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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모마일 2003-12-08

저녁에 우현이 에게서 전화가 왔다.

밖에서 만나자는.....

3일째 연락이 없던 우현이 였는데.....이사하고 나서  한번도 집엔 들르지 않고 있었다.

왜냐구 이율 묻고 싶었지만.....들려오는 대답이 두려웠다.

그제도 밖에서 만났고....오늘도.....

둘 사이에 .....분열이 생기는 걸까?

날 많이 힘들게 하는 자신에게....화가 나는지......둘만의 시간에 불편함을 느끼는것 같은 요즘이다.

오늘은....목소리가 밝다.

밝은 목소리 듣는 것도 쉽지 않는데.....점점 지쳐가고 있다.

나도...우현이도.

 

일식집 '미가'엔 재명이와 재형이도 나와 있었다.

수현이와 지원이도 불렀다며 둘은 내게 살이 많이 빠졌다며 걱정 했다.

자신의 옆자릴 내주는 우현이에게 잠깐 시선을 줬다.

전에 함께 쇼핑 갔다가 새로산 가을 정장......잘 어울렸다.

깔끔하게 떨어지는 디자인이....세련되어 보였다.

 

"차 막히지 않았어....?시간에 딱 맞춰 나왔네...."
"좀 일찍 나왔어......민선배 만나서 설계도면 주고 나온거야..."

"재택 근무 .....그거 할 만하지...?"
"그렇지 뭐......현장근무 보다야 편하지만......답답한 면도 있어..."

말끝을 흐리는 날 보며 재명인 더는 묻지 않았다.

 

처음 며칠은 아무일 없이 시간을 보내었는데......

늘 일을 하던 사람이라......하루종일 아무것도 않하고 있는게 견디기가 힘들었다.

회사에 다니고 싶은 마음은 많았지만......내가 들어온 순간 부터 내내 날 찾아 다니며 괴롭히는 채현언닐 비롯해......민정이 모녀......회사에 까지 찾아 와서 행패를 부리고도 남을 만한 사람들이라......직장을 구하기가 마땅찮았다.

공개적이 망신은 사고 싶지 않았으니까.....

지원일 통해 내가 서울에 있다는 얘길 들은 전에 다니던 회사 강선배가 그럼 재택근무 라도 해보라며 조금씩 가져다 주던 일감이 늘어나면서 계약직 사원 대우급으로 일을 봐주고 있었다.

이일이 없었더라면.....아마도 내게 닥친 현실을 견뎌내기가 너무 힘들었을 거였다.

그나마 할일이 있다는 생각에.....잠시라도 정신을 집중할 수 있기에.....다행이다 싶었다.

 

지원이와 임신 4개월 째인 수현이가 함께 들어섰다.

내게 손을 들어 하이 파이브를 하는 수현일 보며 재형이 미소했다.

일어나서 자릴 빼주는 배려도 해주는 재형일 보니 .....가슴 한구석이 따뜻해지는 것 같았다.

지원이와 재명이 닭살이라고 놀렸지만.......둘은 보기 좋은 커플이였다.

 

초밥과 우동 정식으로 간단히 저녁을 먹고 재즈빠로 자릴 옮겼다.

요 근래 생긴 편두통으로 머리끝이 콕콕 쑤셨다.

나올때 진통제를 하나 먹고 나왔는데도......가끔씩 신경을 잡아 당겼다.

몇번 고모에게 머릴 끌어 당겨져서 그런걸까....?

첨엔....그런 생각도 들었는데.....

아마도 잠을 제대로 못자서 겠지......

불면증에 시달리는 나날이니까....

 

"오늘 만나자고 한건.......축하해줄 일이 생겨서야...."

운을 떼는 지원이 말에 재명이 작게 인상을 섰다.

아마도 재명이와 연관이 있는 얘기 같았다.

"재명이가 드디어......결혼에 골인 하게되었어......내달 25일에.....탈총각이 된다는 말씀이지....."

"정말....?전에 말한 그 사람...?"

수현이 말에 재명이 고갤 끄떡였다.

"대한민국 최고의 플레이 보이 조재명이 드디어 한 여자에게 정착을 하다니......정말 축하할 일이 아니고 뭐겠어..."

