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거 오늘 들어온거라 빨리 보셔야 되는 거 아시죠? 찢거나 칼로 오려 내는 건 절대 금물! 잘 알지요?]
[이 선생은 맨날 그 소리제? 알았으니깐 빨랑 도고]
[그럼 재밌게 보시고 가져 오세요. 안녕히 가시구요]
재란은 도서관 사서다.
늘 읽고 싶은 책, 마음대로 읽을 수 있다는 것과 조용하다는 그 이유만으로도 그 일이 재미 있었다.
가끔 아줌마들과의 실랑이 아닌 실랑이도 언제부턴가 그녀 자신도 은근히 즐기고 있다는 걸 깨닫는 것도 흥미있었고...
도서관에 잡지책이랑 만화책도 상당 부분 있다는 것도 즐거웠다.
문제는 가끔 아줌마들이 잡지책에 난 흥미 부분을 슬쩍~ 한다는데 있었다.
아무리 주의를 주어도 소용이 없었다. 대한민국 아지매들을 누가 당하랴!
[어쭈 오늘은 한가하네?]
장난기어린 시원스런 목소리가 문가에서 들렸다. 앉은 자리에서 고개를 들었다.
은숙이다.
[이 시간엔 늘 그렇지 뭐. 울릉도 사람들 저녁 9시 넘으면 집에서 꼼짝 않잖아]
[그거야 어른들 야기고. 우리 같은 피끓는 청춘은 지금부터가 시작아이가.
자, 냉커피]
은숙은 낄낄 거렸다. 그녀는 1년전 자원해서 울릉도 보건소로 온 간호사다.
[그라고 초특급 빅 뉴스! 워크맨이 내일 울릉도로 왕림하신댄다]
손에 든 커피가 찰랑거렸다. 재란은 고개를 번쩍 들었다.
[채가한테 직접 들었으니깐 맞을끼다. 그 워크맨이 사장과 한판하고 징계를 먹었다나 우쨌대나, 하여간 온댄다]
[...그래?]
[그래?...야, 거기 다가? 안 반갑나? 니 우상이, 니 첫사랑이 온다는데 아무렇지도 않나? 얼마만인지 아나 니?]
[뭐가 첫사랑이고? ...짝사랑이지...그것도 옛날 케케묵은 얘기다]
[케케묵은 얘기 좋아하네! 니 아직도 워크맨 말만 나오면 심장이 벌렁거리고 귀가 쫑긋하제? 니도 참 한심하다 우째 말도 못하고 오랜시간 혼자 가슴앓이고...]
[...짝사랑이 다 그렇지 뭐]
보고 싶어서 울고
그게 싫어서도 운다
기약없는 기다림이 서러워 울고
시작없는 이별때문도 운다
난...오늘도.
워크맨.
재란과 은숙이 만든 별명이다. 언제나 워크맨을 귀에 꽂고 다녔으니깐...
그가 온다!
얼마만인가!
대학 입학 후 울릉도와 인연을 끊었던 그가 온다!
한동안 잠잠하던 재란의 가슴에 조용한 파문이 일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