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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장 장마철 필수품 우산?


BY 돈땅 문 2003-09-16

4장  장마철 필수품 우산?

 

비오는 날 지하철은 정말 생 지옥이나 다름없다.

 

평소에도 밀리는 도로가 내리는 비로 인해 더욱 정체가 심해지니 자가용 운전자들도 자신들의 시간에 늦지 않기 위해 만원 지하철에 자신들의 몸을 합세 시킨다.

 

이제 긴 여름 장마철이 시작 되었다.

 

그렇지 않아도 높은 습도에 많은 사람들의 인체 온도까지 합세해 아무리 빵빵한 냉방 장치가 된 객차라도 사람들의 신경은 곤두서게 되고 젖은 우산의 떨어지는 물방울은 짜증을 유발시키기에 충분한 이유가 된다.

 

거기다 유난히 만원 객차를 좋아하는 이상한 정신병자들도 합세하면 여자 승객들에게 지하철은 순식간에 지옥철로 탈바꿈 된다.

 

 평소 보다 좀 늦은 시간에 도착한 지하철 역은 정말 장난이 아니였다.

 

다들 자동차 버리고 지하철로 출근하는 것인지 어찌 이다지도 사람들이 많은지.

 

그렇다면 사람들이 차를 버린 만큼 도로가 잘 뚫려야 하는 것 아닌가.

 

도로는 도로대로 꽉꽉 들어차 있고 지하철은 지하철대로 콩나물 시루가 따로 없다.

 

암튼 어른들 말씀 들어서 잘못된 것 없다더니 조금 더 일찍 나가라는 아빠의 말씀을 콩 까먹듯 까먹으니 피해를 보는구나.

 

하긴 항상 남들 출근 시간 피해 학교에 갔었는데 지난 주부터 출근 시간에 맞춰 생활하는 그녀에게 아직도 아침 시간은 곤욕이였다.

 

어제부터 시작 됐다는 장마는 그 위용을 내세우고 싶은지 세찬 빗줄기를 멈추지 않고 계속 퍼부어 대고 있고 덕분에 새로 갈아 입은 옷들은 이미 젖어 버린지 오래다.

 

그나마 엄마가 마구 우겨서 가져온 큰 우산 덕에 이만하겠지.

 

 

엄마 나 다른 우산 가져갈래. 이런 것 가지고 다니기 좀 창피하단 말야.

 

애는. 대학 교수나 된다는게 하는 짓 하고는 꼭 어린 아이처럼. 그냥 가지고 가. 뭐가 창피하다고 난리니.

 

어린아이 아니니까 창피하지.

 

그래도 비 맞는 것 보단 나…… 어서 가 늦겠다.

 

 

뚝뚝 떨어지는 우산을 들고 간신히 객차에 들어갔지만 숨이 탁 막혀버렸다.

 

~~~ 나 정말 차 사고 싶다고요..엄마

 

아저씨 자꾸 왜 밀어요?

 

한쪽에서 날카롭게 들려오는 여자의 목소리에 순간 객차 안이 조용해 졌다.

 

내가 밀고 싶어서 밀어? 사람이 많으니 저절로 밀리는걸 어쩌라고.

 

오히려 느긋한 남자의 목소리가 귀에 더 거슬리는 건 무슨 일인지

 

이봐요 아저씨 손 좀 저리 치워요…”

 

한층 더 높아진 여자의 목소리에 여기저기서 웅성이기 시작한다.

 

아침부터 재수 없이 여자가 소리 친다는 사람, 조용히 타이르는 사람, 사람 많으니 당연 하다는 사람, 또 음흉하게 곁눈질 하는 사람까지.

 

한결 같이 여자가 뭔가를 잘못했다는 말투다.

 

~~~ 이 끓어 오르는 정의감.

 

난 남자로 태어났어야 했어.. 난 슈퍼맨이 되고 싶었는데……

 

이미 민수는 상대 여자를 향해 적진을 뚫고 지나가고 있었다.

 

오호라. 이 아저씨 보게 . 다른 사람들은 다 왼쪽으로 움직이는데 혼자서 오른쪽으로 계속 움직이며 손이 아주 춤을 추는 구만.

