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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머님이 하신 김치를 친정에 나눠주는 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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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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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사랑 17장


BY pobi9766 2003-06-19

핸드폰을 박살낸 것으로는 분을 삭힐 수 없어 생각나는 대로 욕찌꺼기를 뱉어내며 발가락이 아프도록 발길질을 해보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숨을 쉬기 조차 곤란할 정도로 치밀어 오르는 부아를 어떻게든 삭히지 않으면 그자리에서 까무라칠 것 같았다.

무작정 사무실을 뛰쳐나온 기혁은 술을 마실 수 있는 곳으로 들어서 테이블에 안주가 놓여지기도 전에 소주를 병 채 들이켰다.

소주를 거푸 두병째 들이켜 대던 기혁은 그제서야 분이 풀리기 시작하면서 한편으로는 안도의 미소가 지어졌다.

 나경에게 향했던 느낌이 다른 여자에게서도 느껴진다는 것 때문에, 자신을 얼마나 경멸하고 혐오스러워했던가..
자신으로 인해 인생의 행로가 360도 획 바뀌어버린 여자에 대한 죄책감으로 자신이란 인간이 얼마나 보잘 것 없이 느껴졌었던가...

그녀의 행동이 어처구니없고, 자신을 농락했다는 처음 생각이 그렇게 다행스러움으로 바뀌어질 무렵, 기혁은 몸을 가누지 못할 만큼 취해버리고 말았다.

그렇게 김 나경이란 여자를 처음 만난 순간부터 자신을 원위치에서 이탈케 하고 있었다.

그래, 그랬어,...그 여자는 내 오랜 습관조차도 무력하게 만들곤 했었어.
그것은 그녀또한 마찬가지이리라....

 “영훈아.. 이 형님이 무지하게 취하셨다....얼릉 와서 나 좀 데려가 주라.“

 “얼마나 퍼 마셨길래 꼬부랑 소리냐?"

 “그래. 많이 마셨지.....일어설 수가 없을 정도로 마셨다.. 좀 와주라.“

 술에 쩔어 떡사발이 되버린 친구에게 한달음에 달려와  한 마디 불평 없이 집에 데려다 뉘여 주고, 옷 벗겨주고, 닦아주고, 물 달라는 대로 물을 주었다.

 “ 그 시발년이 날 가지고 놀았어.“

 “엉? 누구 말하는 거야?“

 “그런데, 말야..다행이라는 생각이 드는 거 있지.”

 “무슨 말이야? 그렇게 뱅뱅 돌려서 말하면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잖아."

 “영훈아, 나 바람둥이 아니다.“

 “그래, 너 바람둥이 아냐.“

 "나, 장 기혁은 바람둥이가 아닙니다요...하하하하."

평소에 비해 곱절이나 되는 술을 마신 기혁은 머리가 뱅뱅 돌아 천장이 금방이라도 무너져 코를 짓누를 것 같은 착각이 들었지만, 쉽사리 잠들 수가 없었다.

그녀....그녀가 보고 싶다.
이렇게 술을 마시니 그녀가 더욱 더 미치도록 보고 싶다.

기혁은 비틀거리면서 일어났다.
보고픔에 목이 메이고, 가슴이 에여왔다.
눈물이 날 것 같은 보고픔이었다.

"왜? 물 줘?"

"아니..."

벌러덩!

기혁은 침대아래로 내려오자 마자 바닥으로 벌러덩 자빠지고 말았다.
도무지 걸음을 걸을 수 없었다.

"화장실 갈거야?"

"아니."

"얌마. 이도 저도 아니면 뭐야? 뭐가 필요한거야?"

"나경이....나경이가 필요해......"

"지랄하고 있네. 야, 이 새끼야...세상에 널린게 여잔데 왜 이렇게 너저분하게 굴어?"

나경이라는 여자...한 번 본 적 없었지만, 영훈으로서는 그 여자가 도통 마음에 들지 않았다.
처음 나경의 전화번호를 알아봐달라고 했을 때 부터 느낌이 별로였다.
사람을 느낌으로 만나고 있는 기혁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결혼한 거나 진배없이 살을 맞대고 살았었던 인영과의 헤어짐에도 무덤덤하던 기혁이 아니었던가.
그랬던 놈이 지금은 여자 하나에 지랄발광을 하고 있는 꼴이라니.

"나경이한테 갈거야."

"갈때 가더라도 정신 차리고 가, 너 지금 이 몰골 보면 있던 정도 다 떨어지겠다."

"차 키가 어디 있지?"

"이 새끼가 정말...야, 너 정말 만정떨어지게 굴래, 너?"

