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자 여름은 시작되고.......
우아…. 미치겠다.
민수는 정말 숨이 막혀 죽을 지경이었다.
버스에서 내려 이제 겨우 교문까지 뛰었을 뿐인데도 숨이 턱에까지 찾다.
이럴줄 알았으면 꾸준히 운동을 하는건데 정말 후회 스러웠다.
오늘은 기말고사가 시작되는 첫날....
교문에서 강의실까지 거리가 일반 버스 정류장보다 멀어서 농담 삼아 교문앞에서 택시를 내리면 삼대 바보라고 하는 경성 대학교는 전국에서도 캠퍼스 넓기로 손꼽히는 곳이다.
시험 시간까지 이제 10분…
뛰다가 숨이 막혀 죽어도 산업재해에 해당이 되는건지….
빵빵…
힘들어 죽겠는데 누구야
“ 저요?”
“ 이봐 학생, 나 공대로 가는데 방향 같으면 타요….”
미끈하게 잘 빠진 검정색 승용차가 민수 앞에 서자 정말 아주 잠깐 머뭇거리기는 했으나 바로 조수석 문을열고 의자에 앉았다.
“ 감사합니다. 저도 공대 건물로 가요. 그런데 좀 빨리 달려 주시면 안될까요?”
“ 여기 교내 제한 속도가 30k 아니였나? 애초에 지각을 말아야지… 안그래 학생?”
한심스럽다는 그의 표정이 확연히 드러나고 있었다.
아니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고 표현해야 맞는 표현일 것이다.
순간 민수는 작은 입술을 꽉 깨물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입에서 바로 욕설이 튀어나올 것 같았기 때문이다.
지가 언제 날 봤다고 갑자기 반말이며 또 그 불량학생 쳐다보는 듯한 표정은 뭐란말인가.
하지만 민수는 무시하기로 했다.
우선은 1분이라도 빨리 도착하는게 중요하므로…..
더구나 어차피 한번보고 말사람 이기에 더 이상의 감정 낭비는 자신의 손해임을 상기한것이다.
“ 아, 그랬나요? 제가 차로 다녀본적이 없어서 몰랐어요. 그것 말고도 신경 쓸 일들이 워낙에 많아서요”
“이봐 학생…. 늦은것 같아서 또 같은 길이라서 내가 태워주기는 하는데 앞으로는 좀 일찍 다니도록 해…"
“감사합니다”
차가 멈춤과 동시에 총알 처럼 뒤도 안돌아보고 달려 나가는 그녀를 보며 현준은 혀를 둘렀다.
화장기 없는 얼굴은 뛰어서 그런지 빨갛게 상기되 있었고 머리는 대충 묶은 것이 꽤 다급했던 모양이다.
그러게 학생이 좀 일찍 일찍 다녀야지.
가방도 모자라 두손 가득 들린 책들을 보며 과연 저 책을 다 봤을지 궁금해졌다.
멋으로 끼고 다니기에는 좀 난해해 보이는 제목이 더욱 흥미로웠다.
암튼 요즘 학생들은 좀 발찍한 면이 있다니까….
현준이 경성대학교에 온 이유는 전산학과 주임 교수로 재직중인 작은 아버님을 만나뵙고 도움을 청하기 위해서였다.
교수실 문을 열자 깔끔하게 정리된 내부가 흡사 할아버지 서재를 보는 느낌이었다.
큰 키에 인자한 표정를 가진 이명보 교수는 작은 조카를 반갑게 맞았다.
형님의 둘째 아들인 현준은 여러모로 뛰어난 아니 당당한 녀석임에 틀림없다.
이씨 집안의 우성 유전자를 모두 물려 받은듯 큰 키며, 꾸준한 운동으로 다듬어진 단단한 근육이며, 특히 무엇에든지 혹이심을 가지고 민첩하면서도 정확히 결론을 끄집어 내는 비상한 두뇌까지.
“그래 어서 오너라. 기다리고 있었다. 밖에 많이 덥지? 음료수 한잔 마실래?”
일어서 냉장고 문을 여는 이교수를 보며 현준은 슬며시 웃었다.
