웅주형은 검정색양복을 입고 소파에 앉아있었다.
불도 켜지않은 채.
언제나 형은 검은 양복을 입었었지만 검정 타이까지 매고있는건 낯선 모습이었다.
갑자기 머리끝까지 쭈뼜서는 불길한 기분은 낮술이 남아있던 취기마저 단숨에 가시게 할 만큼 강한 것이었다.
"형?"
대답이 없었다.
카우치에 깊숙히 앉아 양손을 깍지 끼고 있던 형은 조금도 흔들림이 없이 바닥을 응시한 채 앉아만 있었다. 마치 쇼윈도우 남성복 매장의 마네킹처럼.
맞다.
이 느낌은….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기억.
이것은 죽음에 대한 이미지인 것이다.
"형, 불 켤까요?"
그제서야 형은 소파에 머리를 기대고 얼굴을 들었다.
"잠깐만 , 그냥 있자."
"그래요. 저 방에서 책읽고 있을게요."
뒤돌아 서는 나에게 형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병근아, 김회장님이 오늘 돌아가셨다."
난 돌아볼 수 가 없었다.
형은 지금 울고있을테니까.
웅주형의 목소리를 통해 난 형이 얼마나 가슴이 갈갈이 찢어지고 있는지 알 수 있엇다.
엄마가 떠올랐다.
엄마가 돌아가셨을 때 난 많이 울었다.
오히려 동생은 어려서 그런지 어리둥절해하고 무서워 했었지만 아버지와 내가 있었기에 그 녀석은 울다가도 웃고 그랬다.
하지만 그 때 난 처음으로 마음이 찢긴다는게 무었인지 알게되었다.
엄마가 돌아가시기 전 날, 난 엄마와 사소한 문제로 다투었고 처음으로 엄마에게 반항이라는 것을 했다.
수업이 끝나고 학원으로 가는 대신에 난 친구들과 노느라 새벽이 되서야 집으로 들어갔고 집으로 돌아가자마자 엽집아주머니가 자고 있는 내 동생을 업고 있는 걸 봤다.
엄마가 갑자기 심장마비가 와서 아빠가 응급실로 데리고 가셨다는 말을 해주었다.
한 번도 엄마가 그렇게 갈 수 있다는 걸 난 알지 못하고 있었다.
엄마와의 마지막 대화가
"나 좀 그 냥 내버려둬. 제발."
이었던게 엄마를 죽인 것만 같아서 난 병원으로 가는 택시안에서부터 줄 곧 울고있었다.
그렇게 엄마와 화해의 한 마디도 못하고 헤어진 것이 난 많이 마음이 아팠고 미안했다.
나를 너무나 사랑했던 엄마는 날 영원히 내버려두고 가신것이었다.
웅주형에게는 김회장님이 인생의 의미를 가지게 해 준 분이었을 거엿다.
형도 이렇게 회장님이 돌아가실 줄은 몰랐겠지….
아마 엄마에게 반항한 것이 마지막이 된 것이 내 인생의 가장 큰 상처가 되었던 것처럼, 형도 꿈을 물려주기 위한 다음 행운아로 나란 아이에게 기회를 주고 그 것이 결실을 맺어 김 회장님께 보여드리고 싶었을 것이었다.
왜 부모는 또, 은인은 내가 조금 더 성장하고 , 좋은 사람이 될 때까지 기다려 주지 않는 것일까?
도대체 그렇게 무한한 사랑을 주고도 왜 되돌려줄 기회조차를 사양하시는 걸까?
난 모르겠다.
엄마의 죽음으로 아버지와의 새로운 관계로 들어섰던 것이 재혼이라는 사건으로 깨어지게 되었고 만약 또 아버지가 무슨 일이나면 얼마나 후회할까를 알면서도 쉽사리 화해가 되지않았었다.
하지만 오늘 형의 모습은 나중에 내가 아버지와의 매듭을 풀지못하고 느끼게 될 감정의 예고편을 보는 기분이었다.
발끝을 쳐다보고 있는데 나도 모르게 눈물이 한 방울 양말 위로 떨어진다.
면양말 위로 넓은 젖은 면을 만들어 가는 걸 보고있자니 마음이 쓰라렵다.
"병근아. 형이 말이다… 아무래도 좀 자리를 비워야 할 것 같다. 니 형없어도 써니누나 도와가가 잘 할 수 있제?"
"웅주형, 어느 가려구요?"
"삼일장 끝나면 회장님이 유언으로 화장하라 하셧다고 한단다. 그리고 독일 미스터 부터바우 묘 근처에 모셔달라고 하셨단다. 그리고 나보러 그 일을 하라고 하셔다고 하드라. 마 암말 안 하셨어도 내가 하고 싶은 일이기도 하고… 내일 아들이 온다코 하니까네 아들하고 나하고 독일에 가야 할거고 박이사가 남아서 회사일을 돌봐야할거같다. 그리고 일이 다 끝나면 내 거기서 며칠 지내고 오고싶다. 올 여름에 회장님이랑 같이 가기로 미리 스케줄까지 다 맞춰놧는데 회장님이 먼저 선수치셔따 아이가? 허 참…."
형은 말을 잇지를 못한다.
이럴때 내가 여자라면 얼마나 좋을까?
형을 가서 꼭 끌어안아주고 실컷 울수있게 해주고 싶었지만 남자라는 인간들은 이럴때도 고작 ,
"형, 걱정하지말고 다녀오세요. 그리고 가서 눈 좀 붙여요."
이런 말을 하는 것이 다이니 말이다.
"그래, 그러자. 참 병근이 니 미은이 잘 데려다 줬나? 니 낮술 먹었나? 이 냄새가 모고?"
형은 억지로 웃음을 지어보이려 했지만 형의 어깨는 더 이상 처질 곳이 없을 만큼 힘이 빠져있었다.
결국 한시간도 넘게 샤워기를 틀어놓고 욕실에서 나온 이후로도 형은 잠을 자지 못하고 있었고 그런 형을 걱정하면서도 오히려 잠이 쏟아지는 내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졌다.
웅주형이 떠난 자리는 참 컸다.
단지 형만 그 자리에 없는 거였는데도 가게가 텅빈거 같았다.
독일에서 형은 그냥 아무것도 안하고 부터바우씨의 농장에서 멍하고 있다고만 했다.
차라리 그렇게 하는게 덜 슬프다고 하면서 말이다.
나까지 마음이 한 없이 바닥으로 곤두박질 쳤지만 미은이가 있음으로 해서 난 매일매일 웃으며 지낼 수가 있었다.
웅주형에겐 조금 미안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