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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에게 남학생 방을 쓰지 못한다고 한 학교의 방침이 차별행위라고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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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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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


BY 미르 2003-12-19

"너 연애하니?"

 

술잔을  앞에 두고 앉은 유라가 스치듯 물었다.

 

"죽었다 깨나도 그런일은 없을테니 걱정마라!"

 

지수의 말에 그녀의 얼굴이 가볍게 굳었다.

 

"아직 못 잊고 있는거야?"

 

"무슨~!  그게 언제적 일인데.  그냥..... 그런일은 한번으로도 충분하고도 넘치잖아!"

 

술잔을 비우고 또 한잔 따라 마셨다.

 

"좀 있다 기사들 오기로 했으니까 마음껏 마셔!  너 오늘 안들어가도 된다고 했지?"

 

"응!  영재씨랑 언니랑 여행갔거든!"

 

"용캐 그집에선 아무말 없네?"

 

"아무말 없긴...... 그래도 영재씨가 버텨주니까,  가려주니까  등뒤에 숨어서 모르는척 하고 있는거야!"

 

조금 일찍 시작된 술자리 탓인지 아직 8시밖에 되지 않았음에도 알딸딸하게 술이 올라

마침 좋은 기분이 들게 했다.

 

"참 아줌마 아저씨도 안녕하시지?"

 

"일찍도 묻는다.  왜?  내일 아침 술깨고 묻지?"

 

"너,  나이들더니 비아냥만 잔뜩 들었어!"

 

"나만 나이 먹었냐?"

 

마지막 술을 잔에 따르자 유라가 호출벨을 눌러 술을 한병 더 시켰다.

 

"근데 이 인간은 왜 이렇게 안와?"

 

"누구 오기로 했어?"

 

"응!  너 만나기로 했다니까 기어이 오빠가 따라온다잖어!  그래서 이리로 오라고 했어!"

 

"오빠는 아직도 혼자야?"

 

"그럼 그 고지식을 누가 감당하겠냐? 우리 엄마도 오빠한테는 아주 학을 뗀다"

 

술을 한모금 하더니 다시 오빠의 험담으로 들어간다.

 

"엄마도 두손 두발 다들고 이제는 포기했다는거 아니냐!"

 

"뭔소린지..."

 

"글쎄 얼마전엔 선을 보는 자리에서 여자한테 일장 설교를 하고 오셨단다.  뭐 여자가 화장이 진하면 천해보인다나 어쩐다나 것뿐이면 말도 안해!  치마가 너무 짧아서 걷기 힘들지 않느냐, 음식을 남기면 힘들게 농사짓는 분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그게 선보러 나간 자리에서 할 소리냐? 뚜쟁이 아줌마 열받아가지고 집에 와서 난리 치는데 엄마랑 나랑 낯뜨거워서 아무소리 못하고 쥐구멍만 찾았잖아! 아주 죽이고 싶더만!"

 

참으려고 애를 썼음에도 불구하고 비어져 나오는 웃음을 어찌하지 못하고 큰소리로 웃고 말았다.

 

"뭐가 그렇게 재미있어?"

 

낯선 목소리에 소리나는 곳을 쳐다보니 유라의 오빠 정민이 와 있었다.

 

" 오랫만이에요 오빠!"

 

애써 웃음을 추스리며 인사를 건네자 또 다른 남자와 함께 자리에 앉으며 재차 묻는다.

 

"무슨 얘기들을 하느라 사람이 들어오는지도 모르고 웃고 있어?"

 

"오빠의 무용담을 풀어내고 있는 중이었어! "

 

"또 쓸데없는 소리를 하고 있었구만! 인사해라 여긴 친구 민철이!  여기 못생긴게 내 동생이고 그옆에 세침한애는 동생 친구 !"

 

"안녕하세요 강민철입니다.  혹시 방해가 된건 아닌지 모르겠군요!"

 

"천만에요! 전 오유라에요 여긴 친구 성지수!"

 

"안녕하세요! 우리는 저녁 먹고 왔는데 두분은요?"

 

"우리도 먹고 움직였어"

 

 마침 술을 가지고 온 웨이터가 그들 앞으로도 잔을 내려놓고 나갔다.

 

"지수 넌 그렇게 연락 뚝 끊고 살아도 되는 거냐?"

 

"미안해요!  먹고 살기 바빠서 정신이 없었어! 그러는 오빠는 뭐 먼저 연락하면 안돼?"

 

"언니는 잘 있어?"

 

"현수언니. 애인이랑 여행갔대!"

 

유라의 말에 정민의 얼굴이 놀람으로 변했다.

 

"누구?"

 

"영재씨! 오빠도 알잖아"

 

나직한 말에 정민의 표정이 미묘하게 변했다.

 

"쉽진 않을텐데..... 힘들겠구나!"

 

"조금...아! 이런 우리 얘기만 하느라 친구분 따분하시겠어요!"

 

화제는 금방 가벼운 이야기로 넘어갔고 집에 가서 하잔 더 하자고 결론을 냈을때는 1시가 다 되가고 있었다.

 

"민철이 너도 같이 가는거다!"

 

"그래요 여기서 혼자만 빠진다는것은 배신이야 배신...헤헤...."

 

유라의 애교에 뿌리치려던 민철도 웃고 말았다. 택시를 타고 집으로 들어가자 부모님은 주무시는지 집안은 조용하기만 했다.

 

"이층으로 올라가 있어!  내가 다 준비해서 올라갈테니까!"

 

"오케이!"

 

정민이 주방으로 향하고 이층으로 올라간 세 사람은 정민의 방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왠지 옛날 생각이 나네!"

 

"그러게"

 

"무슨 일이 있었나요?"

