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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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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만날 사랑 43


BY 제인 2003-11-24

미연은 명민이 가르쳐준 병실로 찾아가 조용히 문을 열고 들어갔다.

병상에 누워있는 영준의 어머니 곁으로 다가갔다.

영준의 어머니는 고통스러운지 이마를 찌푸리고 눈을 감고 있었다.

한때는 무척 고왔을 자태였지만 암치료를 받은 탓에 머리칼도 빠지고 무척 여윈 모습이었다.

미연은 바싹 마르고 병색이 완연한 영준의 모친을 보자 안스러워 눈물이 핑 돌았다.

'나이들어 저런 큰 병이 든데다 아들은 구속되고 언론에서는 과거 행실까지 들먹였으니 그 고통이 얼마나 클까...내가 벌인 일때문에 기자들한테 그렇게 시달리기까지 하셨으니...'

미연은 영준의 어머니 옆에 서서 내려다보며 훌쩍거렸다.

영준의 어머니는 한쪽 눈을 조그맣게 뜨고 미연을 올려다 본다.

"...누구야....?"

"저...저는....영준씨 회사에서 왔어요...문병왔어요..."

"가."

"시키실 거 있으면 제게 말씀하세요, 제가 여기 있기로 했어요."

"그냥 가라고...으흥.........."

영준의 어머니는 통증이 오는지 고통스러운 신음소리를 내었다.

간병인이 다가와 상태를 살폈다.

미연은 어머니의 차가운 태도에 몸둘바를 몰랐지만 그대로 남아있기로 했다.

영준의 어머니가 잠이 들자 미연은 간병인에게 물었다.

"여기 하루종일 계시나요?"

"예."

"밤에도요?"

"예, 24시간 지켜드려야죠."

"너무 힘드시겠어요."

"직업인걸요. 그런데 이 환자분께서는 가족이 없으신가봐요? 어째 아무도 안오시는지... 아드님이 계셨던 거 같은데...?"

"모두들 일이 바빠서요...이제부턴 제가 와있을거예요."

"그럼 다행이네요. 그래도 가족들이 들여다 보셔야지, 환자분이 얼마나 쓸쓸하시겠어요..."

"네."

미연은 영준의 어머니가 혼자서 외롭게 투병생활을 해왔다는 생각을 하니 또 불쌍해져서 눈시울이 붉어졌다.

다음날부터 미연은 병원으로 가서 영준의 어머니의 곁을 지켰다.

어머니는 아주 조금만 먹어도 토하곤했다.

미연은 그때마다 따뜻한 수건으로 얼굴과 손을 닦아드렸다.

영준의 어머니는 잠이 들었다가 "영준아..."하며 잠꼬대를 한다.

미연은 영준이 어쩌고 있는지 걱정이 되었다.

눈물이 나와 훌쩍거리며 손수건으로 닦고 있는데 누군가가 뒤에서 어깨를 건드린다.

돌아보니 낯선 여자였다.

미연은 눈물을 닦으며 "어떻게 오셨어요?"하고 물었다.

그러자 그 여자도 미연을 보고 "누구신가요?"하고 묻는다.

"저는 박영준씨 회사에서 일하고 있어요."

"그래요? 첨 뵙겠습니다. 저는 영준이 누나예요."

"안녕하세요?"

"잠깐 나가서 얘기 좀 할까요?"

영준의 누나는 미연을 데리고 병실밖으로 나갔다.

"간병인은 어디 갔어요?"

"점심먹고 오라고 했어요."

"영준이 소식은 없나요?"

"아직요..."

"어머니 상태는 어떤 거 같아요?"

"좋지 않으세요....암세포가...다른 곳까지 퍼져서... 이젠 가망이 없다고..."라고 말하며 또 눈물을 흘렸다.

영준의 누나는 한숨을 한번 쉬더니 미연을 보고 얘기한다.

