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그리고 기억>
공사는 생각보다 더 많은 디자인과 노력을 요했다 .
국제 세미나가 열릴 기간이 얼마남지 않았기에 우리 모두는 더더욱 밤을 세우는 일이 많아졌고 칼날의 예리한 지적들도 날이 갈수록 까다로워졌다.
실장은 함께 일하면 할수록 존경스러워지는 사람이었다. 예상치 못한 일이 발생해도 결코 당황하는 법이 없이 그의 머리 속에서 샘솟듯 새로운 아이디어가 나왔다.
신으로부터 축복받았던 많은 위대한 예술가들의 뒤를 이을 법한 사람이 실장이었다. 하지만 같이 일을 하는 엄밀히 말해서 일을 해내야 하는 나같은 쫄다구로서는 그에 대한 콤플렉스와 함께 언제나 바늘방석 같은 푸쉬가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었다.
암만 세상이 바뀌어도 한가지 변하지 않는 것은 어느 자리나 끝까지 남아야 하는 사람이 있다.
이번 공사의 경우는 그것이 바로 나였다.
인부들이 돌아간 후부터 우리 디자이너들에겐 작업에 대한 평가가 이어졌고 이어질 다음 프로젝트에 대한 점검이 필수였다.
이런 일은 나보다는 윤 명에게 돌아감이 옳지만 칼날은 이번에도 나를 지목했다.
한마디로 실컷 고생좀 해보라는 거였다. 어쩌면 그는 내가 이런 현실을 견디지 못하고 회사를 그만두기를 바라는 사람처럼 보였다. 하긴 사장이 날 이혼녀라 동정했기에 실무경험이 거의 없던 내가 채용되었던 거고 일의 능력이 그 사람의 가치를 저울질한다는 신조로 살아온 실장에게는 나의 입사가 영 마음에 안들었음이 당연하다.
이런게 쓸데없는 자존심이나 똥고집인지 혼자서 덩그마니 공사현장에 남을 나를 보고 명은 귀속말로 자기가 퇴근하는 것처럼 하고 저녁밥을 사가지고 돌아오겠다고 했다. 함께 있으면 신선하고 일적으로도 도움이 되는 건 사실이지만 실장이 나에게 시키는 모든 작업들을 보란 듯이 혼자서 해치우고 싶은 마음에 떠다밀 듯 그를 보냈다. 명은 일을 도와준다는 핑계로 나와 조금이라도 더 시간을 보내고 싶어했지만 그런 그가 너무도 부담스러웠다. 사실 그 와 단 둘이 있으면 그의 싱그러움에 나마저 그의 페이스에 말릴지도 모를 일이기 때문이었다.
혼자서 이것저것 체크하면서 남편이 하려던 얘기가 무엇일까 궁굼해졌다. 할얘기가 있다는 것 자체가 뜻밖의 일이었다.
그는 이혼하는 그 때에도 아무런 얘기를 안하던 사람이었는데... 우리에게는 크게 정리할 그 무엇도 없었기에 정말 결혼보다도 이혼이 쉽게 이루어졌다.
때로 만약 우리에게 아이가 있었다면 어떠했을까 하는 상상을 해보곤 했다. 아마 우리는 헤어지지 못했을 것 같았다. 다른 정상적인 이혼 부부들은 어차피 부부간의 갈등이나 외부적 요인이 더 크게 작용하기 때문에 아이가 있어도 큰 대가를 치루고라도 이혼을 강행하지만 우리처럼 아이가 없는 부부, 특히나 나나 그처럼 간절히 아이를 원하다가 끝내 실패하고 이혼을 하게 되는 경우는 약간의 차이가 있는 듯했다.
물론 어떤 이혼에나 이유가 있고 부부간의 깊은 골이 있지만 아무래도 아이가 있는 사람들의 이혼은 더 괴로울 것이다. 아이들의 존재는 그만큼 부부의 일부이기 때문일까?
우리의 경우에는 이혼이 결정되고는 그저 각자의 짐을 정리하고 어색한 시간을 보내고 이혼이 처리가 된후 각자의 길을 걷기로 했던 것이었다.