 

"고 삼때요,  백일주를  마신다고 다들 난리들일때 유라하고 저, 그리고 저희 언니까지 이방에서 파티했거든요"

 

"고 삼때요?"

 

"네, 언니때문에 다른데는 갈수가 없어서 정민이 오빠 방으로 숨어들어와서 오빠가 숨겨 놓은 술을 모두 마셔버리고 그대로....."

 

"그래서요?"

 

"다행히 부모님한테는 들키지 않았지만 정민오빠가 그 술을 얼마나 아까워 하던지....정말 우는줄 알았어요!"

 

"너는 그러고 말았지?  나는 아주 맞아 죽는줄 알았다. 거기다 머리도 아파죽겠는데 그 특유의 잔소리라니....."

 

아직도 진저리가 쳐지는지 고개를 흔드는 그녀를 보고 지수의 얼굴에 얇은 미소가 지어졌다.

 

"술 대령이오"

 

정민이 들고 온 술과 안주로 술을 마시던 네사람중 유라가 제일 먼저 떨어졌다.

 

그리고 이십분도 되지 않아 정민이 술에 취해 잠들어 버리자 남아있던 두 사람은 말없이 술을 마셨다.

 

" 언니랑 두분이서만 사세요?"

 

"네"

 

"부모님은?'

 

"돌아가셨어요!  너무 어릴때 돌아가셔서 얼굴도 기억나지 않아요!  언니하고 저, 할머니밑에서 자랐어요!  무척 사랑받으며 컸다는 기분이 들만큼 충분히 아껴주셨어요!  지금은 돌아가셨지만요!"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민철씨는요?  그렇게 불러도 되죠?"

 

"그럼요!  전 평범한 가정에서 자랐어요!  자상하신 어머니 무섭지만 인자하신 아버지 귀여운 여동생.... 학교 졸업하고 제대하고그리고 바로 취직해서 지금 다니는 회사에 입사했어요"

 

"좋겠어요!  평범하다는거..... 본인들은 모르겠죠?  그게 얼마나 큰 행운이며 얼마나 감사할일인지...."

 

말꼬리가 젖어들고 있다고 느낀건 술탓이었을까?

 

"취했나봐요!  주정을 다하고..."

 

애써 미소짓는 그녀의 눈이 젖어들고 있었다.  왠지 품에 안고 이제 걱정하지 말라고 등을 토닥여주고 싶었다.

 

"제가 치울테니까 좀 주무세요!"

 

"한잔만 더 하고 같이 치우죠"

 

"그럴까요?"

 

일어서려던 몸을 다시 앉히며 잔을 그러쥔 그녀의 모습에 민철은 한번도 느껴보지 못한 기분을 느끼며 어떻게든 떨쳐내고 싶었다.


"정민이 동생하곤 언제부터 친구였어요?"

 

"글쎄요?  제 기억이 시작되는 그때부터 늘 함께 였어요!  왜 그런 친구 있잖아요.  문득 돌아보면 항상 그 자리에서 나를 기다리고 기억해주는 친구요."

 

"부럽네요 그런 친구라니...."

 

"그런 친구, 하나도 없으세요?"

 

"네"

 

"앞으로 만들면 되죠 뭐!  친구는 사랑과는 달라서 노력하면 항상 노력하는 대로 흘러가주는거 같아요!  사랑은 노력만으로는 안되는거잖아요?"

 

"사랑도 노력하면 되지 않을까요?"

 

그의 말에 지수는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 보았다.

 

"아직 한번도 사랑해본적 없죠?"

 

"네"

 

"그러니까 그런 말을 하는거죠!  노력이라는 말이 필요해지는 순간이 온다면 그건 더 이상 사랑이 아닌거같아요,  그져 마음이 가느대로 움직이다 어느순간 노력해야겠구나 싶을땐 이미 사랑이란 녀석은 저만큼 달려가 있잖아요. 그래서 달려가 있는 녀석을 잡아야 하니까 노력하는거구요.... 아닌가?"

 

고개를 갸웃거리는 지수의 말에 민철은 맞는것도 같다는 생각을 했다.

 

"사랑이란게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거 같아요.  내것이어도 내것이 아니게 되고 붙잡았다고 생각한 순간.... 이미 나에게서 제일 멀러 떠나가 있고...."

 

기어이 발그레한 뺨으로 눈물이 흘렀다.

 

"저 이제 그만 마셔야겠어요!  이러다 진짜 주정하겠어요!"

 

"해요!   그리고 오늘이 지나면 잊어줄테니!"

 

그의 말에 의아스럽게 그를 바라보았다.

 

"당신은요!  제가 여태까지 만났던 사람들과는 많이 다른거 같아요.  뭐랄까?  뭐든지 이해한다는 표정이 왠지 마음에 안들어요! "

 

"그런 말은 처음 들어보는걸요"

 

"기분 나쁘셨다고 해도 사과는 안할래요!"

 

"사과할필요는 없어요!

 

그러나 민철의 마지막 말은 듣는이 없이 허공으로 흩어졌다

 

 

 

어느세 잠이 들었던 걸까?  눈을뜨니 침대위에 누워있는 자신과 그옆에 쭈그리고 앉아 졸고 있는 그가 보였다.

 

그가 날 여기로 옮긴걸까?  시간을 보니 7시가 조금 넘어 있었다.

 

숙취로 인한 두통으로 신음이 비집고 나왔다.

 

잠시 그대로 앉아 있자니 이 집의 남매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말끔한 모양이 어느세 씼고 옷을 갈아입었나보다.

 

"일어났네?  엄마가 해장국 맛있게 끓이셨대!  얼른 일어나서 씻고 아침먹자!"

 

그까지 깨워서 씻고 아침을 먹은뒤 집으로 돌아온 지수는 침대에 쓰러지듯 누워 모자란 잠을 자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