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연하게 여름을 느낄 수 있는 토요일 오후, 친구 결혼식이 있는 탓에 아침 일찍 서둘러 사무실에 나왔다. 어제 못한 일도 마무리 져야 했고, 결혼식을 참석한 후 대전집에도 다녀와야 할것 같아서 마음이 급했다.
숙소에서 사무실 가는 도로에 한창중인 하수도공사로 오전부터 열심인 인부들만이 가는길 내내 바삐 움직이고 있었지, 쉬는 토요일인탓에 현장사무실에는 당직근무자도 출근전인지 썰렁했다.
뜨겁지만 내내 습했던 날씨탓에 간간히 들어오는 바람은 개운하게 느껴졌고, 바다내음까지 실고 오는 짠바람은 여느때완 다르게 끈끈하지 않았다.
어느새 10시를 넘어서고 있었고, 늦어도 11시전에는 출발해야 식을 참석할 수 있다는 데에 생각이 미치자, 마음이 조급해졌다.
객지에서 혼자지내는 남자들이 모두 그렇겠지만, 아침을 거른탓에 담배는 속을 더 쓰리게 하는 듯했고, 사무실에 설치되어 있는 냉온수기는 관리부실로 인한 것인지 냉수가 실온수로 나오기 때문에 인스턴트 커피만 한잔 마신채, 가는길에 물을 좀 사야겠다 생각하고 편의점앞에 차를 댔다.
장거리 운전을 해야하는 관계로 1리터 생수를 샀고, 뚜껑을 여는 순간 길건너를 지나고 있는 그녀를 보았다.
인연인지 운명인지 그녀는 잊어버릴만 하면 한번씩 내눈앞에 보였고, 저녁산책을 나온사람들 속에서 보았던 그녀 모습이 깊이 각인되어 있었던 탓에 우울한 그느낌을 떨칠 수가 없었는데 이렇듯 밝은 한낮에 보는 그녀모습은 싱그럽기까지 했다.
목욕이라도 다녀온 듯, 젖은 머리칼이 목뒤로 늘어져 있었고, 비닐가방을 어깨에 메고 있었다. 한참을 넋을 놓고 바라보는 나를 느끼고, 서둘러 차에 탔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런 내행동은 내게도 납득가지 않는 부분이다.
호기심일까? 연민일까? 그녀가 내게준 몇번 되지 않은 강한느낌은 쉽게 떨쳐지지가 않았다.
결혼식끝에 의례있는 피로연에 의무적으로 참석해 주고, 몇 되지 않은 신부측 친구들과 어울려주다 보니 저녁참이 되버린듯 했다. 피로연 내내 어두운 곳에서만 있었으니 날이 어두워졌는지 또 날씨가 어떻게 변했는지 알수도 없었다. 오늘안에는 가야한다는 생각에 자리를 털고 일어나는데, 친구놈이 내게 와 물었다.
" 지훈이 너, 이분좀 모시고 가면 안되겠냐? 방향이 같은데...혼자 내려가면 심심하기도 할테고 응?"
결혼한 친구녀석 신부가 동갑이었던 탓인지 대부분의 신부친구들이 기혼이었고, 피로연에 참석한 신부친구들은 썩 맘에 드는 사람이 없어서 일찍 일어난다고 생각했던지 일부러 자리를 마련했다는 듯, 눈을 찡긋 감아 보였다.
인연은 만들어가는 것이라는 생각이 순간 들었던지 대전집 가는것은 포기하고, 서둘러 피로연장을 나섰다. 차에 두었던 핸드폰이 7시 몇분이라고 쓰여있었고, 9시 전에는 도착할 수 있겠다며 어색한 대화를 시작했다.
차창밖으로 놀이 번지는 것을 말없이 바라보기를 몇분, 그녀가 입을 열었다.
"고속도로 들어서기전에 마실거라도...."
"술..많이 하셨어요? 갈증나세요?"
"아뇨..." 하면서 엷게 웃어보였다. 가지런한 이가 드러나는 입매가 매력적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얼핏 본 그녀의 옆모습은 싫지 않았다.
"일하세요?" 내가 물었다.
"네...."
구체적으로 물어보기도 그렇고해서 대화는 거기에서 접히고 말았다.
물어보나마나 나이는 알고있고, 혹시나 기혼이면 어쩌나 하는생각에 딱히 물어볼게 없었다.
음악을 듣겠냐는 내질문에 좋다고 해서 조수석 앞에 있었던 시디집을 꺼냈고, 취향을 묻는 질문에 다좋다고 해서, 바깥정경과 어울릴 듯한 아베마리아를 넣었다.
음악은 분위기있게 흘렀고, 고속도로를 달린지도 30분이 넘었으니, 앞으로 10분 남짓 가면 도착할 것이다. 그녀는 내내 말이 없었고, 따분하긴 했지만 수다스러운 것 보다는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며 그녀역시 내게 별 호감을 갖고 있지 않은 것 같아 그것 역시 다행이라고 여겼다. 그녀는 고속도로가 끝나는 그러니까 내가 근무하고 있는 현장사무실 근처에서 내리겠다고 했고, 나는 숙소로 가야했으니 방향이 맞지 않았지만 돌아서 갈수 있겠노라고 대답해주고 편의점 앞에서 세웠다.
"고마워요..." 그녀가 뭔가 할말이 있는 듯 머뭇거렸지만, 아마도 무뚝뚝한 남자의 퉁명스런 태도 앞이다 보니 말하고 싶은 기분이 이내 사라져 버렸을 것이다.
별다른 눈인사도 없이 차를 다시 몰았고, 하루내 곡기를 채우지 못한 탓인지 속은 메스꺼웠으며 정수리 뒷부분에는 둔탁한 통증마저 느껴졌다.
피곤을 달랠겸 얼음채운잔에 반쯤 위스키를 부어놓고 씻고와서 단숨에 들이켰다.
침대에 누워서 천정을 바라보고 있자니 토요일 저녁의 내모양새가 참으로 불쌍하기 그지없구나 하는 생각에 화가 났다.
같이 타고왔던 그녀라도 잡고 놀아주자고 할껄하는 생각하면서 정말 구질스럽군 하면서 코웃음을 쳤다.
얼마를 누워있었을까? 잠이 들었었던걸까?
몸은 나른했지만 정신은 말짱한게 더이상 잠을 청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며칠전에 들여놓은 컴퓨터는 색마저 뽀한게 맘에 들어서 쟤나 데리고 놀아야겠다 생각하고 전원을 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