그래도 어떤 면에서 아이가 없이 이혼하기에 더 쓰라리게 아픈 생각도 들었다. 한 번도 아이와 함께 꾸며본 가정생활을 못하다가 각자의 길을 가는 것 역시 회복되기 어려운 상처임에는 틀림없었다.
결국 이혼이라는 것은 어른이 되어 겪는 가장 처참한 자기선택의 후회인거 같을지도 모르겠다.
시간은 어느새 자정을 넘기고 있었다. 오늘도 집에 가기는 틀렸다고 생각했다. 회사에서 현장과 집이 먼 직원들을 위해 근처의 호텔을 제공해 주고 있었기에 망정이지 매일 이렇게 고단한 중에 운전하고 지방과 집을 오가는 건 목숨을 건 레이스를 하지 않고는 불가능한 일이다.
해머를 질질 끌고 나오는 듯 발걸음이 무거워졌다.
연구소의 시큐리티 아저씨는 여자직원 혼자 마무리를 하고 나오는 걸 보더니 안쓰러운 듯 말을 건넸다.
"허허. 나같이 밤에 경비서는 사람만 처량맞은게 아니고 여자 혼자 새벽까지 일하고 나오는 것도 보기 안됐구려. 운전 조심하세요, 디자이너 아주머니."
예전같았으면 아주머니란 소리에 기분이 상했겠지만 이제는 나이가 나이인지라 아가씨라 불리우는게 더 창피한 실정이었다. 그래도 영 산뜻 하지만은 않지만.
"아저씨도 수고하세요."
밤이슬이 여기저기 내려있었다. 그래도 밤공기는 늘 기분을 좋게 했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도시보다는 많은 별들이 떠있었다. 몸은 피로했지만 일을 마치고 내일 실장에게 당당한 얼굴로 마주 대할 수 있다는 게 맘에 들었다, 빨리 가서 뜨거운 물에 샤워를 하고 자야겠다.
내 차만 주차장에 있는 줄 알았는데 다른 차에서 운전석 문이 열렸다.
"우연우."
그 쪽이었다. 이 늦은 시간에 예기치 못한 두 번째 만남이었다.
"집에 안갔나봐?"
"연구 때문에.공사 마무리가 바쁜가봐? 이렇게 늦게까지 일하고?"
"그 쪽도 바쁜가보네. 이 시간에 집에 가는거 보니."
"아니. 그런건 아니고 나 너 기다렸다. 하필 기다린 날이 장날이라고 생각보다 늦게 널 만나긴 했지만."
피해갈 수만은 없는 것 같았다. 요즘은 왜 이리도 나한테 말할 사람이 많은 건지 피곤하게 느껴지는 순간이었지만 뭐 어차피 이제는 각자의 인생속에 살아오는 건데 그저 동창 만나는 기분으로 그를 대할 수 있다는게 다행이었다.
야식을 먹자고 그가 제안을 했고 밤새워 영업을 하는 근처 레스토랑으로 들어갔다. 우리나라의 대부분 술집이 일반음식점으로 구분이 되어있기에 이런 일도 가능하리라.
여러 무리의 사람들이 술을 마시고 있었지만 실내는 잔잔한 올디스팝이 흐르고 있었다.
사실 좀 출출하기는 했다.너무 늦은 시간에 많이 먹기도 그렇고 난 가벼운 샐러드를 주문했다.
"드레싱은 허니 머스터드로 주세요. 아? 아직도 이 드레싱을 좋아하는게 맞다면?"
그는 아직도 내 입맛을 기억하고 있었다.
"머리 하나는 정말 좋단 말이야. 그건 그렇고 정말 어색하다. 십년 가까이 따로 살아오다가 이렇게 마주 앉아서 있다니 말이야. 이삭씨 와이프는 이렇게 늦으면 걱정안해? 이렇게 여자랑 있는데?"
그는 나지막히 웃었다. 완벽한 자신감.
아내가 철저히 신뢰하도록 아마 한 번도 책 잡힐 일을 안할 남편.
게다가 우리나라에서 촉망받는 젊은 과학자로서 연구기간에 밤샘작업을 이해 못할 여자가 아닐 것이다. 천상 현모양처 타잎의 아내일테지.
