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님. 반갑습니다.
남편분 고향이 울릉도라구요? 어디 사시는데요? 몇살일가요?
혹시나 같은 고향 같은 마을 같은 학교 동기가 아닐까 하는 반가운 마음에...
뭐니뭐니해도 고향 사람만큼 반가운 게 없는지라...*^^*
자주 들려 주세요.
정말 반가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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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을 틀어 놓은 채 재란은 방에서 꼼짝을 하지 않았다.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단지 아름다운 그의 여자 모습만이 머리속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25년을 살아오면서 한번도,
단 한번도 기죽어 살아 본적이 없었고
늘, 항상 당당하게 살았다.
모자라면 모자란대로 넘치면 넘치는 대로
늘 자신감있게 살았다.
그런데 그의 여자가 처음으로 재란을 초라하게 만든 것이다.
재란은 그것이 싫은 것이다.
그리고 조금의 망설임없이 사랑하는 사람의 가슴을 향해 달려가는 그 모습...
누군가 가슴을 도려내도 그보다 아프진 않았을 것이다.
노크도 없이 문이 열렸다.
자는 척 했다.
[우리 강새이(강아지) 자나?]
할머니의 목소리였다. 일어나지 않을 수 없었다.
늘 미소를 잃지 않는 할머니의 얼굴에 근심이 서렸다.
[우리 강새이 믄 일 있나? 할매한테 야그 해봐라]
팔십 평생을 살아오신 분이다.
할매는 손녀의 눈빛만봐도 기분이 좋은지 나쁜지 고민이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있었다. 특히나 할매가 가장 사랑하는 손녀가 아닌가...
[누가 우리 강새이를 이리도 슬프게 맨들었노. 이 할매가 혼내줄터이 야그해봐라]
[슬프게 하긴 누가...! 오늘은 그냥...기분이 좀 그렇네 할매야]
애써 웃는 손녀를 할매는 쪼글한 손으로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이 할미 마지막 소원이 믄지 알제? 우리 강새이, 최고로 좋은 놈 만나 면사포 쓰는 거 보고 죽는 거 아이가]
[할매가 죽기는 와죽노? 내하고 천년만년 살아야지]
[아이구, 내 새끼...]
할매는 다큰 손녀의 엉덩이를 툭툭 두들겨 주었다.
[할매...할매는 사랑이 뭔지 아나?]
[...와?]
[옛날 사람들은 참 좋았겠다. 사랑이 뭔지도 모르고 얼굴도 모르고, 그저 집안에서 정해준 사람과 평생을 탈없이 살았으니깐...어쩌면 그게 편할수도 있는데...]
할매는 말이 없었다. 그저 손녀의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 볼 뿐이었다.
손녀의 얼굴에서 할매는 옛날...아주 오랜 세월전의 한 소녀의 모습을 기억했다.
사모하는 사람이 있어도 차마 입에 담지 못했던...
그때의 그 쓰라림과 절망이 다시 떠올랐다.
[...아가야...]
재란은 피식 웃었다.
[할매, 신경쓰지마. 아무것도 아니니깐...할매, 나 쫌 누울께, 괜찮지?]
하면서 그녀는 할매의 다리를 베개삼아 누웠다.
...어떤 놈이냐. 감히 어느 상놈이 니를 힘들게 하는기고...
*
[야, 진수집은 잔치 분위기란다]
도서관으로 쪼르르 달려온 은숙이 보고를 하기 시작했다.
[그 여자가 방송국 사장 딸이라네? 워크맨을 데려가기 위해서 왔대]
[니는 소식도 빠르다]
[여우같이 생겨가지고 남자 홀리겠더라. 아니, 그 여자는 와 지금 나타나가지고 다된 밥에 초를 치고 난리고. 니 여서 포기하믄 안된다. 알았제? 사랑은 쟁취하는 것이다 아이가]
[사랑은 흘러가는 물처럼 그냥 두는 게 좋은거다]
[야는! 옆을 터면 글로 흐를수도 있는 게 물이다. 니 와 약한 모습 보이노?]
