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장. 애인이 필요하다?.
“ 이번 프로젝트에서 가장 우선시 되는 것은 IDS (서버 침입 탐지 시스템)와 Fire well(침입 차단 시스템)입니다. 물론 상대의 역 추적까지 로밍 됩니다. 그래서 상대방의 시스템을 거꾸로 파괴 시키는 프로그램 까지가 이번 프로젝트의 목적입니다. 방지는 물론 사전 정보 유출 차단과 나아가 범인 검거까지 되는 것입니다. 앞에서 말씀들인 바와 같이 이미 기본 흐름은 잡혀 있는 상태이며 시범 운용은 8월 15일 0시부터 입니다. 테스트에 통과 되면 모든 서버와 시스템에 적용되며 전체 운용 시점은 9월 1일 입니다. 이상 입니다.”
회의실 안에 일순간 정적이 흘렀다.
모두들 민수를 보면서 처음에 가졌던 설마 하는 생각에 여지 없이 한방 먹은 것이다.
회장실에 있는 이 작은 회의실에 실제 모인 인원은 몇 안되었다.
이 회장과 현준, 보안팀 현민과 프로젝트 진행자 민수와 최용수 그리고 전산실 실장과 네트웍팀장, 총무부 이사, 경리팀장, 기획 이사, 비서실 박비서.
가장 먼저 의사를 표명한 건 현 한성 자동차 회장인 이명훈이였다.
이미 60을 바라보는 나이답지 않게 여전히 젊은 사람 못지 않는 추진력이 느껴지는 사람이다.
“ 거참, 설명 한번 시원하구만….. 이제 것 그렇게 많은 돈을 퍼 붇고도 정확히 이유며 방법을 찾지 못해서 얼마나 고생들 했어? 그리고 김박사 내 미안하구만. 사실 김박사 처음 봤을 때 영 못 미더웠거든…. 암튼 고마워… 내 모든걸 지원 할 테니 잘 부탁한다고..”
이제서야 민수는 마음이 놓였다.
항상 나이와 싸워야 하는 그녀로써 아버지 연배 되시는 어른들에게 자신의 계획을 이해 시킨다는 건 아직 어려운 일이라는 걸 새삼 느끼는 순간이었다.
벌써 일을 맡은 지 3주가 지나갔다.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계속 되어온 강행군으로 예상보다 빠른 시간에 일이 진행 되었고 이번 프리젠테이션은 중간 보고 형식을 띈 것이다.
9시부터 시작된 회의에 처음 그녀의 모습을 보곤 여기 저기서 동요가 일어났었다.
아무리 예상하고 있었다곤 해도 항상 곤욕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무엇보다 회장님의 얼굴에 가장 큰 주름이 생겼었고…..
“ 수고했다, 민수야…..”
역시나 현민 오빠가 가장 먼저 등을 두들겨 준다.
“ 나야 돈 받고 하는 일인데 뭐….. 또 혼자 한 일도 아니 쟎아… 용수 녀석 들으면 열 받아 죽어.”
* * *
회의실을 나서던 이회장이 현준을 찾기 위해 다시 안으로 들어섰다.
“ 이봐 본부장….. 나랑 잠깐 이야기 좀 하지..”
하지만 현준이 시선은 아무런 미동도 없이 한곳에 집중되 있었다.
“ 본부장님…”
옆에 있던 박비서가 현준을 다시 한번 재촉 했지만 곧 회장의 저지에 물러서야 했다.
이회장은 현준의 시선을 따라갔다.
그리고 그 시선의 끝에서 현민과 김박사를 발견했다.
현준이 저 놈이 지 사촌인 현민을 저렇게 뚫어지라 바라보진 않을 테고 그렇다면….
드디어 저 놈이 여자를 보기 시작했다는 뜻인가?
갑자기 이회장의 얼굴에 회심의 미소가 떠올랐다.
이건 아비로서 자식에게서 느끼는 본능 같은 느낌 이었다.
사실 이회장에게 그의 둘째 아들 현준은 회사나 사업에 있어선 꼭 필요한 동반자이자 확실한 후계자이지만 사적으로 부모인 이회장 부부에게 여자나 더더군다나 결혼 문제에 있어선 커다란 고민 그 자체였다.
