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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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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2회]


BY 프리 2003-05-17

37편

"자자.. 뭣들 하는거에요 피같은 술을 앞에두고...잡담은금지, 그리고 거기 속닥거리는 분덜 지방방송도 끄세요."

"쯧쯧. 술고래라는거 티낼일 있어요? 먼저 오늘 자리를 마련하신 팀장님의 말씀을 듣는게 순서아닌가요, 나보고 맨날 논다고 뭐라면서 정작 이럴때보면 건우씨가 더 그런단거 알랑가 몰겠네요"

건우와 경희의 이야기들 들으며 목련은 슬며시 웃음이 나왔다. 하지만 행여나 방해가 될까봐 웃음을 멈추려 헛기침을 자꾸 했다. 다행히 웃음소리도 나오지 않았고, 표가나지 않았다. 두사람으로 인해 모든 시선이 상우에게 쏠리고 있었다.

"여러분. 반갑습니다. 이 자리는 우리 부서의 모든 사원님들의 친목과 단합을 위한 자리예요. 그러니, 부디 부담가지지 마시고 편안하게 드시길 바랍니다. 자, 그런의미에서 우리 모두 건배할까요? 우리 모두의 발전을 위해!"

"위하여!"

목련역시 자신의 앞에 놓여진 술잔을 들어서 살짝 입에 가져가 보았다. 톡쏘는듯한 독한기운이 그녀의 몸을 타고 전신에 퍼지고 있었다. 목련은 그 쓰디쓴 맛에 몸서리를 쳤다.

"자자 안주..."

곁에서 그모습을 봤는지 경희가 그녀를 위해서 젓가락으로 열심히 안주를 날라주고 있었다. 목련은 그 배려에 새삼 감사하며 입으로 그것을 받아 넘겼다.

"목련씨. 자기보니 나 옛날생각 난다. 후후 그땐 정말 술도 마실줄도 몰랐어. 완전히 쑥맥이었지. 근데 조금 지나면 그모습이 어디갔냐는 듯 없어지고 말더라구. 나도 이젠 조금 세상의 때까 낀건가봐."

"암튼 고마워요. 여러 가지로 절 챙겨주셔서요. 사실 경희씨 아니면 조금 막막했을거에요. 처음왔고, 아는사람도 없는데다 적응하는데 고생했을텐데...그래도 경희씨가 이렇게 도와주니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어요"

"별말을 다해. 도울수 있으면 서로 돕고 사는거지. 아, 팀장님이다."


경희의 말에 그제서야 목련은 고개를 돌려서 상우를 바라보았다. 지금 상우는 자리를 돌며, 한사람 한사람과 대화를 나누며 술잔을 돌리고 있었다.

"잘부탁해요. 성수씨. 성수씨가 귀재라는 것은 익히 들어서 알고있습니다. 이술 공짜아닌거 아시죠. 일종의 뇌물이랍니다. 하하 그렇다고 넘 부담가지진 마시구요. 지금처럼만 꾸준히 열심히 해주시길 바래요. "

"하하 별말씀을요. 팀장님. 고맙다는 말은 오히려 제가 드려야지요. 팀장님이야말로 이렇게 빨리 이 자리에 오신걸 보면 정말 보통분은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저야말로 부족한 점이 많으니까요. 많이 좀 도와주십시오!"

"그렇지 않습니다 다만...제가 여러분보다 조금 운이 좋았을 뿐입니다. 실력면에선 한참 떨어지니까요 안심하시기 바래요 사실 저는 아직 아무것도 모르니까요"

"하핫...팀장님 정말 쿨한 성격이신거 같네요. 저야말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목련은 그들의 대화를 들으며 상우를 바라보았다. 그는 이전의 상우가 아니었다. 뭔가 변해있었다. 그녀가 아는 상우와는...... 분명 모습은 같았지만, 목소리도 같았지만 달라져 있었다.

목련은 자신감에 차있는 그의 옆얼굴을 보려니 왠지 자꾸 낯선 느낌이 들고 있었다.

"목련씨."

"네? 네."

상우가 그녀옆으로 오더니 옆좌석에 털썩 앉았다. 목련은 상우가 건네주는 술잔을 받아들었다. 수많은 생각과 감정들이 그녀의 마음속을 스치며 지나가고 있었다. 덕분에 마음이 어지럽고 심란해 진다. 그것을 이겨보려는 듯 힘겹게 목련이 술을 목으로 삼켰다.

