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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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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등


BY 액슬로즈 2003-07-21

 

비는 오래지 않아 거쳤다.

그들의 첫 키스는 그들을 침묵속에 빠뜨렸다.

채 영은 진수에게 전화를 걸어 차를 갖고 오란 메세지를 남겼다.

 

[와아, 의리럾게씨리 둘이서만 갔냐? 나도 가고 싶었다 아이가. 쫌 깨우지!]

야속해하는 진수의 투정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재란은 코란도 뒷좌석에 깊숙이 몸을 누이고 창밖에 시선을 고정시켰다.

왜 키스를 허락했을까...어쩌자고...

후회는 아니다.

그렇다고 기쁨 또한 아니었다.

뭔지모를 감정이 가슴속에서 소용돌이 치고 있었다.

 

서로 주고 받는 사랑만이 다는 아닐 것이다.

일방적으로 주기만 하는 짝사랑도...가슴 아프지만 그것도 사랑인 것이다.

그러나 하고 싶지 않은, 피하고 싶은 사랑... ...

피하기에는 이미 늦어 버린 사랑을 재란은 하고 있는 것이다.

 

*

[야, 니가 술 마시잔 소릴 다 하고. 믄 일이고?]

술잔을 받으며 은숙이 재란을 들여다 보았다.

[니 워크맨과 오늘 성인봉가서 믄 일 있었나?]

[믄 일? 와, 믄 일 있었으믄 좋겠나?]

 

은숙은 친구의 음성에서 쓸쓸함이 베어져 나오는 걸 알았다.

가만히 그녀를 살폈다.

재란은 연거푸 소주 두 잔을 들이켰다.

 

[이 놈의 짝사랑...벌써부터 끝냈어야 하는건데...]

[와, 워크맨이 뭐라카더나? 혹시...니 고백했나?]

[고백은 무슨...나 스스로 부담스러워서 그런다]

[니...정말 사랑하는구나...]

은숙은 확신을 했고 재란은 대답않고 바다를 바라보며 다시 또 잔을 비웠다.

 

[나도 한 잔 따라봐라. 아니, 잔 도]

은숙은 손수 따라 마셨다.

[난 말이다. 솔직히 사랑이 믄지 모르겠다. 매번 사랑에 빠질때마다 이것이 진짜 사랑이다.이 사람과 헤어지면 다시는 사랑을 할 수 없을 것이다...그런 마음이었거든.

그라고 또 나는 니가 하는 사랑도 솔직히 믿지 않았다 아이가. 그냥 아직 상대를 못 만나 워크맨을 마음에 두고 있는갑다 하고...

오늘 보이 내 생각이 틀린 것 같다. 니는 중학교때부터 지금껏 쭉~ 한 마음이었다 아이가.

놀랄 일이다. 그 마음이 진짜라는 게...]

[나도 솔직히 그동안 확신은 없었다 아이가...]

[그런데 오늘 확신이 서더란 얘기가?]

[... ...]

 

바람이 차다.

파도 소리도 거칠게 들렸다.

태풍이 오려나 보다...

그래...한바탕 태풍이 휘몰아쳤음 ...

 

그 단순한 키스 한 번이 그녀를 잠못들게 했다.

꼬박 밤을 센 재란은 트레이닝복을 입고 마당을 왔다 갔다 했다.

망설이지 않을 수 없었다.

밤새도록 고민과 생각을 거듭했다.

결론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

그저 키스 한 번이라는 것...그렇게 억지 결론을 내렸다.

그런데도 갈등이 생겼다.

그녀는 심호흡을 크게 했다.

 

그리고 뛰기를 결정했다.

하늘은 잔뜩 흐려 있었고 바람도 어제보다 삼하게 불고 있었다.

파도도 높게 물결치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소나기가 퍼불것만 같았다.

 

어김없이 채 영은 나와 있었다.

파도치는 부두에 서서 여전히 담배를 피우며 생각에 잠겨 있었다.

 

다른때보다 천천히 뛰기를 하며 재란은 웃는 연습을 했다.

덕분에 그와 마주했을때는 자연스레 웃을 수 있었다.

 

[다리 괜찮아요, 늙은 오빠?]

