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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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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게티 下


BY scentsera 2004-06-07

 

끓는 물에 스파게티면을 8분 정도 삶더니 선배는

 

그 중 하나를 벽에 던진다.

-어때? 잘 익은거 같지?~^^;

스파게티면이 제대로 익었는지 알아보기 위한 선배만의 비법이란다.

-선배, 그거 아는 사람들은 다 알아요~

-어머머…나만 알고 있을거라고 생각했는데…--;

좀 놀란듯, 찡그리는 선배의 모습이 귀엽다.

-그런데, 왜 하필 고추장 스파게티에요? 난 선배처럼 굉장한

커리어우먼이라면 아주 근사한 스파게티를 할 줄 알았는데~

-어머… 너가 아직 고추장 스파게티를 몰라서 그래~

다 만들면 먹어봐, 또 해달라고 할 걸~

-호호, 알았어요, 고추장 스파게티, 기대해 볼께요~



잘게 썬 쇠고기를 버터에 볶고 호박과 버섯을 함께 볶는다.

그리고 많이 보던 스파게티 ****소스를 꺼내더니 이건, 비밀이라며,

기사에 쓰지 말아달라고 웃으면서 애원한다.

밝게 웃는 박 선배의 모습이 예쁘다.

이렇게 우리가 떠들고 있는 동안, 그는 아무 말이 없다.

-인표씨, 어떤 사진을 찍을 거에요?

-….

(모야~…..뭐 못들었나보네...)

다시 한번 용기를 내어 혼잣말을 했다.

-그러고 보니 취재기자가 없는데, 혹시 나더러 쓰라고…?

이 말에 조금 관심을 보이는 그

나를 멀뚱하게 쳐다보더니 고개를 끄덕인다.

-이거였어! 말은 푸드스타일러스트라고 해놓고…. 결국!!!

머리가 복잡했다.

하지만 저 둘의 묘한 상황 때문에 나의 문제는 뒷전이 되었다.

담배가 생각났다.

가방에서 담배를 꺼내다가 문득, 쳐다본 그는 박선배를 쳐다보고

있었다.

난 자리를 피해주고 싶었다.

-선배, 내가 정신이 없어서 준비못한게 있네요, 나 잠시만 나갔다 올게요~”



선배네서 나와 담배에 불을 붙이려는 순간,

5월의 햇살이 너무 상쾌하고 따뜻했다.

그리고 이런 화창한 공기를 더럽히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라이터와 담배를 청바지주머니에 밀어넣고 어디를 갈까? 생각하고

있는데, 빌라 앞에 예쁜 꽃집이 보였다.

-어머, 이거 계란꽃 아니에요?

나의 신기한 목소리에 꽃집 아가씨가 대답한다.

-네, 계란꽃. 그런데 원래 이름은 개망초에요.

이름에 비해, 꽃이 상당히 예쁘죠?~

아가씨는 내게 개망초 한 다발을 건넨다.

-그러게요…매일 길가에서 보다가 이런곳에서 보니까 너무

신기하고 더 예뻐보여요…마치, 마이 페어 레이디에 나오는 이라이자 같아요~

*마이 페어레이디-빈민가 출신의 꽃파는 소녀는 언어학자의 도움을 받아 상류계급에

진출한다는 내용….뮤지컬이며, 오드리햅번이 출연한 영화




나는 얼른 개망초 두 다발을 사가지고는 예쁜 리본으로

묶어달라고 했다.

-하얀접시 위에 스파게티를 담고 그 옆에 개망초를 올려놓으면

아주 자연스러운 그림이 나오겠다~ ^^


고추장스파게티에 어울리는 테이블세팅…내 스스로가 대견했다.

-아이 좋아라~

그때 전화벨이 울린다.

-어..못보던 전화번호인데…

-여보세요, 이선경입니다.

-아, 선경씨, 나 정팀장이에요~

(어…이 사람이 웬일이지? )

-홍작가한테 전화가 안되는데, 혹시 같이 있으면 바꿔주겠어요?

