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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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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필로그 - 소독


BY 이마주 2003-10-31

<에필로그>

생각에 빠지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시헌의 생각이 많이 났다.

어른이 되어 가정이라는 것을 함께 나누었던 사람이어서 였을 것이다.

 
전남편과는 그 날 이후로 전화를 계속하기도 하고 가끔 만나서 저녁을 먹기도 했다. 시작은 좋았지만 헤어지는 시간이 다가 올때면 우리 사이에는 긴장감이 감돌았다.
답이 없는 반복되는 우리의 시간들에 대해 그도 나도 미련을 못 버리고 있었다.

우리는 마치 선을 보고 형식적인 데이트를 하는 사람들마냥 어색하게 만나기도 했고, 때로운 어쩔 수 없는 부부의 모습으로 의식되기도 했다.

시헌은 늘 나를 한결같은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그는 날 여보, 자기. 연우야 등의 호칭으로 부르곤했다.
나는 오빠, 시헌씨 라고만 불렀다.
급할 경우에 목구멍으로 '여보'라는 단어가 나올뻔 하기도 했지만 그것은 그리 좋은 생각이 아니었다.

어떤 저녁에는 명이가 전화를 하기도 했다. 그 날 이후 우리는 더 이상의 관계를 갖지를 않았다. 그 날의 섹스는 아주 좋았다.
마치 남편과 처음섹스를 하기시작한지 얼마 안되었을 때처럼 난 머리에서 발끝까지 애정어린 전희와 강렬한 본게임과 여운이 길게 남는 후희를 경험했지만 더 이상 생각나지 않는 그런 섹스였기에 감쪽같이 그와 함께 회사를 다닐 수 있었다.

마치 연애시절 집에 일찍 들어가기 위해 시헌과 이른 저녁 섹스를 마치고 태연스레 '다녀왔습니다'하고 부모님 얼굴을 마주 볼 수 있었던 것처럼 그시절 나의 핸드백에는 화장품이 한 가득이었다. 아침에 나올 때 썼던 화장품과 헤어제품까지 모두 챙겨가지고 다녔었다.
연애하느라 정신 못차리던 나에게 그것은 부모님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였다.
난 그래서 딸을 낳기가 싫다.

시헌과 영화를 보고 있을 때 진동으로 해놓았던 휴대전화로 명의 메시지가 왔다.
'왜 전화안받아요? 전화해요, 보고시퍼요.'
힐끗 내 전화기를바라보던 시헌은 무표정한 얼굴로 스크린을 바라보았다.
솔희는 내가 시헌을 만나는 것을 쌍수를 들고 환영했지만, 한편으로 다른 남자 한번 제대로 안 만나보고 다시 시헌에게 돌아가게 될까봐 걱정하는 눈치였다. 명과의 관계에 대해 말을 한다면 당장이라고 새로운 사람과 시작하라고 설칠 것이 눈에 선하기에 난 그와의 관계를 솔희에게 말하지 않았다. 그리고 혹시라도 실장에게 우리의 단 한 번의 일들이 낱낱이 알려지는 걸 원치않아서였다.

우리의 이혼이 현실인지 가상인지가 모호한 것이 사실이었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말그대로 성격차이, 환경차이, 뭐 이런 딱지가 붙은 우리의 이혼은 어떤 면에서는 당연하지만 다른 시각에서는 정말 이해조차 얻기 어려울정도로 규정짓기 어려웠다.

만약 그나 나나 새로운 이성관계가 쉽게 정립되었다면 이런 문제가 없었겠지만 그도 나도 새로운 연인이나 상대를 못정했다.
내가 명과의 정사가 없었던 때에는 해프닝으로 끝난 미선과 시헌의 섹스가 어느정도 불쾌했던 건 사실이었다.

상대가 누군가를 안다는건 그래서 불쾌한 일이었다.
하지만 경험하지 않으면 모른다고 나역시 남자와의 잠자리가 있고나니 그도 그럴 수 있다는 것에 보다 관대해 질 수 있었다.
물론 우리는 가끔 만나기는 했지만 스킨쉽은 말그대로 스킵하고 지냈다.
이미 알만큼 아는 남편과의 섹스는 거의 습관과 중독의 경계였다.

