끄러미 쳐다만 보았다. 저녁 때 인혜가 우리 집으로 왔다.
“오빠, 왜 이러는건데? 나한테 한마디 상의도 없이 왜 이러는거야?”
“무슨 일 있어? 내가 싫어졌어? 무슨 일이야”
나는 인혜에게 해줄 말이 없었다. 인혜야 너를 사랑하는데... 심장에서 뭔가 용솟음친다. 이걸 어쩌면 좋으니... 인혜는 한참을 울다가 나에게서 어떤 말도 듣지 못하고 일어섰다.
다음날 나는 형에게 전화를 걸어 다른 일을 좀 해볼까 싶어 사직서를 냈다고 말했다. 형은 강민선과 집에서 차를 마시고 갔다는 이야기는 전해 들었다고 하면서 내 일자리는 우선 형이 알아봐주겠노라고 했다. 나는 고맙다고 했다. 그날 저녁에 나는 강민선에게 전화를 걸었고, 우리는 다시 만났다. 내가 나와 결혼할 생각이 있냐고 물었다. 그녀는 웃었다. 우리는 함께 영화를 보고, 술을 마시고, 모텔을 찾았다. 다음날도 그 다음날... 휴대폰에는 시시각각 인혜의 울먹임이 녹음되고 있었고 형은 나에게 다음달 초부터 우선 학원에서 상담실장을 맡아보라고 했다. 일이 익숙해질 때까지 다른 직원들이 많이 도와줄꺼라고 다정한 말도 곁들여서 말이다. 그 사이 내 주머니에는 형수로부터 건내진 서초동 원룸 열쇠와 고급 중형차 열쇠가 들어왔다.
나는 바다가 보고 싶었다. 원룸 이사를 마친 며칠 뒤 나는 나의 자동차가된 낯선 중형차를 몰고 강민선과 함께 강원도로 향했다. 우리는 속초에 있는 한 호텔로 들어갔다. 그녀가 부드럽고 세심하게 나를 어루만졌다. 우리는 서로를 탐닉하고자 했던 것도 아닌데, 길고 오래도록 사랑을 나누었다. 그리곤 룸서비스로 술을 청했고, 꼴깍꼴깍 거리며 양주 두병을 먹어 치다. 술에 취해 흐느적거리던 그녀가 화장실 앞에 주저 앉으며 말했다.
“우리 결혼해요. 우리 그걸로 복수해요. 서로 변변치 않은 사람끼리”
내가 물끄러미 그녀를 쳐다보았다. 손목에서 양주잔이 미끄러져 내려갔다.
“나는요... 알아요... 동준씨도 나같다는 걸... 나는요... 알아요... 싫어도 마음에 안들어도 그들이 그런다면 나도 그럴 수밖에 없다는 걸... 동준씨, 나는요... 알아요? 언니가 키워주고 있는 세살된 아이가 있어요. 나는요... 동준씨, 당신이라면 그걸 말해도 이해해줄 것 같았어요, 나는요...어쩌면..."
그녀가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그녀의 울먹임을 따라 아이보리색 슬립이 파도를 치는 것처럼 출렁거렸다.
다음날 나는 난생 처음으로 인사라는 걸 하기 위해 그녀의 집을 찾았다. 국회의원이라는 그녀의 아버지를 만났고, 부동산계의 거물이라는 그녀의 형부와 그녀의 세 살된 아이를 키우고 있다는 그녀의 언니를 만났다. 그리고 그 다음날 나는 그녀와 함께 형과 형수를 찾아 결혼을 이야기했다. 그날 저녁 늦게서야 나는 다급한 목소리로 식당 동료가 남겨놓은 음성 메시지를 들었다. 인혜가 손목을 그어 병원 응급실로 실려갔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메시지를 남긴 그에게 전화를 걸어 인혜의 상태를 물었다. 다행히 생명에는 지장이 없다고 했다. 그는 나를 꾸짖었다. 갑자기 사직서를 내고, 연락도 없이 이사를 가버리면 인혜가 무슨 생각을 하겠냐고, 사람이 이래도 되는 거냐고 호되게 나를 꾸짖었다. 나는 나 대신 인혜에게 나를 잊어버리라고 전해달라고 했다. 나 따위는 잊으라고. 나는 인혜에게 사랑받을 자격이 없는 놈이라고 전해달라고 했다. 나는 전화를 끊었고, 술을 마셨고, 그리고 한없이 울었다.
나는 형의 그 유명 학원의 상담실장이 되었고, 한달 뒤 강민선과 우리가 처음 만났던 S호텔에서 약혼식을 올렸다. 그 사이 형은 야당의 유력한 공천 대상이 되어 있었다. 약혼식 때 나는 그녀의 세 살된 딸아이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쌍꺼풀 없이 크고 또렷한 눈매가 영락없이 그녀를 닮아 보였다. 그녀의 딸은 그녀에게 이모라고 불렀고, 그때마다 그녀의 눈빛이 한번씩 흔들렸다. 그녀와 나란히 일어서서 사람들의 박수를 받을 때 밑반찬을 만들어두고 나를 기다리며 웃고 있었던 인혜의 얼굴과 딸이 있다며 흐느껴 울던 강민선의 얼굴이 같은 영상으로 눈앞에서 흔들거렸다. 그녀와 나는 이제 다음달에 결혼을 한다. 사람들 틈으로 요며칠 강남에 40평짜리 빌라를 사기 위해 분주해 하던 형수의 모습이 보인다. 분당에 새 지점 대표로 너를 보낼까 검토 중이라는 형의 얼굴도 보인다. 영 낯선 지 떨떠름한 표정으로 웃고 있는 고모도 보인다. 사람들이 나와 그녀에게 축배를 권한다. 나와 그녀가 웃으면서 사람들을 향해 샴페인을 들었다. 실내에는 첼로 연주곡들이 차고 넘치게 흘러다닌다. 나는 속으로 말한다. 너희들은 모르지, 나는 셀러브레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