"내가 여기 왔었다는 얘기는 아무한테도 하지 마세요. 어머니가 어떤지 잠깐 보러온건데...헌데, 여기 계속 계실 건 아니죠?"

"계속 있을 거예요."

"그럼 혹시라도 무슨 일 있으면 제게 연락주시겠어요? 여기요."

영준은 미연에게 전화번호를 적어주었다.

"네, 알겠습니다."

"그럼 이만..."

"안녕히 가세요."

영준의 누나는 돌아서서 가려다가 잠시 멈춘다.

미연이 무척 슬퍼하는 것이 의아했기 때문이다.

'영준이하고 사귀는 여잔가?'하는 생각이 들어 다시 돌아서서 미연에게 물었다.

"성함이 어떻게 되시나요?"

"김미연이라고 합니다."

"김미연...? 김미연이라고 했어요?"

"네."

"혹시 전에 영준이랑 사귀었던....?"

"........"

"맞죠?"

"네."

"그랬군요...어쩐지..."

미연이 겸연쩍은 얼굴을 하자 영준의 누나는 "제가 어떻게 미연씨를 아냐면요..."하며 지난 이야기를 한다.

두 사람은 복도옆에 길게 놓여있는 벤치에 앉았다.

"그때가 겨울이었는데, 눈이 많이 온 날이었어요. 전 방에서 늦게까지 그림을 그리고 있었죠.  저는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예요."

"예..."

"자정이 훨씬 넘었던 거 같은데...밖에서 쿵 소리가 나는 거예요. 나가봤더니 영준이가 현관에 쓰러져 있더군요. 몸은 꽁꽁 얼고 몹시 취해서. 방에다 데려다 눕혔는데....그리고는 일주일을 앓더군요. 열이 너무 많이 나서 의사를 왕진시켜야 했을 정도였죠. 몇일 후 친구가 문병을 왔더랬어요. 명민이라고...둘이서 어려서부터 단짝이었죠... 영준이가 하도 열이 많이 나서 환기시켜야하니까 방문을 열어두라고 하고 나는 내 방에 들어가 있었어요. 조금 있으려니까 밖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리더군요. 무슨 흐느끼는 소리같은게. 뭔가하고 방문을 열고 내다봤죠. 영준이의 울음소리였어요. 뭐가 슬픈지 크게 울더군요. 그리고 '미연이를 사랑했었다'는 그런 소리가 들렸어요. 난 세상에 태어나서 내 동생이 그렇게 슬피 우는 건 처음 봤어요. 도대체 미연이가 누군데 내 동생을 저렇게 슬프게 만들었나...화가 났었죠. 그래서 그 이름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는 거예요. 미연씨, 그때 영준이 버리고 갔었나봐요?"

미연은 고개를 숙이고 아무말 하지 못한다.

"지금 다시 만나는 거예요?"

".........."

"내 동생...다시는 가슴아프게 만들지 말았으면 좋겠군요."

누나는 벤치에서 일어나 미연을 뒤에 남겨두고 사라졌다.

미연은 혼자 남아 또다시 훌쩍였다.

 

한편 유학선은 언론에서 예상치 못한 사실을 떠들어대자 당혹하였다.

그날 저녁 N방송의 뉴스가 방영된 이후 각 언론사 기자들은 앞다투어 그 고관대작의 정체가 누구였는지 알아내려고 수소문을 하고 다녔다.

결국 어느 언론사에서 그것이 '유길상 전 상공부 장관'이라는 것을 알아내었다.

야당성향이 강한 신문들은 '최여인은 바람기획으로부터 재산을 빼돌린 것이 아니라 유길상 전 상공부 장관으로부터 거액의 재산을 물려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유 전장관은 청렴결벽하다는 뒷면에 축첩과 거대재산이라는 비리를 감추고 있었다. 그 재산은 일제때 조선총독부로부터 보호를 받았다. 유 전장관의 아들인 유학선은 현 여당의 당무위원으로서 여당의 친일 성향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실례이다."는 기사를 실었다.

