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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에게 남학생 방을 쓰지 못한다고 한 학교의 방침이 차별행위라고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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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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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만날 사랑 13


BY 제인 2003-11-04

그 남자는 미연에게 다가와서 말을 걸었다.

"저...제가...태워다 드릴까요?"

미연은 그 남자를 알아보고는 거절도 않고 그의 차에 덥썩 올라탔다.

그 남자는 얼른 다시 운전석으로 돌아와 물었다.

"어디 사세요?"

미연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일단 차를 출발한 그 남자는 곁눈질을 하며 다시 물었다.

"어디 사시는데요?"

미연은 또 아무말 없었다.

그 남자는 미연이 취해서 정신이 없나보다하고 생각했다.

"그럼...그냥 이대로 계속 갈까요?"

그러자 미연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미연은 자기가 왜 그러는지 잘 몰랐다.

그냥 그의 곁에 있고 싶다는 그런 기분에 이끌리고 있을 뿐이었다.

그 남자는 강남쪽으로 향해 차를 몰더니 반포에서 경부고속도로로 들어섰다.

"부산까지 계속가요?"

"....."

미연이 아무 대답이 없자 그는 낮게 속삭이듯 이렇게 말했다.

"부산까지 이대로 계속 갔으면 좋겠군요."

미연은 후후거리며 웃었다.

"왜요?"하고 그가 물었다.

"저도 방금 그 생각했어요."

그 남자는 조금 놀라는 표정을 지으며 계속 고속도로를 달렸다.

그는 얼마 안 가서 휴게소같은 곳에 차를 세웠다.

그는 안전벨트를 풀고는 몸을 돌려 미연의 얼굴을 찬찬히 들여다보았다.

미연도 그 남자를 바라보았다.

그의 숨결이 느껴졌다.

미연은 얼굴에 전기가 훑고 지나가는 것 같은 전율을 느꼈다.

그는 미연의 오른쪽 뺨에 자신의 왼손을 살짝 얹더니 그녀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천천히 갖다대었다.

미연의 심장이 쿵쾅거렸다.

잠시 후 그는 다시 몸을 돌려 운전대를 잡고는 고속도로를 달렸다.

미연은 계속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그냥 이대로 어디로든 가고 싶었다.

아무대로 그가 가는 곳으로 따라가 버리고 싶었다.

그리고 다시는 온 길로 되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어느덧 차는 어디쯤인지 전혀 알 수 없는 곳에 도착했다.

밤이 깊어 주변은 컴컴하였으나 높은 건물의 외곽을 환한 조명이 비추고 있는 걸로 보아 어느 휴양지의 콘도미니엄 같았다.

그 환한 건물을 지나 뒤쪽길로 몇분을 더 들어가니 단독주택으로 보이는 집이 나타났다.

그 남자는 미연을 데리고 그 집안으로 들어갔다.

두 사람은 방안에 들어가서 침대에 걸터 앉았다.

그리고는 마치 아주 오래전부터 사귀어 온 연인들처럼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사랑을 나누기 시작하였다.

 

그 남자의 이름은 박영준이었다.

미연과 같은 학번이었다.

미연은 그를 학교에서 본 기억이 없었지만 영준은 그렇지가 않았다.

미연은 대학 시절, 학교에서 제법 잘 알려진 여학생이었다.

미연의 외모는 뭇남자들의 시선을 끌 만큼 수려했는데다, 경영학과 학생이라는 사실때문에 더욱 유명했었다.

한 학년이 300명 가까이 되는 경영학과에는 90% 이상이 남학생이었다.

그런 학과에 그녀가 시커먼 흙밭에 피어난 들꽃처럼 그렇게 끼어 있었으니 화제의 대상이 되는 것이 당연하였다.

다른 과 학생들조차도 "경영학과 미연이"라고 하면 다 알 정도였다.

그녀는 생긴 모습과는 달리 매우 성격이 털털한 편이라 같은 과 남학생들과 잘 어울려 지냈다.

가까이 자리한 친구들하고 먼저 친해지다보니 늘 옆 자리에 앉게 된 진희와 같이 다니게 되었다.

진희에게는 법대에 다니는 명민이라는 고교 동창이 있었는데, 진희를 사이에 두고 미연과 친하게 되었다.

한편, 명민하고 어릴 적부터 친구이자 정외과 학생이었던 영준은 명민때문에 미연을 알게 되었다.

학교 안팍에서 명민과 함께 다니다보면 명민이 미연하고 인사하는 것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영준은 그녀를 처음 본 순간부터 마음이 끌렸었다.

하지만 조용하고 내성적인 성격이었기 때문에 선뜻 그녀앞에 나서지를 못하고 늘 명민의 뒷전에 서있기만 하였다.