[우린 아직...확실한 게 없다는 소리다. 그건 그렇고 니 내일 조깅 나와라]
[조깅을? 뭐하러? 야, 내가 나가믄...!]
[니 반드시, 죽어도 나와라! 안 나오믄 친구고 뭐고 없다. 그냥 해보는 소리가 아이다]
시간보다 10분 늦게 은숙은 투덜거리며 나왔다.
[가시나, 피하기는 와 피하는데. 워크맨이 오늘도 나오믄 니한테 진짜 마음이 있다는 얘기가 아이가. 그라믄 둘이서 얘기를 해야제]
[잔소리 말고 뛰기나 하셔!]
그래도 은숙은 궁시렁 거렸다.
그가 나온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당분간은 그와 거리를 두고 싶었다.
머리속이 복잡해 정리할 필요가 있겠다 싶은 것이다.
채 영은 바다를 마주보며 담배를 피고 있었다.
반환점을 돌아오자 그는 바위 옆에 서 있었다.
여전히 담배를 손에 끼고 말이다.
[안녕, 오빠]
재란은 밝은 음성으로 말을 건넸다.
[안...녕하세요]
어색하게 은숙이 인사를 건네자 그는 가볍게 고개를 그덕여 보였다.
그는 은숙의 출현에 대해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이었다.
[은숙이, 잠깐 자리 좀 비켜 줄래? 꼬맹이 하고 할 얘기가 있어서...]
[어..그러지요 뭐. 천천히 얘기 하세요]
은숙은 잽싸게 자리를 피해 앞으로 사라졌다.
[날 피하려는 속셈인 것 같은데, 너 답지 않다 꼬맹이]
[피하긴...제가 뭘 피한다고...]
[우리, 대화가 필요할 것 같은데? 저녁 먹고 10쯤에 중학교 운동장으로 나와라]
[아니요, 전...!]
[도서관 비번인 것 알고 있어. 올때까지 기다릴테니깐 빠져나갈 생각은 하지마]
그는 단호한 음성으로 못박았다.
*
[내가 뭐랬냐? 워크맨은 니한테 마음이 있다카이. 니는 눈빛을 보면 모리나? 내일부터 내보고 또 나오란 소리 하지마레이. 니가 나오래케도 안 나올끼다]
[... ...!]
저녁 먹는 자리에서 다시 채 영이 화제에 올랐다.
[시상에! 그 아가씨 용감도 하네요. 영을 볼라꼬 무작정 왔다 카네요]
[그 샥시가 결혼한다는 그 샥시인 모양이제?]
[와 아이겠는기요. 아까 봤는데, 참말로 참하데요. 피부도 곱고...있는 집안 자식이라 카든데, 그래 보이데요]
[남녀가 정혼하는데 있어 배경이 다 무신 소용이고! 서로가 정이 있어야 하는기라]
할매가 조용히 한마디 거들었다.
[어무이도 참, 서로 마음이 있으이 그 아가씨가 찾아 왔는게 아이겠는기요. 그 아가씨 아버지가 영이를 후계자로 점찍고 있다네요. 하긴, 영만한 신랑감이 어데 있겠는기요. 인물 잘났지, 학벌 좋겠다, 게다가...!]
재란은 숟갈을 놓고 일어났다.
[야가, 와 밥을 묵다가 마노?]
대꾸도 없이 재란은 주방을 나와 버렸다.
그런 재란의 뒷모습을 할매의 눈이 쫓고 있었다.
9시가 되자 재란은 방안을 서성거렸다.
나가야 하는건지...말아야 하는건지...
아직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을 때 휴대폰이 울렸다.
은숙이었다.
[야! 니 소식 들었나?...그 여자가 배탈이 나서 지금 도동 병원으로 갔댄다. 워크맨이 직접 운전하고 갔대네? 샘통이다, 야]
[... ...!]
힘이 쫙 빠짐과 동시에 은근히 걱정도 되었다.
[나오니라. 한 잔하고 노래방 가잲다. 알았제?]
결국 신은 그녀 편이 아니다 란 생각이 들었다.
심호흡을 하며 재란은 방을 나왔다.
술 생각이 간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