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이후로 복자 엄마 김영란은 딸래미 결혼시킬 목적으로
오바하는 연극을 좀 하기로 했다.
물론 딸을 끔찍히 사랑하는 남편 허풍선의 방해가 이만저만이
아니였지만...
30년 넘게 살아온 부부가 어쩜 그리 속내가 다른것인지...
주위에 벌써 손주를 둘씩이나 본 친구도 있다.
결혼해서 지들끼리 애기도 낳고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보는것이
부모된 입장에 얼마나 좋은것인가...
내일은 드디어 맞선날짜..
김영란의 동생이 아는 형님을 통해 좋은 남자를 물색해 놓고
약속을 잡았다.
복자가 안가겠다고 하면 같이 따라나설 작정이다.
그러나,내심 복자가 딴곳으로 샐까봐 불안하기도 하다.
<따르르릉.....>
"언니, 나야..내일 약속인거 알지? 실수 없도록 잘 하라구.."
"알았다..그쪽엔 잘 말해둔거지?"
"그럼, 말도 마우..우리 형님이 어찌나 신신당부를 하시던지 말야..
그쪽은 실수할집 아니니까 잘 하라구.."
"그래, 알았어..참..신우 전자 과장이라고 했지? 훤칠하다니?"
"두말하면 잔소리우..크크큭..암튼 내일 잘 하라구 전해.."
<띠리리링~~~띠리리링~~~>
"여보세요?어? 엄마?"
"그려..너 오늘 일찍 들어와라.."
"앗..엄마..나 수업중이야..이따가 할게.."
"어쭈..너 엄마한테 거짓말도 하냐? 마마걸이 왠일이셔? 후훗.."
복자는 재현이랑 커피한잔 하고있다.
사실 수업은 벌써 끝나고 재현에게 자료좀 구하려고 커피한잔
쏘고 있는 중이다.
"으휴..정말.....대한민국에서 여자가 서른살 넘어가면 왜이리
피곤한거니? 정말 죽을 맛이다..결혼 못시켜서 안달이다..증말.."
"왜? 맞선이라도 보라시니?"
"응..우째 알았냐? 캬캬.."
"헉..정말? 우하핫..맞선이라....언제?"
"내일이다..디데이..내일..으휴..무슨 맞선이람?"
"하긴, 어른들 입장에선 그럴만도 하시겠지 뭘..이제 너랑 미란이 지현이
셋만 남았다..그치?"
"그 지지배들 배신 때렸다..남친들 하나씩 달고있다."
"정말? 우하하핫..그랬구나..야..그럼 너도 샘나서 얼른 만들어야겠다.
야..마마걸..일찍 들어가서 엄마 말씀 잘 들어라..
괜히 심술내지 말구.."
"우띠..너까지 잔소리 하냐? 칫..나 갈래..이 자료는 다음주에 줄께"
"천천히 줘도 되니까..내일 맞선 잘하구..크크큭..."
복자는 재현의 팔뚝을 툭 치며 일어선다.
지하철에서 내려 집으로 터벅터벅 걷는다.
봄햇살이 제법 강해 눈이 부시다.
"엄마......딸래미 왔수........"
조용한 거실..이상하다..이 시간이면 엄마랑 이모의 수다소리가
들릴만도 한데..
복자는 조용히 안방문을 열어본다.
"어, 엄마? 어디 아파? 응?"
김영란은 머리에 허연 띠를 두르고 누워있다.
"에구구구......으구구구....머리가 지끈하고..온몸이 뜨겁다잉..."
"엄마, 약사올까? 왜 그래? 많이 아파?"
"사실은...여기가.."
영란은 손으로 가슴을 가리켰다.
"엄마...그럼 심장병 아니야?"
"으이구..지지배..그게 아니라..마음이..에고고고..."
"무슨 마음이 아프다고 그러우? 참내.."
실실 웃고마는 복자의 얼굴을 보니 갑자기 영란의 입가에 웃음이 터진다.
"푸하하핫..알았다..이 지지배야..내 주위에 손주 본 친구들이 얼마나
많은줄 아냐? 이것아? 니 결혼해서 잘 사는것이 얼마나 부모한테
행복인데.. 으이구...이것아..엄마 마음좀 알아주라..
시집도 못가고 사십살 오십살 그렇게 늙을래?"
"에휴...증말..알았수..알았어..지발 그만 좀 하슈.."
"야..내일 12시 팔래스 호텔이야.. 늦으면 너 밥 안줄줄 알아.."
복자는 못들은 척 하고 2층방으로 올라온다.
얼마나 간절히 원했으면 엄마가 저럴까..싶다..
귀여운 협박까지 하면서리..그래, 까짓것 한번만 나가주자..
맞선? 그게 뭔데? 뭐 사람 잡아먹기야 하겠냐..
<똑똑~~~>
"우리딸..뭐하셔?"
"어? 아빠? 오늘 일찍 오셨네?"
"응...딸이랑 저녁 먹으려고.."
"아빠..나 내일 맞선본다..힛.."
"엥? 니 엄마가 드뎌 일을 벌인 모양이구나? 으이궁..이 사람 정말.."
"아빠..그러지 마셔..생각해보니 엄마 마음 좀 알것두 같아..힛.."
"복자야..너무 걱정하지 말고,그냥 한번 만나기만 하렴.
결혼은 일찍시킬 생각도 없으니까..니 엄마는 내가 설득하마."
"알았수...아빠..얼른 밥 묵자.."
"응..그려..하핫..울 딸이 오니까 아빠 살맛이 난다..야..
참..그때 같이 한잔 하던 그 친구랑은 무슨 사이냐?"
"재현이? 크큭..아빠두..참..기냥 친구지 뭐..그런 사이 아니야.."
"음..그러냐? 그친구 예의도 바르고 좋아 보이더구나."
"에궁..아빠두..얼른 내려가시자구용..."
보름달이 하얗게 떴다.
영란은 내일 복자가 입을 옷까지 한벌 걸어놓고는 나갔다.
예쁜 투피스를 무심히 본 복자는 침대에 누웠다.
'휴우....어떤 사람이 나오려나? 에라..모르겠다..내일일은 내일 생각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