"우리 잘해봅시다. 카피라이터로서, 목련씨도 정상에 우뚝 서는 날이 오기를 바랍니다. 힘든일 있으면 주저말고 말하세요. 제가 다는 아니겠지만 도울수있는 것은 도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너무나도 정중하면서 부드러운 상우의 목소리에서 아련한 슬픔이 넘어왔다. 왠지 모르게 그것으로 인해서 목련의 마음 한구석이 아퍼오고 있었다. 눈물이 날것만 같아서 그녀는 몇 번이나 눈을 깜빡여야했을 정도였다.

그동안의 세월이 공백을 만든걸거야. 이렇게 낯설고 이렇게 멀어져보이는건...
상우야...니가...니가 낯설어. 넌 누구니. 내가 아는 상우가 맞니? 왠지 아닌거같아 겉모습은 분명 넌데...돌아와주길 바랬던 넌데...상우야 정말 맞는거니...니가..니가 바로 그 상우인거니...

"팀...팀장님두요 잘해나가시길 바래요. 승진하신거...축하드립니다. 잔 받으세요. 이번엔 제가 한잔 따라드릴게요"

목련은 조심스럽게 술이 넘치지 않도록 그의 잔에 술을 따라주었다. 아주 잠깐 그의 손이 미세하게 떨렸지만 이내 아무렇지 않은 듯 그는 받아든 술잔은 한순간에 삼켜버렸다.





"팀장님. 기분도 좋은데 우리 이차도 가는거지요? 가라오케가요. 음주문화에서 가무가 빠지면 흥이없죠."

"맞아요, 맞아요! 이왕쏘시는거 팀장님이 화끈하게 쏘세요. 그래야 어자피 얻어먹는거,잘 먹었다고 할거 아닙니까."

사원들의 말에 상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입가에 다시 미소를 띄우곤 큰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좋습니다 여러분 쏘는김에 제가 오늘 화끈하게 쏘겠습니다. 그런데, 장소는 여러분이 결정하세요. 저는 잘 모르니까요. 오늘 망가지는김에 우리..확실하게 망가져 봅시다!"

그의 말에 여기저기서 환호의 목소리와 박수가 터져나오기 시작하고 있었다. 그리고 일부 직원들은 목청을 높여 자리에 앉아있는사람들에게 재촉하기 시작했다.

"아, 뭣들 하는거에요. 음식들 다 먹었음 일어나야지, 다음장소가 기둘리는데...빨리빨리들 일어나요. 아, 어서요! 빨리가요."

목련은 직원들이 일어서서 분주히 자기 물건을 챙기고 외투를 걸치고 삼삼오오 짝을지어 나가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모두 즐거워보였다. 아마도 회식이 그들에게 활력을 준거같았다. 상우가 일어서서 계산을 하려는지 카운터에서 지갑을 열고 있었다.

"목련씨 자기 뭐하니? 일어서야지. 혹시 이차 빠지려는거 아니지?"

"경희선배님."

"호호 목련씨. 선배님이라니...나 그런 불편한 호칭같은거 싫어 그냥편하게 경희씨라고 불러. 선배님은 무슨... 일어서자. 오늘같은날은 진탕 마시고 망가지게 남는거야"

경희의 재촉에 할수없이 목련은 일어섰다. 사실 이제고만 목련은 빠질 생각이었다. 하루종일 너무나 많은 일이 있었기에 너무 지쳐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경희는 막무가내였다. 할수없이 목련은 그녀와 함께 밖으로 나왔다. 밖으로 나오자, 시원한 바람이 그녀를 맞아주었다. 아, 상쾌해!




상우는 직원들이 신나게 노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들은 정말 엄청나게 마셔대고 무척이나 신나게 놀고 있었다. 곁에서 봐도 흥이 날 정도로. 건우가 넥타이를 풀더니 머리에 질끈 동여맸다. 그리고 그는 앞 단추를 죄 풀르더니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신고산이..."

경희가 일어서더니 템버린을 들고 흔들어 대기 시작했다. 정말 그녀의 솜씨는 장난이 아니었다. 아무래도 많이 와서 놀다간 모양이군. 상우는 그런 그들을 보며 재미있다는 생각을 했다. 사실 건우에게 남자답게 고백해보라곤했지만 자신도 그렇게 목련에게 남자다웠나 하는 물음엔 자신있게 예스를 할 수가 없었다.

"팀장님...아 뭐해요. 빨랑오세요!"

졸지에 상우는 무대 한가운데로 끌려나갔다. 직원들은 그를 바라보며 기대에 찬 눈빛을 보내오고 있었다. 상우역시 넥타이를 풀러버렸다. 그리고 건우를 따라서 머리에 질끈 동여맸다. 눈높이를 같이하라. 그것이 가장 사람들로 하여금 친숙하게하고 동질감을 만들어준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그래, 망가져보는거야 까짓거! 갈데까지 가보자.

