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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서의 40대 직장 여성과 MZ직원과의 싸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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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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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가운 손님


BY 엄지공주 2003-07-23

 

그날은 장날이었다.

이층 식구들은 외출 준비를 하고 있었다.

 

아침을 먹은 이후 주인여자는 안방에서 꼼짝도 않고 공들여 화장을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외출 준비를 끝낸 진경은 붉은색의 원피스를 입고 노래를 흥얼 거리며 안방문을 열었다.

 

주인여자는 이제야 화장을 끝내고, 옷을 갈아 입고 있었다.


-엄마! 이번엔 또, 어떤 아저씨야.

잘 생겼어. 키는 커. 저번처럼 다 늙은 아저씨는 아니겠지.


진경은 화장대 거울앞에 자신의 모습을 비춰 보고 있었다.

-아니 얘가!...........


-괜찮아 엄마! 난 다 알어. 우리 지금 그 아저씨 만나러 가는 거잖아. 그저께 집앞에서 엄마가 그 아저씨 차에서 내리는 거 봤단 말야.

이번엔 틀림없이 아빠가 될 수 있는 거야.


-쓸데없는 소리 그만하고.......이 옷 괜찮은지 봐. 아니 근데 어디 불났냐. 넌 옷이 그게 뭐냐. 너무 뻘겋다. 당장 옷 갈아 입고 와.

-이옷이 어때서.......이쁘기만 한데.......... 내가 엄마보다 더 이쁘니까, 샘 나서 그런거지.


그때 화장대위에 방금 선물 포장을 뜯은 듯한 반지 케이스가 진경의 눈에 들어왔다.


진경은 얼른 엄마에게 다가가서 손을 보았다.

진주 반지가 엄마의 약지 손가락에서 빛나고 있었다.

 

-우와 이쁘네. 오늘 만날 그 아저씨가 준거구나. 꽤 비싸겠다. 그 아저씨 정말 궁금한데.......

 

-그러니까, 오늘 잘해. 당장 옷 얌전해 보이는 걸로 갈아 입고 오고......

-난 걱정마. 오빠한테나 잘 하라 그래. 저번처럼 또 사라지지말고

 

-참 진우 얘는 어디 있는거야. 준비는 다 했나.


진우는 하얀 남방에 남색 바지로 깔끔하게 갈아 입고, 거실 마루의 한가운데에 벌렁 누워 있었다. 영은은 그곳에 걸레질을 하고 있었다.


-좀 일어나 줄래요. 나 마루 닦는거 안 보여요.

-보여.

-보이면 좀 일어나서 저쪽으로 가던지.........비켜줄래요.


진우는 귀찮은 듯 겨우 일어서서 벽에 기대어 앉으며 그런 영은을 바라보면서 어머니와 동생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 진우의 시선은 아랑곳  하지 않은채  이마에 땀을 흘려 가며 열심히 닦는 영은


-대충해. 오늘 같은 날은 좀 쉬고........일을 요령것 해야지. 조금이라도 오래 버틸려면......

 

진우는 순간 영은의 모습이 안스러워 보여 자신도 모르게 그말을 던지고 말았다.

 

-저 같이 작은 사람은, 쉬었다가 하면 길이 멀어서 안돼요. 당신처럼 큰 사람이나 꾀 부릴줄 알지..........참 저번에 편지지는 고마웠어요.

 

걸레 닦는 걸 잠시 멈추며 영은은 약간 비냥 거리듯 대답했다.


그때, 안방에서 주인 아주머니와 진경이 나란히 나오고 있었다. 진경은 연한 하늘색의 두피스로 갈아 입고 있었다.

 

진우는 그제서야 일어서서 먼저 밖으로 나갔다.


-집 잘 보고 있어. 그리고 뒤뜰에 소꼬리 삶고 있는 것 연탄 잘 갈고, 적당히 끓어면 불 빼고....... 타지 않도록 잘 보거라.