 

순간 민수는 자신의 긴 우산 엄마가 비가 많이 온다고 억지로 챙겨준 큰 우산 이었다 으로 남자의 손을 밀쳤다.

 

이봐 . 왜 남의 손을 치고 그래?

 

오호라. 똥 밟은 놈이 오히려 큰소리네.

 

죄송해요, 아저씨. 사람이 너무 많아서 우산이 밀렸네요헤헤헤..

 

쫙 찢어진 눈으로 민수를 한 껏 째려보던 아저씨가 다시 앞 여자의 엉덩이에 손을 스치려 하자 이번엔 우산이 아저씨의 팔목을 찔렀다.

 

. 너..왜 그래? 우산 빨리 안치워?

 

거참 목소리도 느끼하고 기분 나쁘구만.

 

아저씨 . 손버릇이 영 안 좋네요. 이제 그만 하고 내리세요..더 봉변 당하지 말고…”

 

.재수 없는 년.

 

민수의 말에 놀란 건지 아님 주위 사람들의 시선이 이제 그 남자에게만 향하는게 느껴졌는지 슬금슬금 자리를 피하는게 보였다.

 

다른 객차로 가서 또 나쁜짓 하려 그러나..

 

왠지 신경이 쓰이긴 했지만 마침 안국역을 알리는 안내 방송이 흘러 나왔다.

 

어찌 저런 병자들이 세상을 돌아다니는지 모르겠다.

 

아가씨 조심해..

 

갑자기 뒤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본능적으로 몸을 피했던 민수의 뒤에 아까 그 아저씨가 무서운 눈빛으로 달려들고 있었다.

 

자신의 접이 우산을 가지고 막무가내로 덤비는 그 남자의 눈에 이미 다른 사람은 들어오지 않는 듯 했다.

 

민수는 상대의 내려치는 공격을 자신의 장우산으로 막았다.

 

아무래도 그냥 둬서는 안될 듯 싶다.

 

막무가내로 덤비려는 그 남자의 옆구리와 정강이를 정확히 가격했다.

 

그리고 다시 공격 자세를 취하는 순간 퍽…….소리와 함께 몸을 움켜잡고 넘어지던 그가 마구 바닥을 구르기 시작했다.

 

갑자기 주위에 있던 사람들이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영화에서나 보던 장면을 자신의 눈 앞에서 그것도 약해 보이는 여자가 연출했다는 사실에 사람들 나름대로 흥분 아닌 흥분을 맛본 것이리라.

 

언제 왔는지 지하철 승무원과 경찰이 이미 도착해서 넘어진 남자를 살피고 있었다.

 

저년이……..으으..빨리 저년 안잡고 뭐하는거야..

 

아직 입은 살아있는지 무조건 경찰을 다그치는 그의 말에 주위 사람들이 한마디씩 거들었다.

 

당신이 먼저 저 아가씨를 치려고 했쟎아, 이양반아.

 

미친놈이구만…”

 

그렇다고 자신보다 나이든 어른을 치면 안되지..

 

민수는 자신이 나서야 할 때임을 알았다.

 

그때

 

저 아가씨 잘못없어요. 저 아저씨 아까 지하철 안에서 자꾸 내게 치근덕 거리던걸 저 아가씨가 도와준거에요.

 

지하철 안에 아까 그 여자였다.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른게 많이 당황해 보이지만 경찰 앞에서 조금 전에 있었던 이야기를 정확히 전달하는걸 보면 용기가 대단한 여성이다.

 

그제사 정황을 알았는지 경찰은 그 남자를 현행범로 체포했다.

 

모여 있던 사람들이 시나브로 흩어지고 나자 아까 여자가 민수 곁으로 다가왔다.

 

고마워요.

 

어쩔줄 몰라 하면서 고개를 숙이는 여자를 향해 민수가 멋적은 듯이 미소를 지었다.

 

해해. 우리 엄마가 오늘 유독히 장우산을 챙겨준 이유가 있었네요…”

 

씩웃으며 별일 아니라는 듯 가볍게 인사를 하고 돌아서는 민수를 향해 여자가 허리를 깊숙히 굽혀 다시 인사를 했다.

 

물론 민수는 그 사실을 모르고 평상시 처럼 우산을 좌우로 흔들며 회사로 향했다.