일찌감치 결혼해서 가정을 꾸리고 있는 큰 녀석과는 달리 소개 시켜 준다는 여자들은 모두 퇴짜를 놓았고 그도 여의치 않으면 부모에게 협박까지 일삼았다.
사업엔 재능도 관심도 없다는 큰 놈 현우와 달리 – 확실히 재능이 없다 - 둘째인 현준은 자라면서 한번도 부모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고 오히려 넘칠 정도로 잘해서 언제나 이회장 내외의 자랑이 이었다.
그런데 그런 현준이 결혼 문제로 이렇게 속을 썩일 줄 짐작도 못했다.
물론 여기저기서 아주 탐나는 혼처를 소개시켜 주었지만 녀석은 애당초 말을 잘라버렸다.
“ 제 상대 제가 찾습니다. 다신 그런 이야기 하지 마세요.”
망할 놈의 고집 같으니라고…..
결국 이회장 내외는 아들 말대로 기다리기로 했다.
하지만 32살이나 되도록 저 녀석이 어디 찾으려고 노력이나 한번 한 놈 이여야 말이지.
막연히 아직 현준이 그 놈을 감당해낼 아니 그 놈이 빠져들 만큼 그릇이 큰 여자를 찾지 못해서 일거라 위안하며 이회장 내외가 맘 조리며 보내던 시간이 얼마인지.
그런데 그런 현준이 지금 그것도 회의실에서 자신을 부르는 소리도 인지하지 못하고 넋을 놓고 쳐다보는 여자가 있는게 아닌가.
더구나 다른 곳도 아닌 항상 그 놈이 차가운 얼음으로 변하는 회의실 안에서…
아니라고 아직은 너무 앞서나가는 일일지도 모른다고 치부하려 해도 이회장 역시 아비인지라 저 얼음장 같은 놈도 그저 남들처럼 가정 꾸리고 평범하게 살수 있다는 희망에 부풀었다.
“ 이보게 박비서….”
이회장은 자신의 가장 충실한 부하이자 또 친구 이기도 한 박비서를 불렀다.
“ 네 회장님 ..”
이미 짐작 했다는 그를 향해 이회장은 조심히 당부를 했다.
“ 저 녀석 눈치 모르게 김박사에 대해 조사해…. 내 말 무슨 뜻인 줄 알지?”
“ 알고 있습니다. 가능한 가장 빠르고 자세하게 보고 올리겠습니다.”
회장실로 들어서며 이회장은 다시 한번 박비서를 불렀다.
“ 참 …. 집사람 한테는 아직 말하지 말고….자네 우리 집사람에게 입이 좀 가벼워야 말이지….”
“ 그건 회장님이 조심하셔야 할 것 같은에요…..”
“ 옛다 이사람아….”
흐흠…. 내 얼굴에 그렇게 티가 나나?
그날 이회장은 다른 날보다 무려 2시간이나 일찍 퇴근해서 집으로 향했다.
* * *
“ 젠장 애송이 여자애를 데리고 와서 뭘 한다고?”
깨끗이 정리 되었던 책상위 서류들이 한번의 동작으로 바닦에 나뒹구는 신세가 되었다.
“ 진정 하십시요. 아직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현준 본부장이 뭔가 일을 꾸미고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구체적으로 대안을 준비하고 있을 줄은 예상치 못했다.
“ 자네는 어서 가서 SN측하고 연락해… 이번이 마지막 이란것도 각인 시키고 액수에 대해서도 못을 박아. 알았지?”
상대가 문을 나서자 그는 다시 주먹으로 책상을 내리쳤다.
쾅.. 쾅…쾅…
그나 저나 머리에 피도 안마른 것이 벌써 그런 방법을 연구해 내다니.
현준이 그놈 보통 놈이 아닌 것 같다.
더구나 김박사라는 애송이 계집도 맘에 안들고…
아무리 생각해 봐도 시간을 벌려면 그 방법 밖에 없을 법 하다.
그래야 자신이 살아 남을 수 있으니까.
그가 신경질적으로 전화기를 눌렀다.
흥분으로 가뿐 숨을 간신히 고르며 그는 어금니를 꽉 물었다.
이제 더 이상 미룰 수가 없는 일이다.
“ 여보, 나야….. 여권 만기 확인 다 하고…. 애들 물론이고….. 비자 발급 일자 확인해서 잊지 말고 잘 챙겨나… 아니…. 한달 안에 다 정리해…. 참, 집은 당신 동생 명의로 돌려 놓기만 해…. 팔생각 없어…. 끊어.”