"관두자, 관둬. 어련히 집에다 잘할까? 근데 좀 의외다. 잘나가는 연구원아저씨가 엑스 걸프렌드를 왜 그렇게 기다렸어? 할 얘기 해봐."
"여전하구나 말투.. 귀여워. 술 한잔 할까?"
우리가 가장 안맞는 부분 중 하나였다. 독실한 그의 종교관으로 인해 그는 학생때부터 술담배를 안해온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나를 만나면 마치 금단의 열매를 먹는 듯, 대개의 청춘들이 하는 여러 가지 치기 어린 일들이나 일탈을 서슴지 않는 것이다.
젊음은 때로는 돌파구였는지도 모를 일 이었다.
사실 그는 은근히 술이 셌다. 술자리를 좋아하기는 하지만 그리 술 체질이 아닌 나로서는 그와 술을 마시다가는 취하기 십상이기에 거절했다.그 쪽은 결국 코냑을 혼자 마시기 시작했다.
"참 기분이 좋아, 연우 너랑 있으면."
"어? 잠깐만. 밤도 늦었는데 미사여구 늘이지 말고 본론만. 그 쪽이야 내일 늦어도 지장없겠지만 난 말단이라 그럴 수 없거든."
"그래... 한가지만 물어보고 싶은게 있었다. 왜 ? 왜 그렇게 날떠났니?"
가슴이 답답했다. 뭐라고 얘기해야하나?
"솔직히 얘기해줘? 아님 듣기 좋게 얘기해줘?"
단숨에 술을 마시는 그가 날 쳐다봤다.
"솔직히.."
"그 쪽은 왜 날 붙잡지 않았어? 물론. 대답안해도 돼. 글쎄... 그 땐 우리가 너무 어렸던거 같아. 그리고 나보러 솔직하라고 얘기할 자격이 그 쪽에게 있을까? 항상 나와 있는 시간 동안 부모님에겐 솔직하지 못한 쪽은 오히려 이삭씨였잖아. 그런게 싫었어. 그리고 내가 가장 힘들었던 건 항상 그 쪽의 인생스케쥴에 내가 맞춰져야 된다는 거였지, 난 그게 싫었거든. 나도 내가 원하는 삶을 그릴때 함께 해줄 사람이 필요하다고 느껴졌고 그래서 헤어지자고 한거야."
"너... 내가 너랑 헤어지고 왜 얼마 안되서 결혼한지 궁금 하지도 않았니?"
어의가 없었다.
"난 너한테 화가 났었지. 너도 알잖아, 우리가 함께 보낸 첫날 밤, 난 내 동정을 너에게 바쳤다. 왜냐면 너랑 결혼할거였기 때문이었지.
그래... 인정해. 난 욕심이 많은 사람이야. 성공하고 싶었거든. 부모님도 그걸 원하셨고... 부모님의 관점에서는 내가 박사가 되기 전에 결혼하는게 불안하셨던 거야. 그래서 내가 연애 하는걸 아주 싫어하셨지. 사실 난 너한테 너무 빠져있었거든.. 넌 몰랐겠지만. 난 그 때 너 한테 테 미쳐있었다.
우습겠지만 나도 널 만나면서 공부에 한동안 신경 못쓰는게 불안하기도 했지. 그러다가 너에게 이별통고를 받고 처절한 생각이 들었지. 난 내 신부될 사람에게 나의 처음을 주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고 너를 택했는데 결국 그렇게 안됐으니까... 남자들이 마구 자신의 동정을 버리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는법이거든.
박사논문이 통과되자마자 부모님은 내게 걸맞는 참한 아까씨를 주선했지. 난 결혼했다. 내 아내는 나보다 나의 사회적 지위를 사랑하지, 그게 나와 그사람하고의 결혼생활이 평탄한 비법이지. 가정적으로도 나무랄데 없는 착한 아들 노릇을 한거기도 하고...
난 알고 있었어. 넌 한번도 나를 찾지 않을거라는 걸 넌 그런 애니까. 어떤 면에서는 나보다 더 차가운게 너야. 그래서 나도 널 찾지 않았다. 물론 부모님 앞에서도 내가 너와 헤어지므로 인해 마음이의 병이 깊어가는 걸 눈치채시지 못할 정도로 난 일상적으로 생활했지. 네가 예상할 만큼. 그러다 너를 다시 찾을 수 있었던거야. 이번 공사로... 놀라기도 하고 설레기도 하더라. 널 다시 보니까..."
