쿵...하고 머리 위에 무언가 떨어지는 느낌이다.
아...아니, 떨어진 건...내 머리 위에 무언가가 아니라...벼랑 끝에서 오로지 이제껏 부여잡고 있던 밧줄이 끊어지고....내가 낭떠러지에서 떨어지는 느낌이다.
-'너 애..맞니? 정우야.....?'
뒤에 서있던 그 시커먼 아가씨와 정우를 돌아보지도 못하고 마지막으로...그렇게 혼잣말처럼 묻는다.
제발...아니기를..내 아들이 그럴리가 없어...내 아들이 얼마나 효잔데..내 아들이 저렇게 생긴 여자를 좋아하지도 않잖아...제발 정우야....
'네...엄마. 우리 결혼할 꺼예요..'
당당하니?
자랑스럽니?
이 엄마 앞에서...그래도 무안하거나 쑥스러워라도 해야 하는거 아니니....?
적어도..적어도...내가 알고 있는 우리 아들은 그러지 않아....
정숙은 최대한 지금까지의 상황을 정리하고 이성을 찾으려 했지만 머리 속은 이미 얽기고 섥힌 실타레 같아 아무런 생각을 할 수 없이 멍한 상태다.
정우쪽을 바라보니 그 시커먼 아가씨가 옆에 서있다.
눈길조차 주기 싫다.
-'정우야....이럴꺼면...우리한테 얘기라도 먼저 해 줘야했어...어떻게 엄마한테...'
정숙은 이제까지 참았던 울음을 일시에 터뜨린다.
-'정우야...정우야...어떡하면 좋니...이 일을 어떡하면 좋아....'
남편은 그 때까지 어깨를 토닥이다 이내 흔들며 다그친다.
'왜 이래? 당신답지 않게....'
-'당신도 알잖아...나 쟤밖에 없었어...나한테 자식이 둘이야..셋이야...그냥 평범하게 참한 며느리 보고 싶어한 게...그게 욕심이야?? 평범하진 않더라도...난 설마...설마 우리 정우가..저런 애...'
'그만 해...사람 앞에 두고 무슨 망신이야..?' 남편은 나즈막히 정숙의 말을 잘라 버린다.
저 아가씨가 어제 공항에서부터 지금의 상황까지 설령 말을 한마디도 못알아들었다고 해도..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으리라...
눈길을 돌려 시커먼 아가씨를 올려다 보니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며 그 큰 눈이 더 커져서 정숙을 바라보고 있었다.
'엄마 성격 제가 아는데...쉽게 말이 나와요? 저두 망설였는데..어쨌든 엄마..제발 지금 얘 앞에서 그러지 마세요...부탁이에요..' 이번엔 정우가 거의 울 것 같다.
-'지금...이 엄마보다 그 아가씨가 더 걱정이냐?'
'엄마 성격 아는데...저한테 하시는 기대를 아는데...어떻게 미리 말씀을 드려야 할 지...차라리 그냥 맞닥뜨리는 게 나을 거 같았어요..'
'엄마...지금 놀라셔서 그렇지 얘..차분히 보시면 맘에 드실꺼예요...토종 한국여자라니까요..엄마...'
-'어느 나라니?'
'브라질이요'
정숙은 다시 이마에 손을 얹는다.
남편은 그 시커먼 아가씨에게 쇼파에 앉으라고 손짓을 한다.
정숙이 손을 휘휘 내져으며 골치아픈 내색을 하고....남편과 정우와 그 아가씨는 정숙 주위로 차례로 앉는다.
-'브라질?'
정숙은 물을 한잔 들이킨 뒤...그제서야 그 시커먼 아가씨를 살핀다.
비교적 날씬한 체구에 그러고보니 배가 약간 나온 것 같고...어제 첫대면만큼 시커멓지는 않지만...아직도 적응이 안되는 그 부리부리하고 큰 눈과 체형 자체가 한국적이지 않아 아무리 봐도 낯선 모습...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게다가 저건 또 뭔가...?
쇼파에 앉으니 더 말려 올라가 거의 엉덩이만 겨우 가리는 반바지며 수영복인지 옷인지 모를 저 끈만 달린 위의 옷은...?
볼 수록 가관이다.
정숙은 절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