다른 건 몰라도 그것만큼은 남부럽지 않게 잘 어울리는 부부였기에 그와 한 번 다시 섹스를 한다면 아마 우리는 만날 때마다 그래야 할거였다.

영화는 줄거리도 생각나지 않을 정도로 지루하고 진부했다.
토요일 저녁 거리는 별의 별 사람들로 가득했다.

시헌은 주머니에서 담배를 피워 물었다. 왠지 오늘만큼은 어색한 시간이 길어질 모양이었다.
명의 전화 한통에 이런 분위기를 만드는데, 만약 애인이라도 생기면 이 남자 꽤나 힘들어 하겠구나 싶으니 피식 미소가 번졌다.

"왜 웃어?"

"그냥...재미있어서."

"걸을까?"

그는 담배연기를 뿜어내며 한 손으로 덥석 내 손을 잡고는 미처 따라가기가 어려운 빠른 속도로 성큼거리며 걸어갔다. 사람들과 어깨를 부딪히며 걸어가는 것도 한계였는지 그는 어느 상가건물의 입구로 나를 세웠다.

"연우야, 이게 뭐냐? 너 정말 이렇게 사는 니 인생이 정말 좋은거야?"

시헌의 얼굴은 붉다못해 검은 빛이 돌았다.

"연우야, 나 너 사랑해, 너도 나 사랑하잖아? 아냐? 아닌데 왜 나를 만나니?"

"갑자기 왜그래? 이런 일이 생길까봐 애초 시작을 말아야했어. 알아? 그리고 어떤 인생? 오빠랑 살았던 오년이나 지금의 나나 어떤게 이렇게 사는건데? 말해봐?  당신이랑 살아야 내가 잘사는거야? 그럼 같이 사는동안 그러질 말았어야지. 오빠랑 사는게 가장 나다운 일인 것처럼 해줬어야 한 거 아니야? 난 가진거 별로 없는거, 아이없는거 보다 당신이 함께 있어도 날 외롭게 하는게 가장 비참하고 싫었다구, 내가 뭐 인형의 집의 노라야?

지금은 21세기라고 이바보야. 밥먹고, 옷입고, 같이 자는게 결혼생활의 전부니? 내가 다른 남자만날려고 오빠랑 이혼 한줄알아? 나도 어떻게 살아야하는지 모르겠단말이야.

항상 몸에 안맞는 옷을 입은 것처럼 일센치씩 틀려지는 오빠랑 나의 사고가 나중엔 만질 수도, 느낄 수도 없게 3d영화처럼 허공으로 떠도는데 난 뭘 붙잡고 살아? 집에 오면 된장찌개 끓여놓고 하루 종일 당신을 기다리는 내가 오빤 그렇게도 좋아? 도대체 뭐냐구? 애도 없는데 언제까지 생기지도 않는 아이를 위해서 집에만 있어야 하냐구? 그렇게 나한테 자신이 없어? 내가 일이라도 가지면 뭐 어떻게 될까봐? 날 봐, 날 보라구 결국 당신이 다시 한 번 만나자는 말에 이렇게 약속지켜서 나오는 나는 뭐야? 내가 오빠 다시사랑하기전에 헤어져. 아니
헤어진 다음에도 그리워 하지 않게 내 곁에서 떠나기라도 해줘야지, 왜 오빠만 생각해?

사랑? 사랑이 이런거야? 맞아, 사랑은 이런거야.

내 몸에 딸린 내 마음, 내 가슴으로 생각해도 수학공식처럼 정확하지 못한.

사람 피말리는 감정이라고. 알아? 나보고 어떻게 하라는거야?

현기증이 났다. 상가 벽에 맥없이 기댈 수 박에 없었다.
서류상에 모든 기입을 마치고 났을 때도 나는 벽에 기대섰었었던 기억이 났다.

이상하리 만큼 그 때는 정신이 맑았었는데 이제 일년이 조금 지난 지금은 그와 마주서서 이런 대화를 하는 나는 거기 없었다.
내 너덜너덜한 심장소리만이 남아있을 뿐이었다.
 

