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디게만 흐르던 시간이 가고 이제 형의 생일을 알리는 자정의 순간이 다가왔다.
몇 테이블의 손님들이 있었지만 이미 가게 웹사이트와 입구에 쥔장의 생일을 알린터라 오히려 그들은 형의 생일 축하를 하려 기다리고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홀 중앙에 테이블을 붙였다.
하얀색 테이블보가 깔리고 주방장 아주머니의 야심작 대형 케잌이 등장했다.
3단으로 장식된 그 케잌은 주방에서 홀로 옮겨지는 내내 손님들의 환호를 받았다.
그도 그럴것이 하얀 생크림이 겹겹이 발린 다음 장미꽃 모양으로 장식된 대형케이크는 우리가 영화에서나 봐왔던 웨딩케이크 처럼 우아하기 그지없었기 때문인데 가장 멋진 건 맨 위에 아주머니의 크림으로 쓴 글때문이다.
Happy Day
케잌을 보던 우리 모두는 아주머니의 센스있음을 기뻐했다.
그래 오늘은 형의 생일이라기 보다도 행복한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날이길 우리 모두는 바랬던 거였다.
그외에도 맛있는 과일과 먹거리가 세팅되었고 우리모두도 앞치마를 벗어던지고 온통 하얀색일색의 생일축하객의 모습이 되었다.
아마추어 동영상 동호회에서 자칭 맹활약중인 웨이터 장형이 디지털 캠코더를 들어온 바람에 모두 들떠있었다.
뒤늦게 바를 정리하고 웅주형과 sunny누나가 나왔다.
드디어 show time.
그간 틈틈히 연습해온 생일축하노래를 불렀다.
우리 가게 모두가 참여한 이 생일축하노래를 들으며 형은 거의 울뻔했다.
무반주 아카펠라를 흉내낸 우리의 노래는 먼저 낮은 목소리의 남자들이 아주 느리게 Happy birthday to you를 반복하고 ,곧이어 여자들이 부른 후에는 거의 광란의 박수와 함께 생일축하노래를 3회 반복하는 거였기에 형은 너무많이 웃어서 눈물이 흐른거였다.
가게에서 파는 것 중에 가장 향이 좋고 맛이 좋은 샴페인이 시원한 소리를 내며 터졌고 이 때 형이 자신의 생일을 축하해준 것에 대한 한 말씀을 하겠다고 자청해서 일어났다.
"아, 여러분 감사합니다. 40살이 되면 갑자기 확 늙은이가 된 것 같을까봐 어젯밤에 한 잠도 못잤슴더. 하지만서도 그런 걱정을 보고 사서 걱정한다고 하는게 맞는가 봅니다.
지금 가슴이 너무 벅차가가 좀 떨리기 까지 하지만 서도 할말은 해야 안합니꺼?
정말 우리가게 식구들 너무 감사합니데이. 오랜 시간 같이 해주고 너무도 성실하게 일해주고 마, 지가 다 알고있습니다. 아마 세상 어데를 가도 우리 가게 식구같은 사람들은 없을기라예. 지가 이렇게 복많은 사람입니데이.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이번에 김회장님 작고하시고 지가 독일에 안갔습니꺼?
거기서 참 많은 생각을 했습니데이. 이 건물을 짓다가 회장님을 알게되고 그 분이 베푸신 이유없는 선행에 지가 당첨되는 행운을 얻어가가 부족한 지가 이 멋진 건물의 사장이 된거 아닙니꺼? 독일에 가서 농장에 앉자가가 인생에 대해 생각해 봤심데이.
사는 게 뭘까, 어떻게 사는 것이 옳은 것일까 하고 말입니데이.
가슴을 치고 깨달은 것 중에 하나는 인생은 한번뿐이라는 거였슴더.
맞심니더, 우리 모두가 아무리 잘나고 못나고 해도 공평하게 딱 한 번 산다 이말인기라예. 그래서 지 결심하나 했다 아닙니꺼?
내 나이 마흔이 되면서부터는 절대로 망설이는 삶은 살지않을거라고 말입니다.
오늘은 제 마흔살 생일이기도 하지만 지 맘속에선 다시 태어난 날로 생각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여기 제가 가장 아끼는 가게 식구들 앞에서 제 결심을 먼저 실행에 옮기는 것이 도리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닙니꺼? 거기, 마 sunny 니 잠깐 일어나 보거래이."
맞은편에 앉아있던 누나가 얼덜결에 일어났다.
뜻밖의 상황에 나와 미은이를 포함한 모두가 어안이 벙벙했다.
뭔가 우리의 계획과는 조금씩 멀어지는 거 같았다.
"미스터지 갑자기 , 날 왜..? "
형은 들고있던 삼페인 잔을 내려놓았다.
"여러분, 잘 아시지예? 제 부모님 시인이십니다. 지가 책읽는 건 억수로 좋아하는데도 변변히 시 한구절 못외운다 아닙니꺼. 근데 유일하게 지가 완벽하게 외우는 시가 딱 한개있는기라예. 우리 부모님 신데 함 들어보이소.
언제부터였을까? 그 곳에 있었던 건.
내생에 첫날부터 만나길 기원한 당신
목이 마르다.
이유를 묻는 네게
난 한잔의 눈물밖에 줄게 없구나.
맨발로 달려온,
한 밤에 구르듯이 내게로 온 너.
너의 오른손이 너를 말한다면
난 오늘,
너의 왼손에 우리를 말하고 싶다.
한번도 말하지 않았기에,
한사코 말할 수 없었던,
한 번도 잊지못한 조각.
사랑,그 이유는 우리"
모두가 아무 소리를 내지않고 있었다.
그 시였다. 형이 말했던.. 사랑 그 이유는 우리.