어차피 정 떨어진 한국 이다.
진작부터 마누라가 이민 가자고 조르고 있었고 철없는 딸들도 유학을 종용했다.
이렇게 된 이상 미룰 이유도 없다.
이번 한번 이면 가서 고생 않고도 충분히 호위호식 하며 지낼 수 있을 것이다.
이제 한성과의 인연도 이것으로 끝이구만….
자신이 이 회사에 입사해서 청춘을 받혀 일한지 벌써 17년이 흘렀다.
정말 밤, 낮 없이 열심히 일했었다.
그래서 동기들 보다 빨리 인정 받고 승진도 빨리 했다.
우연히 시작한 주식에 그는 단타로 5천을 거머줬다.
하지만 행운은 이것을 끝이였다.
경기가 하향세로 돌아 서면서 거품이 빠지기 시작한 닷컴주가 수렁에서 헤어나오질 못하고 있었다.
물타기를 하면서 1억을 날렸다.
원금은 커녕 액면가의 10분의 1밖에 안되는 주식은 휴지나 다름 없다.
그나마도 요즘은 부도설 때문에 거래 정지 당한 상태라 처분도 어려워졌다.
젠장….
내 인생이 왜 이렇게 꼬였냐고…..
그래도 다행히 SN에서 자신에게 손을 내민것에 대해 감사하고 있다
처음에는 스카우트를 제의 했지만 그 자신이 산업 스파이를 자청했다.
덕분에 지금 사는 압구정동 42평 아파트도 장만할 수 있었다.
그래 이왕 이렇게 된거 한번 크게 하고 빠지자고….
음침한 웃음이 그의 입가에 걸렸다.
* * *
퇴근 시간이 되고 사무실에서 사람들이 하나 둘씩 자리를 비우자 민수는 그제서야 한숨을 쉬었다.
아직 사무실 분위기에 적응도 안되었지만 무엇 보다 일의 능률을 위해선 혼자서 작업하는 밤 시간이 가장 좋았다.
아무래도 현민 선배와 출근시간에 대해 의논을 해야 할까 보다.
어차피 용수랑 하는 일도 서로 나뉘어 있고 또 거의 대부분 그녀의 손을 거치기로 된 이상 굳이 아침에 남들 출근 시간에 나와 일 하는게 무슨 의미겠는가?
“ 김민수 오늘도 야근하나?”
현준이 보안실 입구에 들어서고 있었다.
“네…..”
그러고 보니 아에 말 놓기로 했구만.
하긴 언제 내게 존칭어 쓴적이나 있었나?
그래… 내가 큰 오빠 뻘 되니까 참는다..참아…
민수가 별 관심 없다는 듯이 다시 모니터로 시선이 향했다.
“ 저녁 안먹었으면 같이 먹지… 나도 먹어야 하는데…”
아직 먹을 생각이 없다고 말하려다 다시 마음을 고쳐 먹었다.
어차피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인데 뭐….
맛있는 것 사준다고 한 현준의 말이 별 다른 효과를 거두진 못했다.
메뉴 역시 얼큰한 김치찌개….
“ 학생 왔구만….”
반갑게 민수를 맞이한 아줌마가 부지런히 상을 보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이인간 왜 계속 나만 보고 있는거야?
“ 내 얼굴에 뭐 묻었어요?”
“ 아니…. 그냥 좀 궁금한게 있어서…”
“ 궁금한게 있으면 물어보세요… 그렇게 쳐다 보면서 혼자 상상하지 말고…”
풋….. 하하하하…..
현준의 시원한 웃음 소리에 의아해진 민수가 이마를 찡그렸다.
지난 번에도 자신의 대답에 저렇게 웃었는데….정말 머리가 이상한 것 아닐까?
항상 단순하게 사람을 대하고 평가하는 그녀에게 있어 현준은 확실이 정상이 아니다.
아님 내가 그렇게 유머러스 한 사람인가?
미수가 한참 혼자만의 딜레마에 빠져 있을 때 현준이 입을 열었다.
“좋아 그렇다면… 으~~~음~~~~너 키스 해봤어?”
왜 이 질문이 제멋대로 튀어 나왔는지 그 자신도 모르지만 알 수 없는 막연한 기대감이 한몫 했을 것이다.