어떨 때는 그녀가 캠퍼스 안에서 걸어가는 모습을 발견하고는 용기를 내어 그녀 앞까지 다가가 우연히 마주친 것 처럼 인사를 했지만, 그녀는 고개도 돌리지 않고 그냥 눈웃음만 치고 지나갈 뿐이었다.

미연은 예쁜 얼굴로 인해 대학에 들어가기도 전부터 남학생들의 추근거림을 당하는 일이 많았다.

그래서 스스로 귀찮음을 면하는 방법을 터득한 것이 바로 낯선 남자들이 말을 걸려고 다가서면 눈인사를 하며 재빨리 자리를 벗어나는 것이었다.

특히나 진희랑 사귀고 난 다음에는 다른 남학생들의 프로포즈는 가차없이 잘라버리고 말았다.

덕분에 영준이 눈앞에 서성거려도 그의 존재를 의식하지 못했었던 것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영준은 미연이 늘 진희와 함께 있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영준은 마음으로 미연을 많이 그리워했지만 이루어질 수 없는 짝사랑이었다는 걸 깨닫고 있었다.

그런데 오늘 너무나도 엄청난 일이 일어났던 것이었다.

그녀와 술자리를 함께 했던 것만도 놀라운 일이었는데, 그녀를 품에 안다니...

꿈인지 생시인지 실감이 나질 않았다.

그토록 오래 동경해왔던, 그저 가슴 속에 묻혀버릴 줄로만 알았던 그 짝사랑이 오늘 이렇게 이루어진 것이다.

그녀가 무슨 맘으로 자기를 따라 나섰는지 알수는 없었다.

어쩌면 전부터 자기를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그냥 술이 취해 불장난을 저지른 것인지도 모른다.

이유가 무엇이든 영준에겐 문제가 되지 않았다.

단지 이 순간을 꼭 붙들고 싶었다.

'미연이 나의 품에서 잠이 들어있다.

그냥 이대로 시간이 멈춰질 수는 없는 걸까?

내일 그녀가 일어나 무슨 말을 할까?

그냥 하룻밤의 불장난이었다고 말하면 어쩌지...'

영준은 불안한 마음으로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잠든 미연의 얼굴만 한없이 바라보았다.

촛불처럼 작게 피어오르던 사랑이 이 일로 인하여 커다란 불꽃이 되어 용준의 가슴을 활활 타들어가게 되었다.

 

어느새 자기도 모르게 잠이 들었던 영준은 새벽에 동이 트자 번쩍 눈을 떴다.

옆에 미연이 아직도 잠이 들어 있었다.

안도의 한숨을 쉬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밖으로 조용히 나가 바로 옆에 있는 리조트의 콘도수퍼에 가서 쌀과 국거리를 샀다.

나오기 전에 가게 주인에게 밥을 어떻게 하는 거냐고 물었다.

여주인은 웃으며 친절하게 가르쳐주었다.

용준은 신이 나서 집으로 돌아와 생전처음으로 부엌에 들어가 밥을 하였다.

사랑하는 미연을 위해서.

미연은 아침 햇살에 눈이 부셔 잠이 깨었다.

놀라 벌떡 일어나 옷을 차려 입었다.

방문을 열고 마루로 나갔다.

오른쪽으로는 검은색 그랜드 피아노가 보였고 왼쪽으로는 우아한 식탁이 보였다.

식탁에는 방금 만든 것 같은 음식이 차려져 있었다.

마침 부엌에서 영준이 밥을 퍼담아 들고 나오고 있었다.

미연은 어색한 표정으로 영준을 쳐다보았다.

영준은 수줍은 웃음을 짓고 서있었다.

두 사람은 서먹서먹하게 아침 식사를 하였다.

미연은 이 분위기가 너무 거북하였다.

밥을 뜨는 손이 덜덜 떨릴 지경이었다.

하지만 가슴 깊이에서 문득 이런 느낌이 스쳐갔다. 행복하다는....

행복하다는 느낌이 가슴을 베어내듯 아프게 스쳐갔다.

두 사람은 너무나 서먹했지만 너무나도 행복한 아침식사를 마치고 다시 서울로 올라왔다.

 

미연을 차에서 내려주며 영준이 물었다.

"전화 해도...돼요?"

미연은 아무말도 하지 않고 영준을 물끄러미 바라만 보았다.

그를 다시 만나야 할지 말아야 할지 망설여졌다.

하지만 그의 애원하는 눈빛을 물리치지 못하고 전화번호를 적어 건네주었다.

미연은 집으로 돌아온 후 마음이 너무나도 복잡하였다.

이불을 뒤집어 쓰고 잠을 청했다.

그 날 꼭 참석해야할 세미나 수업엔 참석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