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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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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usty neil


BY 이마주 2004-07-01

 

지난 밤에 미은이와 마신 칵테일들을 정리하고 바를 오픈할 무렵 써니 누나가 들어섰다.

 

"병근아? 이메일 봤어? 미스터 다음주에 돌아온대. 정말 다행이지 않니?"

 

웅주형에게서 다음주에 돌아온다는 이메일을 받고 가장 기뻐했던건 내가 아닌 sunny 누나였다.

사람 몫을 하던 누나가 힘에 벅찼다기 보다는 형을 진정으로 걱정해서 였을거였다.

실로 오랜만에 누나의 웃는 얼굴을 보니 마음이 따듯해진 기분이었다.

 

이메일을 받고 좋아하던 누나가 또다시 바빠진 무리의 넥타이 부대가 들어와서였다.

6,7 정도의 사람들이 들어왔고 바에서 가장 룸에 그들은 앉았다.

하루 매상을 뛰어넘을 정도의 양주가 주문되었고 그들은 약속이나 마니티를 먼저 달라고 성화를 부렸다.

써니누나가 익숙한 솜씨고 마티니를 만들어 주었고 미은이가 서빙을 하려했지만 왠지 남자들만 있는 룸으로 가는 것이 싫어져서 내가 일을 맡았다.

 

방 안에는 사람을 중심으로 뭔가를 축하하는 분위기가 무르익어 있었다.

지나치게 예의 바른 모습들이었지만 들떠있던 그들의 분위기는 어쩌면 내가 30대가 되었을 뭔가 남자로서 이루어 모습을 미리 보는 , 데자뷰에 가까운 인상이었다.

 

중에 유일하게 웃지 않고 있었던 사람은 무테안경을 나이가 들어보이는 남자였다.

 

차.갑.다.

 

남자는 멀리서 서빙을 하고있던 나를 오싹하게 만들만큼 서늘한 기운이 감도는 다소 건방져 보이는 표정으로 말없이 술을 마셨다.

 

룸에서 나온 뒤꽁무니를 미은이가 쫓는다.

"오빠, 오빠가 서빙해? 혹시 나를 보호하려는 흑기사 정신 이딴 거아냐?"

큭큭 거리며 웃는 미은이의 볼을 살짝 꼬집었다.

 

" 그런 말이 되는 소리를, 당연하지. 조만간 알바 그만두게 할거야."

 

"? 싫어, 여기가 좋은데.. 알바를 해야 하루종일 오빠를 보지, 맘도 모르면서."

 

설명을 듣기도 전에 미은이는 팔랑, 바텐에 가더니 sunny누나 뒤에서 입을 내밀고 글라스를 정리한다.

뭘해도 귀여운 미은이…

 

손님들 말고도 하나둘 단골손님들이 찾아오고 바는 활기를 띄고 있었다.

웨이터 장형이 말없이 손님들을 서빙하고, 누나는 단골손님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한편 부지런히 쉐이킹을 했다.

어쩌면 웅주형이 만들어 놓은 바의 분위기는 누가 찾아와도 쉽게 단골이 되는 편안함을 가지고 있는 듯이 보이기도 했다.

농담처럼 형이 말했던 '진정한 카리스마는 부드러움에 있다'라는 이런거구나 싶었다.

 

홀과 룸이 정신없이 돌아가고 유난히 생일이나 기념일이 많은 날이었다.

분위기가 무르익어갈 무렵 아까 차가운 남자가 나와서 바텐에 앉았다.

주인공인 듯한 남자가 이미 나왔는데도 룸에서는 뭐가 그리 신이나는지 계속 주문이 끊이지 않고 있을 때였다.

 

"지사장은 아직 돌아왔소?"

 

난대없이 그는 웅주형의 부재를 확인했다.

 

"어머, 미스터지를 아세요? 지금 사정이 있어서 외국에 있는데 누구신지 말해 주시면 나중에 오는 대로 말씀드릴게요."

 

Sunny 누나의 답을 기다린게 아니라는 그는 주머니에서 까만 담배케이스를 꺼내어 말없이 입에 물었다.

 

"러스티 네일을 부탁하오."

 

그의 담배가 타기 전에 누나는 호박색의 러스티 네일을 가만히 코스타 위에 내려놓았다.

 

-러스티 네일(Rusty Neil)

위스키 30 ml, 드람뷔 15 ml

직접넣기(Build).

얼음을 2-3개 넣고 가볍게 젓는다.

남성적인 체취를 느끼게 하는 호박색 한 잔 '러스티 네일'은 스카치 위스키와 이 술을 베이스로 한 리큐르와 드램브이가 합쳐진 것, 위스키 애호가에게는 빠뜨릴수 없는 식후용 칵테일이다.

러스티 네일이란 '녹슬은 발톱'의 뜻.

 

그는 칵테일을 가만히 음미한 참을 말없이 글라스의 가장자리를 손가락 끝으로 어루만졌다.

그를 축하하는 자리 같았는데 그는 오히려 상처를 입은 날렵한 표범인양 조용히 앉아있었다.

이런 분위기에 오래 있으면 아직도 마음이 불편해졌다.

웅주형의 말에 따르면 좋은 바텐더는 손님이 어떤 상태이거나 분위기를 깨지 않을 정도로 자신이 '물'같아야 한다고 했지만 무거운 분위기를 견디기 어려워 슬그머니 다른 테이블로 기대어 섰다.

 

" 말이오. 이렇게 빨리 내가 원하는 가질 있을 줄은 몰랐소. 오래 기다렸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오히려 반대의 기분에서 빠져 나오기 어렵군. "

 

그는 계속해서 말을 한다.

