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라가 은주를 불러내 만났다는 사실을 안 동준은
급히 미라에게 전화를 했다.
"이미라..너 어디야?"
".... 훗..나를 왜 찾는데?"
"너 내 와이프한테 무슨얘기 한거야?"
"훗....당신 와이프 무섭더라..참 대단한 여자야..
나 이미라 오늘 당신 아내앞에서 완전히 무너졌어..
역시 당신와이프는 내 상대가 아닌가봐..
나랑은 차원이 다른 고귀한 사모님이셔..훗..."
"뭐? 뭐라고?"
동준은 서둘러 전화를 끊고 은주에게 연락을 했다.
초조하게 신호음만 들릴뿐 은주의 목소리를 들을수 없었다.
동준은 서둘러 집으로 갔지만, 어두컴컴한 집안엔 아무도 없었다.
당황스러웠다..어딜갔을까....
"따르릉....여보세요?"
"소연씨..나에요...은주 만났어요?"
"네, 사장님..은주요? 오늘은 못봤는데요..왜요? 무슨일이라두?"
"아닙니다..그럼..."
동준은 주먹으로 벽을 한대 쳤다.
도대체 무슨일이 일어나고 있는건지....
은주는 벌써 맥주를 3병째 들이키고 있었다.
술도 못하는 은주였다.
여자 혼자서 술 마시는건 별로 좋게보지 않던 그녀가
오늘은 무작정 마시고 싶어서 혼자 이렇게 앉아있다.
동준의 전화번호가 벌써 몇번째 찍히고 있었지만,신경쓰지 않았다.
이젠 은주의 마음이 떠나고 있는걸까..
홀안엔 짙은 블루스 음악이 나오고 있다.
낮의 일을 생각하고 있었다.
이미라앞에서 당당하고 싶어 이를 악물었다.
절대 울거나 소리치지 않겠다고 다짐도 했다.
그리고 그렇게 되었다.
갑자기 돌아서고나니, 모든 기운이 한번에 빠져나가는 느낌이였다.
차에 올라서도 한참을 기대있었다.
마음이 복잡했다.
동준에 대한 배신감, 미움, 하필이면 그런 여자였던가..
[차라리 나보다 더 나은 사람 만나지 그랬어..]
여러가지 생각들이 주마등처럼 휩쓸고 지나갔다.
머리가 어지러웠다.
한잔 들이킬 무렵, 또 한번의 벨소리가 들렸다.
은주는 핸드폰을 끄고 던질 생각으로 집어들었다.
어? 그런데...번호가....우진이였다....
[우진...우진..그래,난 지금 우진이 보고싶다.미치도록..보고싶어]
은주는 전화를 받았다.
"은주씨? 나에요...어? 술 마신거에요? 거기 어디에요?"
[우진이 온다...우진이....내가 가장 힘들때 생각난 사람..정우진]
우진은 정말 번개같이 달려왔다.미친듯이..
그도 은주가 너무 보고싶었다.
홀에 들어서자 한눈에 은주가 들어왔다.
너무도 외롭고 쓸쓸해 보이는 은주의 모습이 우진의 마음을
더 쓰리게 만들었다.
[착한 사람...왜이렇게 슬퍼 보이는거에요..]
우진은 은주를 데리고 나왔다.
긴장이 풀리고 취한 은주는 우진의 부축을 받으며 차에 탔다.
우진은 앞좌석에 앉아 은주를 보며 말했다.
"은주씨...울고 싶으면 마음껏 울어요..나 신경쓰지 말구요.."
주머니속의 손수건을 건냈다.
은주는 고개를 숙인채 받아들었다.
차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어느새 비가 내리고 있었다. 봄비......
그랬다, 은주가 마음 고생한지 벌써 1년....계절은 그렇게 바뀌고 있었다.
은주가 처음 동준의 외도를 알게된 무렵으로..
알기전..최고로 행복했던 시절이였다...
우진은 차를 남산쪽으로 몰았다.
밤시간..평일이라 올라가는 차는 거의 없었다.
창밖엔 비가 제법 내리고 있었고, 차안엔 우진이 틀어놓은
노래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은주를 배려하는 마음으로 우진은 노래를 틀었다.
우는 소리 창피하게 느끼지 않도록...
은주는 울기 시작했다. 그동안 겪은 마음고생에 이런저런 생각들이
하염없는 눈물을 쏟게 만들었다.
천천히 남산으로 올라갈 동안 은주는 원없이 울고 또 울었다.
이젠 홀로 당당하게 서야한다는 부담감...
그래, 은주는 어느덧 동준과 정리할 마음을 다잡고 있었다.
추하지 않게...
남산 정상이다.이젠 내리막길 뿐이다.
우진은 차를 세우고 은주를 바라보았다.
어느덧 은주는 눈물을 그치고 멍하니 앉아있다.
"바람 좀 쐴래요?"
"그래요.."
우진은 은주가 내리는것을 도와줬다.
"어때요? 속은 괜찮아요?"
"네.. 고마와요..훗..오늘 나 많이 추하죠?"
"아니요..오히려 솔직해서 좋은데요? 울고싶을땐 울어야죠..
저도 슬픈영화 보면서 우는걸요? 훗..."
"후훗..미안하고..고마워요..오늘 많이 힘들었었는데,
이렇게 와줘서...고맙네요...."
우진은 은주의 눈을 보았다.
은주의 뺨을 타고 입술을 보는순간....키스하고 싶었다.
천천히 은주에게 다가갔지만, 은주는 그만 고개를 숙이고 말았다.
"......미안해요....나, 나도 우진씨 좋아해요...."
"정말인가요?....그게?...."
"그래요..어느새 우진씬 내 마음속에 자리잡았어요.
아직 사랑은 아니지만, 많이 좋아해요..
그렇지만.......아직은.....아직은....우리 이러지 말아요..
난 떳떳하게 우진씨랑 만나고 싶어요.
난 아직 남편이 있는 사람이에요..남편이 외도했다고 해서
나도 똑같이 되긴 싫어요..미안해요..이해하죠?"
은주의 말은 조심스럽게 우진의 마음을 움직였다.
"그래요...은주씨 마음 잘 알겠어요..이해해요..
난 지금 은주씨를 많이 사랑해요.
그것만 알고 있어요...당신마음 변치말구요..그럼 기다릴께요.
은주씨가 편안해 질때까지..
그대신 안아주는건 되는거죠?
나 오늘 은주씨 꼬옥 안아주고 싶은데..."
우진은 은주를 꼭 안았다.
상쾌한 향수냄새가 났다.
부드러운 셔츠가 볼에 와 닿았다.
단단한 몸이 느껴졌다.
은주는 잠이들것 처럼 포근함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