여당에서는 발칵 뒤집혔다.

여당성향이 강한 신문에서는 "유학선은 대선을 앞둔 흑색선전의 희생양이다."라고 맞섰고 이후 '친일파 논쟁'에 불이 붙었다.

유학선은 총재실에 불려가 해명을 하기에 이르렀다.

"도대체 지금 정신이 있는거요? 대선이 몇달 안남았는데, 어쩌고 다녔길래 이런 기사가 터진거냐고? 지금 우리당이 친일파 잔당이라는 그런 소릴 들어야겠냔 말야!"

"그, 그건 다 정치적 음모입니다. 야당의 흑색선동이라구요."

하지만 언론은 점점 박영준 사건을 '유학선의 박영준 가족에 대한 원한갚음'으로 몰아갔고 유학선을 '친일파 집안의 자손'으로 낙인찍어갔다.

또한 유길상 이외에 박영준의 어머니와 관련있는 다른 고위층은 누구였는지까지 캐어가는 분위기에 휩싸이자 그 당사자들의 집안에서는 심사가 뒤틀릴대로 뒤틀리고 말았다.

그리하여 유학선은 당내에서 미운털이 박히고 말았다.

유학선을 도우려했던 국세청의 관리 또한 조짐이 이상하자 일찌감치 발을 빼었다.

자기에게도 불똥이 튈까 두려워 박영준 건을 얼른 무마시켜버렸다.

그러자 검찰측에서도 더이상 수사를 진행시킬 수가 없게 되어버렸다.

결국 박영준의 공금횡령사건은 '단순한 착오였다'고 말을 바꾸어 종결짓고 말았다.

바람기획의 인수건 또한 무산되었다.

명민은 곧바로 미연에게 전화를 걸어 이 소식을 알렸다.

"어머니, 영준씨가 풀려났대요."

미연이 기쁜 소식을 전하자 영준의 어머니는 기뻐서 눈물을 흘리며 미연의 손을 꼭 잡았다.

"고마와...."

영준의 어머니는 평소 남한테 칭찬이나 감사의 말을 하는 적이 없는 매우 까다로운 성격의 여자였다.

그런데 미연이라는 낯선 여자가 찾아와 자신을 극진히 간병하는 것을 보고 감동하고 있었는데 거기에 영준이 풀려났다는 소식까지 들으니 기쁜 마음에 그녀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한 것이었다.

 

영준은 구치소에서 풀려나자 곧바로 병원으로 달려왔다.

병실로 들어서니 미연이 자신의 어머니 옆에 앉아 지키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미연씨..."

미연은 일어나 영준의 얼굴을 보았다.

반가와서 눈물이 왈칵 솟았다.

"고마와요...어머니 지켜줘서..."

명민도 영준의 소식을 듣고 병원으로 곧바로 달려왔다.

세 사람은 병실 밖 복도에 나란히 앉았다.

명민이 먼저 미연에게 묻는다.

"이번 일은 정말 극적이었어. 미연이가 무슨 수를 썼던 거 아니니?...그랬니?"

"아니, 뭐....."

미연은 미소를 띠며 볼을 붉힌다.

명민은 영준에게 말한다.

"영준아, 나 그동안 마음이 많이 괴로왔어. 정말 미안해."

"아냐, 네가 미안하긴...나라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는 걸."

"나, 곧 유학 갈 생각이다."

"유학이라니? 변호사 일은 어떻게 하고?"

"나, 이번 일 아니라도 내 전문분야에 회의를 많이 느끼고 있었어. 그래서 이번에 우리 회사에서 국제거래법 변호사 양성 프로그램을 실시하는데, 그거 신청했어. 미국 로스쿨에 가서 2년 동안 공부하고 오는 거야. 미국의 상법을 공부하고 돌아와서 미국 기업하고 거래하는 회사에게 법률자문해주는 그런 건데, 그쪽으로 바꾸려고 해."

영준과 미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언제 떠나는데?"