"그러게......서른 넘어서 갈거라고 입버릇 처럼 말하더니.....설마....."

"설마 ....뭐...?"

"책임질만한 일 저지른 것 아냐...?"

지원이의 실눈에 재명인 기막혀 했다.

절대 아니라는 재명이 말에 지원이와 수현인 지금부터 날짜 카운트다운 들어가겠다고 장난이였다.

모처럼 ......웃어보는 저녁이였다.

드디어.....우리 맴버 중에서도.....서서히 결혼을 해가는 구나....

결혼이라는 단어가 주는 ......느낌.

웬지 울음이 나올것만 같았다.

나와는 거리가 먼듯한 기분.....

갑자기....마음이 착잡해 지는 기분이였다.

 

화장실에 다녀온다며 잠시 일어났다.

우현이 시선이 금방 내게로 향했다.

아마도 내 기분 상탤 눈치 쳇으리라......

지원이 따라 일어났다.

 

"어디 안좋아.....?안색이 굉장히 안좋아 보여..."
화장실 입구에 몸을 기대며 지원이 물었다.

"또.....민정이 모녀가 찾아 왔어....?너 .....얼굴색.....너무 나빠......."

"....편두통이 생겨서 일꺼야.....민선배 일 봐주고 있잖아....며칠 잠을 제대로 못잤거든.....별일 아니니까.....걱정 하지마....."

".......밥은 제대로 챙겨 먹는 거야.....?"

"응.....원래 소식하잖어......잠 못자서 피곤한거야......정말이야..."

"그렇담 ....다행이구....."

완전히 믿는 다는 얼굴은 아니지만......늘 그랬듯이 지원이 까다롭지 않게 넘어가 주었다.

 

모두와 헤어져 오면서......우현이 지나가는 투로 말했다.

 

"제주도에서 어머니가 오셨어.......당분간은 집에서 다닐까해......혼자 있어도 괜찮겠어...?"

".....응.....어머님은 좀 어떠셔......?"

"많이 나으셨어......겉 모습으로는 별다른 이상이 없어 보이는데.....말씀을 통 안하시니....답답할 뿐이지뭐......"

"내 걱정은 하지마.......어머님 맘 편하게 해드려......"

"....너 이렇게 힘들어 할 줄 알았으면......그냥 일본에 있게 하는 거였는데.......요즘 같아선 왜 내가 그때 내 생각만 했..."

"그런 얘기 그만하라고 했잖아.....듣기 싫어....내가 선택해서 여기 있는거야......정 못견딜것 같으면......그때가서 얘기 할꺼니까....약한 소리 하지마....."

"알았어......옆에 있어 주지 못해서 .....진짜 미안하다....."

"그만하랬지......듣기 싫어.....하지마..."

인상쓰는 날 보며 우현이 씁쓸해 하는 웃음을 지어 보였다.

 

일요일 오전 이였다.

지원이가 아침부터 찾아왔다.

같이 찜질방에 다녀오고.......매운 떡복이를 해서 먹었다.

연수언니가 가져온 아줌마가 만든.....약식도 함께 먹었다.

모처럼....느긋하게 보내는 하루였다.

 

저녁에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었다.

핸드폰으로 전활 가끔 주고 받았는데.......어쩐 일인지 집으로 전화가 왔다.

연수언닌 가고 지원인 자고 간다고 남아 있었다.

엄마가 여기 전화번호는 어떻게 알았는지......

가슴이 뛰었다.

 

"너.....호주에 간다고 하더니......어째서 거기 있는거야.....?"

화를 누르는 음성이였다.

".......다 정리하고 떠난것 아녔어.....?거긴 왜 간거야...?대체 거기서 뭐하는 거냐구....!!!"

엄마의 음성에 커피를 준비하던 지원이가 돌아다 봤다.

엄만 기막혀 했다.

자세힌 몰라도 내가 왜 엄말 찾아갔는지.......왜 힘겨워 했는지.....어느정도 짐작을 하고 있던 엄마였다.

내가 우현이와 인연이 아니라며.....정리하는게 좋을 것 같다던 엄마였는데.......

