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죽박죽이 되어버린 내 머리회로를 먼저 풀어 내야 했다. 그래야 제대로 숨을 쉴수 있을것 같았다
본격적인 장마가 시작되었는지 어제도 오늘도 아침부터 굵은 빗방울이 떨어졌다. 사무실로 들어옴과 동시에 유니폼으로 갈아입고 커피포트의 코드를 꼿았다. 냉장고에서 냉수를 한가득 따라 마셨지만 에어컨 바람 쌩쌩하던 차에서 내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오는 이 17층 까지의 거리에서 벌써 식은 땀이 베어나왔다.청소하시는 분들이 이미 출근전에 에어컨을 가동 시켜 놓았기 망정이지......유니폼으로 갈아 입고 커피에 얼음을 담았다.
그리곤 얼굴 메이컵만 한 상태에서 하얀 가루분을 듬뿍 발라 거의 일본의 경극 배우처럼 밀가루을 뒤집어쓴 얼굴을 만들었다. 어제 구입한 샤넬 넘버 5의 빨강을 서너번 덧 발랐다. 환하게 불이 켜져 있는 사무실이지만 바깥의 날씨가 어두워 아침 인데도 해질 무렵의 초저녁 같았다. 거울속의 난 내가 봐도 약간의 소름이 돗는 듯한 얼굴이다.
밀가루 위에 빨간색의 체리가 톡 하고 불거져 있는 모양이다. 내키지 않지만 애써 묶었던 머릴 길게 풀어 내렸다. 그랬다 . 오늘의 내 컨셉은 구미호 였다. 칼만 물지 않았지 지금이라도 입을 열면 핏방울이 뚝뚝 떨어질것 같은 모양이 였다.
나름대로 만족이 되어서 입가로 희미하게 미솔 짓는데 수진이 들어 왔는지 탈의실 문 여는 소리가 열렸다. 어제도 나보고 이제 그만 두라며 자기가 다 이상하다며 좀 정색을 하고 말했는데....이젠 거의 막바지 단계니까 조금만 참아 달라고 했다.아마도 오늘의 내 모습엔 어제 보다 더 기겁을 하겠지........드디어 탕비실 문이 열리고 수진이 들어왔다.
"헉...!"
내가 뛰어난 운동실력을 발휘하지 않았음 수진이 몸이 뒤로 떨어졌을 거다.
"대체 뭐야? 밀랍인형 처럼........차라리 사푤 내......내가 내명에 못살것 같아 언니..."
타 놓았던 냉 커필 내밀며 난 미소했다.
"오늘이 디데이 같아......어제 봤지 ?좀 반응을 보이잖아......어때?기가 확 질리겠지...?"
"말이라고.......암튼 언니.....정말 특이해......왜 이좋은 회사에서 나가고 싶어 안달이야? 대우도 좋고 근무조건도 좋은데......사장님이 바뀐뒤부터 언니의 달라진 행동 이해가 안가..."
"얘기 못들었어....?나랑 사장관계 말야..."
"입사 동기고 둘이 못잡아 먹어 안달란 사이 라는거....?사장님 일본 갔다 와서 바로 여기로 취임했잖아.....예전이야 어땠는지 몰라도 지금은 상관이잖아.....?부하직원도 아니고 예의바르게 모셔야 할 상관이라고.......경쟁 상대가 아니라....."
"경쟁 상대 라니....?과도 틀리는데 그건 아니지......암튼 난 차현석을 내 직속 상관으로 모시고 싶은 생각 전혀 없다고.......오늘은 기필코 잘려서 나갈거야......감심장이 아니라면 날 자르겠지.....비서가 뭐냐?바로 회사의 꽃이잖아.....언제까지 두고 볼수만은 없겠지...."
"혹시 알아...?"
"뭘?"
"언니가 이렇게 이상하게 변한뒤로 우리 사무실로 아무도 들르지 않고 있다는것......모두 실장님이 나가서 서류 받아서 사장님에게 전해 주잖아.....결재받을 서류을 들고 오는 기획실 직원부터 발이 닿게 드나들던 마케팅 부 상수씨나 형준씨도 요즘 통 발걸음 안하고 있잖아.....외부 인사도 그렇고.....전부 권실장님이 알아서 서류받아 우리에게 넘기고 있잖아.....정말 모르고 있었어....?"