재란의 생기발랄한 모습이 의외인 듯 그가 눈썹을 찡그리며 그녀를 관찰하듯 쳐다보았다.

[등산 않다가 등산 하면 다음 날 대게는 못 일어나는데, 체력이 좋은데요?]

 

...잘한다, 이 재란! 계속 그렇게만 해라, 응?...

 

[어때요. 등산도 햇겠다, 이왕 나선김에 봉래폭포에도 가 볼래요? 곧 태풍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 며칠 꼼짝못할텐데]

 

...미쳤어, 미쳤어. 그런 제안은 왜!!!! 제발, 못 간다고 얘기...

 

[좋지. 아침 먹고 준비해서 집으로 와라]

그렇게 말하며 채 영은 담배 연기를 그녀 얼굴에다 길게 내뿜었다.

그리고 그는 앞장 서서 먼저 가 버렸다.

매케한 연기에  켁켁거리며 재란은 자신의 입을 저주했다.

주워담을수만 있다면 당장에라도 그러고 싶었다. 그러나 엎질러진 물인것을...

 

*

[우리 강새이, 어제 채영감 막내아들하고 어데 갔디나?]

아침을 들다 말고 갑작스레 할머니가 말을 하자 재란은 하마터면 밥알을 뱉어낼 뻔했다.

[그래 참! 고기 집 서울댁도 나한테 그런 소리 하든데, 니 영이하고 와 붙어 지내노?]

엄마까지 거들었다.

아버지, 오빠, 남동생의 시선도 그녀에게 몰려 있었다.

 

...하여튼 소문도 빠르지...

[내가 무슨 껌이가, 붙어 지내게?]

[가시나, 소리는 와 지르노?]

[내가 언제? 그 아저씨, 성인봉 가 본적이 없다길래 내가 안내한 것 뿐이다 뭐. 진수는 지리를 잘 모르잖아. 어릴때부터 알고 지냈는데 그런 도움도 못 주나?]

[누가 뭐라카나? 그라고 엄마가 그런것도 몬 물어보나?]

 

[에구, 우리 강새이. 착하기도 하데이...그래 니가 마이 좀 도와줘라. 안 그래도 태풍땜에 그 집 어른들이 몬 들어온다카데. 아마 심심할끼다. 란이 니가 마이 도와줘라마]

[응, 할매]

아무렇지 않은 듯 대답은 했지만 편치 않았다.

[안 그래도 오늘 봉래폭포 구경가기로 했다]

 

나가려는 찰나, 은숙이가 전화를 했다. 토요일이라 오전 근무랜다.

따라가게 해달라고 사정을 했다.

[니 쓸데없는 소리하면 그날로 25년 우정 박살나니깐 알아서 해라, 응? ...1시까지 안 오면 그냥 출발한데이]

 

*

채 영은 거실에서 신문을 보고 있었다.

조용했다.

[진수는 나갔어요? 자요?]

2층 계단을 기웃거리며 재란이 밝은 음성으로 물었다.

그가 신문을 접어 옆에 놓고는 그녀를 가만히 쳐다보며 미간을 좁혔다.

[잔다]

[또 술마셨대요? 걔는 허구헌날 술이라카이...]

[야!  어제 술 마신 인간이 누군데 나한테 덤탱이 씌우냐?]

[아구, 깜짝이야!]

진수가 삐쭉 솟은 머리를 하고는 계단을 내려와 재란앞에 섰다.

 

[니 어제 은숙이 하고 ...했다면서?]

진수는 술마시는 시늉을 해보였다. 그러면서 재란의 어깨에 팔을 얹었다.

[야, 내 빼고 마시니깐 잘 넘어가디? 은숙이 고거 그런 껀수 있음 전활해야지, 왜 안 햇데?]

[오면 직접 물어보셔~]

재란은 진수의 옆구리를 팔꿈치로 쳐서 밀쳐냈다.

[가가 여기 왜 오냐?]

[오늘 ...영이 오빠랑 봉래폭포 가기로 했는데 은숙이도 같이 가고 싶어하길래...]

하면서 재란은 채 영을 살폈다. 그의 허락없이 정한 일이라...

아니나다를까 그가 한 쪽 눈썹을 치켜 올렸다.

[이야, 잘됏네! 나도 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