(그럼, 그렇지…아니, 무슨 그럼 그렇지야…내가 왜 이래… )

-어..제가 지금 밖에 나와있어요. 들어가서 전해드릴께요.

전화를 끊고나서,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정팀장의 용건이 내게 있음이 아니란 것이 좀, 서운하게 느껴졌다.

(왜지…..??? )



선배네 현관문을 열었다.

인표씨의 화난 목소리가 들린다.

-그래서, 지금 이렇게 돌아오면, 내가 예전처럼 널 다시

사랑하게 될 줄 알았어?

그는 박선배에게 쏴 붙이고 있었다.

-아니야…난 ……….나….그 동안 네 생각,… 많이 했어...

-그래?  난 네 생각 한번도 하지 않았어!

그는 박선배의 시선을 뒤로한 채 자신의 카메라를 손에 든다.

케논 EOS-1은 자신의 주인의 불안정한 상태에 어찌할 바를 모른체,

내 쪽을 가리킨다.

-인표야, 미안해. 나 다시 네 곁에 있으면 안될까?



(오 마이 갓!!! 뭐야, 둘이 연인 관계였단 말이야! )

순간, 머리가 답답해졌다.

내 손에 있던 개망초 다발이 바닥에 떨어진다.

그리고 어느덧 두 사람의 시선이 나에게로 집중되었다.



-아~…그게……그러니깐…

뭐라고 말을 해야할지…난 그냥 아무 변명도 못하고

떨어진 개망초 다발을 주워들었다.



그 후 어색한 분위기가 하나 둘 시작되었다.

고추장 스파게티가 선배에 의해 완성되어지고 나로 인해 스파게티

개망초 테이블 세팅이 끝났다.

그리고 인표씨가 묵묵히 촬영을 했다.




그리고 지금, 그가 가겠다고 현관에서 신발을 신고 있다.

-어, 인표씨 우리 선배의 고추장 스파게티..맛은 보고 가야죠, 그쵸?

하지만 그는 현관문의 손잡이를 돌린다.

-그럼, 전 먼저 가보겠습니다. 선경씨, 먹고 오세요…

그리고는 현관문이 닫혔다.

박선배, 이 광경에 담배 하나를 입에 문다.




-오늘 둘, 의상이 이쁘더라~

-아…어쩌다보니…아…우리 커..커플 아니에요~

나의 어설픈 대답이 선배를 웃게 만들었나보다.

-하하하…아니…그냥, 좋아보여서.

선배는 담배 한 모금을 길게 내뿜는다.

-선경아, 우리 술 한잔 할까?~




선배가 내온 것은 이스리였다. 참이슬…

-선배, 소주 마셔요? 비싼, 양주 마실 줄 알았는데….

나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그녀는 내게 질문을 한다.

-인표씨, 소주 좋아하지?

그가 소주를 좋아하는 구나…난 아직 그에 대해 잘 모른다.




참이슬 반 병이 비워졌을 때 박선배가 그에 대해 말을 시작했다.

-모, 짐작했을지 모르지만 1년 전만해도 우린 연인사이였어.

(헉! 연인? 모야…--;; )

-그리고 지금, 이렇게 난 다시 인표씨에게 돌아왔어…..

선배는 소주 한잔을 더 마신다.

-선배, 천천히 마셔요.

-인표씨는 하나도 변하지 않았네…내가 떠난 그날처럼…

난 어떤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냥 듣고만 있을 뿐이었다.




-내가 서른이 되던 해..그래, 내가 회사에서 인정 받기 시작할 무렵,

인표씨 스튜디오에서 그를 만났어. 아마, 인표씨도 포토그래퍼로서

메인이 되던 해 일거야… 남들보다 일찍 메인이 된 사람이야…

나중에 들었지만, 그렇게 되기 위해서 정말 피나는 노력을 했대..

