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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에게 남학생 방을 쓰지 못한다고 한 학교의 방침이 차별행위라고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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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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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만날 사랑 42


BY 제인 2003-11-22

다음날 오전 미연은 대학도서관으로 갔다.

도서관 입구에 경비아저씨가 지키고 서있었다.

"저는 여기 졸업생인데 도서관에 들어갈 수 있을까요?"

"여기다 졸업한 과하고 년도랑 적고 주민등록증 맡기고 들어가세요."

"고맙습니다."

도서관안에는 방학인데도 학생들이 자리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미연은 도서관 내의 전자도서실로 들어갔다.

먼저 인터넷의 인물검색을 통해 유학선에 대해 알아보았다.

'현 YS제강의 회장으로서.....전 상공부장관 유길상의 장남으로 태어났다....전 상공부장관? 고관대작? 그럼 그렇지.'

유학선에 관해서 또 한가지 특기할만한 사실을 알아내었다.

그가 현 여당의 당무위원들중 한사람이라는 것이었다. 

미연은 유학선과 그의 아버지인 유길상, 그리고 YS제강에 대해서 인명사전과 학술전문자료를 뒤져가며 조사를 했다.

유길상이라는 사람은 조상대대로 벼슬을 지냈던 그런 집안의 출신으로서 장관직을 지내면서 청렴결백한 인물로 존경을 받았다고 묘사되어 있었다.

또한 YS제강은 일제시대때 유길상의 아버지가 세운 일본의 수주기업인 아사유우 금속이 그 모태였는데 해방후 잠시 문을 닫았다가 전쟁후 전후복구사업에 참여하면서 크게 성장하였다.

오후가 될때까지 인터넷뿐 아니라 해방전후 국내산업구조에 관한 논문들까지 뒤져본 미연은 이제 어떻게 해야할지 윤곽을 잡게 되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좋아. 기자, 기자,.....누가 기자더라?'

미연은 도서관을 나와 자신이 다녔던 경영학과의 대학원 사무실로 찾아갔다.

사무실에 들어갔더니 미연과 동기였던 과친구가 서있었다.

막 강의를 마치고 돌아온 모습이었다.

"어? 김미연 아냐? 오랫만이다."

"그래, 너 박사는 끝냈니?"

"응. 너 결혼하고 첨 보는 것 같다?"

"그러네. 요즘 어때? 강의 나가?"

"시강하고 있어. 전임자리 기다리고 있는데...모르겠다. 이러다 시강으로 늙어 죽으려나봐."

"곧 자리 나겠지."

"그런데 여기 어쩐 일이야? 누구 만나러 왔어?"

"좀 알아볼 게 있어서. 우리 동창이나 선배중에 기자가 된 사람 없나 해서. 아는 사람 없니?"

"있지. 경제신문에도 있고 방송국에도 몇명 갔을걸?"

"누군지 좀 얘기해봐."

"동창회 명부에 보면 직장이랑 이름이랑 연락처까지 다 있어."

"그거 가지고 있어?"

친구는 사무실 책장에서 동창회 명부를 한부 꺼내서 건네주면서 묻는다.

"기자는 왜 찾아?"

"음, 좀 부탁할 것이 있어서."

"무슨 독자투고라도 썼냐?"

"아니."

"아참, 수현이형 알지?"

"?"

"전에 조교하던 형 있잖아, 이수현이라고... 몰라? 킹카라고 학교에서 소문났던 형인데?"

"글쎄...?"

"전에 동문회할 때 왔었는데, N방송국 본부차장한다던데? 끝발 좋지? 한번 연락해봐."

"그래? 잘됐다. 연락해 볼께."

"오랫만에 왔는데 나가서 커피라도 한잔 할까? 그런데 참, 진희는 잘 있냐?"

"....우리...이혼했어."

"어? 저런...어떻게 그렇게 되었냐? 잘 살지 왜 그랬어?"

"이만 가볼께, 바빠서. 커피는 내가 다음에 살께."

"그래, 바쁜가 본데 잘 가라."

미연은 동창회 명부를 들고 과사무실을 나갔다.

'유학선이 여당 당위원이라고 했지. 그래...N방송국이라면 야당성향이 강하니까 잘하면 먹혀들어갈지 몰라. 이수현? 누구였지? 들어본 거 같기는 한데....일단 연락해보자.'

미연은 이수현이라는 선배가 있는 방송국 근처까지 찾아가 전화를 걸었다.

"전 경영학과 XX학번 김미연이라고 합니다. 선배님 좀 만나뵙고 싶은데요."

- "김미연? 우리과 후배라고?"

"네."

선배는 기다리라고 하고 전화를 끊었다.

방송국 현관에 서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하면서 기다리고 있으니 선배가 나왔다.

미연은 꾸벅 인사를 하였다.

"앗, 네가 김미연이야? 너였구나? 생각나. 유명했던 애잖아."

"네?"

