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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에게 남학생 방을 쓰지 못한다고 한 학교의 방침이 차별행위라고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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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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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를 사랑하세요


BY 이윤하 2005-11-14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은 일주일이 지났다.

수아는 새벽까지 뒤척이다 잠들면 오후에나 일어나 겨우 우유에 콘푸레이크나 말아먹으며 허기를 달랬다.

멍하니 창가에 서서 오가는 자동차를 바라보거나, 입안이 헐 정도로 담배를 피워 양치할 때는 헛구역질 까지 할 정도였다.

얼굴은 까맣게 썩어가고, 배는 갈빗대가 보일 정도로 홀쭉해졌다.

입맛은 없어도 끼니를 해결하지 못한 몸은 손을 떨었고, 빈혈증세가 생겼고, 기억력과 반사능력까지 없어졌다.

쇄약해 지는 몸과 몽롱한 정신상태에서도 명명백백해 지는 사실은...흠...차였다는 거였다.

그녀가 좋아 따라다니던 사람한테가 아니다.

이상형이라 마음 설레고 바라보던 사람도 아니다.

친구 이상을 바라며 주위를 맴돌던 사람의 정성이 그녀 마음에 닿아 고맙게 받아주려 했다.

물론...그녀도 그가 좋아지기 시작했다.

지금 이 마음이 분노인지 슬픔인지 잘 구분이 가지 않는다.

분노라면 좀 덜 사랑한거고 슬픔이라면 많이 사랑한거라 생각하면 되는데...

그녀도 잘 모르겠다.

어쨌든 확실한 것은 이제...이수아는 혼자다. 

 

[저번에 얘기했던 사촌오빠가 면접보러 오란다. 전화는 왜 안받냐. 여행중이냐? 전화주라. 정희]


덜덜 떨리는 손으로 겨우 답장을 보냈다.

 

[미안한데 몸이 좀 안좋아. 3일후에 본다고 전해줄래? 니가 잘 둘러대주라]


3일후에 일어난다는 보장은 없다.

다만 모든 결정내리는 순간에 떠오르는 숫자가 3이었을 뿐이다.


결혼이 물 건너간 것은 확실해졌다.

일주일을 기특하게 혼자 힘으로 버텨냈다.


'그'에게 "아직은 누구를 사랑할 수 없는 처지야"라는 말을 들었을 때 보다 극한 고통의 시간이었지만, 사랑하는 사람이 죽어도 배는 고프고, 그 사람이 마지막으로 먹고 떠난 메뉴까지도 시간이 지나면 아무 생각없이 먹는 것이 인간이다.

하물며 실연쯤이야...

그래도 첫번째 실연이 두번째 실연의 이유라는 것은 정말 용서할 수 없다.

사랑이 실연을, 실연이 슬픔을, 슬픔이 분노를, 분노가 증오를 낳는 순간이었다.

나쁜 놈들, 니들이 얼마나 좋은 여자 만나서 사는 지 똑똑히 지켜 보겠어.

죽을 만큼 사랑한다 생각해서 결혼한 여자와 삶의 쓴 맛 단 맛 다 본 후에도, 내 생각 안하나 두고 보자.

흑...그래도 그것들의 배겟머리 송사에서 그녀의 짝사랑 얘기가 가쉽거리로 씹어질 것을 생각하면 속이 뒤집힐 것 같다.

-바보같은 이수아. 너 이렇게 남자들한테 차이고나 다니라고 부모님이 등뼈 휘어지게 키우셨냐. 놈들에게 보란 듯이 살기 위해서는 어떡해야 할까? 똑똑한 이수아!  고민을 하란말야. 고민을!!!

 

일주일을 거의 굶다시피한 위장이 음식을 거부하고 있었다.

그녀가 지금 이길 수 있는것은 그녀의 몸 뿐이었다.

죽을 끓여 위를 달래고 한 번도 생각하지 않았던 운동을 계획했다.


우선 아파트 단지와 가장 가까운 헬스클럽에 등록을 했다.

사람이 건강해야 어떤 시련도 극복할 수 있다는 아버지의 뜻을 받들어 보기로 했다.

건강 보조 식품도 사들였다.