예전의 나처럼…

그 둘은 그런 마음에 친해지게 되었고, 어느날 4살 어린

친동생쯤으로 생각했던 박선배에게 그는 남자로 변해있더란다.

또한, 항상 주위에 여자가 많았던 그에게도 박선배는 누이가

아닌 여자였고, 결국 그 커플은 사랑을 시작했다고 한다.




-하지만 난 인표씨와 가까워질수록 그의 사생활에 참견하려 들었어.

특히, 여성을 대하는 태도…그는 여자들에게 너무 친절해..

그래서 그를 만났던 여자들은 그의 친절함에 호감을 갖게되고

난 그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게 되더군…

-그럼, 인표씨에게 말해보지 그랬어요?

선배는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본 후,

-내가 말 안했을거 같니?

-………

-그건 자기도 어쩔 수 없는 부분이래, 그리고 그게 뭐가 잘못된

거냐고 나에게 오히려 화내더라...

-그리고 우린 그 일로 인해 자주 다투게 되었고…결국, 난 그를 떠났어.

선배는 다시 담배하나를 입에 문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면 난 후회가 돼. 내가 그랬던 건

그 남자가 여성에게 대하는 태도때문이 아니라

나보다 어린 그 남자를 난 믿을 수 없었나봐.

항상 자신만만하던 나인데도 말이야…

그러고는 씁쓸하게 웃는 그녀에게서 아픔을 느낄 수 있었다.




난 선배네를 나와 무작정 걸었다.

주머니속, 담배가 생각났다.

왠지, 겁을 상실한 행동을 하고 싶어졌다.

-설마, 이렇게 다 큰 나를 붙잡아 가진 않겠지….

하며 담배에 불을 붙이고, 한 모금의 연기를 도시에 내뿜었다.

도시의 사람들은 저마다의 목적과 생각때문인지

나의 걱정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시선을 주는 사람들이 없다.

모…다행이기도 하였지만, 그 역시 서글프다란 생각이 들었다.


도시의 이 많은 사람들은 어떻게 사랑들을 하고 있는 걸까?

자기가 본 현재의 상대방을 사랑하게 되었을 텐데….

우린, 어느새 사랑을 하게되면 그 상대방을 변화시키려고 할까?

함께라는 이름으로…

우린 함께 사랑하는 거니까 이렇게 생각해야해.

아니, 이런 생각을 가져야 되는거야…




그리고 그렇게 되지 않으면 현재의 사랑에 대해 의심하기 시작한다.

날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변화하지 못하는 거야.

날 사랑한다면 그렇게 해줘…



터벅터벅 걷는 내 발걸음에 선배가 싸준 고추장스파게티 소스가

조금씩 그의 체온을 식히고 있다.

얼른 가서 먹어야겠다고 생각할 무렵, 난 우리의 사랑이 스파게티

같으면 좋겠다란 생각이 들었다.

스파게티 면이 제대로 익고,

소스가 알맞은 간이 되었을 때,

둘을 서로 버무리면서 맛있게 먹으면 되는 것이다.

굳이, 스파게티 면에 소스가 베이도록 하는 시간이 없어도 된다.

면과 소스가 있는 그대로의 상태로 만나도 둘이 얼마나

맛있는 맛을 내어주는가…

중요한 것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상대방을 인정하는 마음 아닐까…?

빨간색 날실과 파란색 날실을 엮어 초록의 새로운 날실을 만드는게 아니라,

빨간날실과 파란 날실이 함께한 하나의 겹실을 만드는 것…

그것이 참된 사랑이 아닐까…?




우린 사랑하는 사람을 얻고 나면, 또 다른 것을 쫓기 시작한다.

그것이 우리에게 위험한 욕심인 것을 모른채…




피던 담배를 끄려고 하는데, 어디선가 하림의 출국이란 노래가 흐른다.

“떠올리지 않게 흐느끼지 않게 무관심한 가슴 가질 수 있게~”

문득, 인표씨는 아직도 선배를 사랑하고 있는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내 마음이 불안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