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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에게 남학생 방을 쓰지 못한다고 한 학교의 방침이 차별행위라고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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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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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nse(감각)


BY qordlfghd 2003-09-28

 

공항에서 전시장으로 가는 길은 그다지 막힘이 없었다. 평일이라서 인지 사람들의 수선거림도 덜하고, 도로의 사정도 한결 나아 보였다. 여행사에 전화를 해서 포항에서 김포까지 왕복 티켓을 예매할 때만 해도 별반 느낌이 없었던 것이 사실이었다. 그저 오랜 친구의 귀국전이 궁금해서라고 자신을 안심시켰던 것도 명백한 일이었다. 서울로 다시 올 거라고 행각한 적도 별로 없었다. 연고도 없고, 대학 동창들이 몇몇 있기는 하지만, 결혼을 하고 먼 곳에서 신접살림을 시작하면서 거의 만날 일이 없는 사이가 되고 말았던 것이 이유라면 이유가 되는 것이다. 일년에 한번씩 동창회를 열기는 하지만 아직 한번도 참석하지 않았고, 친구들의 대단한 아우성에도 다시 서울 땅을 밟고 싶지는 않았다. 다시는, 아마 다시는 그와의 일들을 기억해 내기 싫었던 모양이다. 아니면 그와의 추억들을 진지하게 잊어보려  했던 것도 한 부분 작용을 했던 것이다. 그 또한 젊은 날, 우리의 한 가닥 어떤 일에 불과 했을 뿐인데.. 잊으려 할수록 더욱 선명하게 살아서 내 몸 구석 구석을 찔러 대던 바늘 끝의 느낌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어른들은 흔히 시간이 약이 된다 고 말씀하시지만, 그 시간들이 꿈틀거리며 살아오는 듯한 느낌을 몰랐을 것이다. 독고 진 그 이름을 떠 올릴 때마다 느껴지던 황망함과 실소를 누가 감히 알 수 있었을까? 따뜻한 커피 같던 그의 목소리가 지금도 이렇게 귓속을 쟁쟁거리게 만드는 것은 나의 소홀한 의지 탓일 것이다. 쉴새 없이 날아드는 그 때의 일들로 두통을 일으킬 무렵에 화랑에 도착했다. 택시에서 내릴 때부터 진눈개비 같은 것이 흩뿌리더니 화랑으로 들어설 즘에는 함박눈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눈 덕분인지 그다지 춥거나, 바람이 세차진 않았다. 겨울 한가운데에 전시회를 하고 싶어하는 그나, 이 눈발을 헤치고 감상이라는 명목으로 날라온 자신도 우습기는 마찬가지인 것 같다고 잠시 생각해 본다. 처음 신문에서 개인전 소식을 보았을 때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다. 그의 소식은 그가 서울을 떠나 있는 동안도 종종 문화면에 실렸고, 이번 개인전도 그가 귀국하기도 전에 이미 신문 일면을 장식할 정도 였으니 말이다. 그의 눈부신 금의환향은 주눅든 내 어깨를 더욱 무겁게 하고, 작은 도시에서 국어선생을 하는 내게 적잖은 충격을 주었다. 나는 고향의 가슴이 선한 선생을 꿈꿨고, 그는 화가를 꿈꿨다. 우리의 가장 큰 차이 이자, 가장 이상적인 미래였다. 그때만 해도 적어도 이렇게 긴 이별 끝에서 이런 모습으로 만날 것을 염려하지 않아도 되었고, 세월의 흐름 따위는 걱정할 것이 없었다. 그때는. 벌써 세월이 한참 지났다. 나는 이제 더 이상 스무살 짜리 새침한 여학생이 아니고, 그 또한 속없이 술이나 마시고 다니던 그 시절의 허무한 학생은 아닌 것이다. 우리를 견딜 수 없게 하던 시절, 견딜 수 없음을 견디지 못해 힘겨워 하던 시절에 그와 나는 아마 이런 날들은 꿈도 꾸지 못했을 것이다. 아마도 젊어서 그랬던 게 아닌가?하고 위로해 본다. 참 많은 일들이 그가 없는 동안 나를 스쳐 지나갔다. 그에게도 나만큼의 일들이 생겼으리라 자위한다. 타국의 사람들과 언어, 인연과 악연들로 그의 시간을 가득 채웠으니 그 또한 지금을 상상조차 못했으리라. 갑작스런 나의 출현에 그는 어떤 표정을 지을지 궁금하다. 어쩌면 미리 알고 있었을 지도 모를 일이다. 그가 있는 곳엔 늘 내가 있고, 내가 있는 곳엔 늘 그가 있었으니.. 기다림과 목마름이 한꺼번에 잊혀지는 듯한 느낌이다. 이젠 감각이 무뎌질 때도 되었건만, 마치 그때의 울렁임같은 지금 마음은 무엇일까? 그를 만난다. 어떤 말을 할 수 있을까? 먼 곳에서 그가 손짓을 한다. 나는 가벼이 목례를 해 보이고는 전시장으로 들어간다. 그림은 제목 만큼이나 어렵고, 다분히 몽환적이었다. 그림의 구도, 사람들 표정, 비대칭 오히려 추상화 같은 걸 연상시킨다. 사실 그림은 잘 모른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유화, 판화, 수채화같은 상식에 그의 잡귀가 훑고 지났으니 말해 무엇할까. 그가 그토록 떠들어 대던 작가 "클림트" 도 내겐 어떤 예술가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그림을 본다. 될수 있는 한 열심히.. 본다고 알겠나 마는 그래도 보는 시늉은 해야 했다. 어떤 신문기자가 그를 취재했다는 기사를 본적이 있다. "불우한 어린시절, 암담했던 고교시절, 힘겨웠던 대학을 거쳐 먼 이국에서의 정착은 그의 작가성에 대단한 영향을 끼쳤다. 독고 화백이 끊임없이 찾아가는 정체성은 무엇일까?"라고 여기자는 기사에 썼던 것 같다. 순감 목덜미에 따스한 바람이 일고, 은근한 향기가 돈다. 그가 지금 내 곁에 있다. "왔냐?" 그는 나를 마치 어제 만난 것 같다. "응...." 여운이 남은 내 대답은 그의 무표정을 살핀다. "그래. 잘 왔다. 와 줄줄 알았어." 그는 이제 사투리를 쓰지 않는다. 단정한 표준말을 구사하는 그의 억양이 잠깐 당혹스러웠다. "그림좋다. 뭐 별로 볼줄은 모르지만말야." 그는 나의 난감함을 알아챈듯 말한다. "그림은 그냥 봐, 아무생각도 하지 말고,, 천천히.. 차 마시듯이." 순간 그가 예전에 했던 말이 떠올랐다. "좋은 그림 산다고, 잘 볼 줄 안다고 으시대는 건 속물근성이야." 아마도, 고흐의 전시장이었던 것 같다. "이제 끝나 가니? 내가 좀 늦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