근면함이 몸에 익으신 작은 아버님은 학과장으로 계시는 지금도 자신을 도와주는 비서 한명 쓰지 않는 분이시다.
뭐든 본인이 직접 움직이시고 행동하셔야 된다고 생각하시는 그래서 어쩌면 다른 교수들이나 부교수들은 물론이고 조교며 학생들까지도 이교수를 존경하고 있는지 모른다.
음료수를 받아들며 현준은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 적임자를 찾으셨다고요.. 어떤분이신가요?...너무 민감한 사한이여서 제가 인사부에도 못맡기고 작은 아버님께 직접 말씀드린건 이해 하시지요?”
암튼 혹이심도 어지간히 강한 녀석이다.
이런 녀석이 학계에 들어와야 하는데 하는 안타까움이 순간 이교수의 머릿 속을 스쳐 지나갔다.
“ MIT에서 방어 시스템으로 박사학위 받고 그곳 대학에서 연구원으로 있다가 이번 학기부터 강의를 맡으신 분이다. 사실 우리나라에 이쪽 분야의 전문가가 많지 않다는 것은 너도 알고 있을거야. 그래서 더 조심스러웠다. 어차피 너무 알려진 사람은 소문을 몰고 다니니까 말이야. 김교수라면 그 분야에서도 최고고 또 한국에 들어온지도 얼마 안 되었고 하니 가장 적임자라고 생각한다. 더구나 이제 방학이니 바로 프로젝트에 들어갈수 있고, 계절학기나 다음 학기 강의는 내가 어느정도 시간을 조절할수 있으니. ”
확신에찬 교수의 표정에 현준은 갑자기 그 김교수 라는 사람이 궁금해졌다.
“ 아무튼 적임자가 있었다니 이제 마음이 놓입니다. 사실 걱정 많이 했어요. 물론 현민이 실력이 없다는 건 아니지만 이미 너무 많은 일을 하고 있거든요…."
“ 그러고 보니 현민이 후배구만.. 아마 그놈이랑도 손발이 잘 맞을거야. 하하하하…지금 소개를 시켜 줬으면 좋겠는데 아마 시험 때문에 정신 없을테고…. 일 시작하는건 현민이 보고 연락하라고 해. 아마 반가워 할거야.”
“그런데 이름이 뭐라고 하셨죠?"
“아, 김민수 교수라고해, 현민 녀석 무척 반가워 할거야…. 정말 능력있는 사람이지..암암..”
교실 문 앞에서 민수는 아직 들어가지 못하고 숨을 고르고 있었다.
그래도 늦지 않음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지…
서둘러 가방 안에 마구 처박아 가져온 금테 안경을 꺼내 썼다.
가족들이 왜 하필 할머니 돋보기 같은 금테 안경을 끼느냐고 잔소리를 했지만 오히려 그 잔소리에 그녀는 쾌재를 불렀다.
왜냐니? 일부러 더 나이 들어 보이라고 맞춘건데…
그리고 왠지 교수라 함은 금테 안경을 껴야 어울릴 것 같거든..후후후…
내 자다뭐….
간신히 헐떡 거리는 가슴을 겨우 진정시키고 가급적 무표정한 얼굴로 교실 문을 열었다.
“ 안녕하세요.. 이제 그만 책 넣어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설마 책상에 이상한 장난 하지는 않았겠지요? 제가 자리를 바꾸게 해야 하는 일 말이에요…….”
어휴 하는 탄식이 여기 저기서 들려왔다.
시험지를 나누며 민수는 다시한번 눈에 힘을 주었다.
“컨닝은 절대 용납 못합니다….그럼 시작하지요…. 이조교님 돌리세요.”
대한민국 최고라고 하는 국립대학인 경성 대학교 컴퓨터 공학부의 김민수 교수.
사실 누가 봐도 교수라고 믿지 못할 나이 이지만 그녀는 25년 이라는 세월을 누구 보다 아니 보통 사람보다 2배는 빠르게 움직이며 살아왔다.
어느 광고 카피에서 그랬던가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하지만 아직도 편견을 못 버리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고 민수는 생각했다.
특히 아까 그 까만차의 아저씨…… 그래 아저씨…
장마가 시작 되려는지 요즘들어 계속 하늘이 잔뜩 찌푸려 있었다.
