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샤..오늘 니가 소주 사주기로 한거 잊지 않았겠지?]
재현이의 핸드폰에 이런 문자 메세지가 떠오른건 정확히 오후 5시 50분 이였다.
'참..시간도 잘 맞추네..훗..'
"자아..오늘은 이만 하죠, 다음주까지 레포트 제출하세요."
"네엣..수고하셨습니다."
재현이는 콧노래를 부르며 과 사무실로 내려간다.
선배들 사이에서 얼마나 힘들고 외로웠던가..
이젠 복자가 왔으니 한결 재밌는 강사 생활이 될것 같은 느낌이다.
역시나 과 사무실 문을 여니 주인을 기다린 강아지처럼
쇼파에 앉아있던 복자가 화색을 띄며 얼른 일어선다.
"야! 허복자! 너 아까 강아지 같더라..주인 기둘리는..크큭.."
"뭐여? 짜슥...쐬주는 니가 사나? 힛..봐줬다.."
인문관을 지나 가로수길로 들어섰다.
교문으로 내려가는 길은 가로수 터널이라 멋드러졌다.
가끔씩 과 학생들이 힐끔 쳐다본다.
"와...이 길은 여전하구만..후훗..야..너 생각나냐?
우리 1학년땐가? 수업 땡땡이 치고 뒷산에 딸기먹으러 갔던일?"
"그럼...그 재미로 학교 다녔잖아..너...후훗.."
"뭐여?음..하긴...우하하.."
"요즘도 거기 하는데..언제 함 가보자.."
"와우..정말? 쿠쿠쿠..그래, 함 가보고프다..힛.."
둘은 학교앞 "블루 하우스" 라는 바로 들어선다.
"야..여긴..무슨..쏘주방이 아니구만.."
"칫..허복자야..그때 그 소주방 사라진지가 언젠데..
요즘엔 이런 분위기가 뜬다니깐..걱정마..여기 소주도 파니까.
소주 한잔에 뿅 가는녀석이 왠 소주타령이냐?"
"야....그래두...으흐흐흣...그 분위기 좋찮아...에헤헤헷.."
"큭...못말려..후훗.."
테이블엔 가지런히 소주한병과 맥주 한병 그리고 맛깔스런 안주가
차려졌다.
"야, 복자야 그런데 우리 초저녁부터 술 마시네..이거 낮술 아니여?"
"큭..뭐 어떠냐? 공기밥 하나 추가하면 되지..크큭."
"하여튼... 너 그때랑 똑같다 정말..훗.."
점원 언니에게 큰소리로 공기밥을 하나 추가하고나니 바로 복자의 핸드폰이
울린다.
"여보세요...엥? 아빠? 왠일이셔?응...그랫? 그럼 여기로 오실래?"
"야..무턱대로 오시라면 어떻하냐? 에구..."
"뭐 어때? 너 우리아빠 알잖여..뭐 새삼시럽게 시리..크윽.."
"야, 그래두..여긴 애들 오는곳이라 좀 불편하실 텐데.."
"걱정마로..울 아빠는 그런거 다 초월하신 양반이다..크큭.."
재현은 마음이 조금 불편했다.
갑작스레 이런곳에서 복자의 아버지를 만나다니...
그런것도 개의치않고 복자는 재현의 빈 잔에 맥주를 가득 부어따른다.
"언니...여기...조개국물좀 더줘욧..."
복자의 아빠가 큰소리로 웃으며 들어온건 딱 1시간 후였다.
"앗...저 안녕하셨어요? 저는 장 재현이라고 합니다.."
"응..그래,그래, 앉어..우하하핫..우리 복자가 누구랑 있나 했더니
듬직한 친구달 한잔 하고있었냐?
에잉..섭섭한걸? 이 아빠가 제일 먼저 데이트 신청 할줄 알았더니만.."
"참..아빠두...크크큭..재현아..니가 이해해라..울 아빠 원래 이러신다."
"어..후훗..뭐 좋아보이신다..뭐..."
"자앗..오늘 아빠가 쏜다. 니들 먹고싶은거 다 먹어랏...하하핫.."
"엥? 아빠..정말루? 크윽..오늘 재현이가 쏜다고 했는뎅?
내 첫 출근 기념으로다가?"
"야야..아그들이 뭔 돈이 있다고 기래? 아빠가 책임질테니 걱정말고
들어..하하핫..모처럼 젊은 이들 사이에 끼니 기분 좋구만 이거..하하."
난처한 표정인 재현이의 무릎을 탁탁치며 복자는 메뉴표를 다시
들춰본다.
"야..우리 비싼거 시키자..우히힛..너 뭐 먹을래? 이거? 아님..이거?"
"그, 글쎄...난 뭐 아무거나..."
"언니..여기 골뱅이 하나,보쌈하나 추가요.."
"우리딸~~ 그게 겨우 비싼거여?"
"아빠두..힛..나 미국서 이거 얼마나 먹고잡았는디..크크.."
"그려그려,. 많이들 들어라..하핫..캬아..울 딸이 따라주는 쐬주 간만일세..하하하.."
허풍선의 잔이 비워지자,재현이 얼른 소주를 따랐다.
"응, 고맙네..참..자네 울 복자랑 같은 과 강사라고 했지?"
"네..그렇습니다."
"그래, 잘 됐네..앞으로 울 딸 많이 도와줘..내가 종종 맛난거 사줄테니"
"아, 그럼요..아버님..."
'아버님??'
아버님 소리에 미묘함을 느낀 복자는 곧 잊어버리고 실실 웃으며
공기밥 한숟갈을 뜬다.
"음..자네는 집이 어딘가? 부친은 뭘 하시나?"
"아이구 참..아빠두..동사무소에서 나오셨수? 그런건 왜 묻고 그러셔?
안그래두 어른 오셨다고 안절부절인 애를..크큭.."
"아..그랬나? 에구..미안해라..재현군..부담없이 들게..자아..들자구.."
"아빠..아빠두 공기밥 하나 드실라우? 헤헷.."
2시간동안 즐겁게 웃으며 한잔 했나보다.
복자는 양볼이 벌게져 가지고 좀 취한듯하다.
허풍선씨도 큰소리가 더 커졌다.
재현이는 어른 앞이라 술이 덜 취한듯 하다.
허풍선은 김기사를 시켜 재현이를 내려다주고 복자랑 집으로 향했다.
"얘....복자야...우리딸...싸랑한데이..."
"크렁....쿠렁...(코 고는 소리임) 크르렁렁...."
허풍선의 눈도 스르르 감긴다.
딸의 조는 모습이 하도 이뻐서 안그래도 작은 눈이 웃음에 파묻혀
더 작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