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장 그의 새로운 목표는 그녀?
“자자…. 오늘 우리 김박사 환영 회식이 있으니까 퇴근 후 바로 회사 앞 아줌마네로 가자고. 일 있는 사람 미리 말하고….”
“우리 인원이 얼마나 된다고 빠지고 말고 하나요… 안 그런가요 팀장님? 그리고 본부장님 같이 가시나요? 흐흐 그럼 2차도 있는 건가요…..?”
암튼 최용수 저 녀석은 공짜 술 앞에선 사족을 못쓰는 구만…
에그…. 저것도 동기라고….
민수가 회사에 나오기 시작하고 벌써 한 주가 끝나가고 있었다.
그간 노조의 투표가 하루 연기 되면서 다시 회사 분위기는 살얼음판을 걷기 시작했고 그로 인해 보안팀의 보스인 본부장이 다시 울산으로 내려가면서 미루어진 환영회가 금요일 저녁 황금 시간에 잡힌 것이다.
다행히 울산 노조는 수요일에 투표를 했고 어제서야 완전히 단락이 졌다.
그때 팀장인 현민이 민수 곁으로 왔다.
“ 어떠냐? 생각했던 것 보다 상황이 …”
지난 4일간 민수는 밤마다 야근을 하면서 시스템을 직접 감시 했다.
그 상황을 알고 싶은 것이리라.
“ 선배가 생각했던 거랑 같아요. 일부러 바이러스를 심어 놓는 넘도 있고…. 실질적인 해킹 의도는 아직 없었는데 선배도 알겠지만 가장 심각한 건 인해전술 이지요.
여긴 모든 서버들이 서로 연결 되다 보니 하나가 죽으면 나머지들도 힘을 못쓰고……”
어차피 서로 알고 있는 문제지만 전문가 입장에서 이렇게 말하면 정말 더 심각해 지는 법.
“ 그럼 언제부터 작업에 들어가는 거냐?”
“ 월요일 아침에 프리젠테이션 할께요….”
“ 그렇게 빨리?”
“ 어차피 하는 일 ‘빨리’ 라는 건 없어요. 참 민서 오빠 다음주에 들어온다고 연락왔어요. 물론 오빠한테 먼저 연락 했겠지요?”
어깨를 슬쩍 들어올리면서 현민이 미소 지었다.
휴~~~ 저 장난기 어린 현민의 미소가 민수를 얼마나 두근거리게 만들었는지 현민 자신은 아마 죽었다 깨어나도 모르겠지.
“ 야…. 땅 꺼진다…. 왜 그래? 이 오빠한테 털어나봐…”
용수 이 녀석은 아무 때나 끼어들어 문제라니까.
더구나 어깨에 팔까지 두루고 자신의 얼굴을 바싹 가까이 들이밀자 민수는 다시 한숨을 쉬었다.
그러자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난 민수가 다리 하나를 의자에 올리더니 양손에 깍지를 끼고 손목을 꺽기 시작했다.
“ 이미 넘치는게 오빠요, 뭘로 봐서 네가 내 오빠가 되냐? 손 고히 내리고 가서 네 일 봐라..... 알것냐?”
뒤로 물러 서던 용수는 이소룡 흉내를 내면서 민수를 향해 폼을 잡았다.
“ 오호~~~ 내가 당할 것 같냐? 예전의 최용수가 아냐….. 나도 운동 했다고… 왜이래…”
“ 아서라… 너 운동 배울 동안 난 놀았겠냐…. 그리고 얼마 전에 또 승단했다….”
손으로 까딱하면서 가라는 신호를 한 민수를 보며 용수는 무서움에 몸을 떠는 시늉을 했다.
“ 오버 하는 건 여전하구만….에구…..저것도 동기라고…….”
유리 방 입구에 들어서던 현준 걸음을 멈추고 사무실 안을 보고 있었다.
왜 자신의 발걸음이 갑자기 멈추었는지 본인도 인식하지 못하고 그저 눈 앞에 보이는 상황에 대해 당황해 하고 있을 뿐이다.
저 알바생 주위에서 얼쩡이는 분위기가 왠지 불쾌하기만 했다.….
때마침 밖으로 나가려던 현민과 마주쳤다.
“ 아니 본부장님…. 하하…. 오랜만이다. 뭐해? 안에 안들어가고…….. 그러고 보니 김교수랑 아직 인사도 안했지. 오늘 저녁에 환영회 ‘아줌마네’에서 하기로 했으니까 그리로 와라.”
방향을 꿔 돌아선 현민이 그녀를 향해 손짓을 했다.
주인 따르는 강아지마냥 그녀가 현민을 보며 환하게 미소 짓더니 냉큼 가까이 다가오는 것이 아닌가.
“인사하지… 이쪽은 한성 자동차 경영지원부 본부장이신 이 현민 본부장님….”