"그래, 우린 서로를 너무 잘 알았었던건 사실인거 같아. 그 쪽이 내 첫사랑이었던건 언제나 같아. 근데 이래서 첫사랑이란 말이 있는거 같더라. 평생에 한 번만 사랑이 오지는 않나봐? 나 이삭씨 사랑했어. 사실이야. 그리고 내가 사랑한 사람이 이렇게 잘되었으니 더 좋네. 아마 내가 그렇듯이 그 쪽도 아내와 아이를 사랑한다고 믿어. 난 내 남편을 사랑해. 내게 있어 남편과의 사랑이 내 진짜 사랑이야. 이삭씨도 하나님을 믿지만 난 하나님이 내게 주신 참된 배필이라고 생각해.
만약에 이삭씨와 결혼했더라면 후회했을거야. 하지만 남편과 나는 진심으로 사랑해."
"근데... 너 왜 이혼했니?"
그 쪽이 알고 있었다. 내가 이혼한 것을.
일종의 쓰디쓴 낭패감이 휘리릭하고 온 몸을 감싸는거 같았다.
말한 적도 없고 정말 오랜만에 만난 이삭은 그윽한 코냑을 기울이며 날 예의 그 예리한 과학적 시선으로 쳐다보며 묻고 있는거다. 제기랄...
"나 이혼한거 어떻게 알았어?"
시간은 이미 2시가 가까워졌지만 어차피 이런 얘기까지 오가는데 쉽게 자리를 뜰 수가 없었다.
"우리나라 좁잖아. 우리 연구소 공사 너희 회사에세 한다고 잡지에 났었잖아. 난 가끔 동창회 나가. 거기서 들었어. 너 사랑한다면서 왜 이혼했니? 잘 살지 왜 이혼했어?"
"오버하지마. 이삭씨. 그럴 만한 이유가 있어서 헤어졌고... 내가 왜 취조당하듯 이런 질문에 답해야하는거야? 이 만큼 나이먹었으면 이제 그 쪽도 알거아냐? 세상엔 사랑하지 않는데도 부부로 사는 사람이 있고 사랑해도 헤어지는 사람도 있어. 그리고 이혼했다고 다 불행한거 아니니까... 그런 식으로 말하지마. 정말 기분 나쁘다. 그리고 어디 이혼하는 사람이 한 둘이니? 전근대적인 발상은 노땡큐야."
한동안 말이 없이 우리는 앉아있었다.
짙은 갈색의 코냑이 향기로운 냄새가 코를 즐겁게 헸다.
입술이 닿은 잔의 가장자리로부터 적당히 손의 열기로 데워진 코냑이 한모금씩 입안으로 흘러 들어왔다.
혀끝에서 목젖에 이르기까지 샅샅이 코냑으로 적신 후에야 목줄기를 타고 뜨거운 액체는 굽이 쳐들어가고 하필 이 늦은 시간에 그 쪽이 이 술을 시킨 이유를 조금은 짐작할 수 있었다.
"그래서... 널 더 만나고 싶었다. 연우야, 우리 이게 운명아닐까? 너랑 나랑 이렇게 다시 만난거 말야. 너 이혼한거 내 책임이 아닌거 나도 안다. 연구소에 공사를 시작하게 된 걸 알고 있었지만 어느 회사에서 그 일을 하는지는 관심조차 없었다.
그러다 우연히 너를 봤어. 나도 처음엔 내 눈이 어디 잘못됬나 의심했어. 공사현장에 있던 네가 내가 사랑했던 연우일거라고는 한 번도 생각해 본적이 없었거든?
우리가 사랑했을 때 너는 꽤나 화려한 모습이었고 유행의 첨단을 걷는 아가씨였지. 우리 부모님의 싫어하셨던 너의 부분이기도 하지만. 난 그 날 너를 봤어. 너의 진짜 모습. 화장기 없는 얼굴에 청바지를 입고 운동화를 신고 동분서주 사람들 사이에서 소리치고 공사를 관리하는 먼지 뒤집어쓴 모습을 말이야.
