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Bizutage (비쥐따쥬 : 신입생 구박하기)
입사한 지 3주가 지나자, 바깡스를 마치고 사무실로 돌아오는 직원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물론, 돌아오는 직원들이 있는가 하면 레티씨아처럼 남들보다 늦게 바깡스를 떠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녀는 남자친구와 3주간 남미여행을 떠난다고 했다.
프랑스의 대기업에 다니는 월급쟁이들은 1년에 10주정도의 유급휴가를 받는다.
한번에 휴가를 다 써버리는 사람은 많지않고 한번에 2, 3주씩 쪼개쓰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도 모자란다고 투덜댄다.
영국사람들이 왜 프랑스 사람들은 투덜대기만 한다고 묘사하는 지 이제는 이해할 것 같았다.
내 눈에 아무리 괜챦은 물건도 프랑스인들의 잣대에 놓여지면 형편없는 불량품이 되어 버린다.
일단, 의심부터 해 버리는 이 나라 사람들 기질에 처음에는 질려 버리기도 했으나, 이렇게 불평불만이 많은 사람들을 만족시키려다 보니 프랑스의 명품들이 예술에 가까운 품질을 자랑하게 되었나보다 라고 다른 각도로 해석해 보게도 된다.
나는 8월 말이 지나도록 본격적인 업무수행을 하지 않고 있었다.
두 여자 동료는 내게 읽을거리만 잔뜩 안겨줄 뿐 너는 몰라도 된다는식으로 자기들이 하는 일들에 대해서는 아무런 정보도 주지 않았다.
분명히 나를 경계하는 것이 분명했고 나는 그 이유를 도대체가 알 수 없었다.
날이 갈수록 심해지는 레티씨아의 비아냥거리는 듯한 태도며, 내 앞에서는 간지러운 칭찬이며 듣기 좋은 말만 골라하면서도 내가 없을 때면 나만 빼놓은 다른 모든 동료들을 끌고 다니는 골목대장 노릇을 하며 남의험담이나 늘어놓는 캬따리나의 몀백한 이중태도, 다른 직원들과 몰려 앉아 두런두런 이야기하다가도 나만 나타나면 하던 얘기를 갑자기 멈춰 버리는 두 여자의 부자연스런 행동이 그동안 매우 불쾌하게 느껴졌었다.
입사확정을 거의 확인해주는 마지막 면접 시 부서장이라는 사람은 내게, 만약 당신의 입사가 확실하게 결정되면 제일먼저 같은 일을 하게 될 레티씨아와 캬따리나가 하는 일들을 눈여겨 보고 열심히 배운 후 빠른 시일내에 잘 적응해 주기 바랍니다, 며 내 손을 굳게 잡아주지 않았던가 ?
부서장이 바깡스에서 돌아오면 바로 나와의 면담을 통해 내가 잘 적응하고 있는 지 알아보고 내가 확실하게 일을 배운 후 이미 맡겨진 업무를 잘 수행하고 있는 지를 체크해 볼 것이라는 데에 생각이 미치자 온 마음이 걱정근심으로 무거워지기만 했다.
자신이 없었다.
동료들로부터 전해 받은 서류들은 모르는 말이 더 많아 수도없이 한불, 불한사전을 들쳐보며 끙끙대며 겨우 읽어야 했고, 전화로 뭔가를 진지하게 협상하는 동료들의 통화내용에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건지 몰라 금새 기가 질려버리기 일쑤였다.
프랑스인 동료들이 걸어가는 자세, 말하는 태도, 서류를 뒤적이며 미간을 찌뿌리는 모습, 서로에게 인사하는 모습만 보고도 그들이 너무도 자신감 넘쳐보였고 멋있어 보였다.
그러나 나는 그저 어떻게 하면 남들 눈에 뜨지 않을까 스스로를 있는대로 쪼그라뜨려 구석에 처박혀 꾸부랑 글씨들만 잠자코 들여다 보고 있어야 한다니 정말이지 미칠 것만 같았다.
그런 내 모습이 너무도 한심하게 느껴졌다.
그때, 안되겠다는 생각이 퍼뜩 뇌리를 스쳐갔다.
부서장에게, 그동안 아무것도 배운 것이 없습니다, 가르쳐 주십시오 ! 라고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용기를 내어 캬따리나와 얘기를 해 봐야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먼저, 화장실에 가 손을 씻고 싶어졌다.
난 손을 자주 씻는 버릇이 있다.
손을 씻고 나면 기분이 훨 나아진다.
그래, 손을 찬물에 깨끗이 씻고나면 캬따리나에게 정식업무 내용을 가르쳐 달라고 당당하게 요청할 수 있는 용기가 생길꺼야.
그렇게 혼잣말 하며 화장실문을 잽싸게 열고 들어가 여러 대의 세면대 중 아무 세면대나 골라 서서는 벽에 붙어있는 거울을 들여다 보았다.
그러나,거울속에 비춰진 해괴망측한 모습에 나는 그만 망연자실 하고 말았다.