“ 그리고 이쪽은 경성대학교 공대 전산학부 김민수 교수님….”
현준은 자신이 잘못 들었다고 생각했다.
“ 뭐? 김민수 ? 남자 아니야….?”
싱글싱글 웃으며 자신을 향해 목례를 하는 민수를 바라보며 현준은 얼굴 근육이 제 멋대로 움직이는 듯 했다.
이럴수가….. 새파랗게 어린 보이는 여자아이(?) 가 바로 그 교수란 말인가…..
현준의 얼굴에서 영 떨떠름한 표정이 지워지지 않자 현민이 웃으며 조용히 그의 귀 가까이에 중얼 거렸다.
“ 야….. 정신차려….입다물고…흠흠…”
상황을 바꿔 보려는 듯 현민은 팀원들에게 다시 상기를 시켜줬다.
“ 모두 저녁에 시간 늦지 말라고 …. 알지?”
그제야 상황 파악이 된 현준이 민수에게 손을 내밀었다.
한쪽 입가가 잠깐 비틀어지더니 다시 평소의 무표정으로 돌아왔다.
“ 반갑습니다…. 그런데……. 어제 저녁엔 왜 아무말 없었으셨나요?”
말 속에 뼈가 있다는 표현이 이런것이구나…
민수도 그저 별일 아니라는 듯 살짝 미소를 지었다.
“ 뭐야… 어제 만났었어?”
깜짝 놀란 현민이 물었다.
“ 제게 물어보지도 않으셨쟎아요…. 그리고 상관 없어요…..따지고 보면 이번 일 제겐 아르바이트나 매 한가지고…..”
살짝 목례를 하고난 민수는 다시 제자리로 가서 모니터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아무일 없다는 듯이 일을 계속하는 민수나, 오히려 재미있다는 듯이 뚫어져라 민수만 바라보는 현준이나 둘다 현민이 이해하기엔 어려운 존재들이다.
저녁 6시부터 식사를 겸해 시작된 회식은 벌써 9시를 향해 가고 있었다.
보안실 직원들 뿐만 아니라 평소 긴밀한 유지를 하고 있던 경영지원본부팀 까지 포함된 자리였다.
이미 식사는 뒷전이고 여기 저기서 술잔 부딛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 민수야 …. 너도 한잔 해야지…..”
그래도 동기라고 옆에서 부지런히 챙기던 용수가 민수에게 잔을 들이밀었다.
“ 미워도 동기라고 알아서 콜라 챙겨주고…. 너 밖에 없다…”
술을 전혀 못 마시는 민수를 위해 미리 콜라를 준비해준 용수가 고마웠다.
“돌아온 나의 파트너를 위하여…….건배….짠….”
암튼 오버 맨 특유의 효과음 까지…. 웃기는 넘….
“ 그런데 나 벌써 한병 비웠거든…. 이제 그만 먹어야해….현민 선배랑 맘껏 마셔라….”
사실 민수에게 콜라는 다른 사람들에게 술과 똑 같은 존재였다.
더구나 3병이 주량인 민수는 이미 한 병이나 마신 뒤였다.
용수 녀석도 벌써 술이 취했나 보다…
하긴 민수 자신도 이미 얼굴이 화끈하게 달아 오르는 것 같으니….
아무래도 이 녀석이 오늘 날 골로 보내려 작정을 했나..
갑작스런 중역 회의로 인해 늦게 도착한 현준은 가게 문을 들어서기가 바쁘게 누군가를 찾는 듯이 두리번 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곧 자신의 눈에 볼이 빨갛게 물들은 민수의 모습이 보였다.
옆에는 어김없이 보안실 최용수 대리가 민수 곁에 바싹 붙어 있었다.
순간 망설이고 있던 자신을 현민이 자신의 옆자리로 끌어다가 앉혔다.
“ 야…. 왜이리 늦었어?”
“ 회의가 생각보다 길어졌지 뭐…..”
“ 노조랑 이미 잘 마무리 됐다면서……. 아무튼…. 밥 먼저 먹어야지?”
“ 아니 됐어…. 회의실에서 도시락 먹었다.”
“ 저녁 먹는 시간도 아까워 회의 시간에 도시락이라…… 큰아버님도 너무 하시는구만..”
대충 상황 짐작 간다는 듯 손사례는 치던 현민이 술잔을 들이 밀었다.
“술은 됐고, 옆에 음료수나 줘. 낼 아침에 다시 회의 있거든. 준비할것도 많고.”
암튼 자기 관리 하난 대단한 녀석이라고 현민은 생각했다.
“ 너도 민수 때문에 많이 놀랬냐?”
갑작스런 현민의 물음에 현준이 당황했다.
아무리 서로 피가 통하는 사촌 이라지만 가끔가다 현민은 현준의 머리 속을 빤히 읽어낸듯 했고 지금 역시 마찬가지 였다.