비타민제, 칼슘제, 달맞이유를 농축해서 만든 여자들이 꼭 먹어줘야 한다는 이모의 말을 기억해 내서 종류별로 구색을 갖추었다.

유기농 녹즙도 주문했다.


...금연은 일단 보류하기로 했다. 흠...


면접을 보러가기 위해 정장을 입었는데 허리가 2인치는 준 것 같았다.

실연으로 인해 빠진 살은 금방 붙는 다지.

다시 붙기 전에 복근을 만들어야 한다. 복부는 특별관리!


어지럼증이 보행에 약간의 영향을 미치긴 했지만 몸은 무척 가벼웠다.

 

-제가 사회적 지위를 얻기 전에 남자를 생각하면 차라리 절 위해 벼락을 내리쳐 주소서. 제가 이제 믿을 게 뭐 있겠습니까. 제 자신 하나 잘 사랑하게 해주세요. 그냥 저 자신 하나 바라보며 사는 낙으로 살테니 혹시라도 누군가 점지해 주시려면 쉬운 사랑으로 내려주시길 간절히 바라나이다.


쯧쯧...어리석은 어린 양아...벼락은 뭐고 사랑은 뭐냐...

 

 

[공인재무설계사 CFP 강 진영 사무소]

사무실은 제법 럭셔리한 빌딩 4층에 자리하고 있었다.

부자들만 상대로 재무설계를 해주고 있는 정희 사촌오빠는 업계에서 알아주는 재무설계사였다.

은행에서 PB로도 이름을 날렸고 외국계 보험사에 스카웃되어 1년만에 MDRT(Million Dollar Round Table:백만불 원탁회의)에 앉았던 실력과 영업능력이 탁월한 인재라고 소문이 자자했다.


사무실에는 여직원이 혼자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어떻게 오셨습니까?"

"강진영씨를 뵈러 왔는데요. 2시에 약속이 되어있습니다."

"이수아님 되세요?"

"네."

"잠시 앉아서 기다리시겠어요? 이사님 지금 상담전화 중이십니다."

사무실은 심플하면서도 고급스러웠다.

절제된 고급스러움.

귀족적이면서도 화려하지 않은 느낌이 드는 곳이었다.

이곳에서 일하게 된다면 아무래도 품위유지비가 제법 들겠다 싶었다.


"면접볼 사람 도착했습니까?"

스피커폰을 통해 저음의 남자목소리가 들렸다.

"예, 이사님. 와계십니다. 이수아님 들어가세요."

"네, 고맙습니다."

 

사무실은 책상과 소파, 책장이 전부였다.

그 흔한 난도 화분도 없었고 액자하나 없는 풍경이 사무실 주인의 성격을 말해주는 것 같았다.

"앉아요."

진영이 먼저 소파에 앉았다.

"안녕하세요. 이수아입니다."

"어디 아픕니까?"

진영은 이력서를 보는 둥 마는 둥 하며 물었다.

"예?...아니 좀...몸살을 앓았거든요."

"약한 체질입니까?"

"아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운동은 좀 합니까?"

-아니 무슨 면접이 체력장이야?

"...사실 운동을 별로 좋아하지는 않습니다. 그냥 건강을 위해서 헬스클럽에서 1시간씩 꾸준히 하려고 노력중입니다."

"운전은 오래 했습니까?"

"고등학교 졸업하면서 면허 따고 꾸준히 해서 못하지는 않습니다."

"고급차도 몰아봤습니까?"

-뭐하자는 거야. 운전기사 뽑아?

"...그랜져까지 밖에..."

진영의 입가에 피식 조소가 스치는 듯 했다.

"이력서 상에는 대학 졸업 후 꾸준히 기업체 비서실에서 근무했군요. 지금까지 얼마나 모았습니까?"

"네? 돈...말인가요?"

"그래요. 어떤 식으로 자산 관리를 합니까?"

"그냥 지금까지 어머니께서 관리해 주셔서 잘은 모르는데 대강 5천만원 정도 모아두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 나이까지 부모님이 자산관리를 해주신다는 말입니까? 그냥 계나 부으시고 적금이나 들으셨겠군요."