-네.걱정 마시고 다녀오세요


이층집 식구들이 나가고, 정오가 다 되었을 때였다.

영은은 깜박 잠이 들었다.


-누나야! 누나야!

어디선가 들여오는 동생들 목소리, 영은은 그소리에 벌떡 일어나 눈을 떴다.

'꿈이었구나.'


꽝꽝...

그때, 요란하게 대문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누구지 벨은 안 누르고..........'


영은은 “누구세요”라고 대답하여 대문쪽으로 갔다.

-누나아! 누나아!

대문틈으로 들려오는 영칠의 목소리.


영은은 잘못 들었는가 싶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얼른 대문을 열면 영수와 영칠이 얼굴에 땀 범벅이 되어 뻘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서 있었다.

 

-아니 니들이 여길 어떻게 온거야. 우선 안으로 들어와.


영은은 동생들을 식탁에 앉히고, 먹을 만한것을 이것저것 내놓고 있었다.

밥을 퍼고, 국과 반찬을 올렸다. 그리고  양과자, 음료수, 과일등이 식탁위로 하나씩 올려지고 있었다.


-우와 맛있는거 많다. 이거 우리 다 먹어도 돼. 

-그래 다 먹어. 밥 안 먹었지.. 얼른 밥부터 먹구......

-오늘 배 터지 겠다.

 

-근데 여길 어떻게 알고 왔어.

- 응 상구댁 아주머니한테 물어 봤어. 아침 일찍 왔는데, 종일 찾다가 이제 온거야. 

 

-엄마, 아빠는 너희들 여긴 온거 아시니?

-.............
-너희들 몰래 왔구나.

-응, 알면 못 가게 해서.........

 

-다음 부턴 절대 오지마. 알았지.

 

순간, 과자를 먹던 영칠과 영수의 손짓이 멈췄다. 이번엔 영수가 물었다.

 

-왜? 오면 안돼.

-주인 아주머니 알면 누나가 혼나거든. 너희들 누나가 혼났으면 좋겠어. 아니 잖니?

 

-알았어. 근데 오늘은 주인 아주머니 없는거야.

-응, 그러니까 오늘은 맘껏 놀다 가도 돼. 이거 먹고 누나가 시장 구경 시켜 줄테니까, 밖으로 나가자

-어, 정말 신난다.

 

동생들의 기뻐하는 모습에 영은은 흐뭇했다. 시장 보러 주인 아주머니와 몇번 갔기에 길은 대충 알고 있었다.

그러나 편으로 혹시나 이층식구들과 마주치지는 않을까 내심 근심스러워 하며 대문을 잠근후 시장으로 동생들과 걷고 있었다.

 

여기저기 여러 종류의 점포와 길가에 즐비하게 늘어선 갖가지 노점을 구경하는 영칠, 영수는 모든것이 새롭고 신비롭기만 했다.

 

그때 저멀리 생선가게가 보이고 영은일행은 그쪽으로 다가섰다.

-아주머니? 거기 고등어 두마리 주세요.

 

얼마후, 생선든 영칠과 양과자를 든 영수가 탄  버스가 막 출발 하려 하고 있었다. 

 

영칠이 창밖 영은을 향해, 생선을 들며 "잘있어 누나"라고 말하자, 

이어서 영수가 과자봉지를 흔들며, "잘있어 누나"라고 말했다.

 

-그래 잘가!

영은도 동생들을 향해 손을 흔들며 돌아 섰다.

영은이 그곳을 벗어나 한적한 길가로 들어 섰을 때 였다.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가는 소 한 마리와  소를 이끌고 가는 아저씨의 뒷모습이 저만치 보였다.

 

'타지 않도록 잘 보거라'

새벽부터 뒤뜰에 올려 놓았다는  소꼬리가 생각났다.

 

영은은 그제서야 정신 없이 뛰기 시작했다.

 

제발 아무일 없기를 간절히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