"이번 가을 학기부터 시작해. 적어도 8월 중순까지는 도착하도록 준비하고 있어."

"학교는 정해졌고?"

"UC 버클리 로스쿨로 가."

"그래, 너한테 잘 된 일이길 바란다."

이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어떤 나이먹은 신사가 병실 앞으로 걸어왔다.

박영준은 그를 알아보고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를 한다.

"오셨읍니까?"

"그래, 자네 이번에 고생이 많았네."

명민도 그를 알아보고 벌떡 일어나 깍듯이 인사를 한다.

"안녕하십니까, 김변호사님."

그 사람은 김준필 변호사였다.

박영준이 변호를 부탁했다 거절당했던 그 사람이었다.

"자네 잠깐 안으로 들어오게. 할 얘기가 있어."

영준은 명민과 미연을 남겨두고 김변호사를 따라 병실 안으로 들어갔다.

영준의 어머니는 아직 잠에서 깨어나지 않은 상태였다.

"내가 자네 변호를 맡지 않은 걸 너무 서운해 하지 말게."

"아, 아닙니다."

"자네 어머니가 가장 싫어하는 게 뭔지 아나? 바로 남들이 재산문제 가지고 왈가왈부하는 거야. 내가 자네 집안의 재산을 관리하고 있는 마당에, 그런데 나서서 좋을 거 하나도 없네. 변호사가 어디 나 하나야?"

"예, 이해합니다. 오히려 제가 경솔했습니다."

"어머니는 어떠신가? 의사 말로는 암세포가 다른 부위까지 퍼져서 회생이 불가능하다고 하더군..."

영준은 고개를 숙였다.

"마음의 준비를 해야할 것 같네..."

".....네."

"자네는 이만 들어가 쉬게, 그동안 고생많았을테니. 나는 기다렸다 여사님 깨어나면 할 얘기가 있네."

"네."

영준은 피로가 몰려왔다.

김변호사에게 인사를 하고 밖으로 나가 명민과 미연에게 집에 돌아가자고 청한다.

미연은 "저는 저녁때까지 있다 갈테니 먼저들 들어가세요."한다.

영준은 그러는 미연을 안아주고 싶었다.

어머니를 간호해준 고마움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동안 미연이 너무나도 보고싶었었다.

하지만 옆에 명민도 있고 해서 마음의 표현을 할 수가 없다.

영준은 "그러지 말고 우리랑 같이 들어가요."하고 미연에게 다시 권한다.

김변호사가 병실 문을 열고 나와 미연에게 말하였다.

"내가 지키고 있을테니 들어가세요."

세사람은 인사를 하고 병원을 떠났다.

명민이 운전을 하고 그 옆에 영준이 앉았다.

미연은 뒷자석에 탔다.

몇일을 구치소에서 지내느라 영준의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영준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미연은 영준의 어깨에 머리카락이 붙어있는 것을 보았다.

순간 명민이 한 얘기가 생각났다.

'꼭 해봐, 친자확인...'

미연은 영준의 머리카락을 살며시 떼어 손안에 넣었다.

가방에서 휴지한장을 꺼내 그 머리카락을 놓고 봉투모양으로 접어 가방에 집어넣었다.

 

김변호사는 영준의 어머니 최고은 여사가 깨어나자 물었다.

"좀 어떠십니까? 조금 전 영준이가 다녀갔습니다. 만나보셨나요?"

영준의 어머니는 고개를 저었다.

"피곤해 보이길래 들어가 쉬라 했습니다. 내일 다시 올겁니다."

"잘 하셨어요...."

영준의 어머니는 힘이 들어 말소리도 크게 내지 못하였다.

김변호사는 가방에서 서류를 꺼내 보여주면서 말한다.

"여사님의 유언장입니다. 전에 작성하신 그대로 두실 것인지, 아니면 무슨 변동사항이 있는지 말씀해 주십시요."

"내가 내일 당장 죽기라도 한다던가요?"