내 눈에는 예전 어느 때의 너보다도 이쁘더라... 그렇게 널 보고 한 동안 앞에 나설 용기가 없었지. 생각을 많이 했어. 내가 살아온 시간들... 지금의 내모습... 내가 원하는게 뭘까? 모든게 달라지겠지. 널 다시 만난다면... 사회적으로나 신앙적으로나 비난을 피해갈 수도 없을거야. 분명히...하지만 이제 정말 이번 기회를 놓치면 안될거라고 생각해..
연우야. 나 아직도 널 사랑한다. "
난 마시던 코냑을 뿜어내며 웃었다. 기억 속의 첫 사랑은 미리 커닝 페이퍼라도 만들어 온 사람처럼 억양이 적은 톤으로 나에게 얘기하고 있었다.
천하에 그 쪽이 한껏 분위기 잡으며 새벽시간에 얘기한다는게 아직도 날 사랑한다고?
"이삭씨 취했다. 그래도 날 미워한다는 소리보다는 듣기 좋네..그 사랑이라는 말. 과거에 함께 많은 얘기를 나누던 친구를 사랑한다고 들을께. 그리고 나 다시는 이런 자리로 부르지마. 과거는 과거일 뿐이야. 더 이상도 이하도 없이.. 기억은 소중히 간직하지만 날 이렇게 함부로 대하지마.
난 이래서 남자들을 못믿겠어. 지금 아삭씨 와이프는 똑똑한 남편 기다리고 있겠지? 옛사랑과 이렇게 웃기는 얘기를 하고 있을 거라는 걸 상상도 못하면서... 도대체 뭐가 부족해? 아니 부족한게 없어서 좀더 자극적인거 찾아헤매?
미안하지만 정말 관심없어. 20대에 연우를 그리워하는거니? 난 지금 30살이 넘은 이혼녀야. 날 봐 똑바로. 난 이제 더 이상 로맨틱한 사랑을 꿈꾸면서 최근 패션이나 화장에 재미있어하는 여자애가 아니야.
난 진지하고, 내 생활을 책임져야 하는 성인이야, 더더욱이 난 나의 과거로 되돌아 가고 싶지 않아. 지금 내 삶에 만족해. 살아있고, 인간적이고 , 당당한.
정말 화가 난다. 이게 뭐야? 아직도 폼생폼사야?유치하게... 이것도 그 잘난 맛에 이렇게 함부로 대해도 된다고 생각해? 그럼 그 때 우리가 사랑했을 때 날 잡지 그랬어? 이런 모습이 아니었을 때 말이야. 그 쪽은 얼마나 자신이 이기적인지 아직도 모르는거 같아.
자신이 원하는거 언제나 다 가져야 마음이 풀려? 세상 그렇게 살지마. 그 때 우리가 헤어지지 않았다면 아마 더 후회했을거야. 정말 넌덜머리가 나. 내가 도대체 왜 이 자리에 있는거야? 어쨋거나 오늘일은 그냥 그 쪽이 술김에 한 말이라고 생각하고 잊을께. 정신 차리고 들어가, 나 먼저 갈께."
괜히 눈물이 나서 차로 뛰어들어갔다. 정신없이 시동을 걸고 한참을 간 후에야 마음껏 울 수가 있었다.
차라리 평생 만나지 말았으면 좋았을걸.
솔직히 내가 이혼녀가 아니었더라면 좋았을 것이라는 맘이들었다... 흔히 표현하는대로 그 나이에 웬만큼 성공한 옛 첫사랑 앞에서 늦게까지 일하는 이혼녀가아니라 우아하고 멋진 한 남자의 아내로 그를 마주쳤다면 좀 더 마음이 편했을거 같았다.
하지만 무슨 상관이 있으랴. 그 쪽도 어쩔 수 없는 보통 남자인 것을. .. 그 마음이 진실이었다고 해도 속마음을 그저 가슴에 묻어놓은 편이 더 멋졌을텐데. 그의 이기적인 생각의 단면들이 싫었다.
성공으로 인한 어처구니 없는 자신감이 이런 밤을 만들었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