혼자 힘으로는 제대로 두 발로 서 있지도 못하면서 차 키를 찾는 기혁을 영훈은 침대로 확 밀어버렸다.

"정신차려. 가긴 어딜 가."

쿵하는 둔탁한 소리를 내면서 기혁의 머리가 침대 모서리 부분에 찍히고 말았다.

"괜찮아?"

모서리 부분에 찍힌 머리를 감싸고 앉은 기혁은 만취한 상태라 아픔을 느낄 수는 없었다.

지금 그의 머리속에는 한 장면이 바로 어제 일처럼 떠오르고 있었다.
일 년전...처음 만난 그녀를 탐하려 했던 그 순간을.....
그녀가 아무리 떠밀어내고...정혼자가 있었다 해도...그때 그녀를 가졌어야 했다.
그녀와 하나되었어야 했다...
그랬더라면, 이렇게 가슴 에이지 않아도 될 것을...

"우는 거야? 너? 다친거야? 아파? 얌마! 말을 좀 해!!"

기혁은 두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소리죽여 울고 말았다.

"이 새끼가 오만가지 청승을 다 떨고 있네."


 기혁은 타는 갈증으로 미간을 찌푸리면서 눈을 떴다.
정오가 넘어선 늦은 시간이었다.
 기혁은 영훈이 냉장고 속에 미리 준비해 둔 꿀물을 벌컥벌컥 들이키고, 다시 침대 속으로 기어들어와 벌러덩 누워버렸다.

 오늘은 이렇게 땡쳐 버리는 것이다.


 정민은 며칠 내리 숯팩을 하고 있는 나경을 심히 못마땅하다듯이 꼬려보았다.

정민은 그녀가 표정관리를 해야 할 만큼의 심경의 변화가 생길 때면...어김없이 숯팩을 하고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요즘 무슨 걱정 있어?“

 “걱정은 무슨...“

 “니 얼굴 지성 아냐, 잘못 알고 있는 거 아냐?“

 “말 시키지 마....주름 생긴단 말야.“

  따르릉...

 “엄마!“

 나경은 울려대는 핸드폰 울림소리에 놀란 나머지 엄마를 외쳐 불렀다.

 “야아! 없는 아도 떨어지겠다, 왜 그래, 너 정말.“

 “미안해....여보세요?“

 여보세요라는 말에 이어 상대편의 음성을 들은 나경은 그만 핸드폰의 전원을 죽이고 싶어졌다.

 “나와라."

 "약속 있어요."

 “없는 약속까지 만들어 내면서 까지 날 만나기 겁나는 모양이지? 그러게 겁나는 짓을 왜 하나?"

 "곤란해요....약속이 있어서...."

 "그 약속이란 게 혹시 채팅으로 다른 놈을 후릴 약속은 아니구?"

 “무슨 말을 그렇게 해요? 후리긴 누가 누굴 후린단 말이에요? 그리고, 처음 기혁씰 만난 것도 채팅으로 만난 것도 아닌데..."

 “아니면 말지, 왜 그렇게 흥분해? 역시 수상해."

 "아무튼 약속이 있어 오늘은 안돼요."

 "같은 말을 두번 하게 하는 건 예전이나 지금이나 변한게 없군. 쳐들어가기 전에 나오는게 좋을텐데?"

 한 발도 물러설 기미를 보이지 않고 더욱 더 그녀를 압박해오는 그는 이미 예전의 그가 아니었다.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
이제 그녀는 예약되어 있지 않은 몸이었다.
 
어느 영화의 한 장면처럼, 기혁은 창 아래에서 승용차에 몸을 약간 기대고 서 담배를 피워 물고 있었다.

 "다시 한 번 말하는데 더는 나를 기다리게 하지마."

더 이상의 말은 필요 없다는 그의 경고를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던 인 나경은 그를 만나기 위한 준비를 해야했다.

 그의 모습이 시야로 들어오자, 빠직 소리를 내면서 부러지는 한이 있어도 휘어지는 것만큼은 하고 싶지 않다고 했었던 그의 말이 갑자기 떠오르면서 나경은 가던 발걸음을 멈추어 섰다.

표정이라고는 없는 그야말로 무표정한 얼굴로 자신을 노려보는 남자의 기세에 밀려 나경은 오금이 저려오는 것 같았다.

 다짜고짜 손을 치켜들어 뺨이라도 후려칠 것 같은 무서운 얼굴을 하고 한 발 다가서는 그를 피해 나경은 두어걸음 뒤로 물러섰다.
 
 그 어떤 말로도 그를 기만했다는 중죄에서는 벗어날 수 없을 거라는 것을 일깨워주기라도 하는 듯한 표정이었다.