이밤 형이 그 시를 우리에게, 아니 누나에게 들려주었다.
적막함을 깬 건 형이었다.
웅주형은 누나 곁으로 걸어갔다.
형은 누나의 손을 잡고는 바지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들었다.
그건 반지였다.
우리가 준비한 커플링이 아닌 아주 반짝이는 광채를 내는 청혼반지였다.
손님들 마저 아무 소음도 내지않았다.
누나의 눈에서는 눈물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 눈물은 깨진 유리잔의 파편처럼 내 마음을, 어쩌면 누나와 형의 스토리를 짐작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우리 모두의 가슴에 박혔다.
제발, 누나가 거절하지 말기를.
어느새 미은이는 내 손을 잡고 바르르 떨고있었다.
형은 이내 손을 잡은채 무릎을 꿇고있었다.
"Sunny야, 난 이제 마음속에서만 널 끌어안고는 몬 살겠다. 니랑 내랑 안게 몇 년이고 이래 같이 지내온게 얼마고? 시간이 마냥 있는것만은 아닌 걸 내 이제사 알았다. 그래. 내 무심한 놈이고 못난 놈이다. 곁에 널 두고 이렇게 이쁜 널 두고 그냥 바라만 보는 사내도 아닌 놈이다. 늦었지만 기회를 도고. 우리 부모님 시지만 정말 내 맘같은기라 . 무슨 이유가 필요하겠노? 사랑하는데 우리 서로 사랑하잖아, 안그러나? 니도 날 사랑하는거 내 안다.
이 가시나야. 오늘 내 청혼 니 거절해도 상관없대이.
어차피 오늘 말 몬 했으면 시간은 또 흘러갔을거다 , 이 말이다.
니 거절하고 싶음 거절해라. 난 내일도 모레도 될때까지 해 볼끼다.
이거 다 낼 위해 그러는 기다. 후회없이 살고싶어서 말이다. 이제 대답해 본나.
나랑 한 이불 덮고 함 자 볼래? 내 운동 많이 해 가가 니 죽여줄수 있대이?"
모두가 숨도 못쉬고 있다가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푸하하 소리를 내며 울다가 웃은 건 오히려 누나였다.
파도가 치듯 여기저기서 웃음이 번져나왔다.
서있던 누나는 쓰러지듯 의자에 앉아 테이블을 두드리며 웃었다.
가게 식구들도 자지러지게 웃었다.
한 참을 그러던 누나가 냅킨으로 눈 주위를 닦아내며 작은 한숨을 골랐다.
"후, 미스터지.. 난 …"
그 때였다.
"언니!"
바람을 가르며 뭔가가 눈앞으로 지나갔고 반사적으로 sunny누나는 자신에게 향해져 오던 것을 잡았다.
미은이가 던진 부케를 엉겁결에 받은 거였다.
"언니, 아저씨가 그러잖아요. 후회하지 말자고요. 언니… 대답하세요. 네?"
누나의 눈빛이 다시 흔들리고 있었다.
아직도 무릎을 꿇고 있었던 웅주형의 얼굴에도 긴강이 감돌았다.
"저기, 난 말이에요. 정말 오래전부터 미스터 지랑 한 이불 덮고싶었거든요? 모두 축하해 줄꺼죠? 웅주씨 내 대답은 yes에요. "
모두가 자리에서 일어나서 서로를 얼싸앉았다.
손님들도 우리의 테이블로 와서 두 사람의 등을 두드려 주고 진심으로 축하를 했다.
드디어 오랜 기다림의 결실이 맺는 날이었다.
미은이와 나도 덩달아 끌어안고 기뻐했고 급기야 웅주형은 그 튼튼한 팔로 누나를 번쩍 안아서 가게를 3바퀴나 돌았다.
마음을 졸인만큼 행복하게 느껴졌다.
우리가 준비한 것과는 조금은 다르게 풀렸지만 그 끝은 예상밖의 쾌거인 셈이다.
어느 정도 진정된 후에 선물을 개봉한 형, 그리고 누나는 우리가게 식구 모두를 실눈을 뜨고 째려봤다.
거기엔 웨이터 장형이 선물한 야한 커플 속옷과, 주방식구들이 선물한 커플 여행권, 그리고 다른 웨이터 형들이 준비한 사진촬영권과 우리가 준비한 커플링까지..
모두 두 사람을 위한 것들만이 즐비했기 때문이었다.
"병근이랑 미은이 니들이 다 꾸민거 맞재?"
형은 억지로 인상을 쓰며 말했지만 너무도 행복해 보였다.
"어머, 반지 넘 이쁘다. 나 이거 끼고 다닐께. 미은아."
"뭐? 뭐란 말이고? 써니 니 내가 준 건 어쩔건대?"
"웅주씨 왜그래요? 아기같이. 병근이랑 미은이가 선물한 건 오른손에 끼고 이 청혼반지는 왼손에 끼면되잖아요."
형은 얼굴까지 빨개져서 웃었다.
주름살 뒤로 새신랑의 이미지가 오버랩되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캠코더에 영상을 잡던 장형이 '아트다, 아트'를 연발하며 오케이 사인을 보냈다.
미은이가 귓속말을 한다
"병근오빠, 우리 성공한 거 맞지? 우리도 복 받을거야. 늙수그레 커플 구제했으니, 그치?"
나도 그 애에게 속삭였다.
"당연하지, 나중에 난 더 멋지게 프로포즈할께. 참 , 운동도 열심히 하고."
눈이 동그래진 미은이는 몰라몰라를 연발하며 날 때렸다.
사랑하는 사람들 곁에 있으니 내 몸 전체가 사랑이 되는 것 같았다.
그래. 이유가 어디있을가?
그저 사랑하는 것만이 우리이고 이유인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