"항상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야 하니까요. 최종 유언장을 만들어 놓는 것이 자손들에게 가장 좋은 것입니다."

"흠....내 맘이 내일 또 변하면 어쩌고요?"

"그럼 앞으로 매일 오겠습니다. 매일 매일 맘이 바뀌는 대로 계속 고치죠, 뭐."

영준의 어머니는 웃음이 나왔지만 힘이 없어 제대로 웃지도 못하였다.

김변호사는 밤늦게까지 영준 모친의 옆을 지키고 있다가 돌아갔다.

 

영준은 다음날 회사로 출근했다.

미연은 당분간 어머니를 돌보겠다며 병원으로 나갔다.

장미래와 만들었던 음반은 이제서야 유통이 되었다.

첫날부터 물량이 딸릴 정도로 주문이 밀렸다.

음반출시 정지와 영준의 구속으로 부도 직전까지 갔던 영준의 회사는 아슬아슬하게 위기를 모면하고 다시 전처럼 정상적으로 운영이 되었다.

그날 오후 유선아가 영준의 회사로 찾아왔다.

그녀가 나타나자 모두들 놀라는 눈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

유선아는 박영준의 사무실로 들어갔다.

"오빠!"

박영준은 책상에 앉아 그동안 쌓여있던 서류들을 훑어보고 있다가 깜짝 놀라 그녀를 쳐다보았다.

"오빠, 미안해...."

선아는 문간에 서서 울음을 터트렸다.

영준은 일어서 그녀에게 다가가 부축해서 소파에 앉히려 했다.

"선아야...여기 앉아."

그러나 선아는 영준을 껴안으며 계속 운다.

"오빠, 우리 아빠 때문에 그런 일 겪게 한거, 너무 미안해..."

"이제 다 끝났어, 괜찮아."

"오빠 너무 보고 싶었어. 오빠 만나고 싶었는데 집에 갇혀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어."

"그래, 알아."

"우리 아빠 절대로 용서할 수 없어. 이젠 아빠 말 안들을거야. 계약 파기한것도 다 무효예요. 나 다시 오빠랑 같이 일할거야."

영준은 선아의 얼굴을 쳐다보는데 그 표정이 사뭇 굳어있다.

"그리고 오빠, 우리 빨리 결혼해요. 나 졸업할때까지 기다릴 필요 없어. 어차피 우리집에서는 반대하는 건데..."

"선아야, 난...그런 결혼 하고 싶지 않아."

선아는 놀라는 표정을 짓는다.

영준은 굳은 목소리로 이야기한다.

"선아야, 이젠 다 끝난 얘기야. 우리 결혼은 없었던 일로 하자. 난 너희 집에선 받아들여질 수 없는 그런 사람이란 거 잘 알잖아."

"그러니까 우리끼리 하자는거잖아. 그리고 오빠한테 그런 말 할 자격, 우리 아빠한테 하나도 없어요. 그렇게 따지면 나도 오빠랑 마찬가지야. 우리 엄마, 세번째 부인인거 세상사람들 다 알아."

"그게 아니라...선아야..."

"왜? 오빠 엄마랑 우리 할아버지랑 그런 관계였다는 것 때문에요?"

영준은 그 소리에 안색이 변한다.

영준이 가장 듣고 싶어하지 않는 이야기가 바로 어머니의 사생활이었다.

"선아야, 우리 어머니랑 너희 할아버지랑 그렇다면.... 우린 뭐니?"

"오빠, 난 그런 거 상관하지 않아. 누가 뭐래도..."

"난 상관해."

영준은 등을 돌리고 선다.

선아는 말을 잘못 꺼냈다는 것을 알고 후회했지만 엎지러진 물이었다.

"미안해, 오빠, 내가 말을 잘못했어."

"돌아가."

선아는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안 갈거야....오빠, 사랑해요....내가 잘못했어...내가 잘못했어..."

선아는 뒤돌아선 영준의 등을 껴안고 울음을 그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