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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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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전쟁속에서


BY 유진 2003-06-21

 


부자가 망하면 3년은 먹고 산다고 옛말에도 있건만 그건 그냥 하는 말 인가보다

3년은 고사하고 하루 먹을 양식 때문에도 걱정을 하고 삶을 고민해야했다.

그 많던 살림살이하나 남지 않고 다 팔아먹어야했다.

그 후 한 달 쯤 인가 됐을 때 아빠가 드디어 돌아오셨다.

초췌한 모습으로 나타나 신 것이다. 한동안 식구들은 누구에게도 서로 말을 걸지 않았다

다시 시작하자고 하시면서 엄마와 뭔가 이야기를 하시는 것 같았다.

그러더니 아빠는 다시 동두천에 가신다고 하시면서 집을 떠나셨다.

엄마에게는 집을 팔아서 정리하고 올라오라고 말씀을 남기시고...

생전에 굶주려보지 않고 고생을 모르고 살던 식구들 정말 잘 견뎌낼 수 있을까 걱정이 되었다

덕분에 난 위장에 이상이 생겨서 한 달 동안 병원에 다니면서 치료를 해야 했다

아프니 더 못먹고 빼빼 말라가기 시작했다.


우리 집은 며칠 후에 팔렸다 엄마는 모든 것을 정리하시고 우리를 데리고 다시 고향으로 내려갔다

다시 사글세부터 시작을 했는데 초가집이 있었는데 아마 제일 싼 방 같았다.

밤에는 쥐가 뛰어다니고 놀래서 동생들은 난리법석이었다.

아빠께서는 양키시장에서 미군들 옷을 만들어주시고 돈을 받고 예전에 일을 다시 시작하셨다

엄마도 가서 도와주시고 다행히 일은 좀 있는 편이었지만 맨 날 끼니걱정을 했다

끼니때마다 식사준비는 맏이인 내가 준비해서 아빠와 엄마 식사 따로 쟁반에 반찬과 담아놓으면

엄마가 오셔서 가져다가 드시고 집에 있는 동생들은 있는 밥으로 나눠서 먹였다.

쌀은 동사무소에서 배급쌀을 타다가 밥을 해서 먹었는데...

항상 난 배가 고팠다. 왜냐하면 식구들 밥 주고나면 내 몫은 항상 없었다

배가 고프면 물을 정신없이 마시고...

엄마가 밥 먹었냐구 물으면 먹었다고 거짓말을 했다 부모님께서 걱정하실 것같아서였다

그리고는 혼자서 많이 울었다. 배고픔의 서러움이 이런 것인가보다...

내가 초등학교 다닐 땐 급식으로 빵이 나오곤 했는데

밥을 굶는 친구들은 급식으로 주는 빵을 먹는 것을 많이 봤다

난 종종 어떤친구에게 내 밥을 그냥 주곤했다

잠시 어릴 때 기억을 더듬어본다.

그런데 내가 지금 굶고 있으니 말이다 내게 이런 일이 있을 줄을 상상도 못했던 일이다.

하늘의 도우심인가 아빠의 일은  날로 바빠지시고 엄마도 억척스럽게 일을 도와가면서 살면서

돈을 모아서 1년만에 조그만 방으로 전세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너무 기쁘고 감사한 일이었다.

내 나이 18세 되던 해,

나도 그냥 있을 수 없었다 나이만 먹는 것같아서 기술이라도 배운다고 의상실에 취직을 했다

가서 심부름부터 시작했다. 솔직히 18살이면 그 당시는 좀 늦게 일을 배운 것이다.

보통들 초등학교 나오면 바로 이런 곳에 와서 기술을 배우고 돈을 벌려고 안간힘들을 쓴다.

얼른 심부름하는 것을 졸업하고 싶었다.

그 때, 당시 의상실에서 심부름을 하면 한 달 3,000원이었다 지금 이 돈이면 아이들 과자값도 안되는 돈이었지만 내가 애쓰고 번 돈이라서 아주 소중하게 생각이 되었다

내가 첫 월급을 타서 기분좋은 마음으로 엄마에게 드렸다

엄마는 “ 네앞으로 적금 들어놓을께 부지런히 벌어” 하셨다

나도 당연히 그래야한다고 생각했고...

그냥 별 탈없이 세월과 함께 고생스러웠던 기억은 하나하나 사라져갔다.

기술이 늘면서 난 제법 월급을 많이 타게 되었다. 미싱 일까지 하니 월급은 정말

받았고 난 더욱더 분발하며 열심히 일을 했다.

2년 후에는 좀 더 늘려서 더 큰 집으로 전세로 갔다

그 땐 엄마가 남들 이자를 주면서 사채놀이를 할 만큼 여유가 있었던 같았다.

생활의 여유가 생기면서 동생들도 마음놓고 학교에 다니고 괜찮아보였다.

그런데...

엄마의 욕심은 끝이 없었다. 어느 만큼가야 끝이 나려나...

동생들 등록금을 주지 않은 것이다. 그리고 등록금을 달라하면

학교를 그만두라고까지 하셨다.

정말 괴롭고 힘들었다. 꼭 이래야하나...

나 하나도 부족해서 동생들까지 학교를 안보내려는 마음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오직 돈이면 다 되는 것으로 착각하고 사시는 것같았다.

난 아침 8시에 출근하면 거의 12시가 다 되어서야나 들어왔다

저녁밥도 그 때야 먹곤했다

월급을 타오는 날이면 엄마의 말소리부터 달라지고

반찬도 달라졌다. 휴~

내가 다니던 의상실이 좀 어려워서 월급을 조그만 늦게 받아와도 날 사람취급을 하시지 않았다.

밥을 먹으려고 반찬을 찾으면 눈에 보이는 것은 간장과 고추장 뿐이었다

‘그럼 아빠두 간장만 드렸나?’

목에 걸려서 밥을 먹을 수가 없었다. 너무 서러워서 미칠 것같았다.

한 번은 죽을 뻔 한 적이 있었다.

밤늦게 퇴근을 해서 방으로 들어가려고 방문을 여니 이상한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그래도 의심치 않고 피곤한 몸으로 그냥 들어가서 누워버렸다

내 옆에서는 동생 둘이서 자고 있었다 한 10분정도 지났을까...

셋째가 신음소리를 내고 있어서 왜 그러냐고 흔들어 깨웠는데...

이번엔 둘째까지... 나는 불을 켜려고 벌떡 일어나는 순간 갑자기 ‘핑’ 도는 느낌이었다.

나는 간신히 기어나가서 안방을 문을 마구 두들겼다

‘엄마’...

‘엄마’...

놀라시면서 뛰어나오셨다 그리곤 난 정신을 잃었다.

연탄가스를 마신 것이었다.

아찔한 일이었다, 난 이 집에서 살면서 두 번 연탄가스를 마셔 죽을 고비를 넘겼었다.

그래도 살아있는 것을 보면 어지간히 질긴 목숨같다.


의상실에 아는 언니를 통해 서울에 일자리를 알아보았다.

아마 자유롭고 해방되고 싶어서  일거다.

난 서울에 가서 의상실에 다녔다. 월급도 훨씬 많았고 배울 점도 많았던 것같았다.

자고 먹는 것도 다 해결되니 걱정할 것이 없었다.

한 달에 한 번 월급을 꼭 갖다드렸다 내 적금을 붓기 위해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