거짓말 까지 하고 여기에 나와 있는게 엄만 화가 나고 ......기가 막히나 보다.

 

"너 지금.......그.....우현이라는 사람과 함께냐.........? 둘이 같이 있는 거야....?"
좀은 진정이 됐는지....가라앉은 목소리의 엄마였다.

"결혼도 안하고.....동거라도 하고 있는 거야...?그런거야?"
다시 높아지는 목소리.......

 

"아냐.....그냥 나혼자 지내......예전 다니던 회사에서....연락이 와서.....그래서 들어 온거야...우현이 하곤 관계없어.......만나지 않고...."

"시끄러 이기집애야.......너 내가 아무것도 모르고 있는줄 알고 이러는 거야....?네가 왜 내게 왔는지.....정말 내가 모른다고 생각한거니......?어리석은 것 같으니라구......"
괜한......억측이 빗나갔다.

 

"당장 들어와.....내일 이라도 여권 챙겨서 ....들어와...."

"갑자기 어떻게 그래.......여기서 일하는 것도 있는데......"

"잔말 말고....당장 들어와.....내가 나가서 끌고 오기전에.....알아 들었어....?"
"그렇겐 못해........내가 한두살 먹은 애도 아니고.....내가 알아서 할께......엄마 걱정 시키지 않을께.....그러니까.....맘 편히..."

"....너 정말......너 왜그래....?왜 너 까지.....엄마처럼 살고 싶은거야...?내가 살아온 날들이 어땠는지 옆에서 뼈져리게 봤으면서......왜 그러고 살아 이 바보같은 기집애야.....엉!!!"

정말.....맥이 탁 풀렸다.

엄마가 오열을 하듯이 내 뱉은 말에......가슴이 떨렸다.

쿵......뭔가 내속에서....커다란 무언가가 무너져 내리는 소리가 들렸다.

지원이 옆에서.....눈가에 이슬을 달고...내게 등돌리고 서 있는 모습도.......아픔으로 다가왔다.

 

"그렇게 살봐엔......차라리 죽어 버려.......내가...너 ....그런꼴 보려고.....지우라는 널 억지로 낳은줄 알아......내가 널....어떤 마음으로 길렀는데.......다시 엄마 보고 싶지 않음....계속 거기서 뒷방 여자처럼 살아......사랑...?그게 ......대단한거 같지....?이 바보같은 기집애.....평생 그렇게 그늘에서 살바엔.....가슴에 대못박고 그냥 죽어 버려.....너 같은건 .....죽는게 나으니까......차라리 죽어라 그냥......엄마랑 같이 죽자......그러자.....그래..."

넋두리 하듯.......끝을 힘없는 목소리로 얼버무리는 엄마였다.

뚜뚜 하는 신호음이 들릴때까지 들고 있었다.

아무생각 없이.....

그렇게 그늘에서 살바엔 죽어 버려......

귓가에 맴돌았다.

지원이 내게 참지 말고......소리라도 지르면서 울어버리라고 ......

날 안은 손에 힘을 주었다.

나보다 더 목이 메어 꺽꺽 거리는 지원이였다.

 

정말.....이젠.....힘이 들었다.

엄마가 아니라도......

우현이가.....힘들면 ......다시 일본으로 가도 된다고......했는데....

자기가 들어와서 살겠다고 했다.

사표는 진작에 냈지만.....아직 맡고 있는 재판이 하나 있는데.....그게 시간이 좀 걸린다고 했다.

아마도....어머님이 걱정이 되겠지........

내게 쉽게 같이 떠나자는 말을 하기가 쉽지 않았을 테니까......

며칠전에 보았던...수현이와 재형이......그리고 곧 결혼 한다던 재명이.....

왜 내겐.....다들 아픔으로 다가오는 걸까....?

기쁘게 봐야 할 일들인데.......왜 난 슬픔으로 받아 들이는 건지......

오열하듯 흐느끼는 엄마의 모습이......자꾸 가슴을 쳤다.

그렇게 살바엔 차라리 죽는게 났다는 ......

그말이 왜....이리 끌리는 건지.....

하루가.......힘들게 지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