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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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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염과 우울증


BY 아지매 2003-05-11

3월에 시작된 비염은 5월에 이르렀는데도 여전히 그녀를 옭아맨채 옴싹달싹을 못하게 하고 있었다. 흐르는 콧물을 훔쳐내고 또 훔쳐내고 거기에다 연달아 쏟아지는 재채기는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게 하여 어려운 모임에서 곧잘 그녀를 곤혹스럽게 했다.
결국 그녀는 점차 모임에 참석하는 날이 줄어들더니 급기야는 아예 참석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그녀의 몰골은 더한층 구겨져 갔다. 파마를 한 그녀의 곱슬머리는 제멋대로 눌리고 뻗쳐 까치집이나 다름없고 화장기 없는 얼굴엔 땀구멍만 도두라져 보였다.
이런 모습을 보고 절친한 사이인 P 부인이 한마디 던졌다.
"아이구, 순정이 엄마. 거울 좀 봐. 몰골이 말이 아니구만.어디 아프기라도 한거야?"
"아뇨. 이 놈의 비염이 사람을 이렇듯 추하게 하구만요. 하기사 비염 때문만도 아닌듯 해요. 요즘 괜시리 짜증이 나고 모든 게 귀찮다는 생각이 들어요."
"요즘 40대 이후에 갱년기 우울증이 온다고 뉴스에서 나오던데 혹 그거 아닌지 모르겠네? 모두 편해서 그런거여. 우리처럼 바빠봐. 어디 우울할 새가 어딨어. 순정 엄마 기운내!"
p부인은 그녀의 어깨를 몇번 다독인 후 일해야 한다며 휭하니 대문을 나섰다.
그녀는 P부인의 실룩이는 엉덩이를 멍하니 바라보다 습관처럼 켜 놓은 텔레비전 드라마로 눈을 돌렸다.
한창 며느리를 구박하는 시할머니와 시어머니의 이야기가 전개되고 있었다. 그녀는 넋나간 사람처럼 드라마에 시선을 꽂은채 미동도 하지 않았다.
"필리리-필리리-"
"필리리-필리리_"
"필리리-필리리-"
연거푸 벨이 세 번 울리고서야 잠에서 깬듯 벨소리에 화들짝 놀란 그녀는 수화기를 들었다.
"야. 뭐하느라 이렇게 늦게 전화를 받니? 너 잠 잤지?"
작은 언니였다. 그림이다. 꽂꽂이다. 스포츠 댄싱이다로 늘 눈코 뜰 새 없는 언니가 모처럼 시간이 났나보다. 이렇게 전화를 다하고....
"응, 잠시 드라마에 넋이 나갔나봐. 킁킁!"
"야. 너 감기 걸렸니? 애 너 운동부족이다. 집에만 붙어 있지말고 좀 움직여."
'칫 누구는 움직일 줄 몰라 안 움직이나? 지는 서방 잘 만나 멋대로지만 네로 같은 남편 만난 나로서는 엄두도 못낼일이지.'
그녀는 갑자기 속이 불끈 뒤집혔지만 억누르고서 코맹맹이 소리로 답했다.
"아니. 체질이 변할 때 찾아온 비염이래. 한 4주 한방으로 치료를 했는데도 통 차도가 없네. 킁-."
"그래? 비염 염려마.기철이도 얼마 전까지 비염이 심하였는데 식염수 요법으로 말끔해졌다. 너도 그 방법대로 한번 해봐."
그녀의 작은 언니는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식염수 요법을 미주알 고주알 설명했다.
한방치료로도 안된 비염이 그깟 식염수로 치료된다고?
그녀는 전혀 믿을 수 없었지만 끈질긴 비염에서 벗어나고픈 마음에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식염수 요법을 실행하기로 마음 먹고 대충 손가락으로 까치집 같은 머리를 흩어내린후 가까운 약국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