남편은 나를 붙잡고 흔들어댔다.

"정신차려. 연우야, 나야 나. 너를 사랑하는 나라구. 내가 잘못했어. 널 외롭게 한 거 다 내잘못이야. 난 사람들 누구나 나처럼 사는 줄 알았어. 니가 얼마나 착한 여자인지, 날 얼마나 사랑하는지 난 몰았다. 항상 나만 너를 사랑하는게 아니까 조바심내고 의심하면서 살았던거 같아. 그래서 널 힘들게 하는 줄은 난 몰랐어. 미안해. 연우야. 잘못횄다. 이제부터 잘할게. 나 바뀌도록 노력할게, 다른 사람들에게는 평범한 남자일지도 모르지만은 너에게 만큼은 특별한 남자가 될께. 응? 부탁이야. 사랑해. 정말 난 너만 사랑해. 우리 다시 시작하자.

니가 원하던게 내가 원하던거야. 하지만 처음엔 한번에 우리가 원하는대로 바꿔지지가 않았어. 다 나의 자존심 때문이지. 원한는대로 안되니까 못나게 굴었어. 너한테... 근데 세상 어
디를 봐도 너만큼 날 버리고 사랑할 수 있는 여자가 없어. 다른 누군가에게도 마음이 안가. 그래, 내가 다른 사람에게 마음이 안가니까 다시 너를 선택하려는 것 처럼 느껴질 수도 있겠지. 정말 그런거 아닌데...
나 너 사랑한다. 그리고 너도 나 사랑하는거 알아. 우리 새로 시작해서 잘 해보자, 응? 나중에 나이들어서 지금을 생각하면 웃을수 있게 내가 최선을 다 할께. 연우야. 제발 날 버리지 마라. 부탁이야."


가슴이 으스러 지도록 그는 나를 껴안았다.
안울려고 했는데... 정말 안 울려고 했는데...
눈물과 콧물이 범벅이 되어 얼굴을 간지르며 흐르고 있었다.

그의 팔의 힘으로 숨쉬기는 답답했지만 시원한 청량음료를 단 번에 마셨을 때처럼 마음에서는 '쏴"소리가 날만큼 씻겨내림이 느껴졌다.
부부로 살면서 숨막히게 답답하게 지내온 기억들도 모두 잊혀져 이젠 한가닥 서로움이 되어 공중으로 날아가는 듯했다.

나 역시 그에게 못나게 군 것을... 함께 사는 동안은 지옥에서나 쓰는 말처럼 마음속으로 '당신 때문이야.'라고 그를 원망했던 나의 모습들이 무너져 내리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난... 오빠 버리지 않아. 내가 어떻게 당신을 버려? 난 당신없이 살아도, 내가 아닌데... 이제는 연우만이 아니라 오빠의 연우가 되었는데 내가 어떻게 그래? 미안해. 정말 미안해. 나는 사는 동안 오빠한테 미안하다는 말이 왜그렇게 안 나왔는지 몰라? 화 내구서도 미안하고, 바가지 긁구두 미안하고, 오빠 마음아프게 한 것도 미안했는데 나도 말을 못했어. 아냐 ,안했어. 하기가 싫었어... 조금이라도 당신이 내가 오빠 사랑하는 마음을 다 알아 버릴까봐 말을 못했어. 여자는 그저 평생 남자가 안달하고 살아야 잘 사는 줄 알았어. 그래야 딴 생각안하고 아내 소중하게 생각하는줄 알알어., 여보, 사랑해. 난 오빠 사랑해, 믿기싫어도 난 내가 오빠 사랑하는 거 알고 있었어... 미안해, 정말 미안해."

난 남편을 사랑했고, 살면서 사랑을 더 했고, 헤어져서야 그게 내 평생에 진짜 찾아온 진정한 사랑이라는 걸 알았다.
인정하기 싫었지만 영원히 그를 잃은 것 같아 많이도 아파했다.