“ 아니요…. 그런데 그게 왜 궁금해요?”
의외로 그녀의 대답은 간단했다.
오호라…………그럼 내가 처음이란 말이군.
갑자기 하늘을 날것 처럼 기분이 좋아진 현준이 다시 물었다.
“ 그럼 아직 남자 친구도 없이 뭐했어?”
공격적인 현준의 질문에 민수가 발끈했다.
“ 누가 남자 친구가 없대요? 남자 친구야 너무 많아서 탈이지…”
“ 그런 남자 친구 말고 애인 말야….”
그제서야 고개를 끄덕이며 민수가 동조를 했다.
“ 하긴 아직 이렇다 내세울 만한 남잔 없내요. 뭐 앞으로 빠른 시간내에 만들 계획이지만.”
아니….. 계획이라니 이건 또 무슨 소리야?
“ 왜 빨리 만들려 하는데?”
현준이 달래듯 조심히 물었다.”
하지만 민수의 대답도 듣기 전에 찌개가 나왔다.
뜨거운지 호호 불어가면서 너무 맛있게 먹는 그녀의 모습에 그도 시장기를 느꼈다.
잠깐 여자들은 남자 앞에서 먹는게 꽤나 조심스럽던데….
그럼 난 남자로 안 보인다는 소리인가?
“ 말해봐… 왜 빨리 만들어야 하는데?”
의심 스럽다는 민수의 눈빛에 의연함을 가장하고 있자니 절로 콧잔등에서 땀이 흐르는 것 같았다.
도둑이 제 발 저린다는게 이런 뜻이렸다….
“ 꼭 말해야 되요?”
“아니 뭔가 사정이 있는 것 같아서….. 또 알아? 내가 도움이 될지…흠흠..”
잠깐 뭔가 생각하는 것 같던 그녀의 얼굴에 이번에도 별일 아니라는 듯 대답을 했다.
요 얼마 동안 현준이 민수의 특징 중에 알아낸 것이 있다면 바로 이점이다.
질문에는 반듯이 대답한다….
“말하히 좀 뭐하자만….뭐 정 알고 싶다면야…..
부모님이 빨리 결혼하래요…. 연애가 안되면 선이라도 보라고….”
“ 뭐????? 네 나이가 몇인데 ????”
현준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흥분하고 있었다.
민수는 왜 현준이 흥분하는지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자신도 역시나 열 받는 일이 아닐 수 없다.
“ 제 말이 그 말이에요…. 아직 할일도 많고 하고 싶은 일도 많고……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 아직 한참인데 노땅 처럼 선이 뭐에요 선이….”
어느 순간 냉정을 되찾은 듯 무표정한 얼굴의 현준이 다시 물었다.
“ 그래서 부모님께 방패가 되줄 남자 친구가 필요 하다는 거야?”
“ 뭐 그렇다는 말이죠….헤헤….”
너무 개구진 표정으로 히죽이 웃는 그녀를 보고 있자니 현준의 마음이 다시 요동치기 시작했다.
그래…. 이것도 기회인지 모르지….
“ 그럼 이렇게 하면 어떨까?”
“뭘요?”
“ 내가 남자 친구가 되 준다고….
그럼 넌 부모님 한테 충분히 시간 벌면서 네 뜻대로 할수 있고…
난 회사 일 열심히 하는 사람 다른 곳에 신경 안쓰게 하니 이익이고….”
이게 맞는 설명인지 모르겠지만 말야….암튼…..
제발 넘어가다오….
한편 현준의 설명에 민수도 심히 당황했다..
헉!!!! 아니 이건 또 무슨 엉뚱한 이야기지?
이 남자 미쳤어… 단단히 미쳤어…..자기가 날 얼마나 안다고…..
아니,, 아니지….
어차피 부모님 모르는 사람이니 진짜 말 그대로 시간을 벌수도…있지 않을까?
민수가 열심히 갈등하는 사이에 현준은 미소를 지었다.
암튼 이 여잔 생각 하는데 눈에 훤이 보인단 말이야…
결국 대답은 한가지 겠지만…
잠시 후 민수가 결심을 한듯이 입을 열었다.
“좋아요…. 암튼 도와 주신다니 감사하군요…”
민수는 그 때는 모르고 있었다.
자신이 이현준 이라는 엄청난 그물에 걸려들게 된 것을…
김민수 넌 나한테 찍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