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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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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 surprised(놀라다)


BY 산부인과 2004-02-19

여자의 직감은 굳이 확인을 거치지 않아도 확실하다는 감이 느껴진다.

동물적인 냄새가 난다.

몇일전 부터 아니, 어쩌면 더 오래전 일지도 모르겠다.

처음에는 별 관심 갖지 않았다.

집에서도 핸드폰으로만 통화 할수 있는 것이고

퇴근후 술자리도 할수 있을테고

매번 정시에 들어오는 남자

더 답답한 남자 아닐까?

라고 생각했는데 어쨋거나 지금은 아니다.

무언가 구린내가 심하게 난다.

 

연애할때도 문자를 주고 받은 기억이 없다.

뇌 구조상 말빨이 딸리고 통화를 해도 대화할 소재가 없어서 길게  얘길 하지 못한 사람이

이 발전이다.

그런 발전이가,

요즘 핸드폰을 옆에 끼고 산다.

아~ 지금 생각해 보니 예쁜 아이콘 문자를 보낸적도 있다.

그땐

<와~ 이런것도 보내고 정말 발전했군> 했는데..

누구한테 잘보이기 위한 것이였을까?

 

다시금 급한 내 성격에 불이 붙는다.

궁금한거 절대 못참는 성격

자다가도 무언가 연관된것이 있으면 끝까지 생각해 내야 하는 이 성격

특히 노래가사나, 영화제목 생각안나면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친구들한테 전화 해서 알아내야만 잠을 자는 사람이 나다.

근데 요건 후유증이 좀 있다.

사방팔방 다 전화했는데 끝까지 그 원인 못찾으면

나 부터 시작해서 한 두다리 건너 연락한 친구들마저 궁금증에

우린 잠못드는 후유증을 간간히 경험하곤 했었다.

 

하여간 이런 난데, 참기로 했다.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옛 속담도 있듯이..

꾸욱~ 참기로 했다.

오늘도 다른 날에 비해 늦게 들어온 발전이.

와이프는 하루 하루 불러오는 배와  쥐가 나는 다리를 혼자 부여잡고

주물러 가면서 힘겹게 보내고 있는데

혼자서 볼장 다 보고 재미 다 보고 느긋이 들어온다.

 

<요즘 계속 늦네?>
<연말 이잖아>
<아하~ 그렇구나.. 이 해가 가느라 늦는구나>

<왜 또~오~>
<뭐가?>
<너 말투 말이야>

<내 말투가 어때서?>
<너!! 아니다 관두자..>

그리고는 화장실로 들어간다.

물론 그 눈에 거슬리는 핸드폰을 손에 꼭 쥐고..

가만히 무거운 몸에 뒷꿈치를 들고 살금살금 화장실 문 앞에서 안의 동태를 살피려고

귀를 문에  바싹 같다데고 온 신경을 문에  집중을 했다.

{아씨~ 뭐라 하는지 하나두 안들리네..}

말소리가 안 들리는걸로 봐선 통화가 아닌 다른 것을 하는 예감이 들었다.

더더욱 모든 감각을 귀에 모으고 숨을 죽여 동태를 느끼려 했다.

뚜, 띠, 뚜, 뽀, 삐, 뽀, 쁘

핸드폰 문자 누르는 소린가 난다.

거의 문에 달라 붙다 시피 귀를 붙였는데 부른 배 때문에 쉽지가 않았다.

그때였다.

 

<으허억~>

<아악~ 쿵..>

너무나 갑작스럽게 문이 열리고 그 안에서 발전이가 튀어나와 뒷 걸음질 하다 엉덩방아를

찧었다.

<괘.. 괘..찮아?>
<아구~ 엉치야, 아구~ 배야>
<그러게 문 앞에서 뭐 했어?>
<배.. 배가 아파>
<말 돌리지 말고!!>
<진짜야 배 아프단 말야 이거봐 딱딱하게 뭉쳤잖아>
<정말이야?>

 

그때서야 상황파악하고 딱딱하게 뭉친 내 배를 만진다.