"하하...그때 한창 유명했지. 예뻐서. 그래, 무슨 일이라고 그랬지? 저쪽으로 갈까?"

이수현은 미연을 데리고 방송국 구내식당으로 데려갔다.

이수현이라는 선배는 전에 킹카로 소문이 났었다지만 지금의 모양새는 그런 흔적이 별로 남아있지 않았다.

앞머리는 약간 벗겨지고 배도 좀 나온데다 얼굴에 번지르르한 기름이 흐르고 있어서 30대 중후반 같지가 않고 중년처럼 보였다.

마주 앉은 선배는 뒤로 몸을 제끼고 앉아 미연을 아래로 내려다보는 그런 자세를 취했다.

"뭔지 얘기해봐."

"바람기획 공금횡령 사건때문에요."

"그게 왜?"

"그 음반사 사장이 우리학교 출신이예요. 그리고 제가 거기서 일하고 있어요."

"아, 그래?"

"그런데 그 사람은 그런 거하고는 거리가 먼 사람이예요. 이건 분명히 어떤 모함이 개입된 일이라고 생각되거든요."

"생각만 가지고 판단할 수는 없지."

"어차피 그 사람도 물증없이 구속되었는걸요."

"그래도 회계감사까지 들어가고....뭐, 할말이 없잖아."

"이 사건을 꾸민 사람이 고위층이라면 그런 거 얼마든지 조작해 낼 수 있지 않나요?"

"그런 일까지 어떻게 꾸며?"

"선배님, 이 기사를 좀 읽어보시겠어요?"

미연은 어제의 스포츠 신문에 난 박영준에 관한 기사를 선배에게 내민다.

선배는 대충 훑어본다.

"그런데?"

"박영준씨 어머니의 과거행적이 어떻게 해서 신문에 날 수 있었을까요? 이런 일을 누가 알고 있다고....기록이 있는 것도 아닐텐데요. 당사자나 피해자가 아니면 모르는 일 아니겠어요?"

"그래서, 당사자는 물론 아닐테니까, 그 일로 피해본 사람이 이 일을 들춰냈다?"

"그렇죠. 여기보세요. '고관대작을 상대로'라고 씌여있는 거요. 선배님 혹시 유학선이라는 사람 아시나요? 제강회사 회장이기도 하고 알고보니 여당 당무위원이더군요."

"그런가? 그런데?"

"그리고 찾아보니까 그 사람의 아버지가 전직 장관이었어요. 그 사람이 아마 바로 박영준씨의 어머니와 관계가 있었을거예요. 바로 '고관대작'이라는 표현이 그걸 시사하는 것이죠. 게다가 얼마전 박영준씨와 유학선이라는 사람과 어떤 충돌이 있었거든요."

"그럼 그 기사가 맞는 얘길 한거네 뭐."

"그렇죠. 그런데 명문가 출신의 전직 장관이 화류계의 여자에게 큰 돈을 주었었다는 소리가 과연 남들한테 떠벌일만한 얘긴가요?"

"?"

"그 유학선의 아버지였던 사람, 생전에 청렴결백하다고 알려진 인물이라던데, 그런 사실하고 모순이잖아요."

"글쎄...무슨 소리야? 그런 짓하는 사람이 뭐 한둘이야?"

"이거요, 제가 도서관에서 수집한 자료예요."

이수현은 미연이 내민 문서들을 대충 읽어본다.

"어...이 집안에 재산이 무척 많았구만?"

"그렇죠. 일제 때 그 집안에서 운영한 회사가 여럿이었어요."

"그래서 어떻게 되었다는 얘기야? 요점을 좀 말해봐."

"박영준씨 사건에 관한 뉴스가 나갈 때 이런 내용 좀 넣어주세요. '박영준의 모친이 과거에 고관대작들로부터 수십억을 받아내었다고 한다. 그 고관대작들이 누구인지가 현재 관심의 촛점이다.' 이렇게요."

이수현은 미연을 이상하다는 눈으로 한참 꼬나본다.

도무지 미연이 무엇을 원하는지 이해가 안가는 눈치였다.

"다시 말해서요, 선배님, 이 일은 유학선이라는 사람이 꾸민 거예요. 박영준씨 가족을 매장시키려고요. 그래서 그런 기사를 흘린 거죠. 그런데, 그 유학선이라는 사람은 제 얼굴에 침을 뱉은 꼴이 된 거예요. 청렴결백, 명문가...그런데 이제 그 집안의 친일 행각이 드러날 판이라고요."

"뭐? 친일 행각?"

"일제 때 그렇게 큰 재산을 보호받고 또 일본의 수주기업을 가지고 있었다면 바로 친일계라는 뜻이잖아요? 이 기사에서 말한 그 '고관대작'이 누구인지 꺼꾸로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그 집안이 친일파라는 결론까지 나오게 되어있는 거라구요."

"아..."

"곧 대선이예요. 야당이나 여당이나 당 이미지 꾸미기로 한창 바쁘죠. 그런데 당무위원이 그런 친일파 집안이라는 것이 언론에 드러나면 도움될 거 하나 없겠죠? 당 이미지에 먹칠하는 거잖아요."

