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장 각자의 각기 다른 ….같은 목표….
오랜만에 이른 퇴근이다.
장마가 끝난 뒤로 본격적인 불볕 더위가 기승을 부리더니 이젠 헉헉 소리가 절로 나온다.
어제 민수의 유일한 초등학교 동창인 진이로 부터 전화가 왔었다.
“ 민수야 나 MT간다. 약 오르지? 호호호….. 일주일 후에 보자….”
으그…. 그것도 친구라고….. 나쁜 넘….
그래도 소꿉 친구라고 어디 가는 지 보고는 하는구만…
위로 3명이나 되는 오빠들 틈에서 전쟁을 치르며 민수가 자랐다면 진이는 위로 5명이나 되는 누나들 틈에서 마당쇠 처럼 하루 하루를 버티며 자란 , 그래서 서로의 아픈 마음을 너무나 잘 이해하는 그런 친구였다.
여름 방학이 시작되면서 군에서 제대한 녀석이 벌써 후배들 하고 MT를 간다고 설치는 걸 보면 정말 그 녀석의 넉살에는 두손 두발 다 들고 만다.
“ 진이냐… 나다.. 어디냐? 재미 좋아? 뭐라고? 야야……..”
정말 나쁜 넘이다.
친구는 이 더운 여름에도 서울을 꿋꿋하게 지키는데 자긴 바다 들어가야 한다고 매정하게 폰을 끊어 버리다니….. 흑흑흑…
좋아 …. 나도 즐기며 산다 이거야…..
기세 좋게 들어간 동네 마트에서 민수는 가장 큰 아이스크림 통을 집어 들었다.
아빠랑 둘이서 먹어야지…..
한참 흐뭇한 생각에 빠져있던 민수에게 파장을 던진건 어린 남자아이였다.
“ 누나….. 누나 …. 오랜만이야… 얼마나 보고 싶었는데…”
앞뒤 안가리고 달려드는 귀여운 꼬맹이 정우…
“ 누나… 왜 도장 안나와? 운동 안해?????”
“ 정우야 , 숨 넘어간다… 잘 있었어 정우오빠?”
정우는 오빠라는 민수의 호칭에 꿈벅 넘어간다.
그렇게 듣고 싶으면 엄마한테 여동생 하나 낳아 달라고 때를 써 볼만도 한데 ….
“ 안녕하세요… 정우가 민수씨 한테 또 막무간에로 달려드네요…”
순옥은 미안한 표정으로 민수에게서 아들을 떼어내고 있었다.
민수의 옷을 꼭 붙들고 안떨어 지려는 정우를 보며 민수가 손을 저었다.
“ 놔두세요… 저도 정우 오빠가 얼마나 많이 보고 싶었는데요….”
귀여워 못살겠다는 표정으로 정우의 볼을 꼬집고 볼을 부비는 민수를 보며 순옥의 전부터 결심한 말을 꺼내기로 했다.
“ 저…. 민수씨 사귀는 사람있어요?”
“ 아니요..”
이제 아예 정우를 자신의 카트에 태워서 이것 저것을 보러 다니며 민수가 건성으로 대답했다.
“ 제가 소개 시켜주고 싶은 남자가 있는데 …. 한번 만나 보시겠어요?”
조심스럽게 물어보는 순옥과는 다르게 민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 지금은 제가 아르바이트 때문에 좀 바쁘고요… 방학 끝나면 시간 낼께요…”
순옥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민수의 핸드폰 번호를 받아 적었다.
아파트 같은 동 아래 위층에 살면서 그간 민수에 대한 됨됨이를 눈여겨 보던 순옥이 이참에 시부모님의 걱정거리를 한방에 풀어드릴 생각인 것이다.
“ 그럼 제가 9월쯤 시간 잡아 볼께요… 괜챦으시죠?”