소리도 내지르지 못하고 눈만 빠져라 크게 뜬채 몸이 굳어버린 나를보고 거울 속의 그 남자는 자신의 오른손 둘째 손가락을 자기 입으로 가져간다.
조용히 있으라는 소리였다.
나는 숨도 못 쉰채 부들대는 사지를 진정시키려 애썼다.
그자리에서 꼼짝없이 그렇게 나는 두 남녀의 뜨거운 정사장면을 목격하고야 만 것이다.
세면대 맞은 편에 있는 양식화장실의 문이 살짝 열려있는 가운데 자기 입에 손가락을 갖다대며 내게 조용히 하라던 그 남자는 벽에 짓눌린 자세에서, 여자는 그남자의 앞에 뛰어 올라 앉은 자세에서 그렇게 두사람의 몸이 요동치고 있는 장면을 보고 만 것이다.
숨이 넘어갈 듯 헥헥대며 여자는 누가 들어온 지도 까마득히 모르는채 뜨거운 섹스에 몰입하고 있었으나 용의주도한 듯한 인상의 남자는 내 쪽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남의 집에 침범한 밤 도둑 마냥, 소리를 내지 않으려 최대한 주의하며 화장실 밖으로 뛰쳐 나왔다.
얼굴이 화끈 거리고 심장이 벌컥댔다.
믿을 수 가 없었다.
회사 화장실에서, 벌건 대낮에 그것도 여자 화장실에서 ….. ! 어떻게 이런 일이…어떻게 그럴수가….
자리에 돌아와 너무나 충격을 받은 나머지 멍청히 앉아 빈 공간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던 내게 캬따리나가 Ca va ? (싸브아 ? : 괜챦아 ?)라고 묻는다.
무슨 일이야. 얼굴이 창백해.
아 아무것도 아냐. 좀 어지러워서..
나는 그녀의 말에 겨우 제 정신을 차리고 읽다만 서류 철을 들척였다.
그리고나서 놀랐던 심장이 제 속도로 뛰기 시작할 때 쯤 될 때 용기를 내어 캬따리나에게 이제는 정식 업무, 그러니까 국제로밍 계약을 맺는 법, 마케팅 프로젝트 기안서 작성법, Business Plan 짜는 법 등등의 구체적인 업무내용에 대한 교육을 받고 싶다고 말했다.
실제 업무와는 관계없는 이런 복잡한 전문 서류들만 읽으며 시간을 보내는 데에 지쳤다고.
캬따리나는 깜짝 놀랐다는 듯이 내 얼굴을 쳐다 보았다.
아니. 이런 중요한 서류들을 읽어놓지 않고 바로 정식으로 일을 하고 싶다는 건가요 ?
서류를 읽는 것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라ㅡ 이젠 슬슬 본격적으로 제가 해야할 일을 시작하고 싶다는 말이지요. 서류는 집에 가져 가서 읽어도 되구요.
레티씨아나 나나 처음 몇달 동안은 그렇게 여러가지 서류를 읽으며 국제부서 일을 배웠는데 왜 은아씨만 유별을 떠는거죠 ? 그 동안 내가 준 서류들은 전부 다 읽고 이해 했나요 ?
나는 그냥 기가막혀서 캬따리나를 벙찐 채 쳐다 보았다.
그때,
뭐야, 비쥐따쥬 하는거야 ?
아까 여자 화장실에서 본 그 남자가 내 책상 모서리에 살짝 걸터 앉으며 큰 소리로 말한다.
잔뜩 굳어있던 캬따리나의 얼굴이 활짝 펴지며,
어머 ! 니꼴라, 언제 돌아왔지 ? 아프리카는 어땠어 ? 어머어머 시커멓게 그을렀네 ? 너무 멋있어. 너무 섹시해 !
캬따리나는 호들갑을 떨며 자리에서 일어나 내 책상 모서리에 앉아있는 니꼴라라는 남자의 두 뺨에 소리가 요란한 키스를 했다.
그녀는 그의 팔짱을 끼며,
아이 내가 커피살께. 휴게실로 같이 가…라며 그를 끌었다.
마지못해 끌려간다는 듯 내 책상 모서리에서 엉덩이를 떼며 니꼴라가 나를 의미심장한 눈으로 바라보았지만 나는 그의 시선을 무시했다.
그저 모든 것이,더럽고, 비열하고, 쿠리고, 부당하다는 생각 뿐이 들지 않았다 !
두 젊은 여직원들의 계획적인 비쥐타쥬도 지겨워 졌고, 남의 일은 전혀 관심없다는 듯 자기만 잘났다고 떠들어 대는 이곳 프랑스 인들에게도 질렸고, 대낮에 사내 공동 화장실, 그것도 여자 화장실에 들어와 추잡한 섹스 짓꺼리를 벌일 수 있다는 사실을 목격한 것도 너무 충격적이었던지라 그만 계속하고 싶다는 생각이 싹 없어졌다.
되도록이면 빨리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사람들하고는 같이 일을 할 수 없다는 절망감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