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버지 오민식. 그는 대한민국 경찰이다.
나는 그의 맏아들로 태어났다. 하지만 이건 내가 택한게 아니다.
신의 장난인지 신의 축복인지 저주인지는 몰라도 나는 그의 맏아들이 되고 말았다.
내 밑으로 삭싹하고 말잘듣는 동생 오영민이 있다. 언제나 아버지와 어머니는 영민이만 보면 입이 귀에 걸린다. 하나 뿐인 오하나는 딸이 하나뿐이라는 이유만으로 늘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산다. 나는 내 스스로 맏이라는 사실에 부담감을 안고 의젓해야 한다는 헛된 강박관념에 시달리며 살고 있었고 지금도 그렇다.
그 사실을 잊었던 건 군대 가있는 34개월 동안뿐이다.
오늘도 나는 지난밤 늦은 귀가와 술기운 탓으로 늦잠을 잤다.
아침겸 점심으로 한술뜨고 거실에 누웠는데 아버지가 들어 오시는 소리가 난다.
잽싸게 내방으로 숨어 들어왔다. 아버지는 가끔 틈이 날때면 집으로 점심을 드시러 온다.
아버지가 점심을 드시고 나가시기만 을 기다리는데
"석민아~ 석민아"
부르신다.
"예 아버지."
"이리 오너라."
"예 아버지."
나는 아버지 앞에 죄송스러운 얼굴로 섰다.
"너 지난 밤도 술했냐? 너 장가나 가라 니 색시감은 최사장네 큰딸이다. 너도 색시감에 대해선 불만 없을거 같은데."
아버지는 내가 그녀를 오래전부터 좋아한다는 걸 눈치 챈듯하다.
아버지와 가까운 사이의 최사장네 가족과는 어려서 부터 가끔 여행도 함께 햇던 터라 나는 고등학교 다닐때까지 최지선과 가끔 눈인사 정도는 나누며 지냈다.
마치 너 밥이나 먹었느냐?는 말처럼 너무도 쉽게 난 장가라는 것을 제대 한달만에 가게 된 것이다. 그렇게 하여 얻은 내 마누라 최지선은 벌써 마흔을 넘긴 중년의 아줌마가 다 되었다.
아직은 날씬하고 어디 빠지는 미모는 아니지만 조용하고 빠른 머리 회전은 늘 나를 앞질러간다. 그녀는 단지 나의 멀쩡한 허우대와 우리 아버지의 사회적 지위와(결혼 무렵엔 아버지는 경찰서장이었다)에와 그래서 먹고사는데는 별반 힘들지 않을 거라는 그녀 아버지의 설득에 꼬였던 모양이었다. 살아 오면서 힘들때면 그녀는 가끔 자신의 아버지를 원망하듯 하는 말을 하며 슬픈 얼굴이 되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