갑자기 머리가 띵 했다. 정말......생각해보니 요즘 우리 사무실에 출입하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없었다. 가끔 전무실이나 상무실 비서들만 몇번.....그나마 가뭄에 콩 나듯이 그렇게 드나들었다. 외부인사도 거의 없었다. 예전엔 사람들의 발걸음 탓에 탕비실에 구비해놓았던 접대물품이 일주일이 체 못가고 다 떨어졌는데 요즘엔 홍차며 질 좋은 녹차에 다른 모든 차도 그대로 있었다.
"언니가 이상한 행동을 하면서 무척이나 많이 한가해진 우리 부서야......사람이 그리울만큼.....하루종일 사무실이라는 곳에 갇혀 살고 있는 기분이야......."
이상했다. 왤까?왜 갑자기 바쁘던 사무실이 이리 조용해진걸까.....?무슨일이 생긴걸까?내가 아무리 이상하게 변했다곤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내 개인적인 사정이고 내 개인적인 사정에 갑자기 잘돌아가던 회사가 내리막길로 향하고 있지는 않을텐데.......이상하다는 내 얼굴을 보며 수진이 날 다시 훝어보더니 고갤 흔들며 먼저 나갔다.
"따뜻한 녹차 한잔 부탁합시다. 어제 기획실에서 올라온 서류도 부탁합니다...."
인터폰으로 사장의 호출이 있었다. 내가 들어가라는 얼굴로 보자 수진이 고개짓을 하며 입술을 내밀었다.
"언니 찾는거잖아.......몰라...?사장님 직속 비서는 언니라는거.....얼른가봐.....그래야지 오늘 확실히 잘릴것 아냐....?"
아침에 날 보며 그냥 지나치는 차현석과는 달리 권현준 실장은 겨우내 웃음을 참으며 술을 힘주며 물고 있었다. 들어오자 마자 회장님에게 올라간다며 나가더니 여직이였다.
탕비실에서 녹차를 준비해 서류철과 함께 들고 노크후 안으로 들어갔다.
마소재의 물빛의 와이셔츠.....넥타이는 풀렀는지 단추가 세게나 풀러져 있었다. 무스로 단정히 빗어 넘겼던 머리 같은데 책상위에 결재할 서류가 잔뜩 올려져 있는걸 보니 아침부터 많이 바빴나 보다......앞머리가 이마위로 흘러 내려와 있었다.
냉방이 잘되어 있는 사무실......반팔 셔츠라서 인지 좀 서늘한가.....?왜 따뜻한 녹차야......?김이 모락모락 나는 녹차를 보니 갑자기 더워지는 기분이였다.
티 테이블에 녹차를 내려놓고 들고온 서류철을 책상위 놓았다. 문을 열고 나서려는 내게 지금까지 얼굴한번 들지 않던 차현석이 자리에서 일어서며 날 불렀다.
"잠깐 앉아봐......얘기좀해...?"
갑자기 가슴속으로 서늘한 바람이 휭하니 지나가는 기분이 들었다. 앗싸!드디어.....날 밀어내려 하는구나.......회심의 미소가 마구 지어지는 순간이였다.
몸을 돌리려는 순간 뒤에서 차현석이 날 안았다. 정말 순간이였다. 몸이 반쯤 둘려지는 것 같다는 순간 내 뒷머릴 받치며 차현석의 얼굴이 내려오는가 싶더니 곧장 입술이 만났다. 뭐라 한 마디 소리도 내지 못한체 입술을 잡히는 봉변을 당하고 말았다.
내 입술을 열기가 쉽지 않은지 혀로 계속 입술을 훝어내더니 이내 포기 했는지 아랫입술을 입안에 넣고는 약하게 깨물며 빨아당겼다. 아랫입술이 순간 금방 부풀어 올랐다. 모든 신경세포가 그 차현석의 입안으로 들어가 빨려지고 있는 아랫입술로 몰려 들었다.
숨쉬기가 너무나 힘이 들고 가빠서 입술을 열었더니 금세 그 틈을 타고 차현석의 혀가 들어왔다. 세상에.....어찌 이리.....당황하며 정신을 못차리는 나와 달리 그는 너무도 능숙했다. 내안에 깊숙히 혀를 묻고는 내 뒷머릴 받치고 있는 손에 힘을 가하며 마치 혀로 내 안을 관통이라도 하려는 듯이 열정적으로 내게 얼굴을 들이 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