 

"그런데 이런 들어본 있소? 복병, 그래 그게 가장 적당해. 나의 성공에 가장 많은 박수를 보내 알았던 사람이.. 이렇게 엉망으로 만들어 버릴 줄은 나도 몰랐지. 누굴것 같소?"

 

"누구였나요?"

 

곤란한 질문에는 질문으로 답하는 지혜를 누나는 알고 있었다.

남자는 넥타이를 느슨히 매고 다시 입에다 러스티 네일을 털어 넣고는 굶주렸다는 듯이 다시 담배를 물자마다 숨이 막힐 듯이 깊이 연기를 들이 마셨다.

조명속으로 가느다란 푸른 연기가 소용돌이 치며 공중으로 사라졌고, 이제 바텐에는 남자와 누나외에는 있지 않았다.

 

" 아내요. 내가 꿈꾸던 순간이 오는 보더니 미소를 짓더군. 첨에는 그게 나에 대한 축하인 알았소. 문득 일어나 보니 아내는 잠도 자지 않았는지 침대 발치에서 바라보고 있더군. 이렇게 손을 뻗어 끌어 당기려는 손에 사람이 말이요."

 

그는 눈앞에 그의 아내가 있기라도 것처럼 담배 연기가 올라가는 허공 속으로 팔을 들어올려보였다.

살짝 중심을 잃었는지 그는 의자에서 조금 자리를 고쳐 앉았다.

 

"사진 장을 쥐어주더군. 사진 속에는 아내와 어떤 남자가 다정히 포옹을 하고 있었소.안경을 끼고 다시한번 사진을 봤지. 남자는 나의 친구였소. 나와 전날 까지도 골프를 쳤던. 아무일도 아닌 처럼 아내는 말하더군. '이제 우리는 끝났어요. 당신이 원하는 줬고 이제 당신이 나에게 인생을 돌려줄 차례에요', 라고 말이요. 재미있지 않소? 우리는 주말에도 사랑을 했는데 말이야."

 

여자가 어떤 여자인지는 없었지만 보통의 상식으로는 짐작하기 어려운 여자인것 같았다.

남편이 무언가 성공한 , 자신의 불륜의 사실을 한장의 사진으로 당당히 보여줄 있는 그녀는 어떤 사람일까?

사람이 그렇게 잔인할 있다는 알아 간다는 인정하기 싫은 일이었다.

그래서 였을까? 그가 상처받은 표범처럼 느껴진 .

 

"커피를 드릴게요."

Sunny누나는 진한 블랙커피를 앞에 내놓았다.

커피를 바라보던 그는 웃었다.

 

"지금 많이 지치신 것 같아요. 조금은 힘들어 하셔도 아무도 눈치채지 못할 수도 있지않을까요? 누구나 한 번에 모든 걸 가질 순 없다잖아요?"

누나는 역시 잔잔한 미소를 지으며 그를 바라 보았다.

 

"당신은 진짜 좋은 바텐더로군. 그래, 맞아. 다 가질 순 없지. 나의 마지막이 궁금하지 않소? 아내는 , 아니 이제는 아내였던 사람은 나의 친구, 아니 이젠 그녀의 새로운 남편이 사람과 유럽으로 떠났소. 나에게 모든 걸 주고 말이요. 그래서 난 그 사람을 잡을 수가 없는거요. 난 아내를 사랑했지만 그 사람이 나에게 줄 수 있는 지금 역시 사랑한거니까."

 

그와 같이 들어왔던 다른 사람들이 밖으로 나왔다.

 

", 여기 계셨습니까? 오늘은 일찍 집에 못들어가십니다. 자리를 옮기시죠?"

 

마지못한 표정으로 그는 일어섰고 담배케이스를 집어 넣으며 다른 주머니에서 한장의 명함을 꺼내 내려놓았다.

 

"지사장에게 이걸 주시오. 이상의 줄다리기는 없다고. 지사장에게 곳이 얼마나 소중한지 나도 안다고 말이요. 그도 이젠 한가지는 가져야 하지 않겠소? 그리고 당신같은 여자와 함께 일하는 그가 부럽군. 커피 고마웠소."

 

미은이는 기다렸다는 듯이 그의 명함을 집어들었다.

 

-다운 커뮤니케이션 CEO 종범 

 

"언니, 이 사람을 아세요?"

 

명함을 건내들고 누나는 웃지않았다.

 

"음, 알고 있어. 미스터 지를 늘 질투하던 사람, 자신이 최고가 아니면 안되는 사람이라고 들었었어. 그치만 이젠 그 게임도 끝난 것 같다. "

 

어렴풋이 그가 박이사였다는 걸 알게됬다.

최고이지만 웅주형을 늘 의식하고 살아왔던 그.

능력있던 그가 김회장의 죽음으로 최고가 됬던것이지만 결국 그는 사람에게 실패하고 말았다. 그것도 아내에게.

누나는 그걸 알고 있던 거였나보다.

 

인생의 반려자를 잃고 난 그는 다른 평범한 남자와 다르지 않았다.

처음부터 그 사람이 자신도 감정이 있는 걸 인정했더라면 어떠했을까?

분명히 웅주형과도 의형제처럼 지낼 수 있었을텐데..

보지도 않고 막연히 악인처럼 비춰진 그의 이미지가 조금은 수정되야 할 듯하다.

그는 명예를 얻었을 수는 있지만 사람을 잃었으므로 그에게 남은 것은 무엇일까?

사람속에 살고 있는 나는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