사실 이곳에 들어오자마자 현준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계속 민수를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
“ 정말 실력있는 녀석이야. 그러니 괜한 선입견 갖지 말고 맡겨봐…
더구나 용수하고는 쿵짝이 잘 맞는 파트너니까.”
파트너? 현준의 얼굴에 경계의 빛이 흘렀다.
“ 그게 무슨 뜻이야?”
“ 말 그래로 멋진 파트너라는 거지 . 물론 일반적인 그런 관계는 아니고....
너도 알지만 최대리 한때 해커로 전국에서 날리던거 알지? 지금은 정신 차렸지만 그때 우리나라는 물론이고 일본하고 미국이 난다 긴다는 시스템을 완전히 제 장난감 처럼 가지고 놀았쟎아. 바로 그때 최대리의 히든 카드가 민수였어. 얼마 뒤에 민수가 유학가는 바람에 끝이 났지만 말야.”
다시 술잔을 비운 현민이 말을 이었다.
“ 사실 용수가 민수를 이성으로 많이 좋아했지. 그래서 저녁마다 날 찾아와 얼마나 괴롭히고 갔는데…… 녀석 눈엔 이미 여자로 보이기 시작했는데 사실 따지고 보면 민수가 아직 미성년자 였으니 …. 더구나 얼마 후 민수가 유학을 떠나고 ….후후후…. 벌써 5년전 일이니까 이젠 서로 어떤 감정인지 잘 모르겠지만 말야.”
* * *
그러고도 한참이 지나서야 회식은 끝이 났다.
이미 서로 치사량을 넘은듯한 용수와 민수는 한쪽 구석에서 잠들어 있었고 남은 몇몇도 자리를 털고 일어나기 시작했다.
아직도 더 마실수 있다는 현민에게 억지로 용수를 넘겨버리고 뒷정리를 한 현준이 자신의 차에 민수를 태웠다.
그래도 아끼는 후배라고 걱정하는 현민에게 이미 집을 알고 있다고 안심 시킨 후에야 출발을 할 수 있었다.
세상에 콜라를 마시고도 이렇게 취해버리는 사람이 있다니….믿거나 말거나.
다신 못 마시게 해야겠다.
누가? 내가? 왜?
어느덧 아파트 단지에 차가 들어섰다.
민수를 깨우려고 몸을 돌리려던 현준의 가슴으로 그녀의 머리가 기울어왔다.
헉!!!!!!!
순간 생소한 향기가 그의 코를 자극했고 현준의 호흡이 멈춰 버렸다.
한참을 지나 참았던 한숨이 터졌지만 아직 갑갑하긴 마찬가지였다.
현준은 몸을 움직이기 위해 민수의 얼굴을 돌려 방향을 바꾸려 했지만 그것도 어려웠다.
손 끝에 느껴지는 보드라운 피부 감촉이 이성의 명령을 배반한 것이다.
호기심이 생겼다.
얼굴말고 다른 곳도 이렇게 보드라울까?
그렇다면 입술은 어떤 느낌일까.
어번에도 이성보다 몸이 먼저 움직였다.
아주 잠깐 그의 입술이 그녀의 입술을 스쳤다.
다음엔 조금 더 길게..
그 다음에 조금 더 세게…
잠든 여자에게 무슨 짓이냐고 이성은 난리를 쳤지만 본능은 모든걸 무시해 버렸다.
그녀도 느꼈던 것일까.
잠결에 머리가 움직이더니 아주 조그맣게 그녀의 입술이 벌어졌고 현준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그녀의 혀를 그리고 입술을 삼켜버렸다.
세상에 -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 키스가 이렇게 부드럽고 달콤한 것이었나?
많지도 그렇다고 적지도 않을 만큼의 경험이 있지만 전에는 한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생소한 흥분이 그의 전신에 퍼져 갔다.
성난 말처럼 뛰던 그의 심장에 쥐어 짜는 듯한 통증이 느껴졌다.
하지만 결코 싫지 않는 아련함으로 밀려온다.
그래. 이젠 호기심이 아니다.
절대로 빼앗기거나 포기하고 싶지 않은…..
그 자신만의 소유욕….
갑자기 그의 눈이 반짝이기 시작했다.
몇 일 전부터 느껴지던 뭔지 모를 아련한 답답함이 일시에 풀렸다.
사무실에서도 보안실에서도 출장을 가서도 회식자리에서도 자꾸 맴돌던 무언가란 바로 그녀김민수이다.
그는 욕심이 많은 남자다.
더구나 내 꺼다 싶은 것에 대해선 절대 양보란 없다.
현준은 아직 잠에 취해있는 그녀의 이마에 자신의 입술을 강하게 눌렀다.
자신만의 맹세인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