미연을 계속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눈으로 바라보던 이수현은 그제서야 뭔가를 깨닫고는 "허허허..."하고 웃는다.

"그럼 진작 그렇게 얘기하지, 무슨 얘길 그렇게 복잡하게 하는거야?"

"그, 그랬나요?"

"그래도 제법 날카롭구나, 너. 놀랍네? 진작 기자하지 그랬어?"

미연은 선배의 냉소적인 태도에 기분이 상했지만 몇일을 밤잠을 설쳐가며 생각해 낸 이 아이디어를 꼭 관철시켜야했기에 전혀 내색하지 않았다.

"해주시는 거죠? 꼭요?"

"음...나혼자 결정하는 건 아냐. 이따가 스크립트 써서 올려보고 통과되면 다행이고...헌데, 사실 대선 앞두고 그런 일은 정말 민감한 건데. 자칫하면 정치적 음해라고 공격당해."

"정치적 음해라뇨. 친일파를 밝혀내는 것이 정치적 음해가 되나요? 그런 건 마땅히 언론이 나서서 캐내야하는 거 아닌가요? 선배님은 친일파 사람들이 정치적으로 득세하고 있는 게 옳다고 생각하세요?"

"그야 물론 아니지..."

선배는 잠시 생각을 하더니 "그래, 네 말에 일리가 있어. 내가 한번 추진해볼께."하였다.

미연은 고맙다고 다시 인사하였다.

"참, 너 뭐한다고? 바람기획인가 거기서 뭐한다고 했지? 경영진이야?"

"아뇨....작곡해요."

"작곡? 나는 네가 그런데서 일한다길레 무슨 경영진인 줄 알았지."

".........."

"무슨 곡 만들었는데?"

".....아직....발표된 건 없어요."

"아하하하....."

미연은 선배가 비꼬듯 웃자 무안하여 얼굴이 빨개졌다.

선배는 미연의 얼굴이 빨개지는 걸 보더니 미안했는지 웃음을 그치고 자리를 마무리한다.

"그래, 네 얘기 잘들었으니까 이제 가봐. 네가 말한대로 한번 힘써볼께."

"고맙습니다. 꼭이예요, 선배님."

미연은 선배에게 꾸벅꾸벅 여러번 인사를 하며 다짐을 했다.

 

그날 저녁 미연은 N방송의 9시 뉴스를 지켜보았다.

"...박영준 대표의 어머니 최고은씨의 재산출처가 조사중입니다. 이중 대부분이 바람기획을 통해 흘러들어왔는지, 아니면 과거에 고위층들에게서 받은 화대만 가지고도 이렇게 많은 재산을 이룬 것인지....오늘 기자들은 박대표의 어머니를 찾아가 인터뷰를 요청했으나 투병중이라는 핑계로 거절당했습니다. 한편 과거 고위층으로부터 받았다는 액수가 억단위를 넘었을거라는 추측이 난무하면서 일부 정치권에서는 과거 그 고위층 인사들의 정체파악에 나섰습니다...."

미연의 부탁은 바로 그날 이루어졌다.

이것으로 과연 박영준이 누명을 벗고 풀려날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였다.

그래도 여야당이 한창 신경전을 벌이고 있는 마당이라 이 뉴스의 여파를 기대해 볼만 했다.

하지만 기자들이 박영준의 어머니를 찾아갔다는 이야기는 이수현이 너무하지 않았나 싶었다.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었는데...'

미연은 명민에게 전화를 한다.

"나, 미연이야."

- "그래, 어떠니?"

"난 잘있어. 혹시 영준씨 어머니 아프셔? 조금 아까 뉴스에서 보니까..."

- "상태가 안좋으셔. 오늘 입원하셨어."

"심각한거야?"

- "원래 암투병중이셨는데 영준이 일때문에 더 악화되셨어. 게다가 오늘 기자들이 집까지 찾아와서 한바탕 난리가 났었나봐. 간병인한테서 전화가 왔더라고. 어머니가 쓰러지셔서 입원시켰다고. 그래서 조금전 나도 다녀왔어."

미연은 당황했다.

자기가 오늘 이수현에게 부탁한 일로 인해 영준의 모친이 쓰러지기까지 한 셈이 되었다.

"거기가 무슨 병원이야? 나도 좀 가보게."

- "그럴래? 사실은 너한테 부탁을 할까 생각중이었는데...영준이도 없고, 영준이 누님한테는 연락도 안되고, 나는 나대로 바빠서 챙겨드릴수도 없는데, 간병인 혼자만 있고 가족이나 보호자가 없어서..."

"그럼 진작 얘기를 하지 그랬니? 내가 내일부터 거기 가있을께. 걱정마."

- "그럼 너무 고맙고."

미연은 다음날 아침 일찍 영준의 모친이 입원해 있는 병원으로 달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