늦게나마 부축을 받고 방으로 들어가 혼자 침대에 눕혀놓곤 다시 의심에 찬 눈초리를

보내며 나간다.

은근슬쩍 임산부라는 강점을 이용해 순간의 위기는 모면했지만

영~ 찜찜하고 마음 한 구석에 내려가지 않고 얹힌 음식물 처럼 개운치가 않았다.

다음날..

무언가 이상기류가 흐른다.

보이지 않은 심리전

핀트가 맞지 않은 서로의 눈길

뒷통수에서 느껴지는 시선, 그 시건을 쫓아 고갤 돌릴땐 벌써 사라진 느낌.

다짐을 했다

{현장을 잡자}

 

의심하기 시작하면 한도끝도 없는 네버엔딩 스토리가 전개 될 테지..

확실한 물증을 잡기 위해 의심은 않기로 했다.

{이발쩐.. 꼭 밝혀 낼꺼야}

출근하는 발전이를 항상 그러하듯 현관 문 앞에서 배웅하고 문을 닫으려는 찰라

발전이의 핸드폰이 울린다.

미쳐, 다 닫지 않은  틈 사이로 눈동자를 고정시키고 귀 기울여 또 엿들었다.

 

<어~ 아침 일찍 왠일이야>
<..................>

<그래? 그럼 저녁에 만나야겠네>

<..................>

<무슨소리야~그런건 당연히 만나야지>

<..................>

<O K !! 거기로 와>
<..................>

<뭐야~ 거기 몰라?>
<..................>
<우리 맨날 만났던 곳>

<..................>
<종로, 종로타운 .. 이제 이해갔어?>

<..................>

<알았어 7시 늦으면 안돼>

 

발전이의 핸드폰이 닫힘과 동시에 엿보던 현관문도 닫았다.

가슴이.. 가슴이 뛰기 시작하고 또 다시  배가 뭉친다.

제대로 다~ 듣진 못했지만 핸드폰 밖으로 세어나온 여자의 목소리.. 그건 확실히 들었다.

집에서 내가.. 항상 퇴근을 기다리고 있는걸 뻔히 알면서도 망설이지 않고

약속을 잡는 신.속.함.

{7시 종로타운!! 죽었어 이발쩐..그리고 어떤년인지 같이 죽었어}

입술을 잘근잘근 씹고 나도 모르게 힘이 들어간 주먹을 더욱 쎄게 웅켜쥔다.

손 바닥 안쪽으로 손톱의 압박이 느껴진다.

 

견딜만한 통증 이였지만 손 바닥을 펴서 바라보니..

손금으로 여러 줄기가 그어져 있는 그 사이에 좀 전에 웅켜진 손톱자국이 남겨졌다.

다른 한 손으로 그 자국을 문지르자 더욱 벌겋게 변했지만 자국은 희미해졌다.

하지만..

내 가슴속에 깊숙히 박힌 상처자국은 좀 처럼 없어지진 않을듯 했다.

어떻게 시간이 흘렀는지 모른다.

분노와

억울함과

그러다 다시 번민과

용서와..

아닐꺼란 내 희망만 간절히 남았다.

 

제 정신을 차렸을땐 벌써 어둑어둑 해가 진 후였다.

끼니도 걸른 상태였지만 어떠한 식욕도 느낄수가 없었다.

이루말할수 없는 배신감이 마지막.. 내 감정의 잔류로 남았다.

세수를 하고 화장을 곱게 하면서 임신하고 한번도 사용하지 않던 속눈썹도 붙였다.

거울을 보며 가지런히 머리를 빗고

임산부용 검정 타이즈팬츠에

목 폴라를 입고 모직 하프코트를 덧 입었다.

마지막으로 뽀송뽀송하게 털이 달린 밤색 숄을 걸치고

다시한번 다짐을 했다.

