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부터 비가 내리고 있었다.
건물 빌딩 전체가 깨끗해질 만큼의 비가 퍼붓고 있었다.
전철을 타기 싫어 새벽녁에 서경이에게 콜을 했다.
약국 가는 길에 태워다 달라는 얘길 했고.....서경이 그러마 라고 해서 편하게 비 한방울 맞지 않고 산뜻하게 출근을 했다.
여름 장마.......비가 흔하다.
갑자기 쏟아지는 비도 있고.....회사 밖은 아주 무덥다.
머릴 잘라야 겠다는 생각이 하루에도 서너번은 들게 하는 무더운 날씨다.
따뜻한 커필 빼들고 책상에 앉았다.
원두커피의 향이 .....기분을 가라 앉게 했다.
아주 쾌청....맑음 이다.
이른 출근 이여서 인지 사무실에 빈자리가 많다.
아직.....8시 36분......시간이 좀 있다.
창가쪽 자리가 밖의 풍경이 잘 보였다.
8층에 위치한 사무실의 높이도 딱이다.
이번에 맡은 cf건에 대해서 글을 써야 한다.
한여름에 가을 카피를 쓰라니.....도통 생각이 떠오르지 않는다.
모델도 변함이 없고....컨셉도 변한게 없는데.....
그래서 일까....?
마땅한 글이 떠오르지 않는다.
맞은편 김대리도 골치가 아프다는 얼굴이다.
광고 카피라이터......겉보기엔 멋있는 직업이지만.......조금이라도 그 안을 들여다 보면 얼마나 사람 피 말리는 직업인지........
며칠전에 내 딴엔 괜찮다는 초안을 잡아 데스크에 올렸는데....된통 깨졌다.
너무 깊이가 없다는 거다.
웃겼다.
잠깐씩 스치듯 지나가는 광고에......깊이가 있어야 한다는게.....
단 몇초 짜리 광고인데.....얼마나 깊이가 있어야 한다는 건지......
몇개의 초안을 더 잡아 대표로 데스크에 올렸는데....모조리 컴백홈 이였다.
사무실에 직원들이 점점이 체워져 갔다.
비는 여전히 창문을 때리며 내리고 있지만......식어버린 커피처럼......다시 마음이 무거워 졌다.
오늘은 아무래도 .....일찍 들어가긴 그른것 같았다.
점심으로 낙지 볶음을 먹었다.
양치후 자이리톨 껌을 입에 넣었다.
맵게 먹었더니.....커피 생각이 사라 졌다.
회사동료 은주와 함께 휴게실에 잠깐 들렀는데 핸폰이 울렸다.
"어이 샘.....저 휴가 나왔음다......"
정현이......
대학때....거의 일년간 과외를 봐 주었던 아이다.
몇달전에 군에 간다고 하더니......첫 휴가 나오면 한턱 쏘겠다고 했는데......잊지 않고 있었나 보다.
늘 내게....샘.....선생이 아닌......
대학 들어간 어느날 우리 학교로 찾아 와서는 이젠 샘이라고 안하고 누나라고 부른다고 하더니......한번도 누난란 호칭을 쓰지 않고.....늘 샘이다.
"언제 들어가는데......오늘하고 내일은 약속을 잡을 수 없을것 같은데...."
"토요일에 들어가야 해요.......설마...바쁘다는 핑계로 입 딱는건 아니죠 설마..."
"야 ...너 내가 누구야?의리 빼면 시체인거 몰라......?"
"그건 아니지만.....아무튼....토요일날 1시엔 부대로 복귀 해야 하니까.....늦어도 금요일 안에 한번 봐요......주영이 알죠...?샘 만난다니까.....같이 만나자고 하던데.....좋죠...?"
"당연하지......주영이가 고무신 꺼구로 안신고 아직 있나 보네......너 능력 좋다 야...."
"ㅎㅎㅎㅎㅎ 샘하고는 확실히 다른 애니까.........."
"뭐....? "
"아니에요.....그럼 샘 편한 날에 전화 줘요.....기다릴께요...."
늘 나보고......플레이 걸이라고 했다.
자기 형하고 소개팅 해준다고 하는걸 극구 반대했더니.....어느날 부턴 나더러 플레이 걸이라며.......그렇게 다른 사람 가슴 아프게 하고 다니면 안된다고.....지나가듯 스쳐가듯 말하던 아이였다.
하긴 이젠 아이가 아니지......나보다 3살 아래니......벌써 23이다.
세월 진짜.....빠르다.
앞자리의 박대리가 내게 초안 잡은것 있음 보여 달라고 했지만....나도 여직이다.
비디오 찍어 온것 아까 작업실에 가서 봤는데.....쉽게 문구가 떠오르지 않았다.
라이벌 커피 회사는 고정적인 배우로 거의 10년을 버티고 있는데.......갑자기 거길 누룬다는건......말도 안되는 얘기지......
젊은 커플을 앞세워.......10에서 20대 을 타켓으로 나간다는 광고인데......쵸코릿 광고 처럼 선정적이다.
요즘은 그래야 잘 팔린다나....?
여주인공이......게슴츠레 뜬 눈으로 상대남을 바라보다가 ......싱겁다는 듯이 웃는다.
도대체 어떻게 써야 ......먹혀들어 갈까...........
건물의 층층의 사무실 불이 하나둘 꺼져갔다.
8층엔.....아마도 우리 사무실 뿐인것 같다.
데스크도 아까 퇴근이다.
나와 박대리......김선배.....윤혜....넷만 남았다.
광고 팀 중엔......우리넷이다.
돌 굴러 가는 소리가 또르르 나는듯 했다.
"선배.....난 집에 가서 해올께요.....여기 계속 앉아 있어 봤자.....안떠오르긴 마찬가진데.....그냥 각자 해와요.....내일 맞춰 보는게 쉬울것 같은데....."
내말에 모두 날 봤다.
"내일 좀 일찍 나와요......다시 비디오 보고......마지막 으로 한번더 맞추보게...음향팀도 아직 이라잖아......"
"그럴까 ....?어차피 우리중엔 지원이 네게 젤 잘 먹히긴 하니까.......이번에도 너만 믿을께.."
"그런말 좀 하지마.......다같이 하는 작업인데......선배 그러다가 조만간.....명퇴명단에 오를수도 있어.....알지...?무능력 한 인간 내가 젤 싫어 하는거...."
"어머 얜?......내가 거느리고 있는 처자식이 몇인데.......너 그럼 안돼......."
일부러 약한 척 눈물 흘리는 시늉을 하는 김선배 였다.
윤혜와 박대린 우리 둘을 보고 한심해 하는 얼굴이였다.
윤혜와 박대리만 남고 나와 김선밴 회사에서 나왔다.
김선배 차로 전철 역까지 왔다.
빗발이 많이 약해져서 인지........젖는 부위가 없었다.
오늘도 밤샘을 해야 하는데......
요즘엔 불면증을 겪고 있어.....피곤한데.....아마도 한 며칠은 아주 피곤한 나날이 될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