 “나를 기만한 것도 모잘라 한 시간 넘게 나를 기다리게 하다니....안 본 사이 간 확장 수술이라도 받은 거야?“

 “그, 그러길래...내가 바쁘다고 했잖아요.“

 “지금이 어느 때라고 겁도 없이 말대답이야?"

 한 마디 말도 못하게 할거면 뭐라고 나오라고 해?

 “한 마디 말도 못하게 한다고 속으로 쫑알거리고 있겠지...“

 뜨끔.

 “하하하하하....참 단순도 하지. 당신이란 사람은...대충 때려본 건데...그런 표정을 짓다니.."

그는 기만 당한 것을 무안주는 것으로 갚아주기로 작정한 사람처럼 비양양거리면서 그녀를 놀려대었다.

 “배가 고프군. 뭐든지 좀 먹자구. 스테이크로 분위기를 좀 내볼까?“

 “뭐라도 먹게 되면 체할 것 같아요.“

 “그건 당신 생각이고, 난 몹시 배가 고파...하긴 당신이란 여자 늘 제멋대로지...“

 “내가 뭐랬다고 그런 말을..."

 “몰라서 묻는 거야? 당신이란 여자...제멋대로인데다 자기 판단, 자기 느낌만 중요한 사람이잖아. 그 많은 사람과의 약속도 단숨에 박살내 버린 사람이 당신이지 않아?"

우라질! 이런 왜 이렇게 마음에도 없는 말을 지껄이고 있는거야, 내가 지금.

 띵!

 나경은 기혁의 말에 뒤통수를 세게 얻어맞은 것처럼, 순간 머리가 띵해지면서 할 말을 잃고 말았다.

 누구 때문에 그런 결정을 해야 했는데...지금에와 무슨 말을 지껄이고 있냐며..거세게 따져 묻고 싶었지만, 말문이 터지질 않았다.

심한 두통을 앓는 사람처럼 머리가 지끈 아파오면서 앞서 걸어가는 기혁을 뒤따르지 못하고 멈추어서버린 나경은 자신이 울고 있다는 것조차도 알지 못했다.
쉴새없이 흘러내리는 눈물이 입술에 닿아 짠기를 느꼈을때...그녀 자신이 울고 있음을 알았다.

나경은 손으로 입술을 막고 그와는 반대방향으로 몸을 돌렸다.

자신의 선택으로 인해 상처받아 아파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은 자신도 이미 알고 있는 바이다.

늘 고해성사를 하는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는 자신의 입장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을 사람의 가시돋힌 말은 허물어진 가슴에 잔인한 생채기를 내었다.

애초부터 기혁과의 사이에서 시간따위는 문제가 되지 않았었다.
만난지 14일 되는 남자는 8년을 사귄 남자를 아주 간단히 제껴놓았고, 신화처럼 그녀 가슴에 못을 박아놓았었다.
만난지 14일 밖에 되지 않은 남자는 맑은 하늘에서비를 내리게 하는 재주를 가진 듯...늘 자신을 울게 하곤 했었다.
만난지 14일 밖에 안되었던 남자를 사랑할 수만 있다면....하루밖에 살 수 없는 하루살이가 된다해도 상관없었다.

그런 그를 사랑하기 위해서는 굴레를 벗어나야 했고, 자유로워져야 했다....
밤도 아닌데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눈앞이 깜깜해지는 사람을 사랑하기 위해서....
모질고 독한 선택이었지만....그를 사랑하기 위해서는 그래야 했었다.

그런데...그런데....그는 그녀의 선택을 나무라며, 탓하고 있는 것이다.
그녀의 마음은 이미 달랠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선 슬픔에 젖어 있었다.
가슴이 송두리째 뜯겨 나가는 듯한 생소한 슬픔이었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그의 말은 사실이었다.
그것이 더욱 그녀를 서럽게 만들었다.

 "이것봐...."

반대방향으로 돌아선 그녀의 어깨를 조금은 아프게 거머잡은 기혁은 그녀가 울고 있다는   것을 그제서야 알았다.
 
할 말을 잃고 충격받은 얼굴로 울고 있는 그녀에게 마음에도 없는 말이나 지껄인 자신의 혀를 깨물고 싶었다.

 "오늘은....아무래도...안되겠어요..."

 "내가 안된다고 할때까지는 안돼."

 "내가 안되겠어요! 내가 안되겠다구요."

그녀를 붙잡아야 하는데...그게 아니라고....진심이 아니었다고 말해야 하는데....기혁은 아무것도 하지 못한채...점 하나의 형체로 남아 시야에서 완전히 멀어져 가는 그녀를 붙잡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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