일부로 상우는 맥주를 마셔대기 시작했다. 짬뽕을 하면 술이 금새 취한다는 것을 알고있지만 지금은 빨리 술이 취하길 바랬다. 맨정신으론 아마 건우를 쫓아갈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그의 모습에 사람들이 흥겹게 반응해 오고 있었다.

한참 놀다가 목련일 보았다. 그녀는 지금 뭔가 경희와 티격태격하고 있었다.

"목련씨 뭐해. 자기도 한곡 좀 뽑아. 턱하니 앉아서 갖은 분위기 다 잡고있지말고. 최고로 멋진사람은 장소에 따라서 기분을 낼줄 아는 사람이야. 이런데와서 그러고있음...정말 빵점인거 알지?"

"안..안돼요...전...할줄 아는 노래가 없어요. 정말이에요. 자신이 없어요. 게다가 제가 아는 노래는 빠른노래가 아닌걸요 괜히 사람들 기분이나 망치게 될게 뻔해요. 그러니 그냥 이렇게 자리나 지키고 앉아서 구경이나 할래요. 그것이 여러사람을 위하는 길 같아요"

"허. 정말 너무하네. 자기 선배말을 지금 뭘로 아는거야. 그러지 말고 빨랑골라 그리고 조용한 노래면 어때, 아, 노래방와서 신나는 노래만 불러야한다는 법이라도 있어? 그런거 아니쟎아 덕분에 쉬어가고 좋지 뭘그래. 아, 뭐해 빨랑 안부르고! 정말 말 안들을래?"

경희가 거의 강제이다시피 그녀의 손에 노래책을 쥐어주고 있었다. 아휴...목련이 한숨을 쉬는걸 보면서 상우는 그녀가 어떤 노래를 부를까 궁금해졌다. 그러고보니 그녀와 함께 노래를 부르러는 처음 온거 같았다.

"아무때고 네게 전활해...나야하며 말을 꺼내도...누군지 한번에 알아낼 너의 ...단 한사람."

그녀는 그노랠 부르고 있었다. 낯설지 않은 노래였다. 한동안 그노래는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고 거리곳곳에서 울려나왔던 노래니까. 상우는 노래를 부르는 목련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비트가 느려선지 사람들이 자리에 앉아서 술을 마시면서 여사람들과 수다를 떨며 그 노래를 듣고 있었다.

상우는 순간 눈을 의심했다. 그녀의 눈빛에서 뭔가 반짝하는 것이 있었다. 눈물...설마. 그럴 리가 없어. 조명빛 때문이겠지. 그나저나 이노래가 왜 그녀를 슬프게하는것일까.
상우는 그녀가 부르는 노래의 가삿말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아!"

그제서야 노래를 음미해보면서 상우는 왜 그녀가 눈물을 흘렸는지 이해를 하게되었다.
아마도 그녀는 떠나간 용하선배를 떠올리고 있으리라.

상우는 입술을 깨물었다.
아직도 그 상처가 그녀에겐 이토록 깊은것일까. 그래서 그아픔이 그녀를 저렇게 슬프게 만들고 말아버리는 걸까.

"그대가 울리는 그 한여자가 내겐 삶의 전부라고 ..."

간주곡이 흐르는 사이 상우는 한쪽에 놓여있는 마이크를 들었다. 그리고 목련이 옆에서서 노래를 따라부르기 시작했다. 왠지 그녀의 작은 어깨가 한없이 버거워보였다. 차마 그 모습을 그래서 보고있을수 만은 없었다.

"혼자서는 힘든 슬픔이 오면... 제일 먼저 니가 찾아줄 사람 너의 생일마다 꽃을 안겨줄.... 사람 네게 그런 사람이 나일순 없는지 네 곁에 있는 내 친구가 아니라............."

아마도 상우의 등장에 놀란것일까 목련이 노래를 멈추고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상우는 노래를 부르면서 목련을 바라보았다. 왠일인지 그녀 역시도 시선을 돌리지 않고 있었다.

"나의 일생을 모두 주어도... 난 얻지 못하는 그녈 가진 그대라고... 그녈 곁에둔 이유만으로 ....그댄 행복한거라고......."

노래의 반주가 조금 흐르고 곡이 멈추었다. 상우는 마이크를 탁자위에 올려두었다.
목련이 역시 조심스레 탁자위에 올리고 있었다.