“ 네…”
여전히 정우와의 이야기에 정신이 팔려 건성으로 대답하는 민수를 보며 순옥은 오늘 처럼 자신의 아들이 이뻐 보일때가 없다고 생각했다.
정우야 기다려라.....
네가 그토록 좋아하는 민수 누나를 우리 가족으로 묶어놓으련다…..호호호호….
* * *
오랜만에 해님을 보면서 집에 들어온 딸이 TV에 빠진 채로 아이스크림을 통째로 들고 먹고있는 모습은 본 양여사는 속이 타들어 가는 것 같았다.
남편이 딸딸 노래를 불러서 무려 3번이나 실패하고 나은 딸이건만 오빠들 틈에 자라서 인지 다소곳한 모습은 눈비비고 찾아도 보이지 않고 이제 시집가서 애 엄마가 되야 할 나이 이건만 아직도 만화에 빠져 TV에서 눈을 못 때는 것이다.
몇 번이나 선 자리를 마련해 주었건만 계속 딱지만 맞고….
아무리 내 딸이라지만 딱히 내세울 만한 장점도 없고….
처음엔 어린 나이에 대학 교수가 된 것이 민수 자신에게 큰 장점이 될줄 알았다.
하지만 아직 가부장적 경향이 강한 우리나라에서 여자가 남자 보다 똑 소리 나게 영리하다는 것은 장점이 아닌 단점 이라는 것을 양여사는 한참이 지난 후에야 알았다.
그래서 요즘은 그냥 대학 다닌다고 소개한다.
대부분 남들이 학생인줄 착각하지만 그게 뭐 틀린 소리는 아니니까.
그래도 명색이 학교 선생님인데 거짓을 말할 수는 없고….
남편은 왜 그리 딸래미 시집을 못 보내서 안달이냐고 하지만 사실 위로 세 놈들이야 제 알아서 가겠지만 막내라 그런지 하나 밖에 없는 딸이라선지 꼭 자신의 손으로 짝을 지워 놓아야 마음이 놓일 것만 같았다.
그런데 지금 저 다 큰 딸년이 그녀의 중학생 제자들도 안보는 짱구는 못말려에 빠져서 배꼽을 빼고 있는 것 아닌가….
“ 민수야…우리 공주 어딨니???? 아빠왔다..”
아~~ 어찌 저이는 아직도 민수를 어린 아이로만 보는 건지……
따끔하게 충고를 줘야겠다…
“ 아빠…. 다녀오셨어요?”
“ 저도 왔어요….”
남편의 뒤에 들어오는 민혁을 보고 양여사가 반색을 하며 거실을 뛰어나갔다.
“ 아니 이놈아…. 온다고 연락이나 하지… 그럼 엄마가 반찬에 신경쓸거 아냐….”
무심한 큰 아들 엉덩이를 찰싹 때리며 근 3달만에 집에 들어오는 민혁을 맞았다.
공군에 조종사로 근무하는 큰 아들 녀석은 대부분 부대에서 지내기 때문에 특별한 날이 되야 얼굴을 비친다.
“ 죄송해요….”
“ 오빠… 집에 좀 자주와… 그래야 다른 가족들도 오빠 덕분에 몸 보신 좀 할거 아니야…”
숟가락에 묻은 아이스크림을 햝으면서 민수가 오빠에게 투정을 부린다.
“ 내가 오기 싫어 못 오냐? 그런데 넌 아직도 만화야?”
“ 만화가 어때서???? 애니매이션이 종합 예술이라는 것 또 설명 해야 해?”
민수의 괴변이 또 시작되려 하자 가족들이 혀를 내두르며 흩어지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가족들이 밥상에 모두 모였다.
다 커서 자기 일에 열심히인 자식들은 바라만 봐도 배 부르게 한다.
남편 역시 가족들이 몇 년 만에 한꺼번에 모였음에 몹시 흐뭇해 하는게 눈에 보인다.
“ 민수 넌 왠 일로 일찍 들어왔냐?”