시소게임처럼 대등해지려면 양쪽으로 무게가 맞아야 하듯이 똑같이 사랑할까봐 동동구르며 살아온 건 오히려 나였다.
소울메이트? 그런건 나에게 중요치 않앗다.

그냥 바라만 봐도 웃음이 나오는, 그의 살냄새가 좋은, 그 사람이 내 사람이었던 거다.
가까이서 삶을 공유할 때는 그 마음들의 무게를 깨달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 순간에 바로 그에게 모든 것을 열어 버린다면, 지금 이후로 또 새로이 흘러가는 시간들을 감당할 수 있을까? 내가 지금 대답을 미룬대도 그는 여전히 날기다려 줄까?
자신이없었다.
이대로 그를 보내면 어느 날인가 그의 재혼 청첩장을 받게될 것만 같았다.
그래도 어떻게 대답을 해야할 지 알 수가 없었다.

우리가 헤어졌을때도 우리는 사랑하고 있었는데...

지독히도 각자의 길을 가고자 했던 나였다. 이기심이라고, 우유부단이라고, 연민이라고, 사랑이라고도.
딱히 한단어로는 표현 안되는 이순간에 그래도 난 그를 잡고 싶었다. 또 다시 외로워진다고 해고, 또 다시 피터지게 시댁과 친정문제로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싸운데도, 가벼운 월급봉투에 생활비를 쪼개서 적금을 부어야 한대도 난 이 남자와 다시 그 길을 가고싶어졌다.
 

"사실 나 오늘 할 말이 있었어."

그는 아까 담배를 꺼냈던 주머니로 다시손을 넣었다. 그는 양복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어 불쑥 내밀었다.

"뭐야?"

"콧물닦어. 눈물도. 마스카라가 장난 아니게 번진거 너 모르지?"

당황되고 어의 없지만 길거리에서 그리 젊지도 또 너무 늙지도 않은 남녀가 울며불며 소리지르고 목청껏 얘기한 후에 여자의 얼굴은 마스카라가 번져 삐에로 같이 변하고 정말 흉한 몰골이었다.
망가진 얼굴을 어떻게든 수습하고 있는데 갑자기 시헌은 '맞다.맞다'를 연발하며 자기 넥타이를 바로 매
달라고 했다.
별안간 그의 주문에 어색한 손길로 내가 3년전 결혼기념일에 사주었던 푸른 빛의 넥타이를 매만져주었다.
"어? 여기 왜그래?"

아까는 미쳐 몰랐는데 그의 넥타이 아래가 보기 흉하게 불거져 있었다.
그곳엔 ...
반지가, 넥타이 뒤에 실로 매어 있었다.
시헌은 머리를 긁으며  목줄을 내 오른손에 잡힌채 웃고 있었다.

"저기 잊어 버릴 까봐, 아까 넥타이 뒤에 매놓은 건데 ..맘에 들어? 연우야. 이 반지 너가 사면 사은품으로 김시헌이란 남자를 선물로 주는데, 그 놈은 평생 우연우라는 여자한테만 프로그램 되어있대. 지난 번 니가 샀던 구형모델 김시헌을 새롭게 업그레이드 한거라 쓸만할거야. 그리고 이 반지는 돈으로 못사. 딱 한가지 질문에만 대답하면 살 수 있어. 음, 뭐냐면..."

"오빠... 말하지마. 난 무조건 예스야."

"어? 너 듣지도 않고 그러면 어떻게해? 에이, 너 실수했어. 내가 결혼해줄래 할 줄 알았지? 바보, 그게 아니라 나 씻는거 싫어하는거 알지? 너 나랑 다시 결혼하면 내가 평생 세수안해도 되니하고 물어 볼 거였는데.. 할 수 없지 뭐. 니가 그렇게 원한다면 안씻고 평생살아야겠다. "

나는 그의 넥타이를 당겨 그에게 키스해 버렸다. 누가 본대도. 그래서 경범죄로 경찰관 아저씨한테 걸린다 해도 상관 없었다.
난 그와 다시 사랑에 빠졌으니까...
 