 

<이발쩐, 그리고 이년.. 둘다 내 손에 걸리기만 해봐>

 

연말의 번화한 종로거리는 예전 연애때를 떠오르기에 충분했다.

꼬옥~ 붙어 다니는 연인들

길거리에 진열된 온갖 앙증맞고 탐 나는 물건들

한 걸음 내 딛을때 마다 흘러나오는 경쾌한 음악소리

 

<안돼!! 안돼!! 이런 상념에 빠지면 안돼!!>

 

야물지게 처음의 그 마음을 다시 확인하고 무거운 발걸음으로 목적지에 억지로 끌고갔다.

옷 속에 파뭍힌 시계를 찾아 봤다.

7시 35분..

퇴근시간에 교통체증 등등 이것저것 계산을 해도 이 시간이면 충분이 만나고 있을 시간.

쉼호흡을 길게 서너번 내쉬고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때마침 1층에 서 있는 엘레베이터..

징조가 좋다.
현장을 덮칠수 있을꺼 같다.

엘레베이터를 타자 한번도 멈추지 않고 7층 종로타운.. 그 문제의 장소에 금새 도착을 했다.

문이 열리고 다시 복식호흡을 하고 아까보다 더 무거운 발걸음을 떼며 내렸는데..

 

<어라~>

컴컴하다.

음악소리도

사람들의 웅성임도

화려한 조명빛도..

있어야 할 모든것이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다.

혹시나 해서 닫혀있는 문을 건들여 보자

<끼익~> 소리가 음산하게 들렸지만 닫혀있진 않았다.

 

<저.. 아무도 안계세요?>

<저기요~>
<여보세요~>

이거 이거 허탕 친듯하다.

사람들은 아무도 없고 안은 엄청 컴컴하고

아마도 내부수리 예정이거나 새로운 임대주인을 기다리는 곳인가 보다.

허탈한 마음에 문을 닫고  뒤 돌아서려 하는데

불빛이 <파바박!! >하고 켜졌다.

어두운 흑빛에 익숙했던 내 눈은

급작스런 환한 조명에 질끈~ 눈 감아 버렸다.

 

<surprise party>

 

휘번뜩 놀랐지만 아직도 불빛에 익숙치가 않아

천천히 눈을뜨자

언제 나타났는지.. 사람들이 서있다.

발전이

잘난이

오미나

광남이

몇몇 초등 동창들까지..

 

<이..이..게.. 뭐야?>

<생일 축하한다 도도희~>
<생일?>

<그래.. 오늘 네 생일인것도 기억못해>

미나가 직접 만들었다는 케익에 촛불을 꼽고 내 앞으로 갖고 왔다.

<하하하~ 흐흐흐~ 오늘이 내 생일?>

그 동안의 오해가 눈 녹듯 사라졌다.

발전이가 날 위해 준비한 이 정성

내가 여기로 나오게끔 유도한 아이디어는 그 나물에 그 밥 이지만

발전이 보다 조금 나은 잘난이였다고..

그치만 감동은 감동이였다.

예상치 못한 계획과 내가 덫에 걸리도록 발전이의 그 능숙한 연기력..

 

<미안해 발전아~ 그리고 모두들 고맙다>

신나게 먹고 마시고 떠들고 충분히 즐길수 있었던 파티였다

그러나..

나 실은 비밀을 간직한채 이 파티의 주인공을 연기해야 했다.

오늘이 내 생일..

원래 내 생일은 음력으로 따진다.

오늘은 양력생일이지 실제적인 내 생일은 앞으로 한달은 더 있어야 했다.

결혼초에 음력으로 생일따지니까 잊지 말라고 얘길 했겄만..

 

하긴 거기까지 세세하게 생각하는 발전이라면

발전이가 아니지..

어쨋거나 내년 초에 난 또 한번 생일 챙겨 먹으면 장땡 아닌가

누가 뭐라하면 어쩔껀데?

즈그들이 잘못 계산한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