-이런...이게 도대체 말이야 막걸리야...그럼 계나 적금말고 노인네들이 주식을 할꺼야 얼마 안되는 돈으로 땅투기를 할꺼야...그래도 친구들 중에 내가 제일 알뜰살뜰 모은 축에 드는데..

"이수아씨가 앞으로 일할 직장은 재무설계사무실입니다. 비서한테까지 재무설계를 문의하는 사람은 없겠지만 아침에 적어도 5가지 경제신문과 뉴스의 주가동향은 매일 체크하도록 합시다. 그리고 이거..."


테이블 옆에 열 권 정도로 보이는 책묶음을 가르킨다.


"투자, 보험, 부동산, 세금 등에 관한 책들입니다. 일주일안에 정독하세요. 3개월 후에 자격증 시험이 있으니까 준비합시다. 내일부터 출근하고, 일은 정식으로 내일부터 알려드리겠습니다. 그냥 비서업무 정도라고 생각하세요."


진영은 먼저 일어나 책상위에 있는 자동차 키를 집는다.

"내려갑시다."

수아는 질문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어정쩡 진영의 뒤를 따라 나선다.

"책 가지고 나오세요."

-아니 혼자서 이걸 들라구? 어쩜 저런 재수없는 인간이 있담?

수아가 낑낑거리며 엘리베이터 앞에 책을 내려놓는데 바로 문이 열렸다.

진영은 먼저 타서 문만 잡고 있을 뿐 도와줄 생각을 안했다.

-스타일 구기게 이게 뭔일이야. 안 도와 줄꺼면 왜 따라나오냐구.

진영은 지하 2층 버튼을 눌렀다.

수아가 1층을 누르려 하자 진영이 살짝 손등을 치운다.

"저...차 안가져 왔는데요?"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진영이 먼저 책을 들고 성큼성큼 주차장으로 향했다.

어쩔 수 없이 수아도 진영을 뒤따라갔다.

진영의 리모콘에 반응한 차는 BMW였다.

-설마 저걸 몰아보라는 건 아니겠지?

다행히 뒷좌석에 책을 넣고는 운전석에 진영이 올라탄다.

뻘쭘하게 서있는 수아에게 왜 그렇게 서있냐는 듯 바라보던 진영이 조수석 문을 열어준다.

"타요."

차 안은 역시 깨끗했다.

장식도 없고 흔한 사진이며 방향제도 없었다.

진영은 행선지도 말하지 않은 채 차를 몰기 시작했다.

-뭐야, 어디로 가는 거지?

차가 이동하는 방향은 수아의 집과 같은 방향이었다.

진영의 BMW는 수아의 아파트 주차장에 미끄러지듯 들어갔다.

"내일 봅시다. 난 7시면 출근합니다. 사무실 직원들은 8시 30분 전까지 출근하니까 이수아씨도 알아서 출근시간을 정하세요."


-헉...7시? 상사가 7시에 출근하는데 비서보고 알아서 출근하라면 도대체 몇시까지 나오라는 거야?

진영의 분위기상 질문은 하지 않는 편이 나은 것 같아 수아는 뒷좌석에서 책을 꺼내고 꾸벅 인사를 했다.

"데려다 주셔서 고맙습니다. 내일 뵙겠습니다."

"내일 봅시다."

진영은 짧막한 대답을 날리고는 빠르게 아파트를 빠져나갔다.


"휴..."

지금까지 봐았던 면접 중에 오늘만큼 일방적이고 자존심이 상했던 적은 없었다.

아니 면접 뿐 아니라 지금까지 살면서 저렇게 차갑고 일방적인 사람도 본 적이 없었다.

한마디로 밥맛이었다.

꼬박꼬박 경어를 써가면서도 상대를 깔아뭉게는 듯 한 사람이 어떻게 부자들 자산관리를 맡고 있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앞으로 두고 볼 일이지만 도를 닦는 마음으로 임하지 않는 한 몇 달 안에 심인성 질환에 걸릴 것이 분명했다.

게다가 비서한테 자격증이라니...도대체 무슨 시험을 보라는 건지...실연의 아픔을 빨리 정리시키기 위한 하늘의 뜻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