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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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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춘기 2


BY 유진 2003-06-20

 1969년 그 해  봄에 나의 남동생이 태어났다.

딸 5자매에다 막내로 아들이니 집에서는 경사중에 경사요 난리가 났다.

아마 그날 동생이 태어나던 날이 토요일로 기억한다

일찍 학교에서 파하고 오니 대문에는 고추와 숯덩이 새끼줄에 매달려 자랑이나하듯

걸려있었다.

 남동생이 태어난 날 부터 우리 딸들은 찬밥신세이고 사람취급도 받지 못했다

밖으로 나가지도 못하게 했다

부정탄다고... 학교만 간신히 갔다오면 일절 외출은 하지 못했다

남동생 백일이었던가? 우리 집에선 정말 거대한 행사나하듯 백일잔치를 일주일동안이나

뒷집 마당까지 빌려서 잔치를 했다.

 그 이듬해, 가을 쯤...집안에 걱정거리가 생겼다.

아빠가 다니시던 미군부대가 철수하면서 미국군인들은 모두 미국으로 가버리고

부대는 폐쇄되어버렸다. 당장 아빠는 실직하는 사태가 일어났다.

그래도 그리 걱정하시는 것같진 않았다

그만큼 먹고 살만큼 아빠가 많이 벌으셨던 것같았다.

그리고 아빠는 동두천에 있는 미군부대로 곧 취직이 되셨던 것같았다

 우리 집은 서울로 이사가기로 결정을 하고 서울 중량교 근처에다

단독주택을 사서 이사를 하고...

학교를 다니던 나는 아빠와 함께 살던 동두천에서 자취를 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것도 잠시 아빠는 그냥 다니시던 미군부대를 그만 두시고  서울로 가실 준비를 하시는 것같았다. 나는 중2 가을 쯤이었다.

전학을 가야하는데 우리 집에선 거의 신경을 쓰시지 않았다

학교에다가는 전학을 가야한다고 최소한 말이라도 해야할 텐데...

더욱 부끄러운 것은 내가 어느학교로 전학을 가야하는 것 조차 몰랐다는거다.

선생님을 만나뵙고  "선생님 우리 집 서울로 이사가요"

난 집이 이사갔다는 소리를 하지 않았었다 누구한테고...

나는 남아있었으니 말이다

 

" 학교는 전학가겠네?"

" ..."

" 어느학교로 가지?"

난 갑자기 울기시작했습니다.

난감한 선생님께선 학교는다녀야하지 않겠냐며

부모님을 모시고 오라고 하셨다.

" 전학을 가는데 어째서 부모님께서 아무말씀 없으셨니?"

난 흐느끼면 울기만 했다.

전후사정을 말씀드리니 선생님께서는

" 내일 아버지 학교에 오시라고 해라? 알았지?"

 

 집에 돌아와서 아빠한테 내 전학문제로 선생님께서 아빠 오시라고 한다고

말씀을 드리니 아빠는 대뜸 바빠서 못간다고 말씀하셨다.

그럼 ''날 더러 어쩌라는 것인가...''

그 때 난 갑자기 무언가 내 머리속에 번뜩이는 것을 느꼈다

''맞다! 엄마아빠는 내가 학교다니는 것을 원치 않는것이구나''

그제서야 뭔가를 알아차릴 것같았다.

이튿날, 난 학교를 가서 선생님께 말씀드렸다,

자퇴를 하겠다고...떨리는 목소리로 말씀을 드리고 밖으로 뛰어나와

한 없이 울었다.

'' 그래 이거였어''

'' 결국 이런거였어''

자취방으로 돌아와서 짐정리를 하고 있을 때 아빠가 오셨다

내일 아침 이삿짐차가 올거라고...

난 밤새 잠이 오지 않았다.

내 인생이 어떻게 되려구 이렇게 꼬인단말인가??

 

 다음날,  10년넘게 살던 고향을 등지고 낯선 서울로 향했다.

식구들을 오랫만에 만나니 너무 반가웠다 동생들도 너무 보고 싶었다.

 

얼마간에 시간이 흘렀다.

우리는 또 지금의 강동구 거여동으로 이사를 하게 되었다

그 때 우리 막내 간신히 설 정도였으니깐.

 

 아빠께서 친척뻘 되시는 분과 동업으로 그 당시 두부공장을 하셨다.

그 때부터 우리식구들의 고통이 시작되었다.

어느정도 시간이 갔을까... 두부를 사먹은 소비자가 고발을 했다고 집으로

연락이 왔다 이유는 두부가 변질되어서 그렀다고 했다.

하지만 그것은 변질 된 것이 아니고 두부모판을 그 당시에는 플라스틱이

아니고 나무로 만들어서 썼다 . 우리공장은 소나무로 된 두부판이었다고 했다

소나무는 해롭진 않았지만 아마 두부에 나무에서 나온 송진이 물들었었나보다.

벌겋게 보이니 당연히 변질 된 것이라고 할 수밖에 없을 것같다.

거기다 설상가상으로 친척분이 맨날 돈이 어디 들어간다고 거짓말을 하고

돈을 뜯어가더니 결국 그것도 사기를 치고 도망을 가서

급기야는 공장문은 닫아야하고  아빠는 어디론가 종적을 감추고 말았다.

남은 식구들은 어쩌라고...

엄마는 음식솜씨가 좋으셨다

어느 날. 갑자기 당면을 사다가 잡채를 만드시더니 천호동시장으로 팔러 가신다고 하셨다

젖먹이 남동생은 내 차지가 되고...

오후에 동생을 업고 엄마한테 젖을 먹이러 버스를 타고  다녔다.

기다렸다 엄마와 함께 집으로 돌아오면 동생들이 집에서 옹기종기 모여앉아

기다리고 있었다.

 

 이렇게 힘겨운싸움을 하면서 나의 사춘기를 보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