교정 가득히 푸른 기운을 한껏 뿜어내는 나무들과, 쉼없이 바삐 움직이는 학생들이 눈에 들어왔다.
민수는 이 학교가 좋았다.
아니 꼭 경성대학 이여서가 아니라 학교라는 테두리에 속해있는 소속감이 너무 좋았다.
사실 민수는 학교라는 테두리에 별로 속한일이 없었다.
정규 교육이라고는 초등학교 4학년이 마지막이였다.
지식 습득 능력이 남보다 뛰어난 것을 안 부모님의 권유도 있었지만 점점 학교 공부가 지겨워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후로 그녀는 독학으로 검정고시를 준비했다.
그래서 12살에 중학교 과정을 13살에 고등학교 과정을 모두 건너뛰었다.
한국 최고의 국립대학이라 일컫는 경성 대학에 입학한 것은 그녀의 나이 15살의 일이였다.
대학 공부는 그동한 해왔던 공부와는 완전히 다른것이었다.
어린 나이에 편견도 시기도 어른들의 질투도 모두 경험해야 했다.
천성이 워낙 낙천적인 그녀라 다행히 마음에 상처를 만들지는 안았지만 이젠 무조건적으로 타인을 믿거나 내 자신을 내보이는 건 바보 같은 일임을 알게 되었다.
덕분에 더 열심히 노력했고 3년만에 졸업과 동시에 장학생으로 뽑혀 미국 MIT로 건너가게 되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진짜 자신이 원하던 분야의 전공을 찾아 공부를 하게 되었다.
그러다 작년 가을부터 경성 대학에서 컴퓨터 공학 교수직을 재의 받았다.
처음에는 많이 망설이고 또 사양도 여러 번 했었다.
미국에서는 모르지만 아직 한국에서는 나이에 대한 선입견이 뚜렸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은사이신 이명보 교수의 간청으로 또 한국으로 들어 오라는 부모님의 성화로 인해 이번 학기부터 경성 대학에서 강의를 시작했고 이제 첫번째 방학을 맞으려 하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방학과 동시에 도전할 과제가 생겼구나…흐흐흐….
순간 순진해 보이던 그녀 얼굴에 광채가 나는 것 같았다…..
한달전 이교수는 제자임과 동시에 동려 교수이기도 한 그녀를 찾아와 아주 심각하게 이번 일을 제안했었다.
“김교수가 이번 프로젝트를 맡아 주었으며 좋겠어..”
갑작스러운 이교수의 제안에 민수는 꽤 당황했다.
“무엇보다 우리나라에선 자네가 이분야의 최고지않나, 하하하….?”
민수는 나오려는 웃음을 간신히 참았다.
꽤나 중요한 일인가보다 생각했다.
전공분야에 있어서는 이렇게 비행기를 태워 주시는 분이 아닌데 말이다.
“그러면 학장님께도 말씀드려야 되는 것 아닌가요?"
“그 문제라면 내가 이미 허락을 받아 놓았다네… 그리고 현민이 알지? 그녀석도 그곳에서 일하고 있어…….팀장이라지 아마…. 자네 일하는데 많은 도움이 될거야… 어때?”
존경하는 스승님의 제의라 차마 거절못하는 것처럼 보이려고 그녀가 얼마나 표정 관리 중인지 사실 그 누구도 모를 것이다.
엄마가 이번 방학을 얼마나 많이 기다리고 계시는지 아는 까닭에 가급적이면 아무런 일도 만들지 않고 그져 엄마 하자느데로 따르며 그간 못했던 효녀 심청이 흉내좀 내보려 했는데 아무래도 물건너 간 것 같다.
“그럼 언제부터 시작하는건가요? 작업은 어디서 하지요?”
“ 시작은 다음주 월요일부터 하면 되고 참, 한성 자동차 본사는 안국동에 있다네….내 현민이 한테 미리 연락해 놓음세“
또다른 경기의 시작….
그녀는 일을 아니 그녀가 공부하는 학문을 하나의 스포츠 경기처럼 받아들였다.
이번 경기에서도 최선을 다해 이기리라 다짐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