 

                  *               *                  *

 

현준은 사무실에서 조간을 펼쳤지만 눈에 들어오질 않았다.

 

아무튼 김민수 그 여자는 보통 여자가 아닌 듯 싶다.

 

오늘 아침 현준은 철든 후 처음으로 늦잠을 자고 말았다.

 

항상 자기관리며 시간 관념에선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고 생각한 그였기에 아침에 일어나 시계를 보고 얼마나 기겁을 했던지.

 

영화 속 슈퍼맨이 옷 갈아 입는 속도에 실소를 터트린 적이 있었다.

 

하지만 현준 자신도 슈퍼맨이 될 수 있다는 걸 비로소 깨달았다.

 

어제부터 시작 됐다는 장마는 끝도 없는 체증을 유발 시켰고 어쩔 수 없이 지하철에 타야했고 지금 막 안국역에 도착해서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

 

개찰구 쪽에서 들려오는 소리인 듯 했고 이미 많은 사람들이 주위에 모여 있었다.

 

아침부터 한가한 사람들이구만.

 

그 때 남자의 고함소리가 들리더니 곧 비명 소리로 바뀌었다.

 

긴 우산을 가지고 마구잡이식이 아닌 정확히 남자의 급소만을 공격하는 여자의 모습이 흡사 자신이 아는 누군가와 비슷해 보였다.

 

민수랑 많이 닮았네..

 

순간 너무 놀란 현준이 다시 뒤를 돌아 그녀를 봤을 땐 이미 경찰이 도착해 있었다.

 

그리고 멋적어 하는 민수의 모습이 보였다.

 

현준은 그 자리 멍하니 한참을 서있었다.

 

심장이 얼어 붙는 줄 알았다.

 

만약 그녀가 어디 다치기라도 했다면 그는 당장에 그 놈 목을 비틀어 버릴 생각을 했다.

 

얼마나 지났는지 마침 출근하는 부서 직원들의 인사소리에 정신이 들었었다.

 

그녀를 어찌하면 좋을까.

 

그렇다고 지금부터 무작정 그녀를 옆에 놓고 끼고 다닐 수 도 없고.

 

아까 그 남자를 공격할 때를 보면 그녀 역시 운동을 꽤 오래 해 온듯 싶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렇게 급소만 찾아서 공격할 수는 없으니까.

 

그녀는 도대체 몇 가지 얼굴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민수가 정말 양파 같다는 생각을 했다.

 

벗겨도 벗겨도 새로 모습이 나오니 말이다.

 

벗겨? 뭘? 갑자기 온 현준의 몸에 열이 확 올라 오는 것 같다.

 

도대체 내가 왜 이러는 거야?

 

그것도 아직 잘 알지도 못하는 여자 하나 때문에

 

아니지. 우린 이미 키스까지 한 사이인 걸그것도 프렌치 키스.

 

그럼 남녀 관계에 갈 때 까지 다 간거라고

 

야 임마, 지금이 조선시대냐?

 

고작 키스로 여자 발목이나 잡으려 하다니.

 

까짓거 키스면 어떻고 아니면 어때.

 

문제는 이미 그녀가 내 표적이 됐다는 사실이지.하하하하

 

 

 

 

평소처럼 정아는 본부장님의 커피를 준비해서 사무실로 들어갔다.

 

조간을 펼쳐 든 현준의 모습은 별반 다를 바 없는데 전혀 신문을 보지 않는듯한 현준의 눈이며 또 항상 일자로 닫혀 있던 그의 입술이  - 정아의 착각일지 모르지만 살며시 올라가  미소 짓은 듯 보였다가 다시 불쾌한 듯 꽉 닫혀졌다.

 

그리곤 다시 웃는 듯 하다가 다시 일자로 닫아지고

 

이런 이런.자신의 상사가 저렇게 표정이 다양한 사람이었나.

 

아니 내가 잘못 본거겠지.

 

이현준 그는 재계에서 소문난 아이스 맨 이거늘..

 

정아는 안됐다는 듯 혀를 차며 아직도 조간을 들고 있는 현준을 힐끗 바라보았다.

 

사람이 죽을 때가 되면 변한다는데.쯧쯧쯧.