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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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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속에서...


BY 액슬로즈 2003-07-23

 

운전을 맡은 진수는 신이 나 있었다.

눈치빠른 은숙은 잽싸게 조수석에 냉큼 올랐고

얼렁뚱땅 재란은 채 영과 뒷좌석에 나란히 앉는 영광을 누렸다.

 

코란도는 남양에서 출발해 통구미를 지나고 사동을 지나고

울릉도의 서울이라 할 수 있는 도동을 지나 저동으로 들어섰다.

촛대바위로 유명한 저동에서 한 2km 오르면 삼단을 이루며 떨어지는 봉래폭포를 구경할 수 있었다.

그들은 후박나무 쉼터에 코란도를 주차한 후 걷는 방법을 택했다.

등산이란 걷는데 묘미가 있는 법!

 

[야, 봉래폭포는 진짜 오랜만이다]

시원한 물줄기를 바라보며 진수가 커다란 음성으로 말했다.

[니 중학교때 소풍왔을때 빼고는 처음이제?  걷는 거 싫어하잖아? 모르지, 정상에 술상 거나하게 차려놨다면 매일매일 올지도...맞제?]

[야가!]

진수는 그런 은숙을 째려 보았다.

[인간 채 진수를 뭘루 보구...!]

[뭘루 보긴. 술꾼으로 보지]

[또 시작이다, 또 시작이야! 둘다 조용해라, 응?]

재란은 한숨을 내쉬며 두 사람의 머리를 가볍게 쥐어 박았다.

 

채 영은 차 안에서부터 말이 없었다.

그런 그가 재란은 내내 신경이 쓰여 견딜수가 없었다.

 

오래지않아 그들은 저동 부둣가로 내려왔다.

촛대바위 주위를 한바퀴 돌았다.

태풍이 온다는 소식에 만안에는 배들이 정박해 있었고

그 까닭에 부두는 한가로웠다.

 

관광객들에 섞여 그들도 부두에 앉아

오징어랑 회를 시켰다.

먹는둥 마는둥하며 채 영은 멀찌기 떨어져 담배를 피워 물었다.

 

[니네 삼촌, 하루에 담배를 얼만큼 피는지 아냐? 볼때마다 담배네]

재란이 물었다.

입안가득 회를 넣고 씹느라 바쁜 진수를 힐끔 채 영을 보더니 손을 내저었다.

[저거 직업병이라카이. 골초라고 보면 된다. 그래도 할배 앞에서는 안 핀다 아이가]

[저 오빠, 담배 피는 모습도 예술이다, 예술! 니가 너그 삼촌 반만 닮았어도 참~ 봐줄만할긴데...우예 그래 니는 돌연변이고?]

은숙의 화살이 어느새 진수에게로 향했다.

[가시나, 내가 어때가? 니보단 낫다]

[하이고, 낫기도 하겠다. 아! 나은 게 하나 있다. 술이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는 거!]

[이 가시나! 니 오늘 바다 짠 맛 좀 볼래?]

 

재란은 웃지 않을 수 없었다.

티격태격 하는 진수와 은숙의 모습이 과히 미워보이지는 않았기에...

[모르는 사람들이 본다면 사랑 싸움 하는 줄 알겠다]

[뭐?]

[야가 뭐라 카노!]

재란의 한 마디에 두 사람은 정색을 하며 소리쳤고 재란은 깔깔거리며 웃고 말았다.

 

*

[아참! 나 살게 있는데 잠깐 좀 세워봐라]

도동으로 넘어오자 갑자기 은숙이 차를 세웠다.

그리고는 진수의 팔을 잡아 끌었다.

[니 내하고 같이 가자]

[어디 가는데? 내가 따라갈께]

[무거운 게 있어서 그런다. 재란이 니는 차 안에 있어라마]

하면서 은숙은 진수를 반어거지로 끌고 내려갔다.

 

한 5분쯤 지났을까 은숙에게서 연락이 왔다.

...........야, 내 진수랑 1시간가량 놀다가 올라 갈테니깐 그때까지 데이트 좀 해라............

[뭐? 야, 김 은숙!]

그러나 전화는 끊겼다.

어휴...이눔의 지지배를 그냥...

 

일은 저질러졌고 그렇다고 1시간동안 마냥 차안에서 기다릴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저기...오빠. 은숙이 볼일 보는데 1시간정도 걸린다는데...어쩔래요? 차안에 있을래요? 나가서 바람이라도 ...!]

[내려]

그녀의 말을 막으며 그가 그렇게 한 마디 던지고는 차에서 내렸다.

 

[야! 니 와 거짓말하고 난리고. 그라고 데이트는 또 무슨 소리고?]

은숙을 막아서며 진수가 따져 물었다.

[무슨 소리긴...재란이하고 너그 삼촌, 잘 어울리는 것 같아서 내가 일부러 시간 함 조 봤다. 와, 그라믄 안되나?]

[니 더위 문나, 뭔 헛소리고? 둘이 좋아하는 것도 아인데 데이트는 무슨 얼어죽을 데이트고]

[꼭 좋아해야 데이트하냐? 데이트하다보믄 좋아질 수도 있겠지 뭐. 재란이 쟤만큼 괜찮은 여자도 더물다 아이가]

[야가 말같은 소리를 해라. 우리 삼촌 여자 있다고 안 했나?]

[결혼한 것도 아이잖아. 사람 일을 우예 알겠노. 잔소리 하지말고 니는 내 따라 온나]

마지못해 따라 가면서 진수는 고개를 돌려 뒤를 한 번 쳐다 보았다.

 

재란과 채 영은 약수공원을 향해 걸었다.

[가는 김에 독도 박물관에 가볼래요? 오빠는 그동안 울릉도에 안 들어왓기 때문에 그런 곳이 있는 것도 모르지요? 가볼만 해요]

서로의 어색함을 달래기 위해 재란은 쉼없이 입을 놀렸다.

 

*

그들이 남양에 도착했을 때는 저녁 시간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재란과 은숙은 마을 버스 정류장에 먼저 내렸다.

[니 한번 더 쓸데없는 짓 했다간 친구고 뭐고 없는 줄 알어!]

 코란도가 사라지자 재란은 은숙을 잡아 먹을 듯이 노려 보았다.

[야야, 들어가라. 곧 태풍이 들이 닥치겠다. 그라고 저녁에 심심하믄 전화할께. 내 간다!]

재란의 등을 떠밀고는 은숙은 그 자리를 벗어났다.

 

빗방울이 떨어졌다.

굵었다. 곧 닥칠 태풍을 예고하는 것 같았다.

재란은 집을 향해 뛰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