세째 민호의 말에 민수가 혀을 쏙 내민다.
“ 오늘 어째 큰 오빠가 올 것 같더라고….나랑 텔레파시가 통했나봐… 그치?”
“하하하…. 그래…. 그랬나보다.”
민수에게 있어 민혁은 부모님 보다 어려운 대상이다.
하지만 그만큼 든든한 빽 같은 존재라고 할까…
“ 참 ….. 민서 넌 어떻게 되는 거야?”
“ 하하하…. 민서 녀석 집에선 조용해도 여기저기서 스카우트 제의 들어오나 보더라…. 지금 어디 갈지 고르는 중이야….”
자식 자랑에 얼굴까지 붉어진 남편이 반주를 찾는다.
하긴 양여사도 자식들 이야기라면 어디서도 지지 않는다.
남편이나 자신이나 중학교 교사이다 보니 사실 아이들에게 정말 손이 많이 필요할 때 같이 있어주질 못했다.
다행히 어느 한 녀석 삐뚤어지지 않고 잘 자라 준게 얼마나 고마운지.
특히나 민혁이가 첫째 노릇을 단단히 해주었다.
그랬기에 큰 아들이 공사에 들어간다고 했을 때 부부가 얼마나 고민을 했었는지.
지금도 날마다 비행을 하는 큰 아들 때문에 항상 마음을 조리지만 다행히 건강하게 군복무를 해 나가는 녀석이 여간 대견 한게 아니다.
둘째 민서도 형을 따라서 공사에 들어간다고 했다가 자신의 적성에 안맞는다고 생각했는지 막판에 진로를 바꿔서 화공학을 전공했다.
녀석이 말은 안하지만 한국에 온지 이제 2주만에 우리나라에서 크다는 화장품 회사는 거의가 민서를 스카우트 하기 위해 로비 중이라는걸 부부는 알고 있다.
막내 민수를 마음 놓고 유학 보낼 수 있었던 것도 다 침착하고 책임감강한 민서가 같이 간다고 해서 였다.
셋째 민호는 말 그대로 천방지축이다.
그래서 고3때 민호가 사진학과에 가겠다고 했을 때 두 내외는 올게 왔다라고 생각했다.
과연 누가 저 녀석을 한곳에 붙들어 매 놓을 수 있을까.
그런데 유독히 민수와는 서로 용호상박 이라고 해야하나….
아니 톰과 제리라고 해야 하나…
동생 생각은 제일 끔찍 하면서도 장난이 너무 심해서 항상 서로 티격거리니…
아무튼 이젠 부러울게 없을 것 같다.
단지 민수를 좋은 곳에 시집 보내는 것이 욕심 이라면 욕심일까…
아무래도 여자는 나이에 더 민감하니까.
더구나 25살이면 결코 어린 나이가 아니지 않는가….
“ 그래 민혁이 넌 얼마나 있다 갈거냐?”
기분 좋게 취기가 오른 남편이 입을 열었다.
“ 이번엔 서울에 일이 좀 있어서요. 9박 10일 예정으로 왔습니다.”
“ 와…. 무슨 일인데 형?”
말 많고 생각 많은 민호 녀석이 그냥 지나갈리 만무하고.
“ 군사 기밀이여서 안돼…..”
하하하하….
가장 통쾌하게 웃은 민수가 민호의 어깨를 두두렸다.
“ 군사 기밀이라쟎아……. 참… 오빤 군대를 안갔다 와서 모르겠구나…..푸하하하..”
지독한 난시로 군대를 면제 받은 민호의 약점을 민수가 놓칠리 없다.
“ 지도 면제면서….”
씩씩 거리는 민호를 보며 양여사가 혀를 찼다.
으그 이놈아…. 그게 말이 되냐…..
암튼 올해는 민수에게 엄마로써 꼭 좋은 짝을 찾아 주어야겠다.
반드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