< 소독>

시헌이 둘도 없는 친구와 마주하고 앉은건 학창시절에 자주왔던 초라한 주점이었다.
남편의 친구가 이혼을 하겠다고 그를 찾아왔다.
"김 시헌, 나 결심했다, 이게 사는게 아니다. 옛날엔 너 이혼한다고 했을때 제일 말렸었지만. 이젠 그랬던게 미안해. 정말 괴롭다."

시헌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친구와 마주 앉아있다.

"문제가 뭔데 그러냐? 너 이혼 그거 그렇게 만만한 거 아니야. 잘 생각해봤어?"

"나도 모르겠다, 그냥 빨리 이 지옥에서 벗어나고 싶어, 솔직히 마누라 얼굴보기도 싫다. 정이 한 번 떨어지고 나니 집에 들어가기도 싫고... 그나저나 제수씨한테 미안해서 어쩌냐? 니네 다시 합친지도 얼마안되는데 술도 잘못먹는 남편 술자리로 불러내서 나만 더 미움받는거 아니냐? 그래도 넌 복도 많다, 연우씨 같은 여자랑 사니말이다. 재미있게 사는거 같어. 너네 부부는..."


시헌은 피식 웃음을 지으며 상위에 놓았던 소주잔을 들어 아주 조금만 입에 대었다 내려놓는다. 젓가락을 들어 안주로 나온 빈대덕을 크게 찟어 우걱거리면서 말했다.

"임마, 결혼생활은 둘만 아는거야, 안그러냐? 나도 정말 여기까지 올 동안 괴롭더라. 그래도 조강지처란 말이 맞나봐. 그냥 연우만 생각나더라구, 더 어린 여자도 있고. 사실 누구말대로 남자가 애없는 이혼남인데 뭐 흉되느냐고 하지만... 임마, 사나이가 한 번 사랑을 준 여자가 있으면 그 걸 지킬 줄도 아는게 남자아니야? 1년 넘게 따로 있다가 합치니 너무 좋다. 이제 더 많이 잘해주고 잘 살고싶은 맘 뿐이야. 그러니까 너도 순간의 감정으로 성급한 결정내리지마."

"자식 말은... 야. 그렇다고 니네 따로 사는 동안 니가 뭐 수도생활이나 했냐? 연우씨가 그런 사실들을 알았으면 너랑 다시 안 합쳤을깔? 그 누구야? 니네 회사그 미스박인가? 너 걔랑 진했던거. 알사람은 다 안다 임마. "

시헌은 술기운이 돌아 붉어진 얼굴로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너 무슨 그런 섭섭한 소리를 하냐? 남자는 몸따로, 마음 따로 인건 더 잘아는 놈이 왜그러냐? 미스박은 나랑 그저 즐긴거야, 걔가 워낙 밝히는 애였거든. 너도 알지? 우리 회사에서는 나 이혼한 줄도 여지껏 모른다는거? 미스박도 내가 유부남이니 소문 날 일 없으니까 즐긴거 뿐이야. 그냥 외로운 남녀가 서로 따뜻한 체온 몇 번 나눈거랑, 사랑은 차원이 다르지. 그저 그뿐이다. 확대해석은 사양한다. 안그래도 미스박 다음달에 시집간다. 너 내가 우리 와이프 없으면 죽는거 알지? 난 연우 없음 못살아."

"하긴 부럽다 부러워, 넌 니가 사랑하는 여자랑 살고, 나는 발목잡혀 결혼한 마누라랑 죽지 못해살고, 그래도 애들하나는 정말 잘 나아줬단 말이야. 고것들 생각하면 못할 짓이긴 한데. 그래도 이렇게는 못살겠으니 콱 바람이나 필까?"


"쓸데없는 생각하지 말고 술이나 마셔, 오늘은 내가 위로주 사마. 괜히 엄한 소리하지 말고 조강지처가 최고다 하고 살면 그게 행복이다. 임마."

시헌이 따르는 소주잔은 맑게 채워졌다.
그리고 시헌의 모든 기억들 역시 맑게 잊혀지기릴 바라면서 그는 마시지도 못하는 소주를